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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4일 토요일 맑음
동이 트는 새벽을 차에서 맞는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ADO 버스라고 하지만 버스는 버스다. 호텔일 수가 없다. 날이 새니 눈이 자연스럽게 떠진다. 차창 밖 왼편으로는 설산이 보인다. 세워놓은 옥수수 대들의 묶음이 밭에 집처럼 서있다. 시간으로 보나 주변 환경으로 보더라도 멕시코시티에 다 와 가는 것 같다. 농촌 모습이 사라지면서 집들이 등장하고 사람들과 차들이 많아진다. 오전 10 경에 멕시코시티의 노르테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규모도 크고 사람들도 많고 엄청 복잡해 보인다. 바짝 긴장이 된다.
멕시코시티에는 4개의 버스터미널이 있다. 동서남북으로 행선지에 따라서 나뉘어져 있다. 모두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하다. 우리가 내린 북부 터미널은 북쪽에 있는 도시를 간다. 티후아나, 시우다드후아레스, 치와와 등 북부 국경 방면, 과달라하라, 과나후아토, 등 중앙 고원일대, 모렐리아, 파스쿠아 등 마초아칸 주 일대, 로스모치스, 마사틀란 등 북태평양 연안으로 가는 차들이 있다.
이제 시내에 있는 숙소를 찾으러 간다. 지도와 책을 꺼내 위치를 파악하고 지하철 노선을 확인했다. 지도는 버스터미널 안에 있는 i에서 구했다. 미리 메모해 가지고 간 호텔 Habana 의 지도와 주소를 확인했다. 예약은 하지 않았다. 정확한 날을 맞추기 어려워서다. 이 호텔 주변에 숙소가 많기 때문에 융통성 있게 정하려고 한다. 전철역 2호선인 Allende 역을 목표로 했다. 우리가 내린 버스터미널은 5호선이 연결되어있다. 2번을 갈아타야한다. 한 정거장을 가서 La Raza 역에서 내려 3호선으로 갈아타고 Hidalgo 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기로 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때 개통된 것이 최초이다. 매우 정돈된 메트로가 전부 11개의 노선을 갖고 있다. 파리의 지하철 기술을 도입해 차륜이 고무다. 승차감뿐 아니라 겉모습도 좋다. 행선지는 각 노선의 종점 역 명으로 표시되어있어 알기 쉽다. 지하철 시스템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환승 표시도 잘 되어있다. 한 번 승차로 여러 번 환승이 가능하다. 또 각 역에는 문자에 의한 역명 표시 외에 심벌마크가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인구 30%에 이르는 문맹자를 위한 정부의 고안이란다. 이 지역에 익숙지 않은 우리에게도 고마운 일이다. 스페인어를 모르니 안내 방송이 잘 들리지 않는다. 하루 500만명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라 출퇴근 시간에는 엄청난 사람들로 붐빈다. 조심해야겠다. 요금은 5페소(500원)이다.
버스터미널에서 붐비는 사람들로 자증이 날 것 같은 데 날씨까지 뜨겁다. 무사히 Allende 역에 도착했다. 지상으로 올라서니 좁은 2차선 도로에 바둑판 모양으로 조성된 거리다. 목적한 하바나 호텔을 찾아가다가 몇 개의 호텔을 만났다. 하바나 호텔은 450페소, 주변은 400페소다. 제일 저렴한 Congreso 호텔에(280페소) 짐을 풀었다.시설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이 호텔은 현지인들이 많고 관광객은 드물다. 서로 영어가 통하지 않으니 편리하다. 말이 필요 없다. 키를 받아 3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지 확인하고 OK를 했다. 그런데 현금 결제다. 주머니에 돈이 없다. 가방을 내려놓고 은행을 물어 찾아갔다. 문은 열려 있는데 토요일이라 환전 업무를 하지 않는단다. 할 수 없이 ATM 기계에서 페소를 인출했다. 드디어 키를 받고 숙소를 들어왔다. 어제 비를 맞고, 밤새 차에서 시달려 옷과 몸이 엉망이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해서 널었다. 가격대비 시설이 좋았다. 배가 고파 밖으로 나가 OXXO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로 아점심을 해결했다. 이제 시내를 구경한다.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는 인구 2000만을 헤아리는 중남미 제일의 대도시다. 컬럼버스에 의해 발견된 신대륙이긴 하지만 그 역사는 깊어 AD 3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테오티와칸 문화나 16세기 초엽 가지 계속된 아즈테카 등 독자적인 문명을 가지고 있다. 1521년 스페인의 코르테스에 의해 정복된 후 파괴된 인디오 문명의 폐허 위에 유럽식의 호화로운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결국 멕시코시티는 고대, 근대, 현대의 모든 요소가 집결되게 되었다. 또 지하에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적이 잠자고 있으므로 도시 전체가 미 발굴의 대 유적이라 할 만 한 곳이다. 멕시코시티의 정식 명칭은 Mexico Destrito Federal(약해서 Mexico D. F), 메깃코 연방구라는 의미로 워싱턴 D.C와 마찬가지로 중앙 정부의 직할구로 되어있다. 멕시코에서는 멕시코시티를 D.F(데 에프)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 주위를 도넛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 것이 멕시코 주이다.
