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한국 파타고니아 원정데 토레스 델 파이네/문종국.이경주 대원
거대한 무대에서 느낀 산의 미학 글 문종국 원정대원·선앤문 등산학교·사진 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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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네라는 거대한 무대에 선 배우. 북봉의 등반 시작 지점까지 가는 암설지대를 등반 중인 이경주 대원. |
드디어 파이네국립공원에 도착했다. 등반허가서를 받기 위해 버스를 타고 라구나 아마르가(Laguna Amarga)를 지나 공원관리사무소로 향한다.
너무나 맑고 깨끗한 노르덴스키요드 호수(Lago Nordenskjold)와 작은 언덕, 동물들의 평화로운 모습이 아름답긴 하지만 클라이머에겐 그저 밋밋하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짙은 먹구름이 살짝 걷히며 구름 속에 어슴푸레 나타났던 파타고니아 침봉들의 시커먼 윤곽과 내가 느꼈던 소름끼치는 공포는 오히려 그 거대함이 주는 산의 미학이 아니었을까.
도착 11일 만에 등반 시작
12월 19일 출국한 원정대는 20일 칠레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확인하니 시철형의 짐이 없다. 항공사에 분실 신고를 하고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로 이동하여 여장을 풀고 식량 및 장비를 구입했다. 본래 일정은 21일에 푸에르토 나탈레스(Puerto Natales)로 향하는 것이었지만 분실된 짐 때문에 일정을 변경하여 이곳에 하루 더 머무르기로 했다.
하루를 더 기다렸지만 결국 짐을 찾지 못하고 푼타 아레나스를 출발해서 푸에르토 나탈레스를 거쳐 파이네국립공원에 도착했다. 등반허가서를 받기 위해 공원관리사무소에 들어가니 다시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가서 신청을 해야 한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돌아가서 입산신청을 하니 크리스마스에 일요일 연휴라 27일이 되어서야 등반허가서가 도착할 것이라고 했다.
6년 전 세로토레 등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파타고니아의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 좋은 등반결과를 내려면 하루라도 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야 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당장이라도 산에 올라가고 싶었지만 정식 절차를 거치기로 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등반허가서를 기다리는 동안 짐을 나르며 26일 제패니스 캠프(Campamento Japones)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할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정찰 겸 등반장비를 데포를 위해 2시간 거리인 비박지까지 다녀왔지만 쉽지 않다. 시간은 2시간이면 되지만 돌밭뿐인 모레인지대를 지겹게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기다리던 27일이 되었지만 등반허가서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더 이상은 지체할 수가 없어서 등반허가서 없이 등반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다음 일정을 생각하면 1월 8일까지는 푼타 아레나스에 도착해야 한다. 이동 시간을 생각하면 우리의 등반은 1월 7일이 마지노선인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오늘을 포함해서 앞으로 열흘뿐이다.
하지만 등반하기로 결심한 날부터 날씨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다시 베이스캠프에서 빈둥거리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파타고니아에서는 좋은날을 기다려 등반하는 것보다 등반 중 좋은날을 기다린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불면증에 시달렸던 세로토레에서의 지난날이 생각났다.
그때는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봉우리에 구름이 걷히기만 하면 숟가락을 집어던지고 무조건 벽으로 뛰었다. 그러다 눈보라에 쫓겨 내려오고 바람에 밀려 내려온 것이 몇 번이었던가. 지금까지 악천후 뿐이던 파타고니아의 날씨에 이를 갈며 설욕의 날만을 기다려 왔었다. 그 날씨에 맞서 싸우지 못했던 것이 후회되고 다시 그런 악천후 속에 있고 싶었다. 파타고니아의 날씨를 견뎌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악천후 속에 첫 번째 등반에서 후퇴
등반계획서에는 우나 피나 리니아 데 로쿠라(Una Fina Linea de Locura·6b/A3)루트를 등반할 것이라고 했었지만 그것은 부족한 자료 속에 그 루트에 대한 등반정보를 알고 있던 것뿐이지, 특별히 매력이 있거나 꼭 해보고 싶은 것 때문은 아니었다.
