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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자의 무덤
채 만 식
오래비 경호는 어느 새 고개를 넘어가고 보이지 않는다.
경순은 바람이 치밀세라 뭉뚱거린 어린것을 벅차게 앞으로 안고 허덕지덕, 느슨해진 소복치마 뒷자락을 치렁거리면서 고개 마루턱까지 겨우 올라선다.
산이라기보다도 나지막한 구릉(丘陵)이요, 경사가 완만하여 별로. 험한 길이랄 것도 없다. 그런 것을 이대지 힘이 드는고. 하면, 산후라야 벌써 일곱 달인 걸 여대 몸이 소성되지 안 했을리는 없고 혹시 남편의 그 참변을 만났을 때 그때에 원기가 축가고 만 것이나 아닌가 싶으기도 하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도 아무리 애석한 소죽음일 값에 가령 병이 들어 한동안 신고를 하든지 했다면야 주위의 사람도 최악의 경우를 신경의 단련이라고 할까, 여유라고 할까 아무튼, 일시에 큰 격동을 받지 않고 종용 자약하게 임할 수가 있는 것이지만 이는 전연 상상도 못 할 볼의지변이어서, 무심코 앉았다가 별안간 당한 일이고 보니 사망(死亡) 그것에 대한 애통은 다음에 할 말이요 먼첨 심장이 받은 심리적 타격이 대단했˙던 것이다.
쇠뿔올 바로잡다가 본즉 소가 (죽은 게 아니라) 말승냥이가 되더라는 둥, 불합리와 간접 교사를 하고 있을 수가 없다는 둥, 언뜻 암호 문자(暗號文字)처럼 생긴 이유를 찾아가지고 남편 종택이 제법 그때는 녹록치 않은 소장 논객으로서 어떤 잡지의 전임 필자이던 직책을 내던진 후, 집안에 칩거한 것이 작년 이직 초승…… 잡지사를 그만둔 이유는 그러한 것이었으나, 그를 단행한 직접 동기는 부친에게서 온 한 장의 서신이었었다.
아침에 마악 잡지사에 출근을 하러는 참인데 편지가 배달이 되었다. 이맛살을 잔뜩 찡그리고 읽어내려가던 종택은 귀인성 있는 늙은이들 죽지도 않는다고 불측한 소리를 두린거리면서 방바닥에다 편지를 내동댕이치더니, 그대로 주저앉아, 그 손으로 잡지사에 사직원을 썼던 것이다.
잡지사의 사직이야 시일 문제인들 경순도 알던 터이지만 시아버지의 편지와 무슨 관련이 있을 줄은 뜻밖이라 궁금한 대로 편지를 걷어 가지고 읽어보니 강진사의 예의 한문에 토를 달아가면서 (아들이 순한문을 잘 몰라본대서 언제고 그 투다) 한발이 넘게 달필의 붓글씨로 휘갈긴 사연이 우습기도 하고 솔직하기도 하나, 결국 함축있는 반박이었었다.
―너는 그것이 심히 불가한 양으로 이 애비를 책망하였음이나 진실로 그렇지 않을 연유가 있는 배로다. 하고 뇨하면, 천하의 목탁이라 칭시하는 일보(日報)야며 너도 간여를 하고 있는 잡지야며를 상고할진댄 신문지사(新聞之士)와 잡지지사(雜誌之士) 그를 극구 칭양하여 솔신 고무하니 의(義)임을 가히 알지로다. 우황 거세(擧世) 그를 따름이리요. 유차관치컨대 유의지사(有意之士)와 유산지민(有産之民)이 모름지기 숭상할 대도(大道)인지라, 내 빈재(貧財)를 나누어 혼연히 행한 바이로다―.
말없이 싸서주는 사직원을 받아가지고 나가서, 속달 등기로 부치도록 사환 계집아이를 분별시킨 후에 건넌방으로 도로 들어와보니, 남편은 외투까지 입은 채 출입하러던 차림 그대로 방 한가운데 가서 버얼떡 드러누워 눈을 감고 침음에 잠겨 있었다.
“예는 찬데!”
경순은 남편의 머리 옆으로 조용히 앉으면서 손바닥으로 방바닥율을 짚어보면서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진작부터도 남편이 침울하게 지내왔고 하다가 오늘은 또 그러한 서신이야, 사직원이야 해서 가뜩이나 저렇게 마음이 편안치 않아 하고 하는 것올 경순은 잘 이해할 줄도 알고, 그러므르 근심도 되고 하여 자연 얼굴에 흐린 그늘이 지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러나 그것이 곤곤히 드러만 나는 애정과 명랑한 빛을 통째로 지우지는 못한다.
종택은 천천히 눈을 뜨고 아내를 올려다본다. 근심은 그대로 가득한 얼굴이나 금새 아내의 등이라도 다독다독 해줄 그러한 눈이다.
결혼을 하여 겨우 일 년 남짓하니 연애적 기분도 미처 가시지 않했을 무렵 이기야 하지만, 시방 종택 자신이 정신 생활의 중대한 난면을 만났고, 경순은 그의 고민을 제 살로써 충분히 느끼고 하는 절박한 시기에 처하여서도 그들의 도타운 애정은 결코. 전면에 나타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옷 갈아입구 절러루 누우세예지, 여기는 차아!”
“응.”
종택은 머리를 고였던 한편 팔을 뽑아다가 이마를 뒤로 씻으면서 입을 꾸욱 다물고, 응! 한다. 길쭉한 아래턱이 쑤욱 더 나오고 넓다란 이마가 씻는 대로 더 넓어진다.
“그리구우 인전 아침 불 때예지요? 낮에두 집에 기실 테니깐……·네?”
“응? 응.”
“그리구, 자요오! 옷 갈아입구…….”
“…….”
“아이, 참! 애긴가 뭐, 응 응만 허구.”
“으응, 내가 그랬나!”
종택은 푸시시 일어나 앉은 채로 외투며 양복을 벗고, 아무렇게나 바지와 저고리를 뀌고 걸치고 한다.
경순은 벗어 내놓은 것을 걷어다가 양복장을 열고 차례로 걸면서 밖으로 대고 안잠이를 불러 이 방에 군불을 지피라고 이른다.
종택은 내키잖은 손으르 담배 하나를 피워 물더니 아랫목 보료 위에 가서 잔뜩 쪼그리구 앉는다.
마지막 양복장 문을 닫으려고 할 때다. 무엇을 까막까막 생각하느라고 건성으로 손을 눌리던 경순은 별안간 웃음을 하나 가득 달뜬 음성으로,
“아이! 차음!”
하면서 급하게 들어서다가, 그러다 남편이 하고 앉았는 양을 보고는 그만,
“……·오온! 쫓겨가시나……·치워요?”
종택은 버룩 웃으면서, 제 자세를 내려다보더니 혼자서 또. 고소를 한다.
“방바닥두 뜨둣한데……·그래두 안방으루 건 너가시든지…….”
종택은 고개를 흔들고 경순은 보료 밑을 짚어보다가 그대로 주저 앉는다.
“……저어, 전에― 전에에, 우리 결혼하기 전두 말구, 또 ―그 전……·.”
“…….”
“그때, 양행 허구 싶다구 그.리셨지요? 불란서 같은 데루……·.”
“부울란서? 글쎄…….”
“아따 저 거시키 누구냐, 뿔룸? 응 뿔룸 내각이 생기구 그럴 땐데 그날 일요일날 내가 하숙으로 찾아가니깐 사진서껀 나구헌 신문을 읽으시다가 한 번 휘익 다녀왔으문 좋겠다구, 인제 결혼허구 나서 둘이서 같이 갈꺼라구……·.”
“글쌔……·혹시 그랬올지도 모르지……·그런데, 그런 옛말은 별안간 왜? 가구 싶수?”
“아아니. 그리구 나는 가구 싶어두…….”
