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을 벼른 한글날(=일요일)입니다. 직장인이 평일에 한글날, 한글학회에 가서 행사를 보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 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허 웅 선생님이 돌아가시던 날도 직장인이라는 굴레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했습니다. 글을 적다가 1999년 10월 9일이 어떤 요일인지 찾았습니다. 이날은 일요일입니다. 어? 그럼 언제 다시 일요일이지? 하며 봤던 게 2년 전 일입니다. 다른 날도 못 가는데, 이날은 꼭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리그물 한말글 모임(다음부터는, 누한모)의 모람인 황윤 호성(실비)과 전화를 하다가 한글날에 우리끼리 떡에 초를 꽂아서 한글 생일을 축하하는 게 어떻겠냐? 하는 말에 누한모 만의 행사를 서울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어제, 한글날입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서울로 갔습니다. 부산에서 6시에 출발해서 서울에 8시 40분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역에 호성이와 김 수련(노루섬)이 나와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남산으로 갔습니다. 서울에 여러 번 다녀갔지만, 거의 인사동과 서울역만 오갔는데, 땅그림을 보니 남산이 서울역과 가깝게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남산을 올라가자고 했습니다. 남산 나들목에 가니, 호성이 친구인 김 태희 님이 계셨습니다. 이렇게 넷이 만나 택시를 타고 산 중턱까지 올라가서 걸었습니다. 몇 개인지 모르고 계단을 걸었습니다. 남산을 오르던 한 꼬맹이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겠다며 칭얼거립니다. 남산을 오르니 서울이 다 보입니다. 우리 넷은 사진도 찍고, 태희 님이 싸온 도시락도 먹었습니다. 맑은 정신에 남산에 올라 서울을 바라보니 한글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글 학회 행사는 12시입니다. 우리가 내려 갈 때는 케이블카를 탔습니다.
남산과 한글 학회가 그리 멀지 않다는 말에 약 30분을 걸어 한글 학회로 갔습니다. 한글 회관을 들어서니, 박 동근 형님이 계셨습니다. 이 형님을 뵌 지 2년이 넘었는데, 마치 어제 만난 듯 인사를 나누고, 5층으로 갔습니다. 우리 넷은 약간 늦은 탓에 많은 분들이 행사장에 계셨습니다. 더구나 제2회 한글이름 가진 이 글짓기 대회 시상식이 있던 까닭에 어린 친구도 꽤 많이 와 있었습니다. 이 봉원(얄라) 선생님은 앞에서 말씀을 하시고, 이 대로(나라임자) 선생님, 유 운상 선생님, 성 기지(새다힘) 형님, 김 한빛나리(젊은오빠) 형님, 김 용묵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고, 한글 학회 행사 진행의 처음이라 그랬던지 한글문화연대 김 영명(들빛) 선생님은 국어 공로상을 받은 상패를 갖고 앉아 계셨습니다. 김 영명 선생님은 한 번도 뵙지 못한 분인데 행사 중이라 인사는 못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말과 헌책방 쉼터의 최 종규(함께살기) 님, 김 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의 김 영조 선생님, 한글문화연대의 홍 종현(너섬) 형님, 한글인터넷주소추진총연합회의 곽 이영(수련) 님을 찾았지만 뵐 수 없었습니다. 워낙 많은 분이 오신 까닭에, 우리는 강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무실에 앉았습니다.
행사가 끝날 무렵인 12시 50분쯤, 우리는 몰래(?) 한글 학회를 빠져나와 점심을 먹으려 했는데, 기지 형님과 한빛나리 형님이 그냥 가면 안 된다며 밥 먹고 놀다가라는 말씀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점심을 같이 먹었습니다. 한글 회관에서 나오니 신 정숙(웃는달) 님이 오셨습니다. 이렇게 다섯은 식당으로 갔습니다. 식당에도 사람이 참 많았습니다. 나와 호성이는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번 행사에서 우리 말글 지킴이로 뽑힌 송 귀현 선생님과 조 재수 선생님이 계셨고, 이른바 상석(?)에 유 운상 선생님이, 실이 왼쪽에는 기지 형님과 한빛나리 형님이 앉았습니다. 송 귀현 선생님은 이번에 상을 받기도 하셨지만, 한글문화협회 전북지부장으로 활동하신 까닭에 저와 함께 잠시 1층으로 내려가서 한글문화협회 대표인 문 제안 선생님께 직접 위촉장을 받았습니다. (저는 부산?경남 지부장입니다.) 다시 올라가서 마저 점심을 먹으며 송 귀현 선생님과 조 재수 선생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또, 이 대로 선생님이 2층으로 올라오셔서 올해 꼭 한글날을 문화국경일로 만들자고 하셔서 다들 꼭 그러자고 다짐을 했고 저는 더 큰 소리로 꼭 돕겠다며 박수도 쳤습니다. 식사 끝 무렵에는 정 재환 형님이 잠시 들렀다며 오셨습니다.
