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때 김동리가 쓴 ‘春秋’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춘추는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인데 오자서를 주인공으로 오자서의 시각에서 쓴 역사 소설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읽을거리가 없던 우리 시골에서 춘추 덕분에 그해 여름방학을 멋지게 보냈다. 그 소설에서는 오자서가 공자에 대해 교활한 면이 있다고 들었다는 대사도 들어 있었다. 금년 지식인들이 뽑은 사자성어에 倒行逆施 가 선택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자성어는 오자서가 한 말인데 오자서의 복수가 지나치다는 손무(나중에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자의 본명)의 지적에 오자서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일모도원 도행역시(日暮途遠 倒行逆施)”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책에는 해석을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바쁘니 모로나 거꾸로나 갈 수밖에 없거니..”라고 해석되어 있었다. 그때 그 말이 그럴듯해서 그 말을 무조건 외우느라고 수백번 되뇌어본 기억이 난다. 최근 해석을 보니까 “갈길이 멀기 때문에 하늘의 뜻에 거역할 수 밖에 없다” 고 되어 있는데 거의 같은 뜻이다. 그런데 오자사가 한 저 말이 변명이 될까? 죽은 시체를 파내어 매질을 300대나 하고 눈을 파내는 참혹한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을 뿐인 것이다. 그래서 倒行逆施 는 좋은 말은 아닌 것이다. 어떻든 한해가 간다. 새해에는 좋은 사자성어가 나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