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나홀로 테마여행 원문보기 글쓴이: 광나루
[2] 빈티지숍
예이샵
성북동은 서울을 대표하는 부촌이다. 하지만 같이 부촌으로 분류되는 한남동, 청담동과는 느낌이 다르다. 성북동은 세련된 명품 편집숍보다는 오히려 빈티지숍이 더 잘 어울린다. 커피도 마셨으니 빈티지숍, 예이샵으로 가보자.
부부가 운영하는 예이샵에는 두 사람의 취향이 듬뿍 묻어있다. 그래서인지 매장에 들어섰을 때 우선 굉장히 다양한 색상이 눈에 들어와 마음이 즐거워진다. 취향만큼 제품의 구성 또한 다양하다. 의류부터 액세서리는 물론이고 책과 소품까지 접할 수 있다.
이 넓은 스펙트럼을 하나로 관통할 수 있는 것이 무얼까 생각하다 ‘문화’가 생각이 났다. 의류, 책, 음악이 모여 결국 그 시대의 문화를 형성할 테니깐. 예이샵은 문화에 대한 애정이 담긴 공간이다. 아키라 포스터나 펄프픽션 비디오를 보면 짐작할 수 있지. 나는 90년대 힙합 문화의 대표격인 브랜드 디키즈의 더블니 팬츠를 샀다. 디키즈 더블니를 입고 NBA 포토 카드북을 보면 여기가 미국이지 어디겠나.
특히 아내분의 취향이 반영된 소품들엔 키치한 캐릭터들이 가득이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걸 제쳐두고 여기가 눈에 먼저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만약 어렸을 때 카툰 네트워크를 즐겨봤다면 정신이 아득해 질지도.
쇼핑 중에서도 빈티지 쇼핑은 매장마다 특징이 뚜렷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갔을 때 모두가 만족하기 쉽지 않은 편이지만 이곳 예이샵에서라면 방문하는 조합이 어떻든 모두가 만족할 거다.
[3] 음식점
쌍다리 돼지불백
조금 더 산 쪽으로 이동해보자. 산에 가까워질수록 곳곳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풍겨온다. 사람 사는 냄새라 하면 사람이 살면서 발산하는 다양한 흔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지만 이걸 말 그대로 냄새로 한정한다면 분명 음식 냄새 일 거다. 여기 쌍다리 돼지불백에선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처음에 쌍다리 돼지불백은 기사식당으로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유유히 식사를 즐기기 어려운 기사님들에겐 돼지갈비는 거리가 먼 음식이었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미리 구워놓는 방식으로 운영을 하였는데 이 음식이 크게 사랑을 받아 지금까지 이르게 되었다. 직업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이 찾는 요즘에도 간간이 주차되어 있는 택시를 보면 얼마나 오랜 단골일까 생각하게 된다.
돼지불백을 시키면 밑반찬과 쌈과 함께 먹기 좋게 잘린 돼지구이가 나온다. 고기의 두께가 얇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먹다 보면 이보다 정교한 두께와 사이즈는 없다. 고기, 밥, 쌈 이 리듬에 완벽한 두께이기 때문이다. 고기 크기가 애매해 두 개를 올려야 해야 할까 하는 고민할 필요 없다. 고민할 시간에 리듬에 맞춰 쌈을 싸서 먹으면 된다.
그리고 돼지불백을 더욱 깊게 느끼기 위해서는 파절이를 같이 시키는 걸 추천한다. 꽤 큰 그릇에 채 썬 파가 양념되어 가득 담겨 나오는데 이게 또 끝내준다. 파의 알싸함에 양념의 새콤함이 달짝지근한 고기를 더욱 담백하고 질리지 않게 먹을 수 있게 해준다.
[쌍다리 돼지불백의 다양한 인증서들 2015년부터 매년 받은 블루리본이 눈에 띈다.]
[4] 전시
제이슨함
성북동에는 미술관이 정말 많다. 무려 훈민정음 해례본을 소장하고 있는 간송 미술관, 성북구립 미술관을 비롯해서 크고 작은 갤러리들이 동네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여유를 느끼며 길을 따라 올라가면 이목하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제이슨함 갤러리가 보인다.
96년 출생의 작가인 이목하는 아트바젤에서 주목할만 신진작가 25인에 유일한 20대로 선정될 만큼 떠오르는 신예 작가다. ‘창백한 말’이란 이번 전시에는 이목하 작가가 소셜 미디어에서 찾은 여성의 이미지를 그린 초상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들은 멀리서 보면 사진처럼 보이다가도 가까이서 보면 분명한 그림이고, 기쁨이 느껴지는 것 같다가도 또 깊은 슬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은 작가가 의도한 바이기도 하다. 작가의 설명 중 ‘제 작품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싶습니다.’ 라는 내용이 있다. 정말 가만히 보고 있으면 다양한 생각이 떠오른다. 눈에 초점이 있는 것일까?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걸까? 어디에 그린 걸까? 와 같은 생각들처럼.
제이슨함을 소개한 이유 중에는 전시 외에도 오고 가며 보이는 뷰도 있다. 여기가 서울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드는 풍경을 즐겨보자.
일반적으로 고개를 들고 보았을 때 높은 빌딩들이 조금이라도 걸리기 마련이지만 성북동에선 그렇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시야 속엔 자연과 그와 더불어 사는 사람 그리고 탁 트인 하늘이다. 게다가 성북동을 즐기기 최적의 계절인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좋은 풍경은 고생을 동반하는 법이지만 가을에는 그 고생이 한 풀 꺾인다. 그런 점에서 가성비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가을 성북동은 가성비가 매우 훌륭하다는 그것도 프리미엄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