경순은 제 아랫배를 내려다보다가 바룩 웃는다.
배가 아직 겉으로 드러나게 보이든 않아도, 삼 개월이라고 며칠 전에 산과 의사의 확진까지 났던 것이다.
종택은 아내를 마주보고 웃던 눈을 재처 가슴 아래로 홀리다가 이윽고 다시 젓가슴께서 잠깐 멈추더니 도로 아내의 눈을 찾는다.
인간은 오랜 옛적 동물로서 많이 취각(臭覺)으로 살던 본능이 아직도 혈관 속에 처져 있어서 그러한지는 몰라도 임신 삼 개월 마침 그때가 아낙이 사랑스러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아낙 역시 그때가 남편에게 느끼는 사랑이 가장 고조에 오른다고,
“아이, 숭업게 왜 자꾸만 보서!”
경순은 수삽하여 부질없이 치맛자락으로 배를 싼다.
종택은 그새 벌써 다른 생각에 눈을 까막까막 주의가 아내에게서 딴 데로 번진다.
경순은 먼점에 하다가 만 이야기가 다시 생각이 나서,
“시방 글쎄여……·양복을 걸믄시 양보옥 양목자앙 허다가 괜히 양행이란 말이 생각이 나겠지요. 그리군 전에 그 이야기두 생각이 나구…… 어떠세요? 마침 이렇게 수서연 허기두 허구 그러니깐 바람두 쐬실 겸 이번에…….”
“글세…….”
“훠얼훨, 좀……·뭐 해필 불란서로만 가신다는 게 아니라, 천천히 구라파루 아메리카루 일주를 하서두 좋구.”
“쯧! 좋겠지.”
“인전 아무래도 한동안 시굴루 내려가서 지내는 게 좋잖아요? 괜히 분잡허구, 또오…….”
“글세…….”
“그러니깐 이왕 서울 살림은 혜치구 일어서는 길에 아주.”
“간다구 허더래두 여권두 문제라!”
“좀 다잡아서 운동을 해보지? 널리 대구…… 되다가 못 되더래두.”
“글쎄……·.”
“여비는 아버님 안 주시거들랑, 뭐 그래 주실 여유도 없으시대지만 이 집 이거 팔구 아무래두 시굴루 내러가자믄 팔아야 할테니깐……· 한 오천 원은 받지요?”
“받겠지.”
“그리구 모자라는 건 내 논 따루 몫지어주신 거 아버지더러 돈으루 주시라구 허지. 그렇지만 아버지가 그건 안 들으실 거구, 오빠더러 이야기를 해예지. 뭐 오빠는 우리 일이라믄 돈이나 한 몇천 원은 얼른 해주실건데……·그러니깐 여비두 걱정 없잖아요?”
“글쎄……·.”
“그리구 나는 그동안 시굴서 집에 가서 있든지, 모처럼 시집 살이라두 좀 허든지, 또오 오면 가면 허든지 그리구우, 네? 나느은…….”
경순은 그 다음이 아주 재미있는 대목인데 남편을 보니 제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앉았기는 앉았으면서 실상은 딴 생각으로 주의가 산만하고그리고 그래서 여대까지 말대꾸하던 것도 건성이었고 한 것을 비로소 알고는 그만 해먹어서, 응석하듯 그의 무릎을 잡아 흔든다. 재미나는 대목이라껀 인제 한 이 대고 후에 당신이 고베나 요코하마에서 배에서 내리는 날 나는 이쁘디 이쁜 애기를 안고. 부두에 서서 마중을 하구요. 이 말을 하겠던 것이다.
그러나 종택은 아내가 개두를 한 그 이야기를 결코. 잊어버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자답게 재치있게 궁리를 해낸 양행이라는 그것이 일변 마음에 당겨 두루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언뜻 양행이면 소극적이기는 할 값에, 지금의 이 거추창스런 자기 분열(自己分裂)에 대한 준열한 자책이 어느 만큼 완화될 수가 있을 성 불렀다.
후일의 에네르기를 삼을 겸 견문도 넓히고. 미흡한 학문도 닦고 하면서 한 이태고 삼 년이고 외국에서 지내다가 서서히 돌아와서 차차 다시…….
이렇게 생각을 했을 때는 당장 오늘이라도 뛰쳐 나가서 여권도 주선을 해보고 여비도 마련을 하고 부리나케 서둘러 하루바삐 떠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의 한 순간이요 마침내 속은 후련하게시리 그리고 경도가 되어버리질 않고서 차차로 찌뿌둠하니 싫었다.
작금의 종택은 강풍을 만나 파선을 하고 난 뱃사람과 흡사하다 하겠다.
본시 바람이란 것은 제 풀로 두어두면 부질없이 파괴나 일삼는 해로운 물건이다. 그러나 사람은 파괴나 하고 마는 자의 힘을 갖다가 역으로 인도하며 나에게 순응하도록 이용을 하는 총명함을 타고 났다. 돛〔帆〕을 만들어 바람을 받아서 물 위로 배를 달리고 풍차를 세워 물레를 돌려서 동력을 얻고 하는 것
이다.
바람은 그런데, 사시 봄바람이나 산들 바람만 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제 성격과 제 이유로 해서 가다가는 성난 폭풍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강풍을 어거하자면, 보다 더 실한 돛과 정정한 풍차가 있어야 할 것이다.
종택은 일찍이 바람 거칠지 않을 절기에 조그마한 돛을 만들어 달고 바다로 나왔었다. 했다가 그는 힘에 부치는 강풍을 만났다.
돛은 여지없이 찢어졌다. 그리고 배는 바다의 낯선 섬에 표착이 되었다. 종택은 지금에, 참혹한 파선의 형태를 바라보면서 해안을 두루 배회하고 있었다.
다시금 든든한 돛을 만들어 달고 강풍이 불어치는 바다로 달릴 의욕은 불타오르나 그에게는 그러한 돛을 만들 힘 체력이 없었다. 천지에 바다와 맞붙어 단판 씨름을 않고는 살 수가 없는 판백이 뱃사람이 아니라 거기 어디 되는 대로. 주저 앉아도 넉넉한 팔자, 이것이 그의 타고난 불리한 약점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음은 한갓 풍랑거친 바다로 쏠리는 것이나, 몸뚱이는 생리적 고통을 지레 겁을 내어 의욕을 뒤받쳐주지 않고는 가재 걸음을 치고 해서, 어찌 하자는 말도 나오지 않던 차인데 공교로이 양행이라는 아내의 훈수다.
얼씨구나 좋다고 몸뚱이는 들이 불란서로, 아메리카로, 발칸으로, 지중해로, 모스크바로, 로마로 세계 지도를 제멋대로 뛰어다니고 있다. 겁이 담뿍 났는데 마차운 샛길이 나오니까 냉큼 그리루 도망을 빼는 꼴새다, 온작 조조(曹操)는 그자인 것이다.
이렇듯 한낱 도비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보니, 처음에 양행이란 말이 나자 언뜻 자기 분열의 가책을 면하려니 싶었던 것은 결국 착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단코 견문이 좁거나 학문이 미흡해서 오늘 당장에 할 노릇을 못 하는 일일새 말이지, 오히려 지금 정도로도 족할 지경이다.
그러니 가사 양행을 한다고 했자 산을 뽑아 짊어지고 올 바 아니며 요술 둔갑을 익혀가지고 올 바 아니며 무기력한 인간이 기는 오나가나 일반이 아닐 것이냐.
그러나마 시방 역사는 백 년의 경륜을 하고 있지는 않느냐. 그는 바야흐로 세계로 하여금 어떤 사실에 뿌리를 박고서 독자한 시대적 성격을 창조시키고 있는 중이니, 그의 연령을 세기(世紀)로써 따져야 할 것이 아니냐.