멕시코 원주민이 꽃다운 마지막 문명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이곳의 커다란 호수에 떠 있는 섬이었다. 하지만 16세기 멕시코를 점령한 스페인 군은 신전을 부수고 호수를 메운 자리 위에 또 하나의 스페인을 만들었다. 얕은 땅위에 올리기엔 너무 과해 조금씩 가라앉는 정복자들의 흔적을 우리는 눈으로 보게 되었다. 멕시코시티는 시라고 하지만 말할 수 없이 넓다. 그러나 계획도시이므로 길은 전부 바둑판처럼 정비되어 있고, 각각 길은 작은 골목까지도 이름이 모퉁이마다 표시되어 있어 지도를 손에 들면 찾기 쉽다.
드디어 소깔로 광장에 섰다. 소깔로는 멕시코의 배꼽이다. 소깔로란 멕시코 어느 도시라도 있는 중앙 광장인데 여기는 헌법광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개의 경우 시, 주청사와 대성당이 함께 있다. 주요행사는 이 포석이 깔린 넓은 광장에서 행해진다. 세계에서 19번째로 넓은 광장이다. 해발 2400m에 떠 있는 호수 섬에 아즈테카 대신전이 세워져 있어서 정치,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했었다. 16세기에 코르테스에 의해 정복된 후 스페인 사람들도 역시 이곳을 정치, 종교의 중심지로 삼아 호수를 메워버리고 대성당이나 국립궁전, 주청사가 건축되었다. 원래 소깔로는‘기반’이라는 뜻으로 멕시코의 독재자였던 안토니오 로페즈가 이곳에 멕시코 기념물을 세우라고 지시했지만 기반만 세워진 채 취소되면서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 후 몇차례 모습과 이름을 바꿔오다가 1812년 헌법광장이라는 공식적인 이름을 갖게 되었다. 현재 소깔로 그 자체는 정치,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계속하고 있지만 주변의 사무실이나 관공서는 다른 지구로 이전해 버렸다. 그러나 그 번화함은 여전하여 사람들의 왕래도 빈번하고 대중적인 상점가가 모여 멕시코의 번화가를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센트로라 하면 특히 이 지역을 가리킨다. 국가의 중심지와 번화가로서의 혼잡함이 뒤섞여 있는 소깔로, 지금은 기반의 흔적 마져 없어졌으니 결국 소깔로라는 애칭만 남은 샘이다. 광장 주변에는 정부 건물과 대성당 등 스페인 풍 건물로 분위기가 유럽식이다. 이제는 문화와 놀이의 광장이 되었다. 중아에는 신년을 맞아 대형 성탄트리가 세워져 있고 거대한 썰매장(스케이트장)을 만들어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일단 대성당으로 들어섰다. 토요일이라 예배가 진행되고 있는데 유아세례식을 한다.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앉고 있다. 남자는 흰색 상하의, 여자 아이는 흰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좀 있어 보이는 집안들이다. 차림이나 얼굴은 있어 보이지만 대체적으로 뚱뚱한 것이 공통점이다. 대성당은 엄청 넓고 높고 웅장하고 화려하다. 고전 건축 박물관 같은 분위기다. 멕시코의 모든 교회를 관할하는 대성당이자 중심 성당이다. 성당 그 자체보다도 서반구 최대의 사원 건축물로 대표된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최고로 큰 규모다. 1573년 착공 되었지만 완성된 것은 그 후 250년이 지나서였다. 그 때문에 바로크,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고딕, 르레상스 등의 건축양식이 융합되어 있다. 대성당의 종루는 놀랍게도 높이가 67m 나 된다. 내부는 멕시코 바로크 양식으로 종교화의 거장 무릴료의 명화도 걸려있다. 규모도 크지만 아름다움으로도 으뜸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아즈텍 인들이 믿는 모든 것들을 미신으로 규정하고 아즈텍이 세운 태양의 신전을 무너뜨린 후 그 위에 이 대성당을 지었다.