현지에 도착해서 더 많은 자료들을 수집하면 등반루트는 당연히 변경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이곳에는 등반 정보를 물어볼만한 다른 클라이머들도 없고 믿을만한 자료도 없었다.
처음의 계획을 생각하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이런 이유로 좀더 쉬운 중앙봉의 영국루트나 날씨 상황에 따라 더 쉬운 북봉이라도 등반하기로 했다.
지난 5일간 비가 내렸기 때문에 1월 2일이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새벽 1시 30분 텐트를 열고 나오자 시철 형과 성득 형, 종철 형이 그때까지 잠도 안주무시고 밥까지 해 놓으셨다. 고마움을 뒤로하고 형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베이스캠프를 출발했다.
그 때 등반을 떠나는 한 팀이 더 있었는데 스티븐 슈나이더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파이네 연봉 리지를 솔로등반해서 2002년 클라이밍지가 선정하는 골든피톤상 후보에 올랐던 사람이다. 슈나이더는 여자 친구와 함께 북봉의 몬지노(Monzino) 루트를 등반할 계획이라고 했다.
우리가 앞장서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슈나이더의 랜턴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내려와서 들으니 슈나이더는 바위에 얼음이 얼었다고 그냥 내려갔다고 한다. 데포지점에 도착하여 장비를 착용하고 출발준비를 하니 6시 30분이다.
그런데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고 빗방울이 내린다. 말없이 경주의 얼굴을 보니 ‘겨우 이 정도 날씨에 도망 갈 생각부터 하는 것 아냐?’ 라고 생각하며 비겁자를 보는 눈빛이다. 베이스에서 기다리는 형님들에게 미안한 생각과 경주의 등반에 대한 마음을 외면하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에 일단 콜 비치(Col Bich)까지 가서 벽 생김새라도 확인하기로 했다. 2시간이 넘게 걸려 벽 밑까지 도착하니 9시다.
로프를 꺼내 빠르게 등반을 시작했지만 북봉의 3피치에 올라설 때까지 비는 계속 온다.
하단부의 바위는 부실해서 힘을 주면 떨어져 나간다. 그야 말로 살금살금 기어가야 하는데 몸은 땀과 비에 젖어 으슬으슬 춥고 찝찝하다.
햇볕이 들지 않으니 심리적으로 더 불안해진다. 몸이 젖어오면서 체온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선등자는 그래도 조금 나은 편이지만 후등자는 확보를 보면서 죽을 맛이다.
경주가 올라오는 대로 하강을 시작하여 데포지점까지 내려오니 오후 6시다. 결국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베이스캠프까지 하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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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봉 정상부에서 스폰서기를 들고 촬영한 문종국 대원. |
“It’s Patagonia”
베이스캠프에서 시간을 보내다 결국 생각했던 마지노선인 1월 6일까지 와버렸다.
그런데 날씨가 최악이다. 눈이 베이스캠프까지 내려 온통 하얗게 덮여 버렸다. 아무리 악천후에 대들어 보고자 했지만 이건 너무하다.
날씨가 너무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타이밍이 너무 심술궂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번 시도 때처럼 비는 오지 않는다.
이곳 사람들에게 날씨를 물어보면 대답은 “It’s Patagonia”라고 돌아온다. “파타고니아에서 별걸 다 묻는군” 하는 투다.
그만큼 날씨 변화가 심해 종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좋은 날씨는 파타고니아의 뜻이다. 이제 북봉의 가장 짧은 루트로의 인공등반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번 등반에서 후퇴하며 봐두었던 오버행의 깨끗한 크랙라인이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데포지점에 도착하여 장비를 착용하고 출발하려는데 또다시 미친바람과 눈보라가 불어댄다.
