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昭君怨 (소군원)
동방규(東方虯: 唐. 생몰년미상)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도 자라지 않아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네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저절로 옷 허리띠가 느슨해지는 것은
自然衣帶緩 자연의대완
몸매를 가꾸기 위함이 아니라네
非是爲腰身 비시위요신
2. 王昭君(왕소군)
이백(李白:701~762)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
시성(詩聖)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 되는 성당(盛唐)의 대표적인 시인.
시선(詩仙)이라고 불리며 자유분방하고 도가적인 풍모에 화려한 시를 썼다.
1.100여 편의 시가 전해진다
하지장(賀知章)은 그를 적선(謫仙)이라고 불렀다.
저서로는 『이태백집(李太白集)』30권이 전한다.
왕소군이 옥 안장에 걸터앉아
昭君拂玉鞍 소군불옥안
말위에서 붉은 두 빰에 눈물 흘리네
上馬啼紅頰 상마제홍협
오늘은 한나라 나인이었지만
今日漢宮人 금일한궁인
내일 아침이면 오랑캐의 첩이라네
明朝胡地妾 명조호지첩
*
한(漢)나라 원제(元帝:BC74~BC33)는 여색(女色)을 밝히는 인물이었다.
장안(長安)의 미인(美人)이라는 미인은 모두 궁(宮)으로 불러들여 궁녀(宮女)로 삼았다. 그렇게 불러들인 여인이 3000여 명, 원제는 매일 궁녀를 바꿔가면서 밤을 보냈다. 고르는 것에 지친 그는 화공 모연수(毛延壽)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했다. 그림을 보고 여인을 간택하기 위해서다.
왕소군(王昭君)이라는 이름의 궁녀도 있었다. 절세미인이 따로 없었다. 후대인들이 그를 서시(西施), 양귀비(楊貴妃), 초선(貂蟬)과 더불어 중국 고대의 4대 미인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왕소군은 이미 고령(高齡)이 된 원제에 별 뜻이 없었다. 다른 궁녀들은 모연수(毛延壽)에게 돈을 줘가며 잘 그려달라고 매달렸지만, 왕소군은 그러지 않았다. 당연히 그림 속의 얼굴은 실물보다 이쁘지 않았다.
어느 날 북방의 흉노족(匈奴族) 족장이 원제를 만나 한족 여인을 아내로 삼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흉노족을 잘 보듬어야 했던 원제는 가장 이쁘지 않은 궁녀를 그에게 보내기로 했다. 그가 바로 왕소군이었다. 원제는 작별 인사 차 온 왕소군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림과는 달리 절세미인이었던 때문이다. 모연수의 비리 행각을 알게 된 원제는 그 자리에서 그의 목을 잘랐다. 그럼에도 흉노와의 약속은 지켜야 했다. 왕소군은 눈물로 떠나게 된다.
이국 땅으로 가는 길, 왕소군은 고향 생각이 나 금(琴)을 연주했다.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한 무리 기러기가 날갯짓을 잊고 그만 땅으로 고꾸라질 정도였다. 낙안(落雁)이라는 말이 그래서 생겼다.
훗날 많은 화가들이 왕소군을 그렸고, 시인들은 그의 애달픈 삶을 노래했다. 그중에서도 잘 알려진 게 바로 당(唐) 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좌사(佐史)였던 동방규(東方虯)가 쓴 ‘소군원삼수(昭君怨三首)’ 다.
출처
중앙일보 〔漢字, 세상을 말하다〕, 201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