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에는 독서모임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것이 이제 여덟번째에 접어들었는데 이번 달에는 특히 '슬픔은 원샷 매일이 맑음'이라는 책을 쓴 저자이자 유튜버인 김한솔님을 초청하여 북콘서트 형식으로 시도하였다. 책을 추천하고 작가와의 만남까지 건의하신 집사님 덕에 알게 되었는데 김한솔님이 바로 우리교회 소속 청년이라 한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닥쳐 와도 꿀꺽 삼키고 주어진 삶을 살다 보면 선물같은 하루가 펼쳐질 수 있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는 책이기에, 아이들과도 함께 나누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주중에 자기 전마다 여러 장을 읽어주고 세바시 강연하는 모습이나 '원샷한솔' 유튜브 채널에서 세 개 정도 보여준 터였다. 8세인 가은이는 조금 어려운 듯 반응이 시큰둥했으나 10세인 서은이는 책을 읽어주면 곧잘 들으며 더 읽어달라 하며 만남을 함께 기대하였다.
1시 30분이 되었다. 50여분의 신청자들이 2층 공간을 꽉 채운 사잇길로 한솔님이 입장. 한숨 잠시 돌린 후 시작하는데 영상에서 이미 본 터라 신기하면서도 익숙하다. '하핫'하는 특유의 유쾌한 웃음소리를 찐으로 들으니 현장의 생기가 느껴져 좋다. 진행자의 간단한 소개와 유튜브 구독자 수에 대한 퀴즈로 공기가 데워지자 각자 책을 읽으며 생각한 점과 질문, 이에 대한 한솔님의 대답으로 진행되었다. 한솔님은 시각만 닫혔을 뿐 오히려 네 개의 감각은 더 활성화 되어서인지 질문을 듣고 핵심을 파악하여 대답하는 것을 참 잘 했다. 맥락을 잘 잡고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해서 공감이 잘 되었다. 그리고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이야기를 하여 내가 질문을 한 대답을 들을 때는 나를 바라보고 말한다 싶었다.
일반인과 소통하기 위해서도 노력을 했을 터다. 책에서 그런 에피소드가 나온다. 자신이 이상한 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상대방이 볼 때 이상하게 느낄 것 같아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바닥에 두고 이야기했었다고. 그런데 적성검사를 하러 간 곳의 복지사 선생님이 남의 시선은 중요한 게 아니라 했다 한다. 이건 어디서였나, 내가 소리나는 곳을 향해 보았을 때 시선의 각도를 친구의 조언으로 조정하여 실제 상대방을 보는 것처럼 보이게 연습했다고.
18세에 시각장애인이 된 한솔님이 새롭게 세상에 적응해 가는 이야기는 자연스레 이 시대가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장애인들이 얼마나 다니기 힘들지를 실감하게 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면접을 보는 장면에서도 그런 것을 느꼈다. 왜 이 학과에 지원했는지 등의 면접 예상 질문을 연습하고 또 연습하여 들어갔더니 교수님들이 실제 묻는 것은 이런 질문이었다는 것이다. "시각 장애인인데 학교는 잘 다닐 수 있겠어요?" "학교에서 밥은 어떻게 먹나요?" "공부는 할 수 있어요?" 한솔님의 표현에 따르면 공부가 가능한 것은 내신 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테고, 학교에서 식사 여부가 입학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감정포르노라는 말이 있다. 아 이 사람은 나보다 못하구나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에 눈물샘을 자극하거나 주머니를 열게 만드는, 안쓰러움과 불쌍함을 부각시켜 보여주는 방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솔님이 장애인이 되었을 때도 스스로 내가 이런 불쌍한 장애인이 되었다는 생각에 한동안 우울했고 후에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도 실제 찍을 때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았는데 방영분을 보니 장애인으로서 잘 안 되고 서툰 부분 중심으로 편집이 되어 황당했다 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장애인도 신체적인 장애가 없는 일반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란 것이다. 보통 사람들도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 있다. 의욕적일 수도 소극적일 수도 있다. 마음이 건강할 수도 마음이 병들었을 수도 있다. 장애가 있으면 조금 불편할 뿐이다. 그렇다고 장애가 있다고 못 하리라는 것은 없다. 불행하라는 법도 없다. 가고 싶은 곳에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이동권이 보장되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권리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이 사회 전체적으로 공유되어야 할 것 같다.
한솔님이 대학에서 시험을 치는데 보통은 시험지를 받으면 한 눈에 쓰윽 읽을 수 있으나, 시각이 약하면 손으로 점자를 하나 하나 짚으며 읽는데 시간이 걸려 수능 등 평가에서 점자와 음성을 사용하는 경우 1.7배의 추가시간을 더 받게 된다고 한다. 어떤 과목의 교수님께 시험의 방식이나 시간에 대한 문의를 드렸는데 단칼에 '안된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은 핑계라는 생각이 든다.
그 교수가 답답해서 화가 났지만 그 화살은 나에게도 향하기에 언어를 순화해서 말하겠다. 다른 학생들에게 민원이 생기면 한솔님에게는 왜 시간을 더 주어야 하는지 설명하면 된다. 아마 이 교수는 왜 이 학생이 내 과목에 수강신청을 해서 안 그래도 바쁜데 신경쓸 것 많게 만드냐, 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시험시간을 조정하고 장소를 안내하는 것은 조교를 통하든 몇 가지 안내로 해결할 수 있을 텐데도 굳은 시각은 머리의 회전을 굼뜨거나 왜곡되게 하나보다.
