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까지 올리는 것 맞나요? 다들 별 말씀들이 없으시길래 시간이 좀 더 있다면 더 나은 책을 보고 생각했을텐데 조금은 아쉽네요^^ 추석 연휴 생각도 못하고 책에 대한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거든요. 이런이런- 일단 집에 있는 전태일 평전을 다시 읽어서 서평을 쓰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너무 감상적인 글이 되어 버렸네요.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심장으로 보고싶었건만,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혼자 논리적이지도 못하게 오버한거 같애서요. 전태일 열사가 한국 노동운동의 큰 흐름인 것은 맞지만 계급에 대한 혹은 노동에 대한 더 예리한 글을 읽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다른 분들의 서평을 기대하면서!
추석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지구 반대편에서 한 농업 인이 자신의 가슴을 찔러 자살하였다. 그는 WTO 협상 반대 시위를 벌이던 농업인 이경해씨였다. 그는 왜 추석 명절에 친지들을 만나지 않고,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자식 같은 작물을 둔 채 낯선 먼 땅에서 죽어가야 했을까? 이것이 바로 극한에 부딪친 사회적 약자들의 투쟁방식이오,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삶의 방식이다. 지난 90년 UR협상을 반대하여 기도한, 할복의 흔적이 선연한 그의 몸뚱이에 다시 한 번 칼을 꽂을 수밖에 없었던 그의 선택은 이 땅 민중들의 눈물인 것이다.
그의 죽음에 전율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지난 2001년의 한국통신 비정규직 노조의 싸움이었다. 500일이 넘는 기간동안 비정규직을 철폐하기 위해, 목숨을 위협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막아내기 위해 몸뚱아리 하나로 거리의 겨울을 보냈던 노동자들. 그리고 투쟁의 과정에서 추위에, 병에 동지들을 떠나 보내야했던 그 분들의 눈물이 가장 먼저 내 가슴을 쳤다. 그러나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동지들을 멀리 떠나 보낸 후에야, 누군가가 죽어나간 후에야, 세상은 겨우 관심 한 번 가져 준다던 꼴꼴 아저씨(거기서 불리는 애칭입니다)의 눈물이었다.
자유대한이라 불리지만, 누구든지 잘 살 수 있는 합리적인 자본주의 경제에 속해있다지만 유리벽이 너무나 강고하고 두터워서 빠져나갈 수 없는 세상, 교육에 의해, 법에 의해, 가진 자들의 농락에 의해 점점 강철 벽으로 변해 가는 세상. 그 세상에서 약자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길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는 행동 하나에도 불법의 딱지를 붙이고 내는 목소리 하나에도 집시법 위반의 굴레를 씌우는 세상. 나는 세상이 아무리 그들을 과격한 급진주의자라고 욕해도 그들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걸고 하는 싸움이기에 죽음을 각오하고 치르는 삶의 투쟁이기에.
올해 초 설 연휴를 편한 마음으로 지내지 못한 것은 배달호 열사의 분신 때문이었다. 집안의 구석구석을 수리하고 가족과 외식 한 번을 하고 택했던 그의 죽음은 새로운 노동운동의 탄압무기인 손해 배상 가압류에 항의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몸부림이었다. 그의 죽음도 역시 무언가 자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세상의 이목이 저지른 범죄일지도 모른다. 살고 싶지만 살 수 없는 세상, 살고 싶지 않지만 살아야 하는 세상...그의 한 줄 글은 100마디 삶의 절규를 대신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언론이나 교육 법 등의 상부구조를 지배자들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라 하였다. 화려한 법전의 죽은 말들은 사회적 약자들의 목을 조르는 올가미가 되고 군림하는 자들은 교육을 통해 계속 군림하는 법을 배우며 언론은 이들을 덮어주는 은색 장막이다. 언론을 가장 많이 불신하면서도 그러나 가장 많이 뛰어 들고 싶었던 건 바로 이런 이유였다. 그 장막을 내 손으로 걷어 버리겠다는 것. 그래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내 의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전태일. 그는 이 죽음의 서곡의 시작이었다. 평화 시장 한 무지랭이 노동자의 현실을 보는 날카로운 시각은, 그러나 따뜻한 그의 심장은 그대로 착취당한 채 살아가는 자신을 포함한 민중에 대한 애정이었고 그의 노력과 현실 변혁을 꿈꾸는 의지는 나약한 지성인의 전형적인 모습일지도 모르는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을 강제하기에 충분했다. 그래 어쩌면 그들의 삶을 걸고 하는 투쟁이기에 나 같은 백면 선생이 공감한다 하기엔 너무 건방진 얘기일지도 모른다.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던 그의 마지막 말이 얼마나 이 땅에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을까. 그의 고통이, 그의 눈물이 또 얼마나 흘러야 열사가 줄어들 수 있을까. 흘러가는 노래에 흘러가는 세월에 가슴이 먹먹한 요즘이다.
