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08월28일(수요일) 도봉산 [광륜사&천축사&이브의 동산] 산행일정
산 : 도봉산 [광륜사&천축사&이브의 동산]
산행코스: [ 도봉산역 1번 출구 ~ 광륜사 ~ 천축사와 석굴암의 갈림길 삼거리 ~ 천축사 ~ 마당바위 ~ 이브의 동산 ~ 마당바위 ~ 광륜사 ~ 김근태 기념도서관 ~ ‘홍두깨 손칼국수’ 식당 ]
일시 : 2024년08월28일(수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도봉구 도봉동 최저기온 24도C, 최고기온 32도C]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4시간27분 소요)
10:58~12:03 연신내역에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종로3가역으로 가서 1호선으로 환승하여 도봉산역으로 이동한 후 도봉산역 1번 출구로 나옴 [1시간5분 소요]
12:03~12:25 서울 도봉구 도봉동 298-4 번지에 있는 지하철 1호선 도봉산역 1번 출구에서 산행출발하여 김근태기념도서관 앞에 있는 김근태 인물상을 거쳐서 서울 도봉구 도봉산길 86-1 번지에 있는 광륜사(光輪寺)로 이동
[김근태(金槿泰)
출생 : 1947. 2. 14. 경기도 부천
사망 : 2011. 12. 30.
가족 : 배우자 인재근
학력 :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수상 : 2012년 제2회 진실의 힘 인권상, 1987년 로버트케네디 인권상
주요 경력 : 2011.12~2011.12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요약 : 김근태는 원칙을 중시하고 항상 진지한 사회운동가로 알려져 있으며, 3선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다. 대학 재학시절 학생운동을 주도한 그는 1971년 2월 유신독재에 저항한 서울대 학생 시위를 배후 조종한 혐의로 첫 번째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1983년 9월 한국 최초의 공개적 사회운동단체인 민주화운동청년연합 결성을 주도하며 초대의장을 맡았다.
1985년 8월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배후조종 혐의로 연행되었다가 남영동에 있는 대공분실에서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했다. 그의 고문사실이 <뉴욕 타임스> 등에 보도되어 전두환 정권을 궁지에 몰았다. 1995년 민주당 부총재로 입당하면서 정계에 입문했고 1996년 15대 총선거에서 당선됐다. 이후 17대까지 세 번 연속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2011년 고문후유증으로 얻은 뇌정맥혈전증으로 투병하다 사망했다.
12남매의 막내로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임하던 아버지는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교직을 강제로 그만두게 되자 그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위로 6명의 형·누나는 어릴 때 숨지고 그 다음 세 형은 6·25전쟁 이후 소식이 끊어졌다. 12남매 중 10번째인 형 김국태가 사실상 집안의 맏이 노릇을 했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5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주도하여 손학규·조영래와 함께 '서울대 운동권 3총사'로 불리기도 했다.
1971년 2월 유신독재에 저항한 서울대 학생 시위를 배후 조종한 혐의(내란음모)로 첫 번째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1972년 2월 피신 상태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1974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다시 수배가 되어,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릴 때까지 7년 넘게 수배자로 살았다. 인천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그는 1983년 9월 한국 최초의 독자적·공개적인 사회운동단체인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결성을 주도하며 초대 의장을 맡았다.
1985년 8월 24일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위) 배후조종 혐의로 연행되었다가 남영동에 있는 대공분실에서 이근안 등 고문기술자들로부터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했다. 당시 민청련 간부였던 이을호·김병곤 등도 함께 고문을 당했는데, 이후 이을호는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병을 앓았으며, 김병곤은 1990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법정에서 고문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부인 인재근이 이미자의 노래 테이프 중간에 고문 내용을 녹음한 다음 이를 〈미주 한국일보〉 기자 심기섭을 통해 해외로 내보냈고, 이 사실이 〈뉴욕 타임스〉등에 크게 보도되며 전두환 정권을 궁지에 몰았다. 그 공으로 김근태와 인재근은 미국의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1987)을 공동으로 받았으며, 독일 함부르크 자유재단으로부터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1988)되었다.