안으로 들어서면 5개의 중앙 제단과 14개의 예배당이 나란히 늘어서 있다. 높은 천장과 아치현 기둥으로 위압감을 더한다. 금박의 철제 장식이 위엄을 더하는 왕의 제단과 용서의 제단, 거대한 오르간이 아름다운 성가대석과 벽화들이 볼만하다. 2개의 종탑에는 모두 16개의 종이 달려있다. 가장 큰 종은 구아달루페의 성모라고 불린다. 매우 약한 지반 위에 세워진 탓에 보수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대성당 앞마당에는 밑에 깔린 아즈텍 신전을 볼 수 있도록 유리로 만들어 놓은 곳이 몇 군데 있다. 사람들이 엄청 많다.
다시 광장에 서니 대형 멕시코 국기가 눈에 들어온다. 저녁 무렵 소깔로의 국기 하강식 7시 30분을 꼭 보란다. 커다란 멕시코 국기가 게양되어 있는데 이것을 내리는 엄숙한 의식에 대열을 이룬 위병과 음악대가 볼 만 하다. 광장에 있는 성탄트리는 꼭데기에 금빛별이 만들어져있다. 놀랍게도 광장에는 스케이트장이 만들어져있다. 롤러스케이트장이 아니고 아이스 스케이트 장이다. 인공 눈으로 만든 실내 설매장도 있다. 무료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데 들어가려면 만만치가 않다. 구경하는 임시 스텐드에 만 들어가려고 해도 줄을 길게 서야한다. 더운 날에 얼음 축제라니.......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스케이트를 탄 행렬을 본다. 사람이 너무 많아 앞으로 달리지도 못하고 걷기도 버겁다. 밀려서 앞으로 간다. 여기는 멕시코다. 차량과 인파를 헤치고 우리는 궁전으로 들어간다. 화가 리베라의 대 벽화가 있는 국립궁전이다. 소깔로 동쪽에 있는 훌륭한 건물이다. 현재는 건물의 오른쪽이 대통령 집무실, 왼쪽이 재무부 건물이고 멕시코 근대화의 아버지 베니토 후아레스의 기념관도 있다. 원래는 아즈텍의 황제였던 목테수마의 궁전이 있던 자리에 코르테즈가 자신을 위한 총독부 건물을 세웠다. 17세기에 개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지금은 매년 9월 15일 성대한 독립기념일 축제가 벌어지는 곳이다. 또 정면 문의 상부에는 1810년 도롤레스 이달고 마을에서 이달고 신부가 멕시코 독립선언을 할 때 타종했던 독립의 종이 걸려있다. 9월 15일에 국립궁전의 발코니에 대통령이 나타나서 멕시코 만세, 독립만세의 외침이 있으면 소깔로에 모여 있는 수 만 명의 민중이 제창한다. 이달고 신부의 도롤레스 외침을 재현하는 것이다. 독립궁전의 최대의 구경거리는 리베라의 대벽화이다. 정원에 면한 2층 회랑을 돌아가며 그려져 있는 벽화는 아즈텍에서 멕시코 혁명까지 일대 서사시가 테마 로서 리베라의 최고 걸작이라 일컬어진다. 벽화는 2층으로 오르는 계단에서부터 시작된다. 멕시코 원주민의 부흥과 스페인의 침략, 멕시코 혁명까지 역사적인 사건을 총 8개의 장면으로 표현하고 있다. 1929년~1935년에 완성한 완성한 벽화로 1521년 ~1930년 까지 멕시코 역사를 그렸다. 오른쪽은 선사시대, 가운데는 스페인의 멕시코 침략 때 잔인했던 모습, 왼쪽은 20세기 초반 과 중반의 모습이다. 이 벽화에는 리베라가 불륜을 저지른 크리스티나라는 여인도 있다. 크리스티나는 리베라의 부인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이다. 뒤에 그의 부인도 그려져 있다. 크리스티나의 눈을 보면 검은 눈동자가 없다. 그리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차마 그리지 못했단다.
