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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7가지 대표 소수민족
중국은 다수민족인 한족과 55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국가입니다. 한족이 중국 전체 인구 가운데 약 91.5%를 구성하고 있고, 나머지 55개 소수민족이 약 8.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구로는 10%가 채 되지 않지만 소수민족이 자치하는 면적은 중국 전체 영토의 60%에 달할 정도입니다. 소수민족들이 사는 대부분의 지역은 가스와 석탄 등 천연자원과 삼림, 수력자원이 풍부한 경제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산업화와 현대화 정책을 추진해감에 따라 중국 경제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적인 지역입니다. 또한, 이 지역들은 대부분 러시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인도, 베트남, 북한 등 많은 국가들과 접경하고 있는 특수성 때문에 특히 전략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7가지 대표 소수민족>
중국에는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한족을 제외하고 55개 정도의 소수민족이 있는데요, 그 중 대표적으로 좡족(壯族), 만족(滿族; 만주족), 후이족(回族), 묘족(苗族), 위구르족(維吾爾族), 몽골족(蒙古族), 조선족(朝鲜族)이렇게 7개의 소수민족이 있습니다.
좡족(壯族)은 약 1900만 가량의 인원으로, 중국 소수민족들 사이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민족입니다. 중국 광서 지역 좡족 자치구에서 거주하며 운남성 문산, 광동성 연산, 귀주성 충강, 절강성 강화 등지에도 분포되어 있습니다. 좡족은 본업으로 농사를 지으며, 사탕수수 재배수량은 전 중국1위를 차지합니다. 좡족은 따이족과 비슷한 언어를 쓰는데, 1955년에 만든 라틴어 계통 문자를 쓰고 있습니다.
좡족이 거주하는 지방은 입쌀과 옥수수 산지인 만큼, 그들의 주식도 입쌀과 옥수수가 위주이며 먹는 방법도 여러 가지입니다. 그들도 한족처럼 "쫑즈(粽子)"라고 하는 대나무 잎이나 옥수수 잎으로 쌈밥처럼 싸 놓은 음식을 잘 먹습니다. 좡족 사람들은 대개 직접 술을 빚어 마시는데, 쌀로 만든 술, 고구마술, 감자술 등 여러 작물을 이용한 곡주를 즐겨 마십니다. 그들은 손님을 반기는 민족으로, 옛날에는 어느 한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온 마을이 자신의 손님으로 열정적으로 맞이하는 풍속이 있었는데요, 그래서 손님은 여러 집을 다니며 접대를 받거나 때로는 한끼 식사를 이곳 저곳으로 다니며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교배주(交杯酒)”라 칭하며 손님과 함께 술잔을 나누는 정다운 풍습이 있는데요. 큰 항아리에 백 도자기 국자를 넣고 그 국자로 손님과 주인이 한 국자씩 번갈아 마시며 서로의 두터운 감정을 쌓아가는 풍습이라고 합니다.
좡족의 제일 큰 명절은 "우춘절(于春節)"이고 다음은 7월 보름날의 "중원귀신절"입니다. 3월 3일, 청명제사, 추석, 단오, 동지 등 여러 명절도 잊지 않고 지낸다고 합니다. 구정은 보통 음력 12월 23일 "부뚜막절"이 끝난 다음부터 쇠는데 먼저 집 안팎을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27일에 돼지 잡고 28일에 "쫑즈(粽子)"를 만들고 29일에 좡족 특식인 찐 떡을 만듭니다. 그믐날에는 그들의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닭고기 위주의 요리를 꼭 먹어야 하는 관습은 물론, 정월 초하루에는 쌀술을 마시고 "완자(湯圓)"을 먹으며 초이튿날부터 서로 세배도 다니고 함께 모여 식사도 합니다. 이렇게 보름까지, 어떤 곳에서는 정월 말까지 명절 분위기에 취해 보냅니다.
만족(滿族)은 약 1100만 가량의 인구로, 좡족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소수 민족입니다. 현재 중국 동북 3성에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요녕성에 가장 많이 거주하며 동북 3성을 제외한 내몽골 자치구, 하북, 산동성과 신강 자치구 그리고 북경, 성도, 란주, 복주, 은천, 서안에서도 살고 있습니다. “황제의 딸”을 비롯한 수많은 중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민족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중국 의상들은 거의 만족 특유의 복장들입니다. 만족은 자신의 문자와 언어가 있습니다. 만족어 어파에 속하며 문자는 16세기 즈음에 몽골문자를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만족은 자고로 춤과 노래에 능통하며, 대부분 수렵과 전쟁의 내용이 담긴 고대 무용이 많습니다. 이밖에 만족들이 즐기는 오락에는 말 타기, 얼음치기, “청음자제서”라고 불리는 전통 민요 부르기 등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만족 남자들은 청남색의 긴 마고자를 즐겨 입었으며 머리는 정수리까지 깨끗하게 밀고 뒷머리만 길게 외채로 따내려 갔습니다. 그리고 동그란 고깔모자를 쓰고 통이 너른 바지를 입었습니다. 여인들은 치파오(旗袍)라고 하는 긴 옷에 머리를 쪽지고 앞머리는 길게 늘어뜨려 눈썹까지 오게 했습니다. 현재 중국여성의 전통의상으로 자리매김하는 치파오는 만족 전통 복장이 개량된 형태입니다.
