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속았다
김영도
간밤에 잠을 설쳤다. 꿈결에 본 동백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곧 찾아올 봄바람에 떠밀려 매화가 기지개를 켜고,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면 이내 봄꽃들이 산천을 뒤덮을 것이다. 오늘이라도 붉은 모가지를 뚝뚝 떨구기 시작할까 봐 조급증이 일었다.
가까운 동백섬을 두고 세 시간 남짓 떨어진 고창 선운사를 목적지로 잡은 건 송창식의 꼬임에 넘어간 탓이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바람 불어 설운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 송창식, 선운사」
묵직하면서도 감미로운 목소리를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거두절미하고 “가자.”라는 전화 한 통에 흔쾌히 따라나선 친구와 여행길에 나섰다.
늦겨울에 어울리지 않는 푸른 하늘과 삽상한 바람이 계획에 없던 나들이를 응원했다. 송창식의 선운사가 반복 재생되는 차 안에서 친구가 3년 전 헛걸음을 끄집어냈다. 그때도 전화한 건 나였다. 12월 말이었다. 겨울이 가기 전에 동백을 보러 가자고 친구를 꾀어 선운사로 갔다. 짙은 안개 속을 숨차게 달려간 그곳에 붉게 터지는 꽃은 한 송이도 없었다. 마당 구석에 남아있던 얼음을 녹이던 쨍한 햇살만이 진한 초록잎에 내려앉아 쉬고 있었다. 점심도 거르고 내달렸던 발걸음이 무안했다. 아침의 안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허망함을 안고 되돌아오는 길은 더 멀었다.
이번에도 꽃이 없으면 어쩌냐며 걱정하는 친구에게 오늘은 2월 말이니 틀림없이 있을 거라 호언장담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선운사로 들어서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럴 수가, 또 속았다. 쏟아지는 햇살에 시퍼런 잎사귀들만 반짝이고 있었다. 이놈의 햇빛은 왜 그리 밝은지 눈이 시큰거렸다. 왈칵 밀려드는 배신감에 코끝이 매웠다. 두 번이나 속았다는 원망의 마음이 애꿎은 송창식에게까지 미쳤다.
마침 지나가는 보살님이 있어 왜 동백꽃이 없냐고 원망하듯이 물었다. 선운사는 동백의 북방한계선이라고, 그래서 춘백春栢이라 부른다고, 4월 말에서 5월 초에 와야 볼 수 있다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해줬다. 조곤조곤한 설명은 내 귀를 통과해 머릿속에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달려온 어리석음을 질책하는 소리로 변조됐다.
나를 속인 건 나였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철 따라 바뀌는 자연의 섭리에 유별나게 무지한 편이다. 달력의 숫자와 계절을 연관시키는 것도 영 어설프다. 그저 동백冬柏이라는 말에 당연히 겨울에 핀다고 생각하고 개화 시기를 알아보지도 않았다.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전에 손가락만 잠시 움직였어도 이런 헛걸음은 없었을 터이다.
미루어 짐작하고 확인도 없이 결정하고 움직인 나한테 속은 것이 아닌가. 돌이켜보면 이런 식의 성급한 발걸음이 얼마나 많았을까. 어리석은 독단과 조급함은 삶의 굽이굽이마다 드러났다. 아직 때가 아닌 것을, 이쯤이면 되었다고 다그치고 보이지 않는 결과에 실망하고 상처받았다. 그 설레발에 휘청인 게 어디 나 뿐이겠는가. 당장에 아침잠을 설치고 따라나선 친구의 졸린 얼굴을 마주하기 민망했다.
허탈하게 웃는 친구의 얼굴 위로 이십 년 전 열 살배기 딸의 동그란 눈동자가 겹친다. 제 동생이 초등학교 입학식을 하고 온 날이었다. 동생의 손을 잡고 비장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이제 너도 빨리빨리 해야 돼. 엄마는 빨리빨리 엄마야.”
불덩이를 삼킨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당시 나는 책으로 배운 육아를 하고 있었다. 적당한 수유 간격이 세 시간이라는 말에 따라 아이가 울어도 우유를 주지 않았다. 수첩에 먹은 양과 시간을 적어가면서 초보 엄마의 어리석음을 세련되고 똑똑한 엄마라고 포장했다. 책에 쓰인 발달단계대로 아이가 자라는지 알았다. 때가 되기를 여유 있게 기다리지 못하고 종종거렸다. 서툰 걸음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채근하는 엄마 앞에서 아이는 휘청거렸다. 배운 엄마라는 오만함을 버리고 책을 내려놓았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성급한 걸음으로 허방에 빠져 허둥거리기 일쑤였다. 상대방의 의도를 확인하지 않고 지레짐작으로 판단하고 앞서가기도 했다. 나 자신을 속이고, 남들에게 속으면서 때로는 뒤통수가 얼얼해지고 가끔은 얼굴이 붉어지고 왈그락달그락 부딪치고 깨졌다.
내가 정한 시간에 맞춰 꽃이 피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달은 건 여러 번의 계절이 바뀌고서였다. 이제는 내 맘대로 판단하지 않고 성급하게 내달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우아한 중년의 느긋함으로 사뿐사뿐 걷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는 걸 오늘 딱 들키고 말았다. 서정주처럼 시라도 한 편 남기면 부끄러움이 감춰지려나.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서정주, 「선운사 동구」>
<에세이문예> 2024.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