아침에 출발할 때만 해도 잘하면 오늘 하루 만에 북봉 등반을 마치고 내려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베이스캠프를 나왔는데 벽 아래까지 접근하는데 6시간을 넘게 허비해 버렸다. 깊은 눈과 강한 바람, 슬랩 바위면의 얇은 얼음으로 어프로치 중에도 서로 확보를 봐야만 했다. 북봉의 등반 라인쪽에 최대한 가까이 가서 비박자리를 만들고 하룻밤을 지냈다. 다음날인 1월 7일 간단하게 비스킷과 사탕으로 아침을 먹고 7시부터 등반을 시작한다.
첫 피치는 너무 쉬워 보이는데 컨디션 난조로 못 올라가겠다. 역할을 바꿔 경주가 선등을 서는데 월출산 시루봉을 올라가듯이 꾸역꾸역 올라간다. 5.9급 정도의 바위벽을 약 40m쯤 올라가 암각에서 1피치를 끊는다.
2피치부터 정상까지는 일자로 곧게 뻗은 오버행 직상 크랙으로 캠장비가 확실히 설치되는 A1 난이도 구간이다. 50m는 족히 올라가고 나서 “등반 완료” 라는 소리가 들린다. 과연 확보는 튼튼하게 잘 했을까 불안해하며 주마에 체중을 건다. 2피치 확보지점에 도착하니 교묘히 슬링을 걸 수 있는 턱이 있다.
다시 2피치에서 그대로 이어진 크랙을 타고 출발한다. 가까워 보이는데도 40m를 다 올라가서야 등반을 마친다.
다시 주마를 걸고 3번째 피치에 올라서니 그 위로는 큰 바윗장들이 너덜처럼 쌓여있다. 이제 북봉의 정상방향으로 쉽게 전진하면 될 것이나 시간은 이미 6시가 다 되어간다.
날씨 또한 바람과 짙은 가스가 차기 시작해서 파타고니아 특유의 악천후로 돌변해간다.
로프가 하늘로 치솟는 광풍이 불어대기 전에 빨리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사진 촬영 후 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비박지에 내려서니 저녁 10시가 다 되었다.
클라이머의 눈은 다 똑 같은 것 같다. 악천후에도 할만 하겠다 싶어 등반을 시도하며 속으로는 우리가 오른 길이 신루트 이기를 바랬지만 피치마다 헌 하강슬링이 걸려져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올라온 길이 어떤 루트인지는 모르겠다. 먼저 이 바위길을 올랐던 사람이 야속할 뿐이다.
‘등산은 인생의 축소판이다’라는 말과 ‘인생은 연극이다’라는 말에 동감하게 되면서, 원정등반도 긴 인생 가운데 하나의 짧은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해 왔다.
거대한 무대에서 막이 올랐던 짧은 연극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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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레스 델 파이네 서벽전경. 왼쪽부터 세로 니도 데 콘돌(Cerro Nido de Condor)·북봉(Torre Norte)·중앙봉(Torre Central)·남봉(Torre Sur) |
INFORMATION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등반
등반허가
등반대는 파이네 국립공원의 입구인 라구나 아마르가(Laguna Amarga)에서 입장료를 끊고 버스를 타고 공원관리사무소로 가서 등반허가서(Authorization to Climb)를 받야한다. 입산료는 없지만 등반허가서 1부는 원정대가, 1부는 라구나 아마르가 사무실에서 보관해야하며 등반이 끝나면 라구나 아마르가에 들러 영어나 스페인어로 원정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공원관리사무소에는 등반 초기부터 1995년까지, 라구나 아마르가에는 1996년부터 현재까지의 등반기록이 보관되어 있다. 허가 없이 등반하는 것은 단속하지만 심하지는 않은 편이다.
등반허가서는 칠레대사관이나 인터넷으로 문의하여 발급받을 수도 있지만 현지에서는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 관리사무소에 들러 신고하는 것이 낫다.