뉴욕 금융가에서는 4개의 모니터로 표와 그래프를 실시간 확인하며 시세를 판단하는 대신 글을 읽고 앞을 내다보는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가 있다. 기관사도 있다고 한다. 거기서 만난 한인대학생은 졸업 후 할 게 너무 많아서 고민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 나라는 학교를 졸업하면 안마사가 되거나 공무원, 특수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 그나마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경우의 다인데 말이다. 우리나라에 250만명 정도가 장애인에 등록되어 있다고 하는데 20명 중 1명 꼴로 거리를 활보해야 할 장애인이 눈을 씻고 봐도 안 보인다.
'안된다' 이것이 문제다. '할 수 있다. 어떻게 할지는 함께 고민해 보자' 이게 정답일 거다. 초등학교에도 특수학급이 있어 여러 장애를 지닌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이 친구들은 국어 수학 등 정해진 시간에 특수학급을 가고 보통은 통합학급에서 친구들과 지내게 된다. 내가 신규교사였을 때도 청각장애인 친구 A가 있었는데 나는 늘 어찌 대할지 조심스러워 했던 듯 하다. A의 부모님과 소통하며 학교생활을 잘 하도록 돕고, 또 A와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지내도록 뭔가를 했나 더듬어 생각해도 짚이는 게 없다.
수십명의 아이들 챙기기도 바쁘고 처리해야 할 업무도 많다. 이건 이유가 안 된다. 통합학급의 담임이 되어 내가 다시 A와 같은 친구를 만난다면 적어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대하고 싶다. '너도 똑 같다. 장애는 남과 다른 거지 못 한다는 게 아니다. 방법을 함께 고민해 보자.' 나의 시간과 노력을 더 써야 할 수 있겠지만, 필요하면 기관이나 다른 전문가에게 자문도 구하며 그렇게 함께 지내는 방법들을 찾아가는 태도를 장착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통합반의 친구들은 행운아이다. 가까이서 나와 다른 이와 친구로 지내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한솔님으로 인해 건국대 안에 '가날지기'라는 장애인권동아리가 생겼고 거기에는 장애인 친구 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도 함께 하며 인식을 공유하고 학교 안에 점자 블록을 설치하거나 휠체어가 다니는 길을 정비하는 것 등 환경을 변화시켜 갔다고 하지 않았나. 통합반의 아이들과 달리 지금 사회의 문제는 거리에 장애인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눈에 안 보이기 때문에 더 생각을 못하고 무뎌진다.
그래서 이런 스피커가 반갑다. 유튜브를 통해 세상이 바뀌는 것을 경험하고 앞으로도 '변화시키는 것이 꿈이다' 라고 말하는 그의 호전적인 태도에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정말이지 요즘 세태에 맞는 미디어를 너무 잘 선택한 것 같다. 흥미 위주로 흐르기 쉬운 유튜브의 홍수 속에서 초심을 잃지 않고 꼭 필요한 콘텐츠들로, 특유의 유쾌한 언어로 장애인의 생활을 잘 풀어내고 사회의 호응을 얻어내길 바란다. 이 채널을 통해 컵라면 회사들이 뚜껑에 점자로 표기를 하기 시작된 것처럼 그런 변화된 이야기들이 계속 흘러나오길 바란다.
그래서 대부분의 불편을 겪으며 지내는 장애인들의 삶이 조금씩 조금씩 개선되기를 바란다. 지난 달에 명절 전후하여 부산에서 지내며 중증 시각장애인인 엄마를 모시고 대중목욕탕을 다녀왔다. 여탕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이라 탕 앞에 자리를 잡고 앉기에는 아주 조심스러운 발걸음이었다. 탕 속에 들어갈 때에도 힐끗 쳐다보는 주위의 시선이 느껴진다. 천천히 목욕을 마치고 엄마 손 잡아끌고 탕을 나서는데 한 분이 내게 '아유 수고가 많네' 한다.
눈이 밝을 땐 이 곳 저 곳 다니셨던 우리 엄마가 이젠 집에만 대부분 계시고 운동 겸 나서더라도 익숙한 동네 공원만 가게 된다. 이번에 트레이더스 푸드코트와 화장실을 이용하는 법, 부산 국회도서관 까페에서 두 분이 데이트 하시는 법을 알려 드리고 가덕도의 풍경 좋은 커피숍에도 다녀왔건만 며칠 뒤 가족톡방에 '우리는 죽으나사나 **공원이다' 며 또 공원 사진이 올라왔다. 도보해설관광에서 무장애코스라 신청했던 창경궁도 휠체어로 다니기에는 너무 울퉁불퉁 힘들어 남편이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길에서 아주 가끔 보는 장애인 택시는 총원에 비해 너무 적어서 밤에 그 택시를 이용하려면 3000명당 1대 꼴로 배정이 되는 거라 했다. 한솔님도 적어도 1시간 반 이상은 기다려 그 택시를 이용한 적 있다 하였다.
오늘 중 1 올라가는 남학생이 한 기특한 질문- "비장애인이 배려라고 한 행동이 오히려 불편했던 경험이 없으셨어요?" -처럼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모르고 조심스러운 지점들이 누구에게든 분명히 있다. 그래서 이를 알리는 유튜버 한솔작가님의 행보를 더 응원하게 된다. 장애인의 가족으로서 주위의 시선이 어떻든 계속 밖으로 나가려 하고 있는 것을 활용하고 불편한 것을 체감해 보려 한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를, 적어도 이동권이 보장되고 나아가 누구든 꿈꿀 수 있는 것을 꿈꾸고 시도해 볼 수 있기를. 장애인이니 안 되! 가 아니라 할 수 있어. 어떻게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보자. 는 사회가 되기를 바래 본다.
첫댓글 이 글을 우리 글쓰기 시간에 꼭 읽어야겠네요, 이번주 결석이라 미리 올렸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