올해를 빼고 한국 기후 역사상 가장 더웠다고 하는 1994 년 여름에 나는 부천의 허름한
서향(西向)집에 살았다. 그 더운 여름날 저녁무렵 한껏 뜨거워진 작은 집은 마치 한겨울
달구어진 구들장처럼 후끈거렸다. 에어컨은 당연히 없던 시절이니 무능한 가장으로서
미안한 여름이었다.
그해 11월에 회사에서 알래스카에 발령을 받았다.
그해 알래스카는 춥고 눈이 엄청 내렸다. 최대의 도시 앵커리지라고 예외가 아니었으니
나는 더위와 추위의 극단을 오간 해였던 것이다.
긴 겨울이 가고 여름이 오자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혹한을 이겨낸 온갖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고 무엇보다 맑은 하늘이 제일 좋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겨울에도 습도가 낮아 그다지 모질지 않았는데 여름은 사람이 살기
딱 좋은 기후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백야라는 신기한 현상을 겪게 된다.
하루는 연어 낚시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데 자꾸 졸렸다. 해는 중천인데 왜 이럴까 하면서
시계를 보니 밤 열 시가 넘어 있었다.
온 가족이 테니스 코트 하나를 독차지하고 놀다가 바비큐를 하고, 넷이서 각자 자전거를
타고 수많은 호숫가를 돌던 일은 언제 돌아 보아도 행복한 추억이다.
다운타운에 가면 여름에만 운동이 가능한 테니스장에 수십 개의 코트가 있었다.
그 중 짱을 먹는 키가 190cm 쯤 되는 흑인이 내게 다가와 같이 치자고 해서 고생을
하기도 했다. 녀석은 내가 자기 상대라고 생각하는데 난 그의 파워가 버거웠다.
그는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Buddy 라고 부르며 난타나 게임을 청했는데, 내 허벅지만한
팔뚝으로 휘두르는 그의 스트로크는 아무리 기술적으로 받아도 힘들었다. 그런 추억도
행복하게만 떠오른다. 거한(巨漢) 과 대등하게 공을 넘기던 젊은 시절이었으니.
이제 여름은 더 더워진다는데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습도는 줄지 않을 것이다.
토요일인 어제 산에 갔다가 탈진하는 줄 알았다. '쓰러질 결심' 이 아니라면 여름이 간 후
산에 가기로 했다. 어찌 해도 여름은 가고 가을은 오겠지만 많은 인내가 필요한 때이다.
알래스카의 여름이 못내 그리운 계절이다.
2024.08.11
앵커리지
첫댓글 제 버킷리스트 알래스카의 여름
잘봤습니다
언젠가도 말씀드렸는데, 그곳에 가게 되면
꼭 6월에 가십시오. 겨울은 피하시구요 ^^
대자연 외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신다면
신세계를 보게 될 겁니다.
더위와 추위의 극단을 오간 해.
부러운 추억입니다.
앵커리지 님 닉 속에
알레스카에 대한 그리움이 많은 걸
느끼겠습니다.
여름에 읽는 시원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남들보다 길게 한 군생활 부터 저는 날씨와
마주서야 하는 직업이었습니다.
오늘 공항도 엄청나게 더운데, 그럴 때마다
아름답던 그곳이 떠오릅니다.
더위에 잘 지내시지요?
@앵커리지 며칠 전 사위가 코로나 걸렸는데
제가 지금 코로나 증세가
보이네요.ㅠ
두 돌 앞 둔 손자가 걸릴까봐
걱정입니다.
저야 며칠 앓으면 되지만
아가들은 보통 힘들어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해가 갈수록 여름이 더워지네요.
한창 시절에,
가족과 함께
해외 지사에서 근무를 하셨다니
오죽 하겠습니까.
못내 알래스카의 여름이
그립기도 하고,
젊었던 시절로 돌아가고픈 맘
어련하겠습니까.
올해는 넘 더워요.^^
실은 알래스카는 다른 직원들이 다 피하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기꺼이 갔었지만요.
가족끼리 움직일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축복이었어요.
올 여름은 정말 너무나 덥습니다.
글을 읽는 내내
영화같은 추억의 장면들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엥커리지님께서
이미지에 대한 서술이 탁월하신
거란 생각이 듭니다.