그 사실이 불합리하고, 그 성격이 나의 생리(生理)에 맞지 않는 것은 딴 이야기다. 이번에는 갈릴레오가 도리어 그레고리 십삼 세의 초사를 받다가,
“……·그래도 지구는 돌지 않는다!”
는 폭담을 들어야 할 차례인 데야……·.
그러니, 양행이나 하여 견문이며 학문쯤 조그만치 더 얻어가지고, 한 이삼 년 만에 돌아온댔자 백 년을 가고도 남을 풍랑인 걸, 종시 무위무능(無爲無能)하기는 일반일 게 아니냐.
결국 그러므로 거추장스런 자기 분열은 오늘 여기서도 짊어지고 있어야 하고, 내일 양행을 한다면 거기서도 짊어지고 다녀야 하고, 그리고 모레 돌아와서도 짊어지고 살아야 할 것이 아니냐.
종택은 한숨을 몰아내쉬다가 어느 새 세계 지도를 펴놓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세계 일주를 하고 있는 아내의 프로필을 삭막한 얼굴로 건너다본다.
그 뒤로도 부부는 저무나 새나 앉아서 하는 이야기란 양행과 거기에 대한 여러 가지 두서없는 한담이었었다. 그러나 일이 첫째 종택 제 자신이 와락 서둘지 않는 탓도 있기는 하지만 막상 눈썹이 당장 타들어오도록 시각이 급한 무엇도 없고 하여 자연 청처짐한 채 어떤 진척이나 곱해진 결정은 된 것이 없었다.
그러구러 두 주일쯤 지나서 예기하지 못했던 — 그러나 당하고보니 당연한 ― 일이 한 가지 뒤집혀지고 말았다. 종택이 마호메트의 초청을 받아 아라비아 땅에를 갔던 것이다.
아침에 떠났던 남편을 근신으로 기다리던 중 오정만 하여 무사히 돌아오는 것을 맞는 경순의 안심은 그러나 단지 그 순간의 것이요 역시 짐작한 대로 일은 크고 절박했었나.
마호메트는 매우 친절하제, ‘코란’과 또 한 가지 다른 명물을 내보이면서 어느 것이 마음에 드느냐고 종택더러 물었다.
종택은 둘다 일없으니 좋은 낙타나 한 마리 주었으며 그놈을 타고 끄으덱그뜨으덱 세상 구경이나 다니겠노라고 대답을 했다.
마호메트는 무열 그다지 겸사를 하느냐고 정으로 주는 것이니 물리치치 말고 제발 둘 중에 한 가지를 골라가져 달라고 간곡히 권을 했다.
종택은 그래도 사양을 하니까 마호메트는 필경 울면서 세 번째 졸랐다.
종택은 그러면 며칠 말미를 주면 집에 돌아가서 자알 생각해 본 뒤에 작정을 하겠노라고 수유물 타 가지고 돌아왔던 것이다.
무서운 진통의 사흘이 저물어 올 때, 오후에는 어떤 낯모를 신사의 방문을 받았다. 그리고 그날 밤 늦어서, 불시로. 출입을 한 종택은 영영 돌아오지 않고 말았다.
그러나 그 밤의 정밤중에 그가 아현(阿峴) 터널 앞에서, 막 진해 나오는 제이호 급행열차를 정면으로 진기한 자살이래서 당시 신문에 게재된 그 기관차 운전수의 말이라는 것에 의하면 하릴없이 성난 짐승처럼 제 몸뚱이를 기관차에 갖다가 똑바로 들이받아 산산박살을 만들어버렸을 줄이야 경순이 집에서 밤새도록 기다리기나 했을 따름이지 꿈엔든 생각을 했올까보냐.
진실로 경순은 밝은 날 아침, 첫편으로 배달된 봉함 엽서의 유서가 아니었으면 그리고 병원에서 경찰서의 사람이 보여주는 양복저 고리며 외투며의 조각에 남은 성명이 아니었으면 그 면상이 형적도 없이 으깨어진 머리와 팔 하나만 붙은 동체(胴體)와 떨어져 나간 팔과 두어 번이나 동강난 다리와 이런 것들을 가까스로 집어다가 그럴 둣이 맞추어만놓은 피투성이의 끔찍스런 육괴, 그를 겨우 열두어 시간 전에 자기 발로 저엉정히 집을 나가던 나의 중난한 남편이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무위와 무능에서 다시 나아가 나의 육체는 나를 망신되게 하는 것으로밖에는 쓰일 곳이 없는 게 되고. 말았다. 프로메테우스의 후손은 불초하여 약행(弱行)할지언정 불을 도로 빼앗지 않기 위하여서는 육체를 처분할 장단조차 없지는 않다. 그대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그대의 총명 이 결코 그대의 전정을 어리석게 인도하지 않을 것만은 자못 안심이다. 새로이 탄생되는 생명은 그대의 의사에 있는 것이지 나의 간섭할 바가 아니다. 다만 참고로 그 생명에서 새로운 진리를 하나 창조할 적극적 의욕이라면 모르거니와 맹목적인 모성애로 쓰잘데없는 육괴나 보육하느라고는 청춘의 재건을 묵살할 필요가 없으리라는 말은 해두고 싶다. 이 지편(紙片)은 욕과 조소를 하겠거든 하라고 경호 군에게만 한 번 보여줌이 좋겠다.
유서의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태동(胎動)도 유산도 안 된 것이 도리어 이상할만침 경순의 심장에 울린 격동은 대단했고, 그러나 시계의 바늘까지 설리는 없어서, 시집이야 친가의 가족들이 울고불고 쫓아 올라오고 그 알뜰한 시체를(화장이라니 될 법이나 한 말이냐고) 떠싣고 고향으로. 내러가서 한 동네인지라 시집과 친정을 오면가면 하는 동안에, 배가 불러오는 속도의 비례로. 뱃속의 생명도 자랐고 팔 월 달에는 여승 종택의 모형(模型) 같은 조그만 놈이 세상을 나왔고, 이제는 그럭저럭 일 년…… 심신은 술렁거렸던 파동으로부터 다같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러나 격심했던 타격 이 타격인 만치 그로 인하여 몸이 축 갔으려니 하는 것도 노상히 엄살은 아닌 것이다.
고개 마루턱에서 경순은 잠깐 숨을 돌리는 성하다가 이어 다시 길을 내려간다.
몇 걸음 더 안 가서 고괭이를 돌아나서자 안개가 타악 트이고서 아래 움푹한 분지의 한복판으로 얼른 남편의 무덤이 내려다보인다. 공동묘지와 달라 가족묘지요 해서, 마침 그 근처로는 다른 무덤도 없고 또 묘비가 섰고 하여, 호젓은 해도 눈에 잘 띄인다. 묘비는 장사 때에는 아직 없었어도. 그 뒤에 해 세운 줄은 알아 낯에 설지 않다.
애통은, 망극하던 초참과 달라 시방은 하나의 생리(生理)와도 같이 살 속으로 훨씬 침착된 때라 새삼스럽기보다 차라리 장사를 지낸 지 일 년 만에야 비로소 찾아오는 남편의 무덤은 반가움이 앞을 선다.
반가움이란 참으로 뜻밖이었다. 경순은 무덤을 보던 눈을 내러 걸음을 주춤주춤, 포대기를 헤치고 들여다본다. 세상에 나와서 오늘이야 저의 부친이라는 사람과 겨우 무덤하고나마 상면을 하는 것이다. 어린것은 무얼 가만 좀 있으라는 듯이 잠이 한참 고부라졌다.
