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작메모》
수필에 있어 등단 년차가 어느덧 벌써 햇수로 계산하여 4년째 접어들었다. 아직도 부족함은 많지만, 등단 이후 돌아보면 볼수록 지난 글들이 어설프고 낯설어진다. 누군가 말한 기억은 ‘등단작을 비롯해 시간이 흐를수록 지난 글들이 어줍고 낯설다는 것은 그동안 작품성이 많은 진일보를 하고 있다는 반증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필자가 다루는 장르는 수필 외에도 다양하지만 수필에 대해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우선 수필 역시도 하나의 문학인 것은 기정사실이나 수필은 문학성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의식과 뚜렷한 사상적 총집대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어느 작가가 말하기를 수필의 허구성을 주장하고 있으나, 필자는 다르다. 물론 허구성이 없으매 읽기가 다소 따분한 장르가 수필이겠으나, 수필에 허구성이 내제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수필이 아니다. 허구를 말한다면 소설을 써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이다.
또한 수필은 그 작가의 사상과 성향이 그 어느 장르보다도 뚜렷하게 나타나는 게 정설이라는 것을 필자는 말하고자 한다. 밝음보다 어둠을 더 잘 보는 작가의 문체는 강하기 마련이다.
어둠만을 꼬집는다 하여 그 작가의 성향이 사물을 대하거나 사회를 보는 시각이 삐뚤어지거나 부정적이라는 오판을 하는 작가와 독자가 되어서는 아니 될 일이라 본다.
필자는 말하노니, ‘밝음은 가만히 두어도 밝지만, 어둠은 가만히 두면 둘수록 더 어두워지는 법이다. 그러하매 어둠을 잘 본다는 것은 양지에 서 있다는 반증이다.’
하여 독자에게 있어 앞으로도 변함없이 눈 아프고 귀 아프고 속 아픈 소리만 할 것이라 다짐한다. 수필은 감성이 아닌 철학哲學과 사상적思想的 시야視野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여성수필과 남성수필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보인다.
『자아성찰自我省察』
- 수필가 시인 / 주현중 -
살면서 ‘나’를 알고 사는 이 몇이나 될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든다. 스스로 ‘나’에 대해서도 골똘히 생각해보지 않고 누구를 알고,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가끔씩 스스로 자답自答을 해 본다. 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가버리고 2006년 丙戌年, 내 나이 어느덧 서른아홉에 들었다. 나의 최종학력은 중학교 졸업으로서 학창시절이라곤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이 전부이다 보니 나를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솔직히 이야기해도 믿으려 하질 않고 농담으로 받아들이는데, 이럴 땐 솔직히 괴롭다.
자주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아니면 중학교의 ‘반창회’라든가, ‘동창회’ 그리고 어쩌다 한 번씩 친한 동창과 술자리에 들면 나는 학창시절에 대한 추억이 그리 많지 않아 친구들의 입담을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어야하는 꾸어다놓은 보릿자루나 진배없는 ‘나’, 그럴 때마다 스스로 안됐다는 생각이 불쑥 들곤 한다.
그래도 할 이야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나의 최종학력은 중학교랍니다.’라고 공개방송은 하진 못해도 아기자기한 추억담을 곧 잘 털어놓는다. 위에서 말한 ‘꾸어다놓은 보릿자루’라는 말은 동창들과의 만남에서이다. 좀 비참하게 전락되다시피 한! 이 글의 표제인 『자아성찰自我省察』이란 말은 고사성어로서 사연이 있는 숙어이다.
나의 본고향은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이다. 월래 용평면은 강원도 진부면 관할지역이였는데, 과거 ‘문민정부’시절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목정, 속사리, 도사리, 용전리, 장평리」를 통합하여 지금의 용평면이 되었다. 나는 행정구역이 개편되기 이전에 ‘용전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지금은 폐교가 되고 만, ‘용전초등학교’에서 2년을 수학한 후, 같은 道의 ‘봉평면 면온리’의 ‘면온 초등학교’에서 나머지 4년을 마치고, ‘봉평 중학교’1학년 입학하자마자 곧바로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용문 중학교’로 전학하여 3년을 마쳤는데, 『자아성찰自我省察』이란 고사성어의 사연은 ‘용문 중학교’시절의 이야기이다.