푸에르토 나탈레스 광장 근처의 우체국(Correo)옆에 있는 가버네이션 빌딩(Gerbernation Building) 2층에서 여권과 함께 신청하면 1~2일 후 등반허가서를 공원관리사무소의 팩스로 보내준다. 그때 공원관리사무소에 가서 등반허가서를 발급 받는다.
교통편
푼타 아레나스 공항에서 미니버스를 빌려 버스 터미널로 이동한 후 푸에르토 나탈레스행 버스를 타는 것이 짐이 많은 원정대에 유리하다. 푼타 아레나스에서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가는 버스는 오후8시 까지 있으며 왕복 6000페소(편도 4000페소)다. 약 3시간이 소요된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파이네 국립공원으로 버스운행은 하루에 2편(오전 8시 30분, 오후 2시 30분) 운행된다.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되며 요금은 왕복 10000페소다. 파이네 국립공원에 도착한 버스는 공원 내 3군데 정류소에 서는데 모든 승객은 라구나 아마르가에서 내려 공원입장료(10000페소)를 내고 승객 명단에서 이름을 체크한 후 가고자 하는 곳으로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국립공원에는 많은 거벽들이 있는데 파이네로 가기 위해서는 라구나 아마르가에 내려서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는 미니버스를 타고 호스테리아 라스 토레스(Hosteria Las Torres)로 가야한다. 15분이 소요되며 요금은 야영비를 포함해 왕복 3500페소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는 세로토레로 가는 칼라파테행 버스도 있다. 기타 정보 칠레에서의 환율은 1달러에 560~590페소다. 인근 아르헨티나 환율은 1달러에 2.6~3페소 정도. 푸에르토 나탈레스는 항상 파이네국립공원 관광을 위한 여행객과 트레커들로 붐비기 때문에 슈퍼마켓과 장비점, 은행 등 모든 편의시설이 있다. 등반 장비와 식량 등은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준비하는 것이 좋다.
연료는 화이트 가솔린과 가스 모두 판매한다. 호스테리아 라스 토레스에서 베이스 캠프까지는 말이나 포터를 이용할 수도 있다. 포터는 40㎏의 짐 수송에 1일 70달러고 말은 70㎏에 69달러다.
베이스캠프
토레스 델 파이네와 포트리스(Fortress), 에스쿠도(Escudo)를 등반하려면 아센시오 계곡으로 올라간다. 2시간 정도 올라가면 칠레노 캠프(Camping Chileno)가 나오고, 그곳에서 1시간만 더 올라가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토레 캠프(Campamento Torres)가 있는데 그곳은 동벽의 베이스캠프가 된다.
1시간을 더 이동하면 서벽의 베이스캠프인 재패니스 캠프(Campamento Japones)가 나온다.
쿠에르노(Cuerno)와 프랜시스 계곡(Valle del Frances)에서 암벽등반을 하려면 호스테리아 라스 또레스에서 노르덴스키요드 호수를 따라 이탈리아노 캠프(Campamento Italiano)에 베이스캠프를 치면 된다.
등반정보
베이스캠프인 재패니스 캠프에서 토레스 델 파이네의 서면벽 까지는 2시간 정도 모레인지대를 따라 가는데, 담을 돌로 쌓아 만든 비박지들이 많이 있다.
그곳에서 벽 밑까지는 경사가 40도 정도 되는 설면과 바위면을 2시간가량 더 올라야 한다.
중앙봉과 북봉 사이의 안부를 콜 비치(Col Bich)라고 하는데 서면벽 쪽으로 접근해 콜 비치까지는 암설이 섞인 쉬운 2피치를 오르면 된다.
콜 비치에서 왼쪽으로 가면 북봉의 몬지노(Monzino) 루트고, 오른쪽으로 가면 중앙봉의 영국(Bonington-Willans)루트인데, 이 루트들이 가장 인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