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집사육이 조류독감 키웠는데...살처분도 보상금도 국민혈세로
매번 이동 철새 탓하며 기업은 책임 안져
지난 1월 16일 전북에서 시작된 조류독감은 충남·북, 경북, 경기 등을 휩쓸며 큰 피해를 입혔다. 농림축산식품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까지 472개 농가에서 1186만8천 마리의 오리와 닭을 살처분했다.
조류독감 발생에 따른 국고 지출도 상당하다. 살처분 보상금, 생계안정자금, 긴급경영지원금, 매몰비, 초소운영비 등으로 2000억 원의 비용이 들 전망이다. 아직 조류독감이 종식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최종적으로 3000억 원이 훌쩍 넘는 국가 재정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부터 2010년까지 4번의 조류독감이 발생했고, 살처분 보상금 등으로 3837억 원 가량을 지출했다. 매번 수백만 마리의 닭과 오리를 살처분 하고 1천억원 안팎의 혈세를 써온 셈이다.
그렇다면 조류독감에 대처하는 정부의 대응 체계는 개선됐을까? 살처분·이동제한 등 긴급방역조치를 위한 기준(AI 긴급행동지침)을 제정하는 등 개선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조류독감 발생의 근본적 원인을 외면하고 무차별적인 예방적 살처분을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북 고창 동림저수지의 가창오리. 정부는 이번 AI 발생의 진원지로 가창오리를 지목했다.ⓒ뉴시스
이동철새가 원인일까
과학적 검증없고 잠정 결론정부는 2003년부터 2010년까지 4차례 발생한 조류독감은 이동철새에 의한 바이러스 유입으로 발생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이번에 발생한 조류독감의 원인에 대해서도 이동철새인 가창 오리를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차례의 잠정 결론과 이번 모두 과학적 증명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정부가 철새 탓을 하고 있는 것과 달리 다수의 전문가들은 밀집 사육 환경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닭과 오리 산업은 90% 이상 계열화돼 있다. 사육 농가들이 하림, 마니커, 동우 등 기업과 계약을 맺고 병아리와 오리 새끼를 기업들로부터 받아다가 키우고 수수료를 받는 시스템이다. 농가 당 평균 사육수는 4~5만 마리 가량으로 대규모화 돼 있다.
지난달 말 A 기업과 계약을 맺고 닭 7만 마리를 키우는 농가를 방문했었다. 축사 1동에 2만 마리 넘게 사육하는데 곧 출하를 앞둔 닭들이 조금만 움직여도 서로 살이 닿을 정도로 밀집된 환경에서 사육되고 있었다. 조명을 밤 같이 어둡게 해놔 이유를 물어보니 농장주는 "조명을 밝게 하면 닭들이 움직이면서 서로 상처를 내기 때문이다. 몸에 상처가 나면 도계할(닭을 잡을) 때 드러나기 때문에 상품가치가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병아리는 농가에 입식되고 약 30일이 지나면 도계장(닭을 잡는 곳)으로 가는데, 이 30일 동안 볕도 안 들어오는 어두컴컴한 환경에서 매우 밀집된 채로 지내게 된다. 결국,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가만히 있어도 서로 몸이 부대낄 정도로 닭을 몰아넣고, 움직이다 서로 상처 내는 일을 막기 위해 조명을 밤 같이 유지해 닭들의 활동성을 낮추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환경은 닭의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저병원성 바이러스가 고병원성 바이러스로 변이가 이뤄질 수도 있다. 박창길 성공회대 교수는 "밀집환경이 왜 문제냐 하면,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바이러스 변이가 일어난다. 또 햇볕 아래서 20~30분만 있어도 고병원성 균이 활동을 못한다. 그러나 습하고 어두운 환경에서는 바이러스가 몇 주간 존재할 수 있다. 실제 방사해서 키우는 경우 질병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를 보더라도 자유롭게 풀어서 키우는 캄보디아의 경우 조류독감 발생량이 적고, 공장식 사육을 하는 태국과 베트남에서 조류독감이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한다"라고 말했다.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파트너십(EAFP) 김민선 담당관은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의 AI팀과 작업을 하고 있는데, FAO 보고서에 따르면 고병원성 AI가 야생 조류에서 발생됐다고 보고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H5N8 바이러스와 관련해 "현재까지 세계 야생 조류 감시 활동에서는 야생 조류에서 H5N8이 감지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EAFP는 "이동철새는 범인이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라는 성명을 냈었다.
