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신
(1909~1935)
안산시 최용신기념관, 개관 15주년 기념 특별기획전`샘골에서
상록수로`개최(샘골에서 아이들을 인솔하는 최용신-뒷모습의 여성으로 추정-1930년대, 한국YWCA연합회 제공)
한국의 농촌계몽가
심훈의 대표작인 〈상록수〉에서 채영신의 모델이 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 창희의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인재양성을 위해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설립할 정도로 교육열이 높은 집안이었다.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8년 서울 감리교 협성여신학교에 입학했다.
여기서 황애덕의 가르침을 받으며 평소에 바라던 농촌계몽운동의 포부를 키웠다.
원산루씨고등여학교(元山樓氏女學校)는 대한제국 시기인 1903년 원산에 설립된 감리교 계통의 근대 여성교육 기관이다.
학교명의 '루씨'는 학교 건축비를 기부한
미국인 선교사인 노스캐롤라이나 교회 여선교회 회장 루시 커닝김(Lucy Armfield Cuninggim, 1838~1908)에서 따온 것이다.
동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화강암으로 지은 교사가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학교의 상징은 신약성경 갈라디아서 5장 22절 에 나온 성령의 아홉가지의 열매로 나오는
"사랑·희락(喜樂)·화평·참음·자비·양선(良善)·충성·온유·절제"를 상징하는 9개의 포도송이였다.
상대적으로 척박한 함경남도 지역의 근대 교육에 많은 영향을 끼친 학교이다.
상록수의 주인공인 최용신이 이 학교 졸업생인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북한 정부정부 수립을 전후하여 제3여중으로 개칭되고
교사 이전 요구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의 학교 현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2003년 서울에서 개교 100주년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기독교청년회(YMCA) 농촌사업부는 1931년 최용신을 수원 샘골로 파견했고
그녀의 지도력이 인정되면서 60명 규모로 인가받은 강습소가 비좁게 되자
새 학원건립운동을 전개하여 1933년 설립에 성공했다.
한편 한국 농촌발전을 위해 더 공부할 필요를 느껴
1934년 봄 일본 고베 신학교[神戶神學校] 사회사업학과에 입학했으나
심한 각기병으로 반 년 만에 귀향했다.
그후 샘골 사람들의 간청에 따라 샘골로 갔으나
얼마 못 가 장중첩증으로 2번의 수술을 받았고 화농복막염까지겹쳐
꽃다운 35살에 죽었다.
1964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그의 업적을 기려
용신봉사상을 제정하여 해마다 시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