2층에는 총 11개의 벽화가 이어져 있다. 멕시코의 벽화 운동은 민족의식을 대중에게 고취시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1910년 멕시코에서는 대통령 독재에서 벗어나기 위한 혁명이 일어났고, 오리곤이 집권하면서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문맹율이 30%에 이르는 민중에게 새로운 사회건설을 위한 메시지 전달로 벽화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프리다 칼로는 리베라의 아내이지만 멕시코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공산주의자다. 활발한 공산주의 지지자로 10월 혁명의 주역이며 사회주의 인터네셔널의 지도자였던 트로츠키와도 만난 적이 있다. “일생동안 나는 두 번의 심각한 사고를 당했다. 하나는 18살 때 나를 부스러뜨린 전차입니다. 부서진 척추는 20년동안 움직일 수 없었죠, 두 번째 사고는 바로 디에고 리베라와의 만남입니다.” 프리다는 삶이 아니라 고통과 고독을 살아낸 비범한 인물이다. 리베라의 3번째 부인, 22살 때, 42세의 리베라와의 결혼, 47세에 페렴으로, 1954년 7월 13일 사망한다. 전 날 일기에 이렇게 적혀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세상을 떠나기 전날은 프리다와 디에고의 결혼일로부터 25주년 기념일을 17일 앞둔 날이다. 프리다는 17일 뒤에 다가올 결혼 25주년 기념 반지를 디에고에게 미리 건넨다. 왜 반지를 미리 주는가를 디에고가 묻자 머지않아 당신곁을 떠날 것 같아서요, 라고 말한다. (다음 카페‘ 박기태의 아뜰리에’에서) 벽화를 보면 스페인 침략자들의 잔학성과 피해 원주민들의 비참한 고난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갑옷으로 무장한 스페인 군인들이 반라 상태의 원주민들을 칼과 창으로 찌르는 모습, 농민들로부터 스페인 군인들이 총으로 위협하면서 농산물을 수탈하는 모습, 카톨릭 사제들도 군인들의 비호를 받아 원주민을 착취하는 모습에서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탐욕을 본다. 원주민들 위에 권력자로 세워진 백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옥수수와 감자는 멕시코가 원산지로 멕시코 원주민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식량이다. 총살 장면, 노동력을 착취하는 모습, 멕시코 정복자 코르테즈의 인디언 애인 라말린체도 카라 꽃과 함께 그려져 있다. 카라 꽃은 디에고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란다. 그의 그림에 많이 등장한다. 참 그림도 잘 그린다. 빈틈이 없다. 역사적인 이해가 있으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다. 시간이 날 때 다시 한 번 이 벽화에 대해 공부해보자고 맘을 먹고 사진으로 기억을 남겼다.
아내와 함께 벽화 전시 뒤에 있는 박물관에 들어가서 아즈텍, 마야 문명에 대한 유물들을 구경했다. 궁정 내부는 사각형으로 만들어져 내려다보면 분수를 중심으로 작은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박물관 과 벽화 그리고 건물 내부를 둘러보고 왼쪽 출구로 나간다. 엄청난 인파와 사람들이 외쳐대는 괴성들이 정신없게 한다. 꼭 우리나라 시골 5일장 분위기인데 엄청난 규모다. 사람들이 엄청나다. 소깔로를 향해 걸어가는데 인파의 흐름에 떠밀려간다. 파도처럼 밀려가는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게 한다. 다시 광장에 섰다.
