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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느 신문을 읽다보니 '오쟁이 진 남편'이란 평소 듣기 쉽지 않은 낱말이 눈에 띄었습니다. 남녀관계나 부부관계란 당사자들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일들이 많아서 밖으로 나타난 모습만을 보곤 고개를 갸우뚱 할 때가 많습니다. 지인 중에는 바람기가 유난해서 부부관계가 바람잘 날 없을 것 같은데도 늘 평화롭고 다정하게 살아가는 신비스러운 부부가 있습니다. 늘 궁금한 건 아니지만 때로는 그 비밀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신문 속 '오쟁이 진 남자' 이야기를 읽어 보니 어렴풋이나마 그 평화의 비밀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글을 읽기 전에 '오쟁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어 蛇足이지만 올려 보았습니다.
▲오쟁이는 물건을 정돈하거나 담아 두기 위하여 짚을 엮어서 만든 작은 섬을 말하는데, 섬은 주로 곡식을 담기 위해 짚으로 엮어서 만든 자루를 말합니다.
'오쟁이 진 남정네'에 대해서 우리가 흔히 옛 선인들의 외설이야기로 알고 있는 고금소총(古今笑叢)에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고금소총은 1959년 민속자료간행회에서 민간에 내려오는 재미있는 이야기 중 육담(肉談)을 주로 모은 것으로 ‘외설서’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오쟁이 진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마 오쟁이를 지고 나르던 젊은이가 시냇가 건너 밭에서 김을 매던 부부를 발견했습니다. 이 젊은이는 농부의 아내를 보니 몹시 아리따워 어떻게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졌습니다. 그는 한 가지 꾀를 내었습니다.
그리고는 대뜸 건너편 부부를 향해 "여보슈~ 대낮에 이 무슨 훌레짓을 하는 거야?"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농부는 부랴부랴 개울을 건너와 씩씩거리며 무슨 헛소리냐고 따졌습니다.
대마 오쟁이를 진 젊은이는 설명하기를, 예전부터 대마초는 향성분이 있어 그 향이 사람을 혼미하게 하여 헛것을 보이게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못 믿겠다면 이번엔 자기가 가서 부인과 김을 메어 볼 테니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번엔 농부가 대마 오쟁이를 지고 멀리 서 있고, 젊은이는 밭으로 들어가 부인을 마음껏 희롱하고 돌아왔습니다. 젊은이가 농부에게 무엇이 보이더냐고 묻자,
"아~ 자네 말이 맞네 그려. 대마 오쟁이가 사람을 혼미하게 만들더구만"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마누라가 바람을 피워 세상 사람들은 다 아는데 남정네만 이를 모를 경우에 '녹색모자를 썼네(戴綠帽子 다이루 마오 쯔)‘라고 놀린다고 합니다. 이 말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렇습니다. 어느 여인이 다른 남정네하고 집에서 몰래 그 짓을 하는데 갑자기 남편이 들이 닥쳤습니다. 혼비백산한 여인이 침대 밑으로 기어가 숨었는데 마침 거기에 먹고 버린 수박껍질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어떻게든 숨으려고 그 수박껍질을 머리에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戴綠帽子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사람에겐 녹색모자 따위를 선물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중국 물건 중에는 그린 녹색계통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허경구의 커플링 법칙] 오쟁이 진 남편이야말로 행복하다? 허경구 국제정치문제연구소 이사장 <조선일보> 2014년 7월 25일
몸 속의 생태학을 모르고서는 스스로의 몸의 정체성을 알 수 없다. 여기 당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뇌가 연동되어 빚어내는 다채로운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인간 행동학의 세세한 빛과 그림자를 따라가 보라. 그러면 인간 이해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남녀 관계의 주도권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대세는 일부다처제인가, 일처다부제인가?-
한 세대 전만해도 일처다부란 한 여인네가 두 사람의 남정네를 남편으로 둔 경우였다. 생활환경이 척박해서 두 남자 이상의 협조가 없으면 생활을 꾸려나가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처다부란 영어로 Polyandry다. 그래서 여자의 성 기호나 성 편벽성 때문에 남자를 복수 이상으로 좋아하는 경우도 일처다부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법적인 남편과 현실적으로 좋아하는 잠재적인 남편 아닌 남편이 복수로 존재할 때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남편 아닌 남편의 자식을 기르는 부부도 적지 않다. 평균 10-15%라고 한다. 그러나 이 수치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미국 미시건주에서 백인의 경우는 1.4%이지만 흑인의 경우는 같은 지역이라도 10.1% 그리고 영국 런던의 도심지역에서는 6%에 이르고 남쪽 그리고 북쪽지방에 따라서는 30%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서울의 경우도 도심지역에서는 오쟁이를 진 남편(외도한 아내를 가진 남편) 들의 비율이 높고, 외곽 지역에서는 낮을 수도 있고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생활수준이 높고, 불륜을 감출 수 있는 환경이 발달된 곳에서는 오쟁이 비율이 높을 가능성은 있다.
부계불일치(Paternal Discrepancy)라고 부르는 짝외짝의 자손들은 생각보다는 많은 편이다. 일부일처로 알려진 조류조차 짝외짝의 새끼를 얻는 암컷의 비율은 많게는 80%에 이른다고 한다. 모든 동물계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자기 짝 몰래 다른 짝과의 새끼를 낳아서 기르겠다는 이 일종의 모험심과 호기심은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인간의 경우 요즘은 DNA검사법의 발달로 인해 여성이 오쟁이를 진 남편을 만들어보겠다는 그 용기가 이젠 많이 줄어든 것일까?