일어나라 열사여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너희 칼 쥐고 총 가진 자들. 싸늘한 주검위에 찍힌 독재의 흔적이 검붉은 피로 썩은 살로 외치는 구나.
더 이상 욕되이 말라 너희 멸사봉공 외치는 자들. 압제의 칼바람이 거짓 역사되어 흘러도 갈대처럼 일어서며 외치는 구나.
여기 하나니 죽어 눈을 감으나 남은 이들 모두 부릅뜬 눈으로 살아 참민주 참역사 향해 저길 그 주검을 메고 함께 가는구나.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너희도 모두 죽으리라 저기 저 민중 속으로 달려 나아오며 외치는 앳된 목소리들 그이 불러 깨우는 구나. 일어나라 열사여 깨어나라 투사여 일어나라 열사여 깨어나라 투사여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바람이 분다, 저길 보아라 흐느끼는 사람들의 어깨위 광풍이 분다 저길 보아라 죽은자의 혼백으로 살아온다 반역의 발굽아래 쓰러졌던 풀들을 우리네 땅 가득하게 일으켜 세우는 구나 바람이 분다. 욕된 역사위 해방의 깃발되어 저기 오는 구나
자 부릅떠야하네 우리들 잔악한 압제의 눈빛을 향해 자 일어서야 하네 우리들 패배의 언 땅을 딛고 죽어간 이들 새 역사로 살아날 승리 부활의 상여를 메고 자 나아가야하네 우리들 통일해방세상 찾아서.
부끄러운이름을슬퍼하는까닭입니다악으로깡으로-쥔.
꼬리말
악으로깡으... 다음게시판에서 노래 올리는게 그렇게 힘든줄 몰랐어요 ㅠ_ㅠ 위에 가사 쓴 노래 꼭 올리고 싶어서 3시간동안 인터넷 뒤졌는데 결국 두손 두발 다 들고 자러 갑니다 ㅠ_ㅠ 흑- [2003/09/13]
월하독작 냉정한 머리, 뜨거운 가슴 중, 뜨거운 가슴이 너무 앞서 달려갔다는 느낌이다. 그 분노와 열정 이해 못하는 바 아니지만 글을 읽고 나서 왠지 불편한 까닭은 뭘까? [2003/09/13]
염광조 잘 읽었습니다. 독작 님과 비슷한 느낌. 청년 전태일의 '각성'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이 무엇이었나 분석해보면, 예리한 글을 읽고싶은 아쉬움을 조금 달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2003/09/13]
염광조 그런 의미에서 무엇이 전태일의 계급 각성에 영향을 미쳤나요? 각성을 자극한 것은 무엇이고, 억제한 것은 무엇인가요? 계급각성에 중요한 것은 주체의 성품인가요? 환경의 강제성인가요? 대학생친구에 관한 글에 비춰보았을 때, 노동계급이 아닌 주변계급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계급간 유동성은 존재할까요? [2003/09/13]
epismelo 아.. 악으로깡으로님께 '빙벽'이라는 소설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전체 아홉권이라 좀 분량이 많긴 하지만... 전 지금 세 번째 그 작품을 읽고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습니다. 무기력증과 함께 말이죠. 다시 정신을 수습하려면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하하.... [2003/09/13]
악으로깡으... 앗^^ 조언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생각하며 살아야 겠습니다. 멜로님. 빙벽, 읽고 독후감 제출할께요 훗. 근데 너무 길군. [2003/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