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들에게서 쉼터 빼앗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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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상학 신부가 천안 오룡동성당 인근 '천안 모이세'에서 미술치료를 받고 있는 이주여성들이 만든 종이공예작품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이주여성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
지난 4월, 모이세 이주여성의 집에 한 필리핀 여성이 도망쳐 왔다. 임신한 지 23주째였던 프란체스카(24, 가명)씨였다. 낙태를 하라는 시댁 식구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이주여성 쉼터로 피한 그의 소원은 오직 한 가지, 뱃속 태아를 지키는 것뿐이었다. 쉼터에서 미사를 마치자마자 다가와 "아기를 지켜달라"고 호소하는 그의 말에 맹상학(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 신부는 두 손을 꼭 잡아주며 약속했다. "안심하세요. 아기를 꼭 지켜줄게요."
하지만 그 약속은 불과 사흘 만에 영영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되고 말았다. 조산 기미가 보이자 쉼터 식구들이 급히 프란체스카씨를 데리고 인근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아기는 죽고 말았다. 맹 신부도 부랴부랴 병원에 달려갔지만 사산된 아기는 필통 만한 작은 상자에 담겨 탁자 위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태아 시신에 성수를 뿌리며 맹 신부는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걷잡을 수 없었다.
'하느님! 이 아기는 꼭 살아서 태어나야 했는데, 살았어야 했는데…'
그 때 맹 신부는 마음속으로 한 가지 새긴 게 있다. '아기가 살지 못한 몫까지 대신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이었다.
프란체스카씨는 이제 5개월 만에 유산의 아픔을 딛고 쉼터 인근 공장에 다니며 재기하고 있다. 소아마비에 뇌성마비 장애를 안고 있는 남편이지만 그를 사랑하기에 이혼 만은 결코 하지 않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시댁에서 이혼을 요구해도 굳게 버티겠다는 각오다.
그런데 이처럼 이주여성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고 있는 모이세 이주여성의 집이 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처했다. 2003년 말 개원 당시, 쉼터 전세금 8700만 원을 빌려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최근 이를 상환하라는 요구를 해온 것이다. 가뜩이나 얼마 되지 않는 후원금으로 근근이 이주여성들을 보살펴온 쉼터로서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해서 계속 전세금을 쓰게 해달라고 요청도 해봤지만, 기한만 다소 연장됐을 뿐이다.
여성부가 공인한 국내 6개 이주여성쉼터 중 맨 먼저 설립된 모이세 이주여성의 집에 사는 식구들은 현재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 3명과 자녀 2명이다. 하지만 평균 세 달, 길게는 여섯 달 가량 쉼터를 드나드는 이주여성들은 서울과 수도권, 멀리는 영ㆍ호남에서까지 몰려들어 모이세 이주여성의 집마저 없어진다면 이들은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래서 맹 신부는 요즘 새 쉼터를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쓰고 있다. 쉴 곳이 없어서 생명을 잃어버린 프란체스카의 아기를 떠올리면, 한시가 급하다. 요즘엔 1구좌당 100만 원씩 후원을 요청하며 '100명의 사랑 천사'운동을 펴고 있지만 쉽지 않다.
맹 신부는 "우리 쉼터는 기댈 데 없는 이주여성들의 마지막 보루다"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쉼터로 피해온 이주여성들이 누울 수 있고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데 사랑을 나눠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