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15)
'나는 ~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원문의 '웨에바 아쉬트'(weebah ashith)는 직역하면 '그리고 내가 증오를 놓을 것
'(And I will put enmity)이다. 여기서 '증오'(에바 ; ebah)는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는 적대자에게 품은 삭힐 수 없는 깊은 원한과 적개심(민수35,21.22)을 의미한다.
본문에서는 이 단어를 문장의 서두에 위치시켜 적개심 그 자체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놓다'는 가슴에 '품다', '품에 안다'(룻기4,16), '갇히다'(시편88,9)로도
번역되는 '쉬트'(shith)의 미완료형으로서, 적개심(증오)을 가슴 속에 계속 품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사탄의 유혹에 빠져 범죄함으로서 비참한 운명 가운데
처하게 된 인간은 사탄에 대해 깊은 원한을 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너와 그 여자 사이에'로 번역된 원문은 '뻬네가 우벤 하잇샤'(beneka uben haisha)
인데, 직역하면 '너 사이에 그리고 그 여자 사이에' 이다. 이처럼 본문에는 '~사이에'를
뜻하는 '뻰'(ben)이 2번이나 등장하며, 여자와 사탄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문장 형식은 이어 나오는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에서도 동일하다.
즉 하느님께서는 뱀과 여자, 그리고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앞에 모두 '뻰'(ben)이라는
전치사를 넣어, 인간이 영원히 뱀 즉 사탄을 멀리하고 적대시해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의 후손'
'여자의 후손'으로 번역된 '자르아흐'(zarah)는 '씨를 뿌리다'(파종하다; 레위25,22)
라는 뜻이 있는 '자라'(zara)에서 유래하며, 일차적으로는 '씨'(창세4,25)를
가리키나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후손'(창세12,7), '자손'(레위20,2) 등으로 더 널리
번역되는 '제라'(zera)에 여성 3인칭 단수 접미어가 붙은 단수형이다.
여기서 단수형이 사용된 것은, 히브리인들이 '씨'나 '자손'은 모두 하나의 근본에서
출발한 동일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수로 표기된
'여자의 후손'(her seed)은 이어 나오는 뱀의 후손과 대결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얻을
한 사람, 즉 장차 이 땅에 동정녀 마리아에 의해 탄생하시게 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가톨릭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이 '여자의 후손'(자르아흐)을 '제라'(zera)에
여성 3인칭 단수 접마어가 붙은 단수형이므로, 성모 마리아에게 적용해 왔다.
"그러나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갈라4,4)
첫 에와와 첫 아담의 하느님께 대한 교만과 불순명과 자유남용으로 지은 원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죄와 고통과 죽음이 들어왔다. 그리하여 멸망과 저주와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 인간사(세속사)를 구원과 축복과 생명의 구원사로 바꾸시기 위해,
둘째 에와이신 성모 마리아와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명과 자유의지의
선용과 협력이 하느님 아버지께 필요했던 것이다.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로 번역된 '에슈페카 로쉬'(yeshupeka rosh)에서
'상처를 입히다'(상하다;슈프; shup)는 '때리다', '타박상을 입히다', 혹은 '눌러서
뭉개다'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머리'(로쉬; rosh)는 인간이나 동물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또한 각 개체를 대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따라서 머리를 뭉갠다는 것은 상대방에서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여 회생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본문의 문맥으로 볼 때, 이와같이 사탄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는 분은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실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사탄에게
승리하셨다. 이로 인하여 사탄은 머리가 상한 뱀과 같이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사탄의 모든 세력을 불과 유황 못에
던짐으로써(묵시20,10.15) 완전한 승리를 이루실 때까지, 상한 머리를 감싸고 최후의
발악을 할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미 머리가 상해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 사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미 사탄에게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권세를 힘입을 때 승리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본문의 '상처를 입히다'(상하게 하다)의 동사가 미완료형으로 사용되어,
그 상하게 하는 일이 계속 지속됨을 암시한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실로 사탄은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에 의해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였으며,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군사인 성도들에 의해 계속 패배당하고 있다. 이와같이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에 이루어지는, 본절에 나오는 사탄에 대한 승리의 선언을 우리는 원시 복음
(原始 福音;첫 복음; Proto Evangelium)이라고 부른다.
원죄로 말미암아 멸망과 저주와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 인간사(세속사)를 구원의
역사로 바꾸시기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사람이 되게 하셔서, 당신의 구원사업을
완성하게 하셨다.
장차 인류를 구원하실 구세주를 담아야 할 거처는 하느님처럼 거룩해야 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구속사업 공로를 미리 앞당겨 입게 하여, 원죄로부터 영혼과
육신이 온전히 해방되게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 피와 살을 빌려드려야 했던
성모님의 원죄없이 잉태되신 사건(무염시태)이다.
성모님의 무염시태(어머니 안나에게서 수태되는 순간부터 원죄가 없었다는 것)는
죄를 지을 수도 없고, 죄로 인한 고통을 겪을 수도 없으며, 죄의 결과로 죽을 수도 없는
인간 본성에 과분한 은혜인 '과성(過性)은혜의 회복'이다.
죄 뒤에는 반드시 사탄이 있으므로, 하느님께서 사탄과의 싸움에서 첫 단추를 승리로
장식하신 사건이 바로 성모님의 원죄없이 잉태되신 사건이다. 원죄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빼앗긴 피조물 가운데에서는 있을 수 없으며, 감히 사탄이 넘볼 수도 없고,
사탄이 감히 더 이상 범접할 수 없는 영혼이며, 하느님 아버지께서 첫번째로
완전히 해방시킨 영혼이 바로 이 성모 마리아이시다.
바로 이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 이러한 방법으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화(강생: incarnation)되심으로, 성모님은 사탄을 상징하고 있는 뱀의 머리를 밟고
계시는 것이며,'여인의 후손'을 예수 그리스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업적인 자모이신 성교회를 상징하는 성모 마리아에게도 적용시키는 것이다.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여기서 '상처를 입히리라'로 번역된 '테슈펜누'(theshuphenu)는 바로 앞 문장에
나오는 '슈프'(shup)와 동일한 단어이다. 그러나 앞 문장에서는 '머리'가 상하게 하는
대상인 반면에, 여기서는 '발꿈치'(아케브; aqeb)가 그 대상으로 되어 있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머리는 인간이나 동물에게 가장 중요하며, 상처를 입을 때 치명적이지만, 반대로
발꿈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하찮은 부위를 상징하며, 상처를 입어도 치명적이지 않다.
사탄의 공격은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며,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중단케 하지 못했으며,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서
그 발꿈치의 상처마저 완전히 치유되었다.
그러나 사탄의 상하게 하는 역사를 과소 평가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상하게 하다'
(슈프; shup)는 히브리어는 집요하게 공격하여 상처를 남긴다는 의미이며, 또한
본문에서도 이 단어는 미완료형으로 사용되어 사탄은 상하게 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할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묵시20,10.15;1베드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