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에 감춰진 계시 No 35 (빼앗긴 장자의 명분)
이삭은 나이 사십에 리브가를 아내로 취합니다.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지 못하자 이삭이 여호와께 간구하고 잉태합니다. 쌍둥이를 잉태 했는데 둘이 뱃속에서부터 싸웁니다. 둘의 싸움이 얼마나 심했는지 이 일로인해 리브가는 여호와 하나님께 묻습니다.(창 25:22) 리브가의 믿음을 우습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가 믿음의 두 번째 조상의 아내가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그 일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창 25:23)
두 아들을 낳는데 둘은 이란성 쌍둥이입니다. 외모가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먼저 나온 아들의 이름을 에서라 짓습니다. 에서라는 이름은 그의 외모가 어떤지를 말해줍니다. 그 뜻은 거칠다라는 뜻입니다.(촉감이)
나중에 나온 아들을 야곱이라 이름을 짓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잡다라는 뜻이고 이 말은 속여넘기다는 상징적인 의미로도 쓰입니다. 그 의 일생은 형에서의 발꿈치 잡는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형 에서를 속입니다. 세상에 나올 때 첫 행위는 형의 발꿈치 잡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화되어 인생의 마지막에는 요셉의 아들을 축복하고 지팡이를 잡습니다. 마지막 힘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히 11:21)
에서와 야곱을 낳을 때 이삭은 60세가 됩니다. 리브가를 아내로 맞은 후 20년 동안 자녀가 없었습니다.
둘은 외모만큼이나 성향이 달랐습니다. 에서는 외향적이며 사냥꾼이 됩니다. 야곱은 내성적이고 장막에 거합니다.
이삭은 야곱을 더 사랑 합니다. 특히 에서가 사냥해온 고기를 좋아합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더 사랑합니다. 아마도 잉태 했을 때 받은 말씀이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형을 속임!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빼앗을 기회를 노립니다. 사냥에 실패하고 돌아 올 때를 노립니다. 허기지고, 지치고 허탈해 할 때... 즉 몸과 마음이 가장 약해져있을 때를 노립니다. 야곱의 예측은 적중했습니다. 그 때는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와 심히 곤비해있을 때였습니다. 곤비하다는 단어의 뜻은 ‘침울한’, ‘활기없는’, ‘쇠잔한’, ‘목마른’, ‘지친’ 이란 뜻입니다. 이 상태가 되었을 때 거래를 합니다.
에서는 야곱과 거래를 하는데 ‘그 붉은 것’을 먹는 대신 ‘장자의 명분’을 넘겨 줍니다. 에서는 훗 날 이 거래에 대하여 속았다고 고백합니다. “에서가 가로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가로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창 27:36) 에서는 그 붉은 것이 고깃국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에게 받은 것은 색깔은 같은데 가치가 떨어지는 팥죽이었습니다.
에서가 몇 분 먼저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아브라함으로부터 내려오는 복의 상속자였습니다. 에서는 그 복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것 없이도 자신의 힘으로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습니다.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창 25:34) 경홀히 여기다라는 단어의 뜻을 알면 그가 왜 아브라함으로부터 내려오는 축복을 받을 수 없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 뜻은 ‘업신여기다’,‘ 멸시하다’, ‘싫어하다’, ‘경멸하다’,‘얕보다’입니다.
반대로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그토록 갖기 원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은 야곱과 에서가 15세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아직 손자가 없습니다. 손자 있는 분들의 말을 들으니 아들보다 몇 배는 더 사랑스럽다고 하더군요... 틀림없이 아브라함은 가족의 역사에 대하여, 또 하나님과 약속된 축복을 야곱과 에서에게 날마다 들려주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둘째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축복의 첫 번째 상속자가 아니란 것을 알았지만 그 축복을 매우 사모했습니다.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두배 더 받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계속되는 야곱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물질의 목이 아닌 영적인 복을 받기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축복을 매우 가치 없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복을 가치없이 생각했고 한그릇의 음식과 바꿔버린 것 입니다.
자녀들 15세정도면 다 알고 이해합니다.(한국 나이로는 16-17세)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 야곱과 에서는 만 15세였습니다.
결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하나님의 아들(성도)로서 받을 축복은 엄청납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5)
우리는 상속자들입니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 19:29)
큰 시험의 때가 다가옵니다. 성도들의 삶은 에서와 같은 상태에 들어갑니다. ‘침울한’, ‘활기없는’, ‘쇠잔한’, ‘목마른’, ‘지친’ 상태가 됩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히고...(마 25장 참조) 이 때 많은 성도들은 에서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히 12:16)
또 세상 살면서 작은 것 얻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성도)이라는 명분을 가볍게 여기시는 분들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썩어 없어질 물질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마라나타! |
출처: mongolia 원문보기 글쓴이: 마라나타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