당시 중학교 입학할 즈음에는 일본문화의 잔재인 일본식 교복에 교모를 쓰고 입학하였는데, 중학 3년에 들어서니 ‘교복자율화, 두발자율화’가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던 1983년도였다. 앞서 중학교 2년에 들어서니 당시의 전임 교장선생님께서 정년퇴임하고 후임으로 ‘박택상’교장선생님께서 오셨는데, 중학2년 때부터 3년까지 멋 부리기에 여념이 없었던, 새로 부임해 오신 교장선생님께서는 전교생에게 손거울을 소지하고 등교하라고 지침을 내렸는데, 그 손거울에 漢字로 ‘自我省察’이란 고사 성어를 인쇄하여 부착하고 다니라는 것이었다.
‘自我省察’이란 고사성어의 뜻은 「자기 스스로 관찰하고, 생각하고, 판단하여 행하라.」는 뜻으로 소지하고 다니라고 했건만, 당시 나와 동료들은 남학생이나 여학생이나 멋 부리는 일에만 매달렸다. 더욱이 내가 다녔던 용문중학교는 시골학교치고는 보기 드물게 전 학년 모두 남녀공학 반(한 줄은 남학생, 한 줄은 여학생)으로 구성되었던 탓이기도 하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당신께서는 학업성적만 우수한 학생보다는 자기 자신을 잘 아는 품행 바른 학생이기를 바랐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한 깊은 헤아림이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여학생화장실에서 여학생 볼일 보는 것만 비춰보고, 예쁘장한 여선생님 미니스커트 속 비춰보는 일에 사용하였던 기억, 얼굴을 보라는 게 아니라 마음을 비춰보라는 것도 모르고 마냥 멋만 부리려고 용을 섰던 기억들!
‘丙戌年’만 지나면 불혹의 나이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自我省察’이란 살아가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삶의 좌표를 그릴 수 있는 잣대가 아닌가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기주제를 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자기주제를 안다는 것은 자기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고, 인정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이러한 소신이 있어야 비록 현재 배가 좀 고프다하더라도 행복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흔히 ‘나는 행복하다’느니, 혹은 ‘나는 불행하다’느니 하는데, 솔직히 ‘행복’지수는 어디에 두는 것이고, ‘불행’지수는 어디에 두는 것인지 개개인마다 쏟아놓는 변을 들어보면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느낌이 든다. 재물에다 ‘행복’지수를 두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인 듯하다. 물론, 재물이 현실적으로 충분하다면 그래서 행복하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현실이 자기 자신의 능력의 한계가 있어 넉넉하지 못한데도, 무조건 넉넉한 사람만 눈에 가시로 여기는 일들이 부지기수인 것 같다. 나 역시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하여 아직까지 잃어버린 한쪽 짚신을 찾지 못하여 혼자 살고 있는 미혼 남성이지만, 부모를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날마다 보는 정규 아홉시 뉴스를 대하며 모든 것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욕구불만’이 철철 넘치는 정말로 불쌍한 삶은 살지 않는다고 스스로 확신할 수 있다. 그것은 ‘自我省察’ 즉, 일찍이‘나’를 나 스스로 찾았기 때문이다.
나는 4남1녀 중 셋째인데, 맏형은 36세 때 요절하였고, 막둥이 여동생은 시집을 가 아이의 엄마로 자주 볼 수는 없지만, 손 위로 둘째 형과 손 아래로 넷째 동생이 있는데, 둘째 형은 자기 자신의 과거에 충실하지 못하여 현실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있는 자들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함께 대화를 하다보면 전혀 대화가 되질 않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불신하는 ‘성격장애’인데, 이것은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스스로 학대하여, 스스로 비참하게 만들어가는 모습이 안타깝기 이를 때 없다.