거기서 팽귄도 보섰는지?
알래스카 최대 도시인 앵커리지는 South central
이라 해서 알래스카 남쪽 가운데 커다란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펭귄은 보지 못했습니다.
곰과 무스(대형 사슴) 등은 많이 보았고 겨울엔
오로라를 보았습니다.
오로라를 영상으로 보지 않고 직접 본다면 정말
神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답니다.
저는 아직 종교가 없지만요 ^^;;;
다음엔 알래스카의 별에 대해 쓸 생각입니다.
사실 무궁무진한 얘기거리가 있습니다 ^^
이제는 나이가 있으니 한여름의 등산은 피하는게 좋을거 같습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지당한 말씀입니다.
객기 부리다 큰코 다친 사람이 한 둘이 아님을
알면서도 가끔 치기를 부립니다.
가을을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94년의 여름을 기억합니다.
아내는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는데 그 여름 신포도만 먹고 살았습니다.
그 여름에 '라이언 킹' 만화영화를 보러 딸과 함께 구로 애경백화점 상영관에 갔는데 에어콘 시원한 바람 아래 영화를 보며 '시원하다. 살 것 같다.' 던 아내 얼굴이 생각납니다.
결국 임신중독 상태가 되어 이듬해 이월에 한달 일찍 조기 출산을 했어요.
95년 여름에 에어컨을 샀고, 출산 후부터 아내의 루푸스 병이 시작되었지요. ㅎ
알래스카 앵커리지 호수들을 자전거 타고 신나게 달리는 가족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마음님도 1994년 여름을 한국에서 겪었군요.
정말 대단한 여름이었지요.
알래스카의 여름은 정말 위대했습니다.
그냥 자연 그대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절절히
느꼈지요.
아, 루프스...
긴 설명 없어도 그 어려움이 짐작됩니다.
@앵커리지 알래스카는 가까우니 언제 가족여행으로 여름에 한번 다녀오고 싶네요. 호수에 자전거 타고 달리고 싶어요. ㅎ
@마음자리 그러셔요.
겨울은 당연히 피하시고, 여름도 6, 7월이
좋습니다. 여름엔 호텔이 비싸지만요 ^^
극과 극을 오가는 날씨 경험을 하셨지만
백야가 있는 앵커리지는 잊지 못 할 추억일 것같아요.
앵커리지 님은 추억부자시네요^^
삼복더위 산행 엉청 덥죠?
여름산행은 계곡 트레킹도 많이
가는데요.
추억 부자 맞습니다.
어려선 계룡산 자락 산골에서 천둥 벌거숭이로
자랐고 불혹엔 알래스카를 다녀왔으니까요.
저는 단독산행을 해서 계곡에는 잘 안 가요.
안 가게 된다는 말이 맞겠네요.
언제든 나무랑님과 산행할 날도 있겠지요.
알래스카의 괜찮았던 추억이 떠오를 정도로 한국이 많이 더운 모양입니다.
저는 뉴스로만 접하니 실감이 잘 되지 않아요.
제가 있는 곳은 어제 들에 나갔더니 바람이 벌써 틀리더군요. 이번 여름도 그렇게 덥지는 않았어요.
습기가 덜하면 더위 견디기가 쉬운데 장마철 습한 무더위는 힘들지요. 그래도 아제 더위도 막바지 일테니 힘내세요.
올 여름은 정말 대단합니다.
밤에도 보통 26도를 넘으니 낮엔 얼마나 더운지
모릅니다. 야외 활동은 어려워요.
알래스카에 아주 눌러 앉으려다 한국이 좋아서
들어왔는데 아직도 그곳이 그립습니다.
날이 연일 더우니 더욱 그러하겠습니다.
아직은 또 다녀올 기력이 있을 테니
희망을 품어도 되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밖에서 일을 하려면 정말 힘들고, 그만큼 예전
알래스카가 떠오릅니다.
늘 고맙습니다.
더위에 건강 잘 지키시길 빕니다.
아침 출근 길에 수영장 데려다 주며 그 해 여름을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94년? 기억도 안나~ 그 시절은 우리에게 가장 정신없이 바빴던 기억밖엔~"
더위도 잊고 밤낮없이 일하느라 바빴던 90년대 초....그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요즈음의 더위는 어쩌면 저에겐 사치스런 투정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러셨군요.
