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여, 1 신자들에게 상기시켜, 통치자들과 집권자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며 모든 선행을 할 준비를 갖추게 하십시오. 2 남을 중상하지 말고 온순하고 관대한 사람이 되어 모든 이를 아주 온유하게 대하게 하십시오. 3 사실 우리도 한때 어리석고 순종할 줄 몰랐고 그릇된 길에 빠졌으며, 갖가지 욕망과 쾌락의 노예가 되었고, 악과 질투 속에 살았으며, 고약하게 굴고 서로 미워하였습니다. 4 그러나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호의와 인간애가 드러난 그때,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6 이 성령을 하느님께서는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의 은총으로 의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따라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복음 루카 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만약 부모가 자신의 자녀들이 아닌 다른 제3자에게 유산을 물려준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아마 부모의 이런 결정에 대해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어떻게 부모로써 자식을 외면할 수 있느냐면서 큰 소리로 부당함을 강조하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부모가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부자 노인이 병든 자기 몸을 수년간 정성스럽게 간병해 준 여성에게 재산의 상당 부분을 상속하는 유언장을 작성했습니다. 이 사실을 우연히 자녀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깜짝 놀랐고, 이런 결정을 한 아버지에게 서운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긴 병에 정신이 흐려졌거나 마음이 약해서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닐까 싶었지요. 하지만 상속을 하겠다는 이 부자 노인의 마음은 확고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어렵고 힘들었을 때 함께 했던 이 간병인이 혈육인 자식들보다도 더 소중하고 고마웠다는 것이었지요. 먹고 살기 힘들다면서 자녀들은 나 몰라라 하며 부모를 거의 찾아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혈육이라는 가까운 관계 역시 아무런 왕래가 없고 철저하게 외면하며 산다면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남이라 할지라도 서로 간에 사랑의 관계가 이루어진다면 혈육보다도 더 감사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다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만큼 사회가 각박해졌다는 말도 되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사랑해야 할 대상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도 되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뜻에 맞춰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사실 나병이라는 병은 끔찍해서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족과 공동체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대신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위로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 앞에 나타난 예수님은 마지막 희망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가족까지도 외면하는 상황,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모두가 외면하고 거부하는 상황에서도 철저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하느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드린 사람은 딱 한 명의 사마리아 사람뿐이었습니다. 큰 은총을 받았음에도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이 환자였음을 숨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환자였던 자신을 외면했던 공동체에 또 외면당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작 자신을 받아주고 고쳐주셨던 주님을 외면하는 것이지요.
우리 역시 하느님께 많은 은총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감사의 기도와 또 이에 따른 행동을 하고 있었을까요?
힘든 일 자체가 스트레스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나의 생각이 나를 힘들게도 만들고 즐겁게도 만든다(에픽테토스).
이승훈 베드로 순교자와 그의 아들 순교자 묘.
108 이승훈 베드로 묘(반주골)
우리나라 최초 영세자 이승훈은 1756년 태어나 24세의 젊은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을 단념하고 서학 연구에 매진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마재 정씨 가문 정약용의 누이동생과 혼인하여 그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당대의 석학 이벽과도 교분을 맺은 이승훈은 천진암 강학회에 참석하던 중에 이벽의 권유로 1783년 말 동지사를 따라 북경으로 가서 교리를 배워, 이듬해 북경에서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한국 최초의 영세자가 됩니다.
영세 후 이벽, 정약전 형제, 권일신 등에게 세례를 베풀고 1785년에는 서울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 종교 집회를 가지는 등 신자 공동체를 형성시켜 천주교회를 설립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해 명례방 집회가 형조의 관헌에게 적발되는 ‘을사 추조적발 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천주교 서적을 불태우고 ‘벽이문’을 지어 첫 번째 배교를 합니다. 여기에는 조상 제사 문제와 부모의 적극적인 반대 등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1786년 다시 교회로 돌아왔고, 마침내 1801년 신유박해 때 3월 22일 이가환, 정약용, 홍낙민 등과 함께 체포된 후 4월 8일 참수되었습니다.
이승훈 베드로부터 시작된 신앙은 그의 후손들에게도 이어져 아들 이신규(마티아)를 비롯해 4대에 걸쳐 5명의 순교자를 냈습니다.
매월 셋째 주목요일 오후 3시 만수1동성당에서 미사 후 묘역 도보 순례를 하고 있으며, 주소는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 산 132-1입니다. 성지 사무실 전화는 032-765-6916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