경기도 한 양계농가에서 조류독감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예방적 살처분을 하고 있다.ⓒ뉴시스
생산성 높이기 위한 밀집사육이 AI 키웠는데 기업은 책임 안져
국민혈세로 살처분하고 보상금 받고...과잉생산 해소하고 주가 반등
결과적으로 과점 기업들은 피해 없이 이득 챙기는 구조 반복이번에 발생한 조류독감은 1월 16일 전북 고창 종오리 농가에서 최초 조류독감 의심 신고가 접수됐고, 3월 10일까지 모두 34곳의 농장에서 조류독감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6곳을 제외하고 28곳이 고병원성H5N8 확진 판정을 받았다. 고창군 신림면사무소에 확인해 본 결과, 최초 AI 의심 신고를 접수한 농장은 하림그룹 계열사인 유한회사 '익산' 소속 농장이었다.
전북 부안군청 관계자는 "오리는 거의 계열 농가라고 보면 된다. 닭도 그렇고 개인이 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충북 진천군청 관계자는 "진천군은 41개 농가에서 88만4천 마리를 살처분했는데, 개인 농가는 드물고 하림, 주원산오리(하림 계열사), 체리부로, 오리스 농가들이다"라고 말했다. 의심신고를 접수하고 예방적 살처분을 한 농가 대부분이 기업과 연계된 계열화 농가들이라는 얘기다. 충청 지역 한 농가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에서 살처분 보상금을 받으면 기업 계열 농가의 경우 정산해서 사육 수수료 등을 받고 나머지는 기업에서 가져 간다.
더 높은 생산성을 위한 공장식 밀집 사육이 조류독감을 키웠다는 지적에 정부도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17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닭과 오리고기 가공판매업체 등 계열화 기업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밝혔다. 기업이 농가와 연계해 대규모 사업을 하는 수직 계열화가 되면서 조류독감 피해가 커졌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어떤 불이익을 주겠다는 건지 궁금해 전화를 걸어봤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있다. 기업들이 조류독감을 키우는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는데 기업들은 여태껏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아 왔다는 것이다. 오히려 조류독감에 따른 살처분으로 과잉생산을 해소하고 다시 반등할 수 있는 기회를 반복적으로 맞고 있고, 여기에 매번 국가예산만 무더기로 투입된다는 것이다.
지방의 한 축산농가 관계자는 "하림의 점유율이 30~40% 정도 되는데 내용적으로 닭 산업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오리, 사료, 유통 등을 잡고서 우리나라 축산업의 맹주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에서 통제하는 축산량보다 하림에서 통제하는 축산량이 더 많다. 그렇다면 정부만 책임질 일이 아니다. 하림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 예산을 들여서 매번 (닭, 오리들을) 묻고 하는데 이게 과연 올바른지 객관적 검증을 거쳐야 하는 것 아니냐. 질병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갖다 묻는 게 맞는 거냐. 살처분이 능사냐. 이런 논의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동안 조류독감 때문에 국민 세금을 얼마나 갖다 썼냐"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신영증권은 눈에 띄는 의견을 내놨다. 그 내용은 이렇다. "이번 조류독감은 단기적으로는 소비 감소에 영향을 미쳤으나 업계 공급 과잉 해소 노력에 가속을 더한 것으로 판단한다." 닭고기 산업 공급의 출발점인 원종계 농장 일부도 살처분했기 때문에 하반기에 공급 과잉 해소가 더욱 가시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영증권은 "현재 6080원인 하림의 목표주가는9500원으로 56%(3420원)나 추가 상승 여력이 존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