저는 그해 공항에서 근무하며 얼마나 더웠는지
모릅니다. 정비 인프라나 에어컨이 부족하던
시절이었어요.
곧 가을입니다.
지리산 천왕봉 무박산행을 꿈 꿉니다.
다른 이의 추억이
쉬이 내 마음에 펼쳐지며 마치 본 듯
상상의 장면들이 스쳐지나가는 아름다운 글입니다.
글 속에 등장하는 백야가 제게는
영화 백야로
그때 좋아했던 주제곡 Say you say me로
그 노래 부른 라이오넬 리치의
가사가 내마음 같았던 Hello로 꼬리를 물며
옛 시간으로 저를 마구 끌어당겼습니다.
참으로 감성적이십니다.
여름철 백야와 겨울철 오로라는 한 번쯤 꼭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절로 우주와 神을 생각하게 만들거든요.
알래스카 생각하며 피서를 해도 좋을 듯 합니다.
이제 북극도 현저히 얼음이 녹는다고 하니 정말 걱정입니다.
인간이 만든 재앙이 코앞에 왔음을 느낍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에너지 아끼고 물건 아끼는
것 외에 없음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1994년에 포천의 단독 주택에서 그 여름을 견뎠는데, 진짜 죽지 않고 살아서 가을을 맞으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
그 집은 동향이었는데 부엌이 서향이라서 저녁을 지으려 부엌에 들어서는 일이 지옥으로 입장하는 것 같았지요.
알래스카에서 가족들과 지내신 그 추억이 지난 일임에도 너무도 부럽습니다.
그래서 앵커리지님, 이시고요. ^^
쓰러질 결심,이 아닌 다음에는 여름 가기까지는 산행 안하신다니 다행입니다. ㅎㅎ
그해 여름은 끔찍했지요.
우리 가족은 압력솥에 닭을 삶아서 저녁무렵
강화도까지 가서 먹고 오곤 했어요.
강화도가 좋아서? 노노노~~^^;;;
차 에어컨으로 몸의 열 식히느라구요 ㅋㅋ
알래스카는 회사에서 서로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저는 만족했고 저 이후로 지원자가
폭주했었어요.
賞 응모글의 댓글 고맙습니다.
그 글 댓글엔 일부러 답댓글을 달지 않았어요.
@앵커리지 네 그러신 것 같았어요. ^^
그거 한 편으로 끝내실 거 아니쥬?
보석 같은 글 창고 계속 개방 요청합니다.
써두신 그 좋은 글들, 차제에 빛을 보여주시길요. ^^
@달항아리 늘 고맙습니다
이 곳의 삼복더위와 상반 된
그 곳의 알래스카 여름이
잔잔히 써내려간
필력 때문인지
덥지 않습니다ㆍ
2시 ㅡ3시까지 정점을 찍던
폭염도
오늘부터는 2시 반을 넘으니
태양의 열기를 더 이상
잡아 당기지 못한
벨트 느슨해진 환풍기 바람과
같습니다
더위 조심하세요.
이젠 우리도 남들 걱정할 나이가 아닙니다 ^^;;;
아직 어느 곳에도 쓰지 않았던 비행기 얘기를.
이제 아주 조금씩 써볼까 해요.
월출엔 머지 않아 추석 보름달이 뜨겠네요.
@앵커리지
네
기대합니다
매년 여름이면
이런더위는 처음본다,
몇십평생사는동안 이렇게 더웠던적이 없다는 건망증성 멘트에 익숙하다가
숲속 시냇물도 미지근하던 94년 여름을 기억하는분을 만나니 반갑기까지합니다.
그 혹독한 더위를 소환하면 이후 여름은 견딜만합니다.
알래스카 살아보기,
그 귀중한 경험을
선택해누리셨으니 멋지십니다.
잠시,님의 추억을빌어 94년 중학생이었던 제 아이들을 자전거 태워 보내봅니다
매년 명절만 되면 "이런 불경기는 IMF 때도
없었다' 는 상인들의 푸념을 방송하는 것도
떠오릅니다 ^^
당시 제 아이들은 초등학생이었어요.
지금은 모두 두 아이를 둔 엄마가 되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