한글문화연대에서 1시에 행사를 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행사에 오신 많은 분들은 한글문화연대 행사장으로 가셨고, 식당에서 나오니 이 대경(푸나무)과 대경이의 귀여운 딸이 왔습니다. 이렇게 저, 호성이, 김 태희 님, 수련이, 정숙 님, 대경이, 기지 형님과 함께 주 시경 선생님 기념물을 둘러보며 이번에 아름다운 우리말 가게이름에 뽑힌 [머리에 봄]에 가서 커피도 한 잔 먹고, 가게 뒤에 있는 경희궁의 아침이라는 아파트 근처에 가서 자리를 잡으니 손 세희(다향), 오 정민(만판)이 왔고, 그 동안 못 다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호성이와 태희 님이 종로에 가서 떡과 초를 가져와서 떡에 초를 꽂아서 한글날 생일을 축하했습니다. 이 때가 대략 4시 30분입니다.
제가 서울에 왔을 때 계획은, 이 시간에 서울역으로 가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누가 그러자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볼링을 치고 술을 먹자고 했습니다. 볼링장에는 저, 정민이, 호성이, 태희 님, 수련이, 대경이와 대경이 딸이 왔습니다. 저와 정민이가 한 편, 호성이와 태희 님이 한 편이 되었습니다. 첫 판은 닭 값 내기. 잘 치지도 못한다는 상대편은 사기 볼링을 칩니다. 워낙 많은 점수에 보기 좋게 한 판을 졌습니다. 둘째 판은 저와 정민이, 태희 님과 대경이가 한 편이 되어 볼링을 쳤습니다. 둘째 판 볼링을 치던 중에 수련이 친구인 강 경완(탐라) 님이 오셔서 대경이 대신 볼링을 쳤습니다. 내기를 진 까닭에 닭 집을 찾아 간단한 음료(?)를 하러 찾았지만, 일요일이라 마땅치 않아 세종문화회관 근처 순대국밥 파는 집에 가서 모두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 때가 대략 7시 20분이고 7시 45분쯤에 기지 형님이 훈민정음을 한지에 찍은 것과 한글티셔츠를 네가 탐났을 거라면 가져다주시며 다시 자리를 채워 주셨고 9시 30분쯤에는 저와 정민, 기지 형님 이렇게 남았습니다.
저와 정민이는 서울역으로 갔습니다. 본래 박 보연(함초롬)이도 오려 했으니 일이 늦은 까닭에 10시 넘겨 서울역에서 만났습니다. 식당에서 저와 정민이와 보연이가 만나 커피를 마시며 보연이 석사 논문을 받았습니다. 오랜 시간 만든 논문인데다, 논문을 다 만들면 제게 꼭 한 권을 달라고 했는데 만나는 날 말도 안 했는데 가지고 왔습니다. 제 생각에는 성 기지 형님께도 한 권 드렸으면 하는 욕심도 생기더군요. 저와 정민이는 보연이를 보낸 시간이 11시 조금 넘을 때입니다. 한마디로 기차 시간 모든 막차는 떠났습니다. 저와 정민이는 택시를 타고 고속버스 터미널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심야버스 표 밤 12시 30분 차를 끊고 칼국수 두 그릇과 김밥 한 줄 먹으며 마저 못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차가 출발할 때쯤 정민이가 후다닥 뛰어와선 찬 커피와 얼린 물을 제게 줍니다. 자다가 목마를 수 있으니 가다가 먹으라는 세심한 배려 잊지 못 합니다. 평소에 코를 골지 않지만 술을 먹거나 많이 피곤하면 코를 고는 버릇이 있는데, 버스 안에 다른 분들이 제 코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셨을 겁니다. 부산에 오니 새벽 5시 입니다. 집에 가지 않고 바로 일터로 와서 이 글을 씁니다.
제가 2년 동안 기다린 이 날은 제게 너무 짧은 하루였습니다. 한글날이기도 했지만, 한글문화연대 일정과 맞물려 이야기 하고픈 선생님과 형님, 친구, 동생 몇 분은 제대로 말도 못 붙였습니다. 매번 서울 갈 때 생각하는 겁니다만, 내가 부산에 살지 않고 서울에 살면 참 많은 일을 했을 텐 데 하는 아쉬움을 남긴 체 부산으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제겐 한말글 관련으로 많은 직함을 갖고 있으나 실제 하는 일은 누리그물에서나 할 수 있는 일 말고 발로 뛰는 일은 거의 도울 수가 없습니다.
제 나이 스물 여덟 살인 1999년에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에서 [우리말 지킴이]와 한글 학회에서 [국어 공로상]을 받았고, 서른 살인 2001년 한글 학회와 문화관광부에서 준 [우리 말글 지킴이]로 뽑힌 바 있습니다. 그 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약 3년 동안 이른바 침체기에 빠져 헤어나질 못했습니다. 2005년 한글날, 한글 학회 행사와 행사 뒤 일어난 누한모 뒤풀이를 통해서 내가 너무 느긋했구나 하는 반성을 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를 따라다닌 분 가운데 평생 운동할 양을 하루 만에 했다는 분도 계셨고, 저 또한 하루에 두 가지 운동을 하면서 모임을 했던 것도 이 번이 처음입니다. 아침부터 저를 마중 나온 분,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신 분들께 고마운 인사를 드리며, 앞으로 많은 부분에서 게으름 피우지 않고 한말글 환경 운동에 열심히 뛰겠습니다.
첫댓글 한말글 모임에 김태희 씨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