「자기 자신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기 그릇을 안다는 것이다.」나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남보다 나아지지 않는다고 가진 자에게 적개심이나 품고, 세상이나 원망하며 페인의 길을 가기보다는 스스로 ‘나’를 그대로 인정하고 ‘나’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모든 사물을 아름답게 보는 긍정적인 사고를 지니고 살아야 불행이라는 용어와 소원해지지 않겠는가 생각해 본다. 흔히 남자가 혼자 살면 추하게 보인다고 한다. 날마다 술독에 빠지기 쉽고, 끼니라고는 하루에 한 끼 아니면 동네 24시 편의점에서 850원 짜리 ‘사발면’으로 대충 때우는 삶, 혼자 산다는 것은 여러 가지 사유가 있겠지만, 나를 스스로 생각해 보면 독하지 않고서야 혼자 살 수는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2006년1월15일 일요일 텔레비전 뉴스 보도내용을 볼 것 같으면, 현재 젊은 남성 여성 할 것 없이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것이냐?’라는 말을 40%로가 했고, ‘아이를 꼭 낳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다.’고 답변한 사람들도 60%로가 넘는다고 한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들을 짚어 볼 때 핵가족정책이 낳은 병폐로 스스로 생각을 바꾸기 전에는, 발상의 전환을 하기 전에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점점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나 또한 이러한 부류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또한 교훈을 주는 사례하나는 멀리 인도에서 26세의 여성이 47세의 20년 연상의 한국 남성 단 한사람만 보고 시집 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것을 소개하며 사랑은 나이가 장애가 될 수 없다는 진리를 얻었다할 수 있으며, 사람이 사람을 보는 것은 첫 번째가 정이며 두 번째는 사람의 됨됨인 것이며, 재물이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절대적기준이 아니라는 것도 26세의 인도출신 여성으로부터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색맹질환자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동인문집 ; 詩人과 사색 4집 원고 中에서(2007년 중 출간예정).
첫댓글 수필을 약간 포장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허구라고 해야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자아성찰 귀에 익숙한 고사성어이나 제것으로 만들기엔 쉬이 되지는 않을겁니다. 저부터도.. 잘 읽었습니다. 님의 사실적 면모를 느끼게 해주신 글이었습니다.
사람에 따라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겠지요, 현실을 인정하면 그것이 곧 실천이 아니겠는가 합니다, 현실 부정이 곧 자기 자신을 스스로 옥죄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서...., 저는 저의 모든 것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살고 있으며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리라 여깁니다, 고맙습니다,
나를 알고 살면 사는데 조금은 편하지 싶네요..가능성이 없는일에 도전해서 깨지고 터지고 포기해야 잘하는것은 아니잖아요...내가 할수 없는일에 힘쓰는 미련한 삶이 되면 안되는거네요...나를 알고 능력껏 노력해서 얻음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되는거 아닐까요...좋은글 잘보고 갑니다......좋은시간 되세요.......
네, 편하지요! 현실을 받아 들이지 못함에, 변화를 두려워 함에 있어 단명하는 지름길이 아니겠는가 합니다, 다만 노력 없이 도전하는 것은 무모함이겠으나, 어릴 적 친구들이 따뜻한 밥 먹으며 대학을 다니고 대학원을 다닐 때 그저 그 친구들을 부러워만 하고 경시하였느냐, 아니면 산업의 전선에서 일하면서 그 친구들을 따라 잡으며 걸었느냐는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노력 없이 도전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만 한다면 현실 도피주의로 전락할 수도 있겠지요, 저 역시 아직도 많이 부족함이 있어 늘 피나는 노력을 하고 하며 살아 간답니다, 그렇지만 해도 해도 아니 되는 일은 미련 없이 버립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 있어.....,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