1988년 6월 30일 석방된 그는 다음 해 1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결성에 핵심 역할을 하고는 정책기획실장과 집행위원장을 맡았으나, 1990년 5월 전민련 결성선언문이 빌미가 되어 다시 구속되었고 1992년 8월까지 수감생활을 했다. 1995년 민주당 부총재로 입당하면서 정계에 입문했고 그 해 9월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참여하며 부총재를 맡았다. 1996년 15대 총선거에 서울 도봉갑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17대까지 세 번 연속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의장,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지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을 휩쓴 '반 노무현 정서'와 뉴타운 열풍으로 국회 입성이 좌절되었다. 2010년부터 우석대학교 석좌교수로 활동했고, 2011년 3월 민주당 진보개혁모임을 꾸려 공동대표를 맡는 등 재기를 노렸지만 고문의 후유증으로 얻은 뇌정맥혈전증으로 투병하다 결국 사망하였다. 타협보다는 원칙을 중시했던 그는 자주 현실정치의 벽에 부딪쳤으나 항상 진지하고 정직하여 동료들이 '국제신사'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1999년 백봉 나용균을 기려 제정한 제1회 '백봉신사상'에 선정된 뒤 여러 번 수상했다. 저서로 〈남영동〉(1987), 〈열린 세상으로 통하는 가냘픈 통로에서〉·〈우리 가는 이 길은〉(1992), 〈희망의 근거〉(1995), 〈희망은 힘이 세다〉(2001),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2004), 〈일요일에 쓰는 편지〉(2007) 등이 있다.]
12:25~12:30 광륜사(光輪寺)를 사진촬영
[신정왕후 별장 터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신정왕후의 별장 터.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산길 86-1
도봉산 입구에 있는 광륜사(光輪寺)라는 절은 원래 신정왕후[1808~1890], 곧 조대비(趙大妃)의 별장 터이다.
신정왕후는 조선의 추존왕 문조(효명세자)의 비이자 조선의 마지막 대왕대비. 헌종의 어머니이자 고종의 양어머니이며, 순조와 순원왕후의 며느리이다. 조선 말 '다섯 전하' 중에 가장 서열이 가장 높았던 인물이기도 하며, 조선의 왕비 가운데 가장 장수(81세 4개월 11일)하였으며, 가장 오랜기간(32년 6개월 9일) 대왕대비로 재위하였다. 한국근현대사에서 흔히 말하는 '조 대비'가 이 사람이다. 대비로서의 공식 명칭은 효유대왕대비(孝裕大王大妃)지만, 후대에는 '조 대비'가 통칭으로 굳어졌다. 세도정치 시기, 풍양 조씨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잘 알려져 있다.
신정왕후는 1857년(철종 8) 순조(純祖)의 비인 순원 왕후(純元王后)가 죽자, 신정왕후가 대왕대비가 되었고, 철종이 재위 13년 만에 후사(後嗣) 없이 승하하자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로서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고종)로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다. 신정왕후는 고종 즉위 후 1866년(고종 3)까지 수렴청정을 하였다.
1846년(헌종 12) 아버지인 영돈령부사 조만영이 죽은 뒤, 신정 왕후는 현재의 도봉동인 도봉산 입구에 별장을 지었다. 도봉산은 산수가 수려하여 별장 터로 적격이었을 것이다.
1947년에 도봉산의 서원 마을로 들어온 정경근의 증언에 의하면, 신정왕후 별장 터는 큰 저택으로 안채에 비해 바깥채가 높았다고 한다. 고종 대에는 신정왕후의 별장에서 흥선대원군이 휴식을 취하며 국정을 보기도 하였다. 또한 6·25 전쟁 중에 미군의 숙소로 이용되었고, 1980년 훼손되기 전까지 영화 촬영장으로 많이 활용되었다고 한다. 신정왕후 별장은 이후 매각된 뒤 헐리었고 별장 터에 금득사라는 개인 사찰이 설립되었다. 2001년에 성륜 문화 재단에서 금득사를 인수하여 중창 불사를 하였고, 2002년에 광륜사라는 절이 들어섰다. 현재 광륜사의 대웅전 등 전각 대부분은 금득사 때 그대로라고 한다.
신정왕후 별장 터에 들어선 광륜사의 삼성각에는 신정왕후의 초상과 영가(靈駕)를 두어 신정왕후와 광륜사의 인연을 보여 주고 있다.]
12:30~13:05 천축사와 석굴암의 갈림길 삼거리로 이동
13:05~13:17 천축사(天竺寺)로 이동
[천축사(天竺寺)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산(道峰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사찰.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1동 29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673년(문무왕 13)에 의상(義湘)이 만장봉 동북쪽 기슭에 있는 의상대(義湘臺)에서 수도할 때 현재의 위치에 절을 창건하고 옥천암(玉泉庵)이라고 하였다.