경순은 가만히 웃고 포대기를 도로 여며준다. 그러나 만일 그 언젠가 남편과 마주앉아, 인제 양행을 하고 돌아오는 날 고베나 요코하마 부두에서, 이쁘디 이쁜애기를 안고 마중을 하마고 하려다가 만 그때의 일이 생각이 났다면, 오늘이 자리가 노상히 그렇게 심성이 편안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 그도 그러하려니와 경순이가 남편을 여의고 나서 이 일 년 동안에 지금 보는 바와 같은 무던한 성장(成長)이 없었다고 하면, 저기 반갑게 누워 있는 남편의 무덤을 망지소조 울고 부르짖고 하기에 좀처럼 낭자함을 가누지 못했을 것이다.
종택이 그러한 거조를 내기 전 그 당시…… 경순은 아직 그저 가여운 아가씨였을 값에, 자리잡힌 부인이랄 수는 없었다.
몸 가지는 대와 기분이 많이 여학생 그대로요, 그래서 결혼은 했다지만 가정 이라고 하느니 보다 연애에 더 가까웠다. 남편에게 대한 애정의 형용이 그러하고 쓰는 버캐불러리가 그러하고, 말의 억양까지도 그러했다.
일변, 고이 자라 학창으로부터 이내 가정으로 옮아 앉았을 뿐이라, 생활 의식이라는 것도 단지 남편을 사랑하면서 그의 사랑에 고스란히 파묻히는 것 그것 하나가 주장이요. 그것이 절대(絶對)요 했었다.
이렇게, 말하자면 인생으로써는 미완성 인 채(미완성이 완성이 되러면) 그가 일 년이 될락말락하여, 나이래야 또 과부라는 이름조차 잔인한 스물두셋에 더럭 삼십도 넘은 중년 여인만치나 노성을 했고, 한 것은 자못 흥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남편의 변상을 치르고 나서 적이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경순이 처음으로 주의가 가기는 제 자신의 한 경이로운 변천이었다.
“내 자신의 나, 어디로 대고 보나 단지 나라는 사람. 나……·.”
일찍이 생각도 못 했던 제 자신의 새로워진 발견이었다.
하기야 그것이 큰 손실과 슬픔의 대상인가 하면 허망하고 서글픈 노릇이긴 하지만 사실 그것만을 따로 떼어놓고 보느라면 일변 신통하기 다시 없어 미소라도 떠오를 것 같았다.
“내 자신의 나…… 새로운 내 자신……·.”
볼수록, 그 다음에는 가만히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뒤미처 그는 어떤 긴장을 느끼고 다시금 정신이 들었다. 그 새로운 내 자신의 나는 결코, 장롱 속에 건사해둘 노리개나 얠범에 붙여두고 시시로 떠들어볼 사진이나처럼 순리(純理)의 인식의 대상에만 언제까지고 멈춰 있을 것이 아님을 그는 깨달았던 것이다.
내 자신의 나인 만큼 그러므로 이제부터서는 하나의 엄연한 실제 문제로, 나를 ‘생활’해야 한다.
생활해야 하고, 그러나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잘해야 한다. 잘 생활해야 망정이지 어리석은 짓이나 하고 추태나 부리고― 부질없는 고통이나 서서 하고 해서는, (다른 아무데의 나도 아닌) 내 자신의 나를 욕되게 하고 내가 불행하게 하고 마는 것이다. 결단코 잘해야 한다.
그때에 경순은 새 정신이 번쩍 들었었다. 그러면서 그 ‘잘’이란 소리를 몇 번이고 입으로 뇌었다.
물론 막연한 말이었었다. 그러나 아직은 실제 생활의 많은 체험이 없는 그녀로서는 어떠한 기준을 세울 토대가 없는 만큼 제 자신의 총명이랄까, 영리함이랄까, 아무튼지 그러한 것을 믿고 장차 일에 입하면, 잘하려니 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이 보기에는 지나친 천도부인적(傅道婦人的)인 조심이면서, 그.러나 그러면서도 일변 위태로워 보일 무엇이 없지 않으나 경순 자신은 그걸로. 위선 안심이 되었다. 따라서 갈피없이 헤뜨러지던 여러 가지 상념이며 센티멘털로. 차차로 가라앉을 것은 가라앉고 스러질 것은 스러지고 하여 심신(心神)은 비로소 한결되게 자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침착과 노성은 일찍이 이때로부터 가다오다 남의 눈에도 띄었거니와, 경순 자신도 어디라 없이 제 마음이며 몸가짐의 태도가 무굿무굿합을 느꼈다.
그러구러 예측된 대로 제 시기에 해산을 하고 별탈이 없이 몇 이레가 지나고 다시 두석 달 반년 이렇게 언뜻언뜻 지나가는 동안 경순은 온갖 정성과 생활이 고스란히 어린것에게로 쏠리고 말았다. 그것은 이제 내 자식 이거니, 항차 외로운 흘어머니의 소중한 자식이거니, 하는 타산으로 하여 위정 그리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니요 옆에서 누가 그걸 시킬 며리도 없던 것이요, 단지 샘솟듯 끝없이 절르 솟는 애정으로부터 우러나는 노릇이었다.
이 주관을 한 번 객관했을 때, 경순은 다시 새로운 만족과 안심을 얻었다.
그녀는 일찍이 잘 생활하리라 했었다. 그런데 본득 저는 잘 이상으로 잘 생활하고 있던 것이다.
무엇 한 가지고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소중치 않는 것이 없었다. 가령 요놈이 재주가 한 가지 또 늘어가지고 혼자 뉘어 놀라치면 빠드웃하고 몸을 뒤친다. 들여다보면, 깔린 팔을 뽑으러고 노력을 하는 게 아주 대단하다. 조금만 그대로 두었다가 지처서 고개에 힘이 없을 무렵에 팔을 뽑아준다. 편안하다고 한숨까지 내쉰다.
세상의 어떠한 잘하는 생활을 갖다가놓아도 경순에게는 갓난이의 팔 하나 뽑아 놓아주는 이 생활을 감히 따를 자가 없는 것이 있었다.
경순의 생활의 기준과 코스는, 그리하여 스스로 결정이 되었고, 제풀로. 벌써 잘 진행을 하고 있었다.
그 밖에 다른 생활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이기준의 코스를 따라야 하고, 딸는 자라야만 경순에게는 용납이 될 터이었다.
하기야 다른 생활이라고 해도 실상은 지극히 단순하여 무슨 이렇다고 할 말썽거리도 아직 같아서는 생길 게 없다.
다만 한 가지, 동강이 난 채로¨ 남아 있는 한 토막의 청춘의 처리 문제가 중대하다면 매우 중대하달 수도 있고 난관이라면 성가신 난관이랄 수도 있고 하기는 하나, 내부적으로는(어느 새 말라 비틀어져가는 줄은 모르고서) 수면 상대에 있고 외부적으로는 누가 도끼를 둘러메고서 열 번 찍자고 달려드는 일도 없고, 겸하여 이련 시골이니 좀처럼(가령 기다려 본댓자) 그러한 맹랑한 한량이 있을 며리도 없고 해서 시방 짐작키에는 별반 위험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렇거니 하면 문득 섭섭하여 제 자신이 반감스럽고 연달아 남편의 유서의…… 맹목적인 모성애로 쓰잘데없이…… 운운한 구절이 솔깃하면서 어떤 모험심이 비밀히 손을 까불기도 한다.
경순은 그러나 이러한 때에도 스스로 야속할 만치 결코 당황할 필요가 없다. 그녀는 시방 거기 마당에서 노느라고 빼착빼착 우물 두던 가까이로 가고 있는 애기가 절대(絶對)로 우물에 빠지도록은 안 될 것을 잘 아는 어머니와 같아, 그리고 만약이라도 위험해보일 경우에는 미리서 얼른 안아 올 여유와 자신을 두고 앉아 안심하는 것과 같아, 조금도 덤비거나 불안해 할 거리가 되지 않던 것이다.