만족의 전통 음식을 말할 때, 혹자는 먼저 "만한전석(滿漢全席; 중국 진시황 등 황제들이 즐겨 먹던 만찬)"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만한전석은 만족 사람들의 전통 음식이라기보다 청나라 황궁이 베이징으로 천도한 후, 중화요리와 만족요리의 결합으로 된 황궁 요리입니다. 만족의 대표 전통 요리로는 "돼지고기 선지탕", "만족식 훠궈(샤브샤브)", "청동능떡"이 있는데, 청동능떡은 "부어부어(餑餑)"라고도 불리며, 청나라 제사상에 빼놓을 수 없는 전통 음식입니다. 만족은 한족과 비슷하게 명절을 쇠는데요, 설날에는 동전 혹은 하얀 실을 넣은 물만두를 먹는 관습이 있는데, 동전이 든 물만두를 먹게 되면 부를 축적하게 되고 실이 든 물만두를 먹으면 장수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후이족(回族)은 약 900만 명에 달하며, 소수민족 중 세 번째로 많은 인구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중국 녕하 후이족 자치구를 중심으로 감숙, 청해, 하남, 신강, 운남, 하북, 안휘, 요녕, 길림, 산동 등 성과 북경, 천진 등 수많은 도시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13세기에 많은 무슬림들이 중앙 아시아에서 중국으로 이주를 하면서 한족과 위구르족, 몽골족들과 함께 섞여 살았는데 그들이 점차 지금의 후이족을 형성하였다 합니다. 일부 아라비아어와 페르시아어의 단어들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나, 대부분의 언어는 한족의 문자입니다. 그들은 무슬림의 전통 관습을 중요시하여 험담, 탈의, 물 낭비를 금기시합니다. 또 자택을 방문한 손님이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걸 싫어하며, 음식을 가벼이 여기거나 쉽게 낭비하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고 합니다.
후이족은 오랜 세월 동안 중국 곳곳에서 흩어져 살고 있어서 지역마다 음식습관과 음식 만드는 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를 들면 녕하 지역 후이족들은 가루음식을 즐겨먹으나 감숙, 청해지구 후이족들은 밀, 옥수수, 쌀보리 음식을 즐깁니다. 그러나 "요씨앙(油香)"과 "산즈(馓子)"는 그들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음식으로, 명절이나 손님 접대에는 꼭 올리는 음식입니다. 후이족은 돼지, 개, 말, 당나귀, 노새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또 이슬람 신도들이 꺼리는 짐승이나 자연사 한 날짐승, 동물의 피도 먹지 않는데요, 특히 비둘기는 매우 성스러운 새로 여겨 사냥이 불가합니다.
후이족은 "개재절(이도 알피트)", "쿠얼방절", "성기절"을 쇱니다. "개재절"은 후이족 달력으로 9월 라마단이 끝난 뒤에 열리는데, 월초부터 한달 사이에 먼저 12세 이상의 남자아이와 9세 이상의 여자아이는 "파제(把斋)"라고 하여 해가 뜨고 나서 지기 전까지 음식을 먹지 못합니다. 10월 초하루에는 소와 양을 잡아 연속 3일간 축제를 벌입니다.
묘족(苗族)은 중국 소수민족들 중 네 번째로 인구 수가 많은 민족입니다. 중국 귀주성 동남부에 많이 모여 살며, 광서 대묘산, 해남도와 호남성, 호북성, 사천성, 운남성 그리고 광서 등 지역의 인접한 곳에서도 생활합니다. 황하 유역부터 양자강 중하류 일대의 광활한 지역에서 살고 있었던 "남만(南蠻)"부족이 그들의 선조입니다. "남쪽 오랑캐"라고 불릴 만큼 강대한 민족이었습니다. 묘족은 묘도어족 묘어파의 언어를 씁니다. 지역 사투리로는 상서, 악동, 천동진 3가지가 있으나 현재는 대부분 한어와 한자를 통용하고 있습니다.