그 뒤 고려 명종 때는 영국사(寧國寺)를 창건한 뒤 이 절을 부속 암자로 삼았으며, 1398년(태조 7)함흥으로 갔다가 돌아오던 태조가 옛날 이곳에서 백일기도하던 것을 상기하여 절을 중창하고 천축사라는 사액(寺額)을 내렸다. 절 이름을 천축사라고 한 것은 고려 때 인도 승 지공(指空)이 나옹화상(懶翁和尙)에게 이곳의 경관이 천축국의 영축산과 비슷하다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474년(성종 5) 왕명으로 중창하였고, 명종 때는 문정왕후(文貞王后)가 화류용상(樺榴龍床)을 헌납하여 불좌(佛座)를 만들었으며, 1812년(순조 12) 경학(敬學)이 중창하였다. 그 뒤에도 이 절은 영험 있는 기도도량으로 여러 차례 중수했는데, 현재의 당우는 1959년에 중수한 것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원통전(圓通殿)·복운각(福雲閣)·산신각·요사채 등이 있고, 참선도량인 무문관(無門關)이 있다. 특히, 무문관은 근래에 세운 참선 정진처로서 부처의 설산(雪山) 6년 고행을 본받아 한번 들어가면 4년 또는 6년 동안을 면벽수행(面壁修行)하는 곳이다. 고승 중 이 무문관에서 6년 또는 4년의 정진을 한 이들이 많다.
4면이 모두 벽인 방에 밖에서 문을 자물쇠로 잠그고, 최소 3개월부터 3년 내지 6년 동안 면벽참선하는 것을 ‘무문관(無門關) 수행’이라 한다. 무문관(無門關)은 말 그대로 ‘문 없는 선방’을 말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문은 있으나 스님이 수행하는 동안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근다. 무문관에서 바깥세상과 통하는 문은 밥그릇을 넣고 빼는 공양구가 유일하다. 스스로 약속한 수행기간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모든 일상생활을 선방 안에서 해결한다.
불가의 전통인 무문관 수행은 생사를 넘나드는 혹독함이 특징이다. 독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면벽참선을 계속한다. 묵언은 필수로, 꼭 필요한 의사소통은 하루 한번 공양이 들어올 때 필담으로 한다.
무문관 수행은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과 함께 불가에서 가장 어려운 수행법으로 꼽힌다.
‘무문관’이 하나의 보통명사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965년 도봉산 천축사(天竺寺)에 무문관 선원이 개설되면서부터다. 1964년 제선(濟禪, 1912~?) 스님은 그의 도반이자 사제인 정영(瀞暎, 1923~2007) 스님과 도봉산 망월사(望月寺)에서 정진하다가 무문관 설립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다. 이야기를 들은 정영 스님은 ‘바로 이것이다’며 무릎을 치며 좋아했다.
그로부터 주선은 오히려 정영 스님이 천축사 주지가 돼 추진을 하고, 1965년 하안거부터 부처님 설산고행을 따라서 제선 스님 혼자 6년 무문관 결사에 들어가자, 정영 스님도 동참했다. 따라서 제선, 정영, 이 두 분이 우리나라 무문관 수행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는 한국불교사 아니 세계 불교사에 일찍이 유래를 찾기 힘든 대역사였다.
1960년대 하루 한 끼 해결하기도 힘든 어려운 사찰 형편이었지만 이후 여러 스님들이 들어와서 불퇴전의 각오로 정진했다. 세간의 이목이 모두 천축사 무문관에 집중됐다. 종단도 어려움이 많고 정화 후 원성의 목소리도 높아갈 때였지만 무문관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환희에 찼다. 그만큼 무문관은 모두의 희망이고 기쁨이었다. 그 중심인물이 제선 스님이었다.
부처님의 6년 고행을 본받아 6년 결제 2회 차를 마친 후 79년까지 100여명의 수좌들이 참여했지만 기한을 제대로 채운 스님은 그리 많지 않았다. 너무나 규칙이 엄했기 때문에, 당대의 선지식들만이 이름을 남겼을 정도다.
당시 수행 참가자 가운데 알려진 스님은 관응(직지사 조실), 도천(태고사 주석), 구암(하남 광덕사 주석), 원공(천축사 주석), 범어사 금오선원과 강원에 주석했던 대강백 지효 스님 등이다.
조계종 명예 원로의원인 관응(觀應, 1910~2004) 스님은 천축사 6년 면벽수행을 마친 후 당대 최고의 강백이자 선승으로서 직지사 천불선원 조실로 후학들을 제접했다.