시어머니는 본시 편성이요 또 여자의 좁은 소견이라 하겠지만 언뜻 장자의 유유한 풍토가 있어보이는 시아버지 강 진사까지도(물론 드러내놓고 내색을 하는 것은 아니나 눈치가) 저 새파랗게 젊은것이 신식 바람도 쏘이고 한 터에 저대로 수절을 할 이치가 없을 것, 상필 팔자를 고쳐갈테니 우무리 개명이요, 말세이기론 양반의 가문에 욕됨이 클지요, 항차 내 집안을 이을 저 어린것이 남의 의붓 자식이 되어간대서야 당치 않은 일, 그렇잔 즉 애비없는 자식이 에미마저 놓쳐야 한단 말이냐, 해서 매우 울적하고 불안스런 모양이었다.
경순은 불쾌하기보다도 그 근천스런 초조가 어쩌면 연상되어 무심코 미소를 하곤 한다.
친정 부모는 친정 부모대로 저 어린것이 말이라도 민망하지 수절 과부로 평생을 늙히다니 차마 애처로워 볼까보냐고, 신식 공부도 넉넉히 했고. 한 터에 자식은 젖이나 떨어지거들랑 제 조부모한테 내주고서 진작 팔자를 고쳤으면 작히나 좋겠느냐고 은근히 상심을 하면서 한숨을 곧잘 쉰다.
경순은, 다친 게 살은 내 살이라도 나는 짜장 아픈 줄을 모르는데 옆에서들 업살엄살하는 것이 육친의 살뜰한 정인줄이야 이해를 못 하는 바 아니지만 하마 코웃음이 나곤 한다.
바로 며칠 전, 오래비 경호도 앉았고 한 자리에서다.
경순은 한담을 하던 끝에 짐짓 친정 모친더러 대체 그 과부라는 것이 어쩌니 그렇게 여자한테 찔끔이요 상서롭지 못한 것이냐고, 또 과부면 과부지 제마다 남편이 아쉬워서 미치라는 법은 어디 있다더냐고 웃음말 섞어 공박을 주었다.
모친은 그러나 대껄을 않고 웃기만 하고 있는데 경호가,
“그런 게 아니라 어머니는 시방두 과부가 시집을 가면 못 쓰는 걸루 아신단다. 그러면서두 딸 너는 시집을 갔으면 허구 바래신단다. 우리 어머니 휴머니즘이야.”
하고 꺼얼껄 웃었다.
경순도 같이 웃다가,
“가만히 기시요 어머니, 내 시집 열 번 더 간 것보다 더 보람이 있게시리, 요놈 요조그만 놈을(어린것을 추스르고 어르고 해싸면서) 오놈을 어쨌든지 저기 저 햇덩어리만한 대장부를 만들어 노께시니, 할머닐라컨 오래―—사시다가 재미나보시오, 보쌈이나 못 들어오게들 하시오.”
하면서 제 결심을 내비쳐보였다.
“너 그 말 잘했다! 헴 헴…….”
경호가 또다시 그 말을 받아 무릎을 탁 치면서 내닫다가 그게 몸짓이 너무 과했는지 기침을 한바탕 출령거린 뒤에,
“……·내, 너한테 혭 헴, 첨지를 한 장 내리마 혭 헴…….”
하고 연신 마튼 기침을 하던 것이다.
모친은 정렬부인 가자란 소린 줄 알고서 말미암아 좋아서 혼자 웃고, 경순은 모르는 어휘라 뚜렛뚜렛,
“무슨, 지요?”
“첨지…… 아버지두 참봉 첨지를 받구서 참봉읕 했구, 헴 헴, 느이 시아버지 강 진사가 쓰구 있는 그 위대한 삼각산(三角山=冠) 두 첩 지값이란다. 실상 모두 인찌끼댔지만……·.”
“사령장 같군?”
“오올치 맞았어! 헴헴, 그래 나는 너한테 무슨 첩지를 내리는 고 하면…… 이애 이건 괘앤히 아버지 참봉 첩지나 강 진사 진사 첩지처럼 인찌끼는 아니렷다!”
“네에, 어서 첨지나 내리시우. 그렇지만 나는 한문은 모르니 첩지는 받어두 인찌끼 참봉 인찌끼 진사제.”
“아마 너는 오래비 덕에 정럴부인 가자나 타나보다!”
모친이 새에서 한 마디 거드는 것을 경호는 커다랗게 손을 내으면서,
“에― 천만에! 괘앤히 정렬부인 가자 탔다가는, 어머니 지애 영영 시집 못 가우 헴헴…… 그린게 아니구 이애? 너 시방 고놈을 햇덩어리만한 대장부를 만든댔지? 응, 됐어, 헴 헴 태양은 광염이렷다, 비타민 씨두 있지만 그런 건나 같은 폐병쟁이나 배추 장수한테 공덕이고, 헴 헴…….”
“인전 그마안 해두시우 기침 나오리다! 참봉 진사는 이담에 허지요.”
“뭣 이냐. 태양은 광명이요 응? 광명은 진리(眞理)렷다, 그러니 너는 처억 진리의 어머니란 벼슬을 주는 거란 말이야 진리의 어머니. 어떠냐? 맘에 드냐?”
“하하하, 것두 해롭진 않지요! 하하하, 요게 요게 진리는 진리야!”
경순은 어린것을 들여다보면서 재미있어 한다. 농담 좋아하는 오래비의 한낱 농담에서 나온 말이기는 하지만, 그러므로. 진리의 어머니라는 경순 제 자신에 대한 형용은 귀 밖으로 듣고 말 것이지만, 이 어린것이 진리라는 데는 마음에 차악 앵기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애? 너 그런 벼슬 했다구 가구 싶은 시집 못 갈건 없다! 괘앤히 헴 헴, 어머니가 날 청원하실라!”
그 뒤로부터 경호는 곧잘 누이를 이애 경순아 하는 대신 여보 진리의 어머니니 하면서 유쾌한 애정을 농담으로 표현하곤 했다. 그러나 그 진리의 어머니 대신 진리의 자당님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러한 때는 누이가 차차로 염기(艶氣) 없어져가는 노성에 전도 부인과 같은 일종의 경멸을 느끼고서 조소를 해주는 조롱이던 것이다.
고개 마루턱에서 고팽이를 돌아 내러서니 오래비 경호는 오래간만에 넓은 대기 속에서 훠얼훨 이렇게 걷는 것이 대단히 유쾌한가 본지 벌써 저만침 멀찍이, 모자는 뻬뚜룸 단장을 홰이홰 길도. 안 난 산비탈 잔디밭으르 비어져서 가분가분 걸어 내려가고 있다.
당자 자신은 방금 휘파람이라도 불듯 매우 신이 나 하는 모양이나 라글란 봄 외투 밑으로 가뜩이나 쿠렁쿠렁 쌔지 않고 따로 노는 앙상한 어깨가 눈에 띄는 게 새삼스럽게 애처로워 경순은 마음이 언짢았다.
무덤이 있는 분지께로 거진 당도해서야 경호는 뒤를 돌려다보고 단장을 쳐든다.
경순이 오래비가 기다리고 섰는 곳까지 가까이 따라 갔을 무렵해서 마침 저편 짝으로(지름길이 있었던 모양이지) 등너머 산지기네 아낙인 듯, 듯자리 말은 것을 안고 젊은 촌색시 하나가 부리나케 무덤 옆으로 가고 있다.
“이애 저기 봐라…….”
경호는 누이가 제 옆에까지 당도하기를 기다려 무덤 앞에 다가 어느새 돗자리를 퍼놓고는 도로 달아나듯 물러가고 있는 산지기네 아낙을 턱으로 가리키면서,
“……·산지기네 아낙이 철두 아닌데 헴 헴, 쥔네 과수 아씨가 성모 나온 걸 보구서 알심을 부리는 거로다. 됐어!”
경순은 그저 그련가보다고 심상히 웃으면서 나란히 걷기 시작하는데 경호는 빈들빈들 분명 누이를 무어라고 또 놀려줄 입초리다.