인간의 경우 짝외짝으로 생긴 자식들의 문제로 생기는 남녀 간의 갈등의 진폭은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그 심도가 넓고 깊다. 한 마디로 인생의 지울 수 없는 영원한 트라우마가 생기게 된다. 부계불일치는 학문용어이고 우리말로는 흔히 오쟁이라고 표현한다. 오쟁이란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보편화된 단어는 아니지만 영어로 cuckold인데 이 단어는 한국어의 오쟁이라는 말보다는 영어에서 훨씬 더 익숙하게 쓰이는 단어다.
오쟁이란 간통한 아내의 남편, 외도한 아내의 남편, 배신한 여인네의 남편이란 뜻이다. 오쟁이란 원래 짐 지는 그릇, 즉 ‘섬’을 일컫는 말이다. 이 섬을 지고 있으면 다시 말해, 오쟁이를 지고 있으면 눈에 보이는 남녀마다 모두 교접을 하는 영상으로 떠오르는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강원도 영월, 평창 지역에 가면 마를 섬에 지고 나르는 농부들을 가끔 볼 수 있다. 이 농부들은 마의 냄새에 취해서 가끔 환몽과 환각에 빠질 수도 있다. 그 때에 생겨나는 나른하고 달콤한 환상, 그것이 곧 남녀 교접의 환영으로 나타나는 지도 모른다. 오쟁이의 어원은 다소 우화적인 요소가 있다고 본다. 얘기가 나온 김에 오쟁이 남편에 대해 약간 덧붙이겠다.
근래 유전자 검사가 부쩍 심해졌지만 요즘 외국에서는 조산원에서 산파가 임산부에게 심심치 않게 듣는 말은 “나올 애가 지 애비를 너무 닮지 말아야 할 텐데...”라는 청 아닌 청이라고 한다. 외간 남자와 일을 벌여 낳는 애가 그 남자를 너무 닮아 남편이 그 사실을 알게 될 까봐 겁이 나서 하는 소리일께다. 그러지 않아도 서양엔 이런 말도 있다. “‘그것’을 알게 되는 마지막 남자는 남편이다.”
여기서 ‘그것’이란 아내가 간통으로 남편 아닌 남편의 애를 낳게 된 일을 뜻한다. 남이 다 아는 사실을 제일 마지막으로 알게 되는 남편의 둔감성(또는 관용?)이 없고서야 어찌 아내가 감히 외간 남자와 일을 벌이고 그리고 거기서 얻은 자식을 남편의 지붕 밑에서 남편 몰래 친자식으로 키울 배짱이 생기겠는가. 그런 녹록잖은 여편네에게 그런 남편은 또 하나의 행운인지도 모른다.
▲그림 출처 /R. Robin Baker and Mark A. Bellis. Human Sperm Competition; Copulation, masturbation and infidelity. 1995. p. 200.
위의 그림은 내 애인지, 남의 애인지 어리둥절해 있는 아이 아버지의 그림이다. 아내가 들여온 남의 애에 대해서 대개의 남편들은 집히는 데가 있지만 이를 숨기고 정성들여 키워준다. 문제는 이런 부부의 경우 파경에 이르는 경우가 많은 데, 그 때 DNA가 다른 키워준 아버지의 법적 지위는 어떻게 될까? 최근의 추세는 생리적 부모보다는 키운 부모의 권리를 인정하는 편이다.
이와 관련하여 실제 있었던 얘기를 하나 소개하겠다. 영국에서 1960-70년대 그런대로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렸던 해롤드 맥밀런이란 정치인이 있었다. 이 사람의 부인은 로버트 부쓰비라는 또다른 보수 정계의 거물과 30년 이상이나 애인 관계를 유지하고 거기서 낳은 사라라는 딸을 맥밀런 수상이 아버지인 것처럼 속여서 별 사고 없이 키워낸 적이 있었다. 맥밀런 부인의 혼외정사는 영국 정계가 다 알고 영국 천하가 다 아는 일이었지만 맥밀런 수상은 이에 대해 한없이 무덤덤한 태도로 일관했다. 사람들이 혹시 그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면 그는 오히려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나에게는 그 일이 “평생 그처럼 좋을 수가 없었다(You’ve never had it so good).”
그에게 오쟁이 된 남편의 신세가 왜 그렇게 좋았다는 것이었을까? 아마 아내가 애인과 정분이 나 있는 동안 그리고 그 자식을 데려와 친자식처럼 기르는 동안 그 아내는 그 사실을 속이고 있는 남편에게 죄책감을 보상이라도 하듯 남편을 하늘같이 받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어떻든 맥밀런 수상은 대과 없이 정치 생활과 인생을 마칠 수 있었으니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로마 황제 중 그 유명한 명상록을 써 현인으로 칭송받던 마커스 아우렐리우스는 부인인 파우스티나가 여러 사내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니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내를 칭송해 마지 않았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일종의 ‘확증편집증(confirmation bias)’ 환자였다고나 할까. 양귀비를 그지없이 사랑했던 당 현종도 양귀비와 안록산 사이의 불륜을 들어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시중에는 외도하는 남편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외도는 필요악이다...” 남편은 외도 때문에 생긴 아내에 대한 부채감 때문에 오히려 아내에게 더 살갑게 대해줄 수 있고 이로 인해서 가정의 평화가 더 잘 유지될 수 있다는 억설 아닌 억설이요, 역설 아닌 역설이다. 이 억설과 역설은 요즘 여자들에게도 똑같이 통용되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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