역시 조계종 원로의원인 도천(道川, 1910~2011) 스님은 대둔산 태고사에서 40년간 두문불출하며 ‘일일부작 일일불식’의 백장청규를 몸소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남 광덕사의 구암(九巖) 스님은 66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한 후 제방 선원에서 참선만 한 절구통 수좌로서, 모든 소임을 마다하고 작은 절에서 수행에만 매진한 것으로 유명하다.
천축사 무문관 마지막 수행자인 원공(圓空, 1945~) 스님은 23년간 1년의 절반 이상을 꼬박 만행(기별도 전하지 않은 채)을 하면서도 아직까지 단 한 차례도 차를 타지 않고, 갈아입을 옷 두벌만을 지닌 채 끝없는 만행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산에 도라지를 심는 사람들’과 함께 백두대간을 종주하기도 했고, 북한동포 돕기 운동도 벌여왔다. 스님은 2002년 2월 28일부터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을 출발해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개최 도시 20곳을 걸어서 순례하는 ’환경과 평화를 위한 평화도보 대장정’을 회향했다.
무문관을 건립하여 6년 폐관 정진했던 제선 스님은 천축사를 내려간 뒤 부산에 들렀다가 종적을 감춰 지금껏 전설처럼 떠돈다.
부산 범어사의 지효(智曉, 1909~1989) 스님이 1960년대 후반 천축사에 들어와 당신이 직접 무문관에 입방하고 이를 운영했다.
지금 천축사에서는 일반인과 불자들을 대상으로 24시간 무문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무문관’이란 중국 남송 중기 무문 혜개(無門慧開, 1183~1260) 선사가 쓴 <무문관(無門關)>이라는 책이름에서 비롯됐다.
천축사의 문화재로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는 비로자나삼신불도 및 복장유물(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009년 지정)・비로자나삼신괘불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009년 지정)・목조석가삼존불(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013년 지정)・목조불단(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014년 지정) 등이 있고, 그외 2016년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마애사리탑(磨崖舍利塔) 등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약 50년 전에 창건한 석굴암이 있다. 당우로는 석굴·만월보전(滿月寶殿)·나한전(羅漢殿)·종각(鐘閣)·요사채 등이 있으며, 석간수(石澗水)가 좋다.
참고문헌
・ 『한국(韓國)의 명산대찰(名山大刹)』(국제불교도협의회, 1982)
・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권상로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13:17~13:21 천축사를 사진촬영
13:21~13:33 마당바위로 이동
13:33~13:36 물을 마시면서 휴식
13:36~14:13 자운봉 방향으로 올라가서 이브의 동산으로 이동
[이브의 동산은 도봉산 최고봉인 자운봉(해발 739.5m)과 만장봉(해발 718m)의 사이에 위치한 작은 봉우리이다. 소만장봉으로도 부른다.
이브의 동산에 오르면 선인봉(708m)을 제외한 도봉산의 주요 봉우리들을 조망할 수 있다. 북서쪽으로 신선대(해발 726m)와 자운봉이 보이고, 북쪽으로 연기봉(해발 661m)이 조망된다. 동남쪽에는 만장봉(해발 718m)이 솟아 있다. 남서쪽으로는 에덴동산(해발 675m)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뜀바위가 펼쳐진다.]
[도봉산의 주요 봉우리
도봉산 최고봉인 자운봉(해발 739.5m), 신선대(해발 726m), 도봉산 포대정상(해발 721m), 만장봉(해발 718m), 선인봉(708m)]
14:13~14:34 이브의 동산의 주변 파노라마 풍경을 사진촬영 후 휴식
14:34~15:05 마당바위로 회귀
15:05~15:14 휴식
15:14~15:55 서울 도봉구 도봉산길 14 번지에 있는 김근태 기념도서관으로 이동
15:55~16:25 김근태 기념도서관을 관람
[김근태 기념도서관 공간 층별 소개
4F : 산바람길
3F : 생각곳³ (열람실), 산바람길, 수장고¹, 기억곳³ (전시실)
2F : 생각곳² (열람실), 근태생각곳 (예약열람실), 공간, 마루(다목적강당), 관장실, 사무실, 기억곳² (전시실)
1F : 생각곳¹ (열람실), 민주주의 놀이터(영유아 열람실), 기억곳¹ (전시실)
B1 : 상상곳¹ (강의실), 상상곳² (강의실), 상상곳³ (창작실), 수장고², 보존서고
기억곳 : 기억곳 상설·기획전시실 : 故김근태 선생 및 민주주의 인권 관련 상설·기획 전시 & 지역 문화예술인 작품 전시 공간 지원 & 이용자 및 지역 주민의 작품 전시 등 공간 대여]
[전시명 : 김근태 기념도서관 민주주의·인권 기획전 《사랑으로 :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힘, 존중》