“거 뭣이야 술을 한 병 차구 나오는 걸 깜박 잊었지! 돗자리를 펴놓은 걸 보니 생각이 나는군!”
“술은 해 무얼 허시우?”
“뭘 허다니, 그래? 정든 님 무덤을 찾아왔으면서 너두냐…….”
“오온!”
“허허허허. 그래 뭣 이야 술을 한 잔 부어놓굴랑 헴 헴, 저 자리에 가서 엎디려설랑, 애고오 애고, 한바탕 울어야 않나! 응? 어허허허.”
“내, 오온!”
“어 허허허 허허허허.”
“오라버니 분배에 울음이 나오려다가두 도루 들어가구 말겠수.”
“허허허허 어허허허, 그런데 뭣이냐, 달리 그런 게 아니라, 내 인제 그릴 게 하나 있어서 한 말이다. 인제 한 백호짜리루다가 하나를 그리는데 헴 헴, 그걸 쓰윽 만화루 그리거든. 만화루…… 네가 무덤 앞에다가 술을 부어놓굴랑 엎디려서 애고오애고. 우는 걸 만화루 그려요.”
“왜 인전, 어머니 말씀마따나 눈방울만 생긴 대장쟁이 때 그건 영 안 그리시우? 방향 전환인가? 만화루.”
“것두 인제 시절이 오면야 다시 그리지, 그리지만 헴 헴. 시방 그 만화를 그렇게 하나 그.리는데……·그려가지굴랑 찬(讚)은 갖다가 무어라구 쓰느냐 하면 헴 헴, 이날에 진리의 자당이 패배자의 무덤 앞에서 크게 울도다! 이렇게 쓴단 말이렷다. 응? 어떠냐? 그리구 화제는 불합리구 어떠냐?”
“불합린지 악취민지……·.”
“돈키호테의 후일담(後日譚)이라구 허는 게 좋겠군. 햄 헴. 옳아! 저 녀석 돈키호테……˙.”
경호는 단장을 들어 무덤을 가리킨다. 경순도 아까부터 생각 많던 얼굴로 어느덧 남편의 무딤을 바라보다가 도로. 고개를 숙이고 잠잠히 걷는다.
“돈키호테란 말은 잘 하셨지?”
이윽고 경순은, 너무도 짧았던 행복한 시절의 추억이 다하고, 끝이 남편의 그 참변에 이르자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혼잣말을 하듯 뇌이면서 눈은 다시 무덤으로 옮는다.
“하! 갈 데 있나! 돈키호테 아니구야…….”
경호도 명상에서 깨어나서 눈 가는 대로 무덤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래두, 그래두는 말이지…… 돈키호테는 돈키호테라두 그 녀석이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거 거 토옹쾌 통쾌헌 일이 있구나! 응? 허허허허, 됐단 말이야!”
경호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통쾌한 것이……·뭣이냐 헴 헴, 저 녀석이 글쎄, 아 저걸 좀 보지? 저럭허구서 무덤 속으루 도망을 뺏으니 헴 헴, 아 도망을 빼설랑 저럭허구 있으니 뭣이냐 글쎄, 마호메트는 섀벽에 아라 영감이 와설랑 기관총을 들이대구서, 너 이 녀석 ‘코란’을 읽을 테냐 안 읽을 테냐 헌들 어떡허나? 죽은 놈을 뉘 재주루? 허허허허, 거 통쾌허잖아 허허허허.”
“통쾌헌 건 지, 원……·.”
경순은 비난의 음성인 것이 아니라 곰곰 찬탄을 하듯,
“바우가 밉다구 발길루 걷어 찼는지!”
“됐단 말이야…… 써억 통쾌하단 말이야……: 대가리루다 급행열차를 정면으루 들이받은 것보다 그 놈이 되려 걸작이렷다 걸작, 허허허허…… 크크크.”
말 끝이 별안간 기침으로 변한다. 경호의 건강으로는 말이 좀 과했고 걸음도 졸지에 너무 속했을는지도 모른다.
겨울이 물러가면서 금년들어 처음 보게 날이 따사하고 좋아 삼동의 지리하던 요양 생활 끝이라 모처럼 농사 근처고 어디고 산보라도, 나가볼까 하던 차인데 구러자 마침 오정만 하여 누이가 생질놈을 안고 오더니, 인제 일 주기(周忌)도 임박했고 이놈도 그 전에 제 도리를 치르도록 해줄 겸 잠깐 산소에를 다녀오고 싶다고, 그러나 시댁에서는 노인들이 나서서 어린것한테 아직도 첫봄머리의 쌀쌀한 바람이 해로울까하여 마땅찮아 할까봐서, 또는 교근을 채린다 하인을 안동해준다. 오히러 단출함이 좋을 나들이를 긴찮이 분배를 놓을까봐서, 그대로. 잠자코 나왔으나 이십 리 상거를 도보로 왕복하잘 수는 없으니 인력거가 됐든지 자동차가 됐든지 무어나 탈 것을 좀 분별시켜 달라고 하는 청이었다.
경순은 명색이나마 시부모 앞에서 얼씬거리고 있는 몸이니 또한 상청과도 다를 뿐 아니라 대체 무덤이란 그다지 자주 나다니게 되는 것은 아니기야 하다지만, 일변 생각하면 생전에 서로 자별했던 정으로 보든지 생판 촌며느리와는 달리 출입이 구속이 없는 처지로 보든지 장사를 하고나서 우금 일 년이나 대로 문두름이 있었다는 것은 좀 박절했다고 할는지 매몰스럽다고 할는지…….
물론 작년 이보다 며칠 늦어서 저 자리에다가 저렇게 무덤을 묻고는 손에 묻은 흙도 씻는 둥 마는 둥 바로 살림을 가다구니 하느라고 서울로. 올라갔었고 두 달 만에 도로 내려왔을 때는 삼백여 리의 기차 여행이 위험이 느껴질 만침 배가 불렀고, 그리자 팔 월에 해산을 하고서는 몸이 소성될 무렵이라는 게 늦은 가을과 인해 삼동이고 보니 첫째 어린것을 안고 나오잔 말도 떼어놓고 나오잔 말도 나지 않았고 해서 이래지래 마차운 계제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만약에 (만약에라도) 저기 있는 저 무덤이 백골이나 묻혀 있는 뿐 말도 없는 한줌의 흙이 아니고 방금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면 결단코 경순은(하필 경순이리오” 누가 당했든지) 수화를 가리지 않았을지언정 그대두록 번연하지는 가령 하고 싶어도 못 했을 것이다. 그런 걸로 미루어보면 사람은 죽은 이를 무
정하다고 하지만 오히려 살아 남은 인간이 무정한 게 아닌가 싶으다.
아무튼지 그래서 경순은 오늘 나가보았으면 하는 마음이야 없는 것이 아니로되 내일 나가도 무던할 노룻이라 그러한 오늘과 오늘이 일 년 내내 저물군 하다가 오늘이란 오늘에야 마침 날씨도 반갑고 하여 그러면 다녀오는 거라고 작정을 하고 나니 미상불 그제서야 너무 소원했구나 하는 민망한 생각이 들고 한 다음에는 누가 붙잡고 말릴까 무섭게 부랴사랴 달러 나온 길이었다. 그러나 병중이라 조심이 되는 오래비와 동행을 하자던 요량은 아니었는데, 경호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예라 오늘은 내가 진리의 어머니의 시종 무관이렷다고 성큼 채리고 따라 나섰던 것이다.