묘족은 일명 ‘산 노래’에 능한 민족으로, 춤과 노래에 능통한 이들이 많습니다. "비가", "사랑가", "축배가"등의 대표 민요가 있으며, 로생(蘆笙)은 그들의 표적인 전통악기입니다.
그들은 농업을 위주로 하며 사냥을 부업으로 합니다. 수 놓기, 천 짜기, 종이 오리기 등의 수공예 작품은 다른 어느 민족도 따라갈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날염(臘染)"이라고 하는 염색공예는 약 천 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요, 일반 아녀자들의 천 짜기 기법이 아닌 전통예술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묘족은 손님이 오면 닭과 오리를 잡아 큰 잔치를 벌이며, 특히 먼 곳에서 온 귀빈이라면 온 마을에서 손님맞이를 한다고 합니다. 그들의 주식은 입쌀로, 보통 벼를 말린 후 두었다가 한번에 1~3kg 정도로 절구에 찧어 밥을 짓습니다. 쌀의 6~7배 되는 물을 가마에 붓고 절반쯤 익힌 후 다시 퍼내어 보리 가루를 함께 섞어 대나무 통에 담아 쪄내는데요, 이것을 ‘가루 밥’이라고 하며 즐겨 먹습니다. 개고기, 닭고기를 즐겨 먹고, 고추와 식용기름을 이용한 요리가 많은데요. 닭 요리를 먹을 때에는 “닭 심장 나누기”란 풍습이 있는데, 주인이 젓가락으로 닭 심장을 손님에게 집어주면 손님은 그 심장을 혼자 먹지 않고 꼭 똑같이 나누어 같은 자리의 웃어른에게 권하는 풍습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서로의 믿음과 사랑의 표현인 듯 합니다.
묘족은 만물에 정기가 있다고 믿고 자연과 조상을 숭배하며 해마다 가을이면 "서송"이라는 명절을 쇠면서 조상께 제를 지냈습니다. 매년 정월, 단오, 추석에는 "투우"절을 쇠는데 그 날은 묘족들이 가지는 모임 중 최대 규모의 모임입니다.
위구르족(維吾爾族)은 연맹과 군집의 뜻을 가진 민족으로, 중국에서 네 번째로 인구 수가 많은 민족입니다. 중국 신강 천산 이남의 카슈가르, 허티엔 일대와 아커쑤, 쿠얼러에 주로 살고 있으며 천산 이북의 우루무치에도 거주하고 있습니다. 9세기 중엽에 서쪽으로 이주한 "회흘"인과 천산 이북 초원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투르크인, 그리고 한나라 때 서북으로 이주한 한족, 또 옛 신강지역에서 살고 있던 안색, 구치, 우티엔 어를 구사하던 부족인들, 그리고 훗날 이주해온 토번인, 몽골인 등 많은 민족들이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살면서 점차 지금의 위구르족이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중에서도 투르크족이 민족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위구르족은 자신들의 문자와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위구르어는 알타이 계통 언어로 투르크 어족에 들며 문자는 투르크 문자가 시초가 되었으나 서쪽으로 이동한 뒤로는 소그드 문자를 기초로 해서 만든 자모를 썼습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동서양을 잇는 중요한 위치에 거주하며 복합적이고 독특한 자신들만의 문화를 발전시켰는데요, 오소포·하스하찌포의 장편서사시, 모함메트·카산카리의 백과 지식 서적인 "突厥語大詞典"은 위구르 문화의 진귀한 유산입니다. 위구르족 전통무용은 사발 춤, 북춤, 쇠고리 춤, 푸다 춤 등이 있으며 민간 악기로 "따푸"라고 하는 손북과 2 현 "두타르", 5 현 "라왑"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의학은 전통 의학계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들이 일구어 낸 “카르”우물은 수자원 활용에 어마어마한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위구르족 남성들은 "차판"이라고 하는 긴 두루마리를 입는데 단추는 채우지 않고 허리띠로 졸라맵니다. 여성들은 소매가 너른 긴 치마저고리 위에 짧은 조끼를 받쳐 입으며 남녀노소 모두가 "돕바"라고 하는 작고 귀여운 모자를 즐겨 쓰고 부츠를 신습니다. 그들은 이슬람교를 믿으며 전통 명절로는 육목절, 쿠르방절, 첫 눈 절 등이 있습니다.