대성당에서 길을 건너 서쪽에 있는 회색의 우아하고 견고해 보이는 건물은 ‘자비의 산’이란 이름을 가진 국영전당포 건물이다. 1755년 스페인의 레글라 백작은 서민들이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도록 건물을 기증하고 전당포를 세웠다. 지금은 금을 비롯한 보석류를 취급하는 상점들이 아래층을 점유하고 있다. 국영전당포와 주위 교차로 근처는 온통 황금색이 번쩍거리는 금은방들이 모여 있다. 구수한 냄새가 난다. 옥수수전병위에 각종 향신료를 발라주는 간식이 제법 잘 팔린다. 아내와 둘이서 하나씩 사 먹었는데 각종 양념을 발라 놓은 것이 약간 비위를 거슬린다. (아내는 배탈이 나고 말았다.)
대성당 뒤편으로 간다. 템플 마요로를 보러 갔다. 입장료가 생각보다 비싸다. 좀 생각해 보기로 하고 옆으로 더 간다. 임시 칸막이로 가려 놓았는데 칸막이 사이로 다 보인다. 시내 한 가운데에 나타난 아즈텍 유적이다. 1913년, 대성당 뒤편에서 빌딩 공사를 한창 진행하던 중 아즈텍 유적의 일부로 보이는 지하계단이 발견되었다. 당시는 유적에 대한 가치가 인정되지 않아 그대로 방치되었는데, 1979년 수도 공사 중에 같은 곳에서 무게가 8톤이나 되는 석판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1450~1500년 경 것으로 추정되는 아즈텍 신화 중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달의 신 코욜사우키의 상으로 판명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발굴이 시작되어 유적은 아즈텍 왕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중앙 신전임이 밝혀졌다. 발굴은 1984년에 완료되고 동시에 일반에 공개되었다. 또 유적 옆에는 원래 호수였던 멕시코시티의 매립되기 이전의 모형이 설치되어 있어 옛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모습이 현실감 있게 재현되어 있단다. 아르헨티나 거리와 과테말라 거리의 모퉁이에 있다. 유적 내부에 견학용 통로가 만들어져 있어 중앙 신전의 모든 것을 골고루 보면서 걸을 수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통로를 들어가 바로 오른쪽에 있는 선명한 빛깔의 붉은 신전이다. 비의 신 틀라로크에게 바쳐진 신전 앞에는 산 제물을 올려싸는 신의 사자인 차크모르 석상, 제단, 뱀의 머리의 상, 사람 크기만한 석상 등의 유적들이 늘어서 있다. 유적의 북쪽 광장에도 3개의 사당이 남아있는데 그 중앙에 있는 촌판트리의 제단은 한 면에 도크로의 조각이 있어서 한층 더 눈길을 끈다. 깃털 달린 뱀과 개구리 조각상, 해골이 늘어선 모양의 솜판틀리 등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아즈텍의 여신인 코욜사우키는 어머니를 죽인 사건에 연루되어 그녀의 오빠에게 사지가 절단되었다고 한다. 유물은 유적 옆의 템플 마요로 박물관에 대부분 전시되어있다. 구역의 한 변이 약 500m, 그 안에 78개나 되는 크고 작은 신전이나 건물이 있었단다. 그러니까 소깔로 대성당이나 국립궁전 밑에는 지금도 신전들이 묻혀있다는 것이다.
대성당 뒤편으로 가니 좀 조용하다. 그늘이라 시원하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예술품 같은 벤치에 앉아서 쉰다가 다시 대성당 뒤편을 돌아 광장으로 간다. 구석에는 민간요법으로 심신을 치료하는 주술사의 민간 의료행위가 진행되고 있다. 사람을 세워놓고 손에 든 나뭇잎 다발로 액체를 뿌리고, 향수를 발라주고, 불을 피워 연기도 쏘이고, 주문도 외운다. 머리부터 발 끝 까지 주무르기도 하고 가끔 기압 소리로 얍, 얍 외친다. 이런 모습이 종종 보여 구경하는 것 만 으로도 재미있다. 제법 심각하다. 우리나라 한의사와 같은 의식을 갖고 있단다.