경호는 오늘 기위 산보는 하고 싶던 차요 해서 누이의 너무 호젓한 길동무도 해주러니와 저역시 매제일 뿐더러 생전의 삼십 년 가까운 다정한 친구의 무덤을 장사 때에 회정을 나왔을 뿐 여태껏 찾지 못했던 터라 검사검사 나섰던 걸음이다. 그리고 아닌게 아니라 자동차를 내려 두 킬로 남짓한 촌락과 구릉을 오르내리기가 생각하던 바와 같이 매우 유쾌했었다. 그러나 그놈 유쾌한 놈에 겨워 무심코 겅중거린 것이 약간 무리랄 수도 있었다.
경호는 단장을 놓고 유유하게 잔디 위에 가서 주저앉아 쿨룩쿨룩 기침을 치르고 있고 경순은 애가 씨여 잔뜩 찡그린 얼굴로 오래비의 괴로워하는 양을 들여다보고 섰다.
이윽고 경호는 그득 넘어온 담을 출입할 때의 소용인 종이타구에 배앝아 집어넣다가 너무 다붙어 섰는 누이를 힐끔 올려다보더니,
“어린놈꺼정 안구서 좀 조심해라! 괜히 검두 안 나나보구나!”
하면서 웃음말같이 나무랜다.
경순은 듣고 보니 그렇기는 하나 그렇다고 사뭇 질겁을 해서 물러서기도 박절한 짓이라 어린것만 한옆으로 비껴 안는데 마침 잠이 깼는지 포대기 속이 꼼풀꼼풀한다.
“다아 지무셨군. 우리 대장이.”
경순은 둘러보다가, 저만침 무덤 앞에 편 돗자리가 눈에 띄었으나 무얼 그러겠느냐고 넌지시 북덕 잔디 위로 가서 퍼근히 앉아, 포대기를 헤치고 들여다본다.
간드러지게 생긴 얼굴이, 눈을 아직 그대로 지그려 감고 콧등을 찡깃찡깃하다가 고 육중한 입을 하――벌리고 하품을 늘어지게 배앝는다. 그러고는 젖꼭지를 찾느라고 임술을 오물오물하더니 새까만 두 눈을 반짝…….”
“께꾸우―자아 젖 먹어야지…….”
경순은 가슴을 헤치고 젓통을 들어내다가 물러주면서,
“자아아, 젓 먹구우.”
아직도 잠이 더얼 깨어 눈을 시일실 감으면서도, 주먹은 가져다 커다란 젖통을 움켜쥐며 잡아 대리며 꿀꺽꿀꺽 말아 넘긴다. 경호가 앉은 채로. 돌려다보다가,
“고놈이 아범한테 온 줄 알구서 때맞춰 깬 거로다!”
“하하 구랬나? 이 사람·……그렇지만 가만히 기시우, 그까짓 미운 아빠는 내가 젖 배불리 먹구서 이따가 천천히 만나보겠습니다.”
경호는 몸의 피로를 쉬면서 앉아, 가냘픈 대로 봄빛을 즐기기에 정신이 괄린다.
이월 보름께라 아직은 일러 바람 끝이 쌀쌀한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철이지만, 여기는 북쪽으로 언덕이 막히고 움푹 패인 분지가 되어서 바람은 없고 한갓 다양만 하다. 맑기도 하려니와 햇빛은 따사한걸 지나쳐 정이 들게 포근하다.
주위는 깜박 잊어버린 듯 조용하다 묘지와 같이 괴괴한 게 아니라 잠자는 애기와 같이 한가하게 조용하다. 조용하고 볕이 봄스러운 품이 금새 어디서 꿀벌이라도 한 마리 왱―가늘게 울고 날아드는 성 싶으다.
잔디풀은 여태 그냥 시들어 있다. 그러나 속대를 뽑으면 벌써 물이 올라 촉촉할 것 같다.
앞으로 느릿하니 미끄러져 내러가던 구릉이 다하면 아래서는 보리밭이 다랑다랑 기어 올라왔다. 먼 빛에 보아도 가즈런히 골을 타고 자란 보리풀이 제법 탐스럽다.
밭에는 연달아 넓은 들판이 자꾸자꾸 피져 나간다. 볕 그늘이 가물가물 들판을 퍼져 나가다 못 해 끝이 희미해진 거기서야 겨우 아스란한 산들과 만난다.
들판에는 가까이 거기도 하나 또 저기도 하나 그리고 저어기도…… 네 패 다섯 패 군데군데서 쟁기를 멘 소가 뒤에 선 사람으로 더불어 늘어지게 움직이는지 마는지 어쩌면 야구를 내는 입이 보이는 것도 같으다. 완구히 봄을 장만하고 있다. 제각기 들판도 밭도 잔디풀도. 부지런히 그러나 얌전스럽게들 봄을 장만하느라 여념이 없다.
얼마를 그럭허고 넋없이 앉았었던지, 경호는 이윽고 제 정신이 들자 후―거친 소리를 내어,
“봄! 봄은 봄이렷다!”
하면서 앞에 놓았던 단장을 집는다. 그때다. 무심코 내러다보던 눈인데 뜻밖에도 거기에는,
“네에, 봄이올시다, 안녕합쇼?”
하는 듯이 정말로 봄이 한 놈 고개를 뾰죽이 내놓고 있는 것이다. 털이 송알송알 갓 돋은 할미꽃 엄이다. 어떻게도 신통한지 고놈을 쏘옥 손가락으루 잡아 뽑아 가지고 싶은 것을 겨우 참고 허리가 고부라져서 들여다보고 있다. 얼굴에는 어린 아이같이 무심한 희열이 넘친다.
처음에는 그것도 봄을 찾아냈다는 단순한 기쁨이었었다. 그러나 그는 이 그다지 아름다울 것도 없는 한 포기의 할미꽃의 엄에서, 일찍이 다른 생활에서는 맛보아 보지 못한 어떤 새로운 희열을 지금에 비로소 느끼고 있던 것이다. 생명의 창조를 보았다는 즐거움인데 그러나 그는 실상 돌이켜, 자류(自流)의 비판을 가질 겨를은 미처 나지 않았었다.
“생명의 창조! 생명의 창조!”
경호는 불현둣이 누이와 누이의 품에 거기 있을 그 어린 것이 보고 싶어 꿈으로부터 깨어난 사람처럼 중얼중얼 중얼거리면서 경순이 앉았는 곳으로 휘적휘적 발걸음을 옮겨놓는다. 미상불 거기에는 예기했던 바 보다도 그 이상으로 훨씬. 더 황홀한 정경이 벌어져 있었다.
가느다란 미소를 드리우고, 품에 안긴 어린것을 들여다보느라 약간 소곳한 머리의 하이얀 가르마 밑으로 곱게 빚어진 누이의 얼굴, 그녀는 개개의 모습이며 전체의 선이며 윤곽이며, 분명코 누이의 얼굴임에는 다름이 없으나 이토록 아름다운 표정은 일찍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었다.
경호는 그것이 대단히 아름다운 줄은 알았으나 달리 생각을 해 볼 사이는 없고, 단지 한 여인으로서의 아름다운 것으로만 여겨 내심에, 저 애가 아무래도 시집을 가야 할까보다고, 이런 실없는 걱정을 하면서 무심코 한 발자국만 더 떼어놓다가, 그제서야 활연히 그 아름다움의 소이를 깨닫고 한꺼번에 숨을 들여 쉰 채 주춤 그 자리에 멈춰 선다.
경순은 그때 마침, 어린놈이(배가 불러 해찰은 하느라고 그랬는지) 빨간 젖꼭지를 입술 밖으르 물리고서 말끄러미 어머니를 올려다보다가 그대로 병싯 웃는 그 입……·그 임으로 어머니는 마악 임술을 가지고 가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었다.
“야아하!”
경호가 커다랗게 감탄을 할 때는 경순은 쪼옥 입맞추는 소리를 내면서 도¨로 고개를 쳐들고 웃는다.
“왜요!…….”
경순은 어린놈을 추실러 올려 볼비빔을 하면서,
“……·자아 뭐라구 또, 험구를 하실려구. 그렇지만 큰아버지 자아, 암만 나를 험구를 해보시우? 내가 뭐 꼼짝이나 하나, 자아.”