몽고족(蒙古族)은 일반적으로 "몽고르"라고 부릅니다. "몽고르"란 이 단어의 기원은 “영원한 불"이란 뜻인데, "말 등 위의 민족"이란 별명 외에 그들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현재 중국 내몽골 자치구와 몽골인민공화국에 밀집해 있으며 중국 국내 신강, 청해, 감숙, 요녕, 길림, 흑룡강성과 운남성 지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몽고르"는 최초에 몽골 초원에 거주하던 한 부족의 이름이었지만 기원 13세기 초, 칭기즈칸을 수령으로 하는 부족에서 타 부족들을 통일하면서 점차 한 민족의 명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원래 싸만교를 숭배하는 민족이었으나 후에 티베트에서 전해진 라마교로 종교를 바꾸었습니다.
몽고족은 그들만의 언어와 문자가 있습니다. 알타이 언어 계 몽골어를 쓰며 "몽고르실위" 문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蒙古秘史》를 비롯한 몽고족 경전들은 이미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飮善正要》는 세계 문명에 탁월한 공헌을 한 의학발명의 저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양을 생활의 시작으로, 모든 부의 원천으로도 생각합니다. 양의 고기와 젖이 그들의 주식이며, 젖을 재료로 하여 만든 "짜깐이더"라고 불리는 음식은 백식이라고도 하며, 일종의 신물로 여기기도 합니다. 고기류로 만든 음식을 "우란이더"라고 하며 홍식이라고 부릅니다. 유목 종족이라 "게르(몽골식 천막)"에서 거주하며, 게르에 들어서면 보통 화로를 둘러싸고 모두들 양반다리를 하고 앉으며 주인의 자리는 서쪽이고 주인이 먼저 앉은 다음에야 따라 앉는 것이 예의이며, 주인이 권하는 음식을 거절하는 것은 큰 실례라고 합니다. "하다"라고 하는 긴 비단 스카프를 손님에게 드리는 것은 그들이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예절로, "하다"는 두 손으로 받거나 머리 숙여 주인이 목에 걸어줄 수 있도록 하면 됩니다. 그들은 예의를 매우 중시하여 초면인 사람이라도 반드시 인사를 하며 길손에게 후한 대접을 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몽고족의 복장은 다른 소수민족들에 비해 간소한 편인데요, 간단한 머리장식, 긴 치마, 허리띠, 가죽부츠가 몽골족 복장의 4개 주요 구성부분이 됩니다. "백절"은 일 년 중에서 제일 큰 명절로, “설날”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명절입니다. "백월"이라고 불리며, 서로 축복해주고 전통음식을 먹으며 지내는데, 웃어른께 "사세주(나이를 잃는 술)"를 드리는 풍습이 있습니다. 또한 매년 가을 "나다무"라는 대회를 열어 몽고족 전통씨름, 경마, 활 쏘기, 무용 등을 겨룬다고 합니다. "나다무"란 몽골어로 오락, 유희를 뜻합니다.
조선족(朝鲜族)은 ‘한국계 중국인’이라 불리며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韓民族) 혈통을 지닌 중국 국적의 민족입니다. 한족을 제외한 소수 민족 가운데 13번째로 많으며 중국 동북 지방의 요녕, 길림, 흑룡강 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중 후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조선인들이 생계를 위해 만주로 이주하면서, 중국 영토 내에서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 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시기는 대한민국의 국권 피탈 직후로, 그 당시 실시된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불합리하게 땅을 빼앗기는 조선인들이 만주(滿洲)로 옮겨 가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후 일본이 패전하자 귀환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나, 광복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북이 분단되고 중국이 공산화되자 자유롭게 이주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조선족들이 그대로 동북 지방을 비롯한 중국 지역에 남게 되었고 현재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 중국 국적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조선족은 중국정부의 국가정책에 따라 개편된 중국조선말을 사용하며, 중국의 경제 발전과 도시화로 인해 중국사회와의 교류가 커지면서 대부분 중국어를 구사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인과 같은 혈통의 민족들로, 의복과 음식 문화에서도 한민족의 풍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통명절인 설날, 단오, 추석을 쉬는 습관, 큰 명절에는 제사하는 습관, 한복을 입는 습관, 김치를 담그는 습관, 불고기, 개고기 등을 여름 보양식으로 먹는 습관 등 많은 부분에서 한국의 풍습과 매우 흡사합니다. 또한 중국에 거주하는 주민들인 만큼 중국(한족) 전통 문화와 식습관도 갖추고 있습니다.
대부분 종교나 신앙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지만, 조선 말기에 중국에 건너왔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조선의 유교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 각종 의례 등을 통해 이를 간직해 오고 있으며 불교와 토속신앙이 결합된 신앙도 믿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대한민국과 미국과의 접촉을 통해 로마 가톨릭교회 등 기독교 신앙을 믿는 사람들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