광장에서 보행자 거리로 들어섰다. 이 거리의 이름은 마데로 거리이다. 엄청난 사람들이 소깔로 방향으로 밀려오고 우리는 알라메다 공원 방향으로 걷는다. 사람에 치여서 걷기는 힘들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에 심심치는 않다. 처음 찾은 건물은 바나멕스 은행의 한 지점이다. 카란사 거리와의 모퉁이에 있는 백작의 집이다. 18세기 건축 중에서 뛰어난 것이란다. 그다음 만난 것이 라프로페사 교회이다. 16세기 예수회 파에 의해 세워진 것인데 1767년 예수회 파는 멕시코에서 추방되었다. 그 후에는 귀족들의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대중신앙의 중심지인 과달루페 사원과는 크게 대조를 이룬다. 계속 걷다가 만나는, 찾아본 건물은 이투루비데 궁전이다. 이투루비데는 1821년 독립전쟁을 종결시키고 독립국 멕시코의 궤도를 바로잡은 인물로 이 집은 그의 저택이다. 18세기 멕시코 바로크 건축의 대표작으로 현재는 바나멕스 은행의 본점이다. 건물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지만 보행자 거리에서 만나는 만화영화 캐릭터로 분장한 젊은이들이 더욱 재미있다. 함께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버는 것 같다. 무엇을 홍보하는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1블럭을 더 걸어가니 산프란시스코 교회가 나온다. 제법 오래되 보이는 교회다. 추리게레스크 양식이란다. 1524년 프란시스 교회의 최초의 식민지 본부로서 세워진 교회다. 교회의 부지는 아즈텍 최후의 왕 목테스마 2세의 동물원이었다. 아즈텍 시대의 동물원은 어떤 모습일까? 좁은 문을 통해 교회로 들어서니 어두운 분위기에 벽에 걸린 대형 그림이 인상적이다. 성자 프란체스코가 그려진 그림이다. 교회 내부는 촛불의 그을음에 어두운지 빛이 없어 어두운지 헷갈릴 정도로 어둡다. 교회 마당에서는 수녀들이 만든 작은 빵과 과자 종류를 팔고 있다. 맞은 편 건물이 타일의 집이다. 1596년에 세워진 스페인 무어식의 가옥이다. 외면에 붙어있는 푸에블라에서 생산된 청색 타일이 아름답다. 지금은 백화점 산본수의 본점이며 안에는 식당도 있고 오로스코의 벽화도 볼 수 있다. 오로스코의 벽화는 힘이 느껴진다. 웃음이 없다. 이제 거리 이름이 바데로에서 후아레스 거리로 바뀐다. 공원이 등장한다. 마데로 거리는 식민지 시대의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길의 포석도 멕시코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스페인의 귀족이나 식민지의 벼락부자들이 사치스러운 마차를 타고 지나다녔다는 이 거리는 고풍스러워, 집들을 구경하며 산책하기에 좋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만나는 건물이 중앙 우체국이다. 국립예술원과 마주하고 있다. 외관은 빅토리아식이며 내부도 매우 고전적인 구조이다. 입구에는 그림엽서를 파는 매점이 있으며 안에는 편지를 쓸 사람들을 위하여 대리석의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있다. 멕시코는 우편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은 나라이지만 중앙 우체국에서 발송한 것은 비교적 확실히 도착한단다. 3층에 우표박물관도 있다. 알라메다 공원을 향했다. 길을 건너면 만나는 건물이 국립 예술원 궁전이다. 전체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궁전이다. 외관은 물론 공연물의 성격으로도 멕시코 제일의 극장이다. 1905년 이탈리아의 건축가 아다모 보아리에 의해 착공되었는데 혁명으로 공사가 중단, 그 후 1934년 멕시코 건축가 후에테리코 마리스칼에 의해 완성되었다. 사용된 대리석도 외부는 이탈리아의 카라라 대리석, 내부는 멕시코 산 대리석이어서 재미있다. 