전시기간 : 2024.07.23.(화)~09.01.(일)
전시장소 : 김근태기념도서관 1,2층 열람실
참여 작가 : 금채민, 김기정, 박태현, 신의현, 정도운, 조영배, 최명은
주최 / 주관 : 김근태기념도서관, 아르브뤼코리아,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
[전시연계 교육프로그램]
일시: 2024.08.25.(일) 14시
장소: 김근태기념도서관 공간, 마루
- 장원영 안무가 외 1명
- 예술교육놀이 프로그램 <내 손을 잡아줘>
김근태기념도서관에서는 민주주의, 인권의 가치를 확산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기획전시 <사랑으로 :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힘, 존중>을 준비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발달장애 예술가 7인이 참여하여 각자의 방식으로 작가가 사랑하고 존중하는 대상, 풍경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금채민, 김기정, 박태현, 신의현, 정도운, 조영배, 최명은 등 7인의 예술가들이 사랑의 시선으로 그려낸 장면들을 통해서 우리가 각자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차별이나 장벽이 아닌 더 넓고 입체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회가 되기를, 서로를 존중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근태 기념도서관 상설전시
전시명 : 《문학청년 김근태》 상설전시
전시 기간 : 2024.01.01. ~
전시 장소 : 김근태기념도서관 전시실 기억곳 3
김근태에게 글은 인간의 감각을 표현해주는 것이며, 공적으로 제시하는 문제들에 견해를 갖고 본인을 표현하고 동조하게끔 하는 도구였다. 또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문학들이 도움을 주었다고 하였다. 김근태는 직접 체험을 통한 문학적 표현이 호소력 짙으며 대중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문후유증과 사회활동으로 인해 짧은 시는 읽는데 무리가 없었으나 소설을 읽는 것에 무리가 따랐기에, 주로 시를 읽고 공감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김근태는 지식인, 예술가들의 민주주의 활동 참여에 거리를 두는 것을 비판하면서 대중과 함께 발맞춰 실천하는 예술활동을 지향하자고 주장하였다. 전시「문학청년 김근태」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은 김근태가 언급하며 공감한 것들이다.
[김근태 기념도서관 상설전시
전시명 : 《민주주의자 김근태》 아카이브 상설전시
전 시 기 간 : 2021.12.04. ~
전 시 장 소 : 김근태 기념도서관 전시실
김근태 아카이브 전시는 김근태기념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김근태 선생의 옥중편지, 영상, 사진 등을 세 가지 주제로 구성하여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기억곳) 1층부터 3층까지 전시된 기록을 통해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삶과 언어, 꿈꾸었던 희망을 만나본다.
기억곳1 김근태 선생이 걸어온 길
김근태 선생의 삶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설명, 연표와 사진, 영상을 볼 수 있다. 연표 아래 지금까지 나온 김근태 선생에 관련된 책을 한데 모아 전시하고 있다.
기억곳2 정치 민주화의 길
김근태 선생의 정치 민주화의 험난한 길을 같이해 온 자료 중 의미 있는 기록을 재현하여 관람객이 내용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노동운동 시절의 책과 기술자격증,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시절 자료, 김근태 선생 재판 기록과 케네디 인권상 등을 전시한다.
기억곳3 따뜻한 사람 김근태
따뜻한 사람 김근태의 대학시절 노트와 옥중편지를 전시한다. 그의 글에서 품어져 나오는 따뜻함과 인간에 대한 존중, 살인적 고통으로부터 부단히 회복하려 했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16:25~16:30 서울 도봉구 도봉산4가길 14(도봉동 286-25) 번지에 있는 ‘홍두깨 손칼국수’ 식당으로 이동하여 산행 완료
16:30~17:10 서울 도봉구 도봉산4가길 14(도봉동 286-25) 번지에 있는 ‘홍두깨 손칼국수’ 식당에서 [손칼국수+숯불구이]로 저녁식사 [식사비용 : 8,500원]
17:10~17:20 도봉산역으로 회귀
17:20~17:25 도봉산역에서 종로3가역으로 가는 1호선 전철 승차 대기
17:25~18:39 도봉산역에서 1호선 전철을 타고 종로3가역으로 가서 3호선으로 1차 환승하여 연신내역으로 이동한 후 6호선 지하철로 2차 환승하여 구산역으로 이동 [1시간14분 소요]
도봉산 [이브의 동산] 산행개념도
도봉산 [에덴동산&이브의 동산] 위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