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산업사 흐름 바꾼 결단의 순간들
경부고속도로.소양강댐 건설 진두지휘
한국 전쟁 이후 '한강의 기적' 이끌어
'소 떼 방북'으로 남북 화해 물꼬 트기도
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의 도전정신과 뚝심은 한국 산업사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1915년 강원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태어난 정 회장은 19세에 서울로 상경,
막노동 등 여러 일을 전전하다 1938년 신당동에 자신의 쌀가게 '경일상회'를 열며 사업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자동차 수리 공장 '아도 서비스'를 인수하며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은 빠르게 번창했고 그로부터 6년 뒤 '현대자동차공업사'로 이름을 바꿨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었다.
1947년에는 현대토건사를 설립하며 건설업에 진출했다.
이는 훗날 현대건설로 이어지며 현대그룹의 모태가 됐다.
처음에는 미군 부대의 화장실 수리같은 작은 일부터 시작했지만 '현대는 확실하다'는 평가를 얻으며 점차 대형 공사를 수주하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정 창업회장은 특유의 신용과 실행력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경부고속도로와 소양강댐 등 국가 기간시설 건설을 진두지휘하며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71년에는 조선 사업에 도전했다.
주변 모든 사람들이 '무모한 도전'이라며 만류했지만 그는 과감히 실행에 옯겼고 한국을 조선 강국으로 만드는 주춧돌을 세웠다.
1975년에는 현대자동차가 최초의 독자 생산 모델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국산 자동차 인 '포니'를 개발하며
한국을 명실상부한 자동차 산업.제조업 강국의 반열에 올렸다.
해외 건설에도 과감히 도전하며 한국의 기술력을 세계에 알렸다.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유전지대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의 계약금액은 9억3114만달러(약 1조3900억원)로
당시 한국 국가 예산의 약 25%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당시 많은 참모들은 극한의 더위 등을 이유로 반대했지만 그는 '낮에 더우면 자고 밤에 시원할 때 일하면 되지 않나'라며
과감히 실행에 옮겼다.
이처럼 그는 산업화를 이끈 기업가이면서도 통일과 국가적 과제에 적극 뛰어든 '행동하는 기업인'으로도 평가받는다.
대표적인 행보는 1998년 '소떼 방북'이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강원 통천군을 떠올리며 직접 소 1001마리를 몰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북 화해의 상징적 장면을 연출했다.
정 창업회장은 이후 금강산관광 사업을 추진하며 남북 경제협력의 물꼬를 텄다.
스포츠 외교에서도 존재감을 두드러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그는 기업인의 신분으로 유럽 각국을 돌며 스포츠계 인사들을 만나는 등 유지 활동을 지원했다.
다만 말년에는 정치 참여로 적지 않은 시련을 겪었다.
1992년 통일국민당을 창당하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시고 이후 현대그룹은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으며
경영 환경이 크게 흔들리기도 했다.
정치적 성패와 별개로 정 창업회장의 도전정신은 오늘날 에도 귀감이 되고 있다.
불가능해 보이던 일도 먼저 시도하고 길을 만들어냈던 그의 뚝심은 한국 산업 발전의 굳건한 토대가 됐다. 이배운.이윤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