지반 침강이 심한 멕시코시티에서 이 궁전도 피해를 면하지 못해 당초 7단이었던 정면 현관의 계단은 지금은 지상 2단 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극장에서는 클래식 콘서트, 오페라, 고전극 등이 상연된다. 이 극장에서는 멕시코의 민속 무용을 정리한 발레 호루크로리코가 주에 2번 상연된다. 이것은 멕시코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꼭 볼 만한 쇼이다. 또 쇼를 보러 갈 때에는 무대의 막을 주의 깊게 보자. 뉴욕의 티파니 보석점이 아즈텍의 전설을 디자인 , 제작한 것이다. 그 외에 내부에는 갤러리도 있고 타마요, 오로스코, 리베라, 시케이로스, 멕시코 화가 4명의 거장의 작품과 벽화가 있다. 예술원 앞의 거대한 거미상도 재미있다. 거미상을 보면 라틴 아메리카 타워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세계에서 가장 높다. 지상 44층, 176.5m로 멕시코 제일의 높이를 자랑한다. 더 높은 빌딩도 있다고 말하지만 이 건물은 해발 2300m 위에 세워진 것이다. 또 빌딩은 타일 공법이라 하여 지반 침강에도 견딜 수 있는 획기적인 구조로 되어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정말 멋지단다. 낮에 한 번 밤에 한 번 가보면 맛이 다르단다. 전망대는 창유리가 없고 대신 철망이 쳐져있어 바람이 들어오므로 옷을 따듯하게 입어야한다.
알라메다 공원을 중심으로 하는 이 지역은 구시가지의 연장이며 16~18세기에 걸쳐 건축된 호화로운 여러 가지 건물이 줄지어 있다. 중간에 현대식 멋진 건물들도 세워져있다. 역사적인 분위기와 새로운 멕시코의 얼굴이 공존하는 번화가가 되었다. 알라메다 공원에 들어섰다. 소깔로가 공공적 중심이라면 알라메다 공원은 일상적인 생활의 중심이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 풍선 파는 아저씨, 아이스크림 장사 등 평화로운 풍경이 가득하다. 알라메다란 포플러 나무라는 의미, 이름 그대로 옛날에 포플러가 무성했던 공원으로 시장이나 공개종교재판 등 다목적으로 사용되었다. 19세기에 들어서서 새롭게 단장하여 여러개의 분수, 조각품, 원형무대 등으로 면모를 일신했으며 후아레스 거리에 면한 한 쪽 코너에는 1910년 독재자 디아스 대통령이 독립 100 주년 기념으로 세운 멕시코 근대화의 아버지 후아레스 대통령의 대리석 기념비가 있다. 또 공원에는 때로 야외 콘서트가 열린다. 날이 저물어 간다. 숙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식사할 곳을 찾아봐도 마땅한 곳이 없다. 커다란 빵집이 눈에 들어온다. 카르데나스 거리에 있다. 빵과 쥬스를 샀다. 붉은 벽돌이 유난히 오래되 보이는 교회, 이글레시아 산타 베라크루즈 교회를 보면서 국립예술박물관을 만난다. 골목길은 조용하다. 역사가 느껴지는 건물을 찾으면 우리 숙소가 가깝다. 이 건물은 정부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 숙소는 호텔 Congreso 다. 저녁을 먹었다. 날씨는 가을 날씨같이 서늘해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 창문을 열면 춥다. 멕시코시티의 첫날, 시내 구경은 정말 흥미로웠다. 특히 엄청난 사람들에 놀랬고, 역사적인 많은 건축물들이 펼쳐져 있어 구경거리가 많았다. 멕시코시티의 2000만 시민들의 주 음료수는 지하수란다. 그러나 지나친 지하수 개발로 인해 도시 지반이 꺼져버릴 위험에 처해있다. 일부 지역은 100년 전에 비해 9m나 지반이 침강했다고 한다. 게다가 토양 건조화가 진행되고 땅속의 지하수도 점점 말라가는 등 식수부족 위기가지 오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누우니 등이 간질간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