“하하하, 그건 명담이렷다. 헴 헴, 그런데…… 그런 게 아니구 내 오늘 소득이 많구나.”
“소득은, 웬…….”
“일왈 헴 헴, 조곰 아까 느이 모자가 허구 있던 포즈를 말이다. 헴 헴. 그대로 살려만 노면은 뭐 아주 ‘모나리자’가 왔다가 울구 가겠더라! 내 인제 그릴 테니 보렴.”
“‘모나리자’ 따위는 미술 축에두 못 든다더니!”
“허허허허. 그렇지만 헴 헴. 이놈 지구가 눈에 뵈는 사실대루만 사는 세상이니, 개체두 그럴밖에 더 있느냐! 춘향이두 시방 세상에 났었다면 카페나 빠에 가서 헴 헴!”
경순은 어린 놈을 안고 일어서서 무덤께로 천천히 걸어간다. 경호는 나란히 단장을 휘젓고 걸으면서,
그리구 헴 헴, 거 이제보니 생명의 창조라는 게 재미가 그럴 듯헌 것 같더라!…… 네 재미를 비로소 짐작한 배로다!”
“아이구 주정허시우! 아, 요거 말이지요?”
경순은 어린놈을 오래비께로 보여주면서 볼을 대고 비비면서,
“……요거, 요게 재미란? 천하를 다아 주어두 안 바꿀 텐데…… 그렇지이? 내 새끼, 내 강아지.”
“강아지?”
경호는 괜한 음성을 지르면서 주춤 멈춰설 듯, 누이의 어린놈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문요! 내 강아지, 내 새끼…… 요게 내 강아지 아니우?”
“흐음, 강아지라!”
경호는 즐겁던 얼굴이 삽시간에 불쾌한 주름살이 좌악 퍼진다. 퍼뜩, 강아지라는 말 그것에서 명색없는 생명 쓰잘데 없는 생명이라는 것을 연상했던 것이다. 그는 제 감격이라는 것이 생각하고 보니 쑥스러울 만치 허망했다. 환상은 순간도 더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흥!”
경호는 연해 코방귀를 뀌면서 입을 삐쭉한다. 명색없는 생명을 쓰잘데없는 생명을 그따위 생명의 창조가 뭐느니 기쁠 것이 무엇이야. 기뻐한다는 것은 결국 삐뚤어진 주관의 착각! 애당초 창조부터가 의미하지 않느냐.
말 밑에 짓밟히기나 할 명색없는 풀, 도야지나 개나 마소같이 만만한 생명이 지구 위에서 하루에도 몇만 명씩이나 새로이 창조되는 인간들이 그 중에 단 몇몇이 과연 쓰잘데었는 생명일 것이냐. 악당의 창조를 어째서 축하해야 하느냐.
창기를, 노예를, 불의한 실상의 도구를, 결핵균이나 펴뜨리는 폐병쟁이를 그것들의 무수한 탄생 이 어째서 생명의 창조의 기쁨값이 나갈 것이냐.
강아지라는 말에서 암시를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경호로서는 오래지 않아 스스로 그러한 부정이 우러나고라야 것이었으나 그것이 너무 급했던 만큼 환멸의 반동이 가외로 컸던 것이다.
“허허, 허히허허……·.”
경호는 이번에는 갈려 들었던 불쾌한 주름살도 마쳐 없어지고 오히려 유쾌하게 웃어대며,
“……·내가 착각이로다……·여보 진리의 자당님?”
“네에, 또 무어라구 시방……·.”
“허허허허, 뭣이냐 헴 헹, 시방 내가 생명의 창조가 기쁘다고 한 건 내 취소로다.”
“자량해서 허시우, 언제래야 뭐…….”
“그러구 너두 뭣이냐 헴 헴, 차라리 시집이나 일찌감치 한 번 더 가구, 응? 이건 내 유언이다.”
“내가 또 귀 아플 일이 또 한 가지 생겼군!”
“나는 그리구, 뭣이냐, 폐병 들기 전이라두 결혼 않기 잘했어……·헴 헴, 그깐 놈의 명색 없는 생명, 그걸……·.”
“네에 네!”
경순은 가벼운 반발을 느끼면서 얼른 걷질러,
“……·그렇지만 아무 염려두 마시우, 마시시구 인제 다아…….”
하다가, 남편의 유서에 씌어 있던, 맹목적인 모성애로 쓰잘데없는 육괴……·운운한 구절도(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생각이 나고 해서,
“……·두구보시우들, 인제……·요놈, 요 쪼고만 놈을 가져다 버젓한 대장부를 진리에 사는 버짓한 대장부를 만들어 내세울테니, 보기만 허시우…….”
어린놈은 어머니의 옴죽거리는 입술을 만지고 놀기에 재미가 쏟아진다. 경순은 앞니 앞에서 꼬물거리는 연한 손가락을 야긋야긋 물어주면서,
“……정말 그렇지이? 응? 저 외갓집 큰아버지처럼 몸두 비트을비틀, 사상두 비틀비틀 그런 이두 마알구‥…· 또오‥…· 괴롭다구우 괴롭다구 몸부림을 치다가 애꿎인 기관차나 들이받구 그 야단을 낸 느이 아버지처럼 그렇게 사상에 잡쳐서 죽구마는 이두 마알구……·응? 아주 버저엇허게 진리에 사는 대장부…… 응 그렇지?”
반발 끝에 공박삼아 말을 하는 동안 그러나 회포는 도리어 반대로, 그와 같이 돌아간 남편에게 새로워지는 측은한 정에 뭔가 흔히 구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진 동기간에게 대하 연민(憐憫)의 정에 어느덧 고요한 애수가 가슴으로 서리어 들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때와 자리가 마침 그럼직한 소치도 있겠지만) 남편은 그리하여 가고서 오지 못하고 그런 대로 믿음이요 위안이요 해야 할 오래비는 저렇듯 건강과 기개가 부실하여 저무는 해와 같이 한심하고 한 것을 생각하면 나의 외로움이 새삼스럽게 몸에 사무치는 것 같았다.
경순은 그리하여 마음이(평정을 놓칠 것까지야 없지만) 적이 산란한 대로 오는 줄 모르게 무덤 옆으로. 당도하자 인해 어린 놈을 훨씬 추슬려 올려,
“자아 좀 보소!”
하면서 얼굴을 나란히 무덤을 향해 머물러 선다.
“……·예가 아버지 산소라네. 그 얄뜰헌 아버지! 아빠 소리두 한 번두 못 허게 도망을 해버린, 밉디 미운 아버지! 글쎄 요걸 요렇게두 이쁘구 재롱스런 걸 가져다보지두 못 허구서 쯧쯧! 그대로 가셨으면 오죽이나, 오죽이나 이걸…….”
경순은 어느덧 목이 잠기고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린다. 울려니야 심외(心外) 이었으나 비희가 서리던 차에 막상 새사리고 있는 내 말이 더럭 더 슬픔을 자아내고 말았던 것이다.
경순은 두 볼에 눈물이 한줄기 흐르는 대로, 구대라 억제할 것도 없이 마음가는 데 맡겨 슬픔에 잠기느라 어린놈을 안은 채 조용히 몸을 흔들고 섰다.
어린놈은 손에 만져지는 대로 어머니의 임술이며 젖은 뺨을 가지고 놀기에 세계가 새롭다.
경호는 누이의 거동을 보았는지 혼자서 저편으로 돌아가더니 묘비의 각자를 들여다보면서 인제 해 세울 제 비명(碑銘)을 생각하고 있다.
조용하고 다양한 오후의 햇빛은 아직도 늙을 날이 먼 듯 무덤 위에 한가로이 드리워 있다.
〈1939년〉
2016년 12월 17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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