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선, 2년 4개월 만에 한국 여성 최초로 7대륙 완등
추위는 참아도 감격은 참을 수 없었다 글 김영미 원정대원·강릉대OB·사진 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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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캠프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오은선 등반대장. |
정상. 만세!”
“형, 축하드려요” “그래, 너도 수고 했다.”
2004년 12월 19일 오후 5시 12분(한국시각 20일 오후 5시12분), 은선 형과 나는 남극 최고봉 빈슨 매시프(Vinson Massif·4897m) 정상에 올랐다. 하이캠프(4000m)를 출발한지 7시간 12분, 베이스캠프(2100m)를 출발한지 4박5일 만에 정상에 선 것이다.
이로써 은선 형은 7대륙 최고봉 완등의 쾌거를 이루었으며 우리의 만세 소리는 얼어붙은 남극의 하늘을 찢고 바람 속에 실려 퍼져갔다.
영하30℃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산 그림자가 우리를 덮칠 때 곤두박질치는 기온에 온몸이 얼기 시작했고, 우리는 추위에 얼어붙은 피곤한 꿈을 깨워 정상을 향했다. 오르면서 힘든 건 참을 수 있었어도 정상에 선 기쁨과 감격들은 참을 수 없었다. 두 팔을 벌려 서로 부둥켜안았다.
방향 없이 휘 몰아 치는 정상의 바람에 태극기가 휘날렸을 그때, 어쩌면 우리 뜨거운 가슴이 통하여 남극의 빙산들이 녹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행운의 땅 남극을 향한 긴 여정
은선 형의 마지막 7대륙 최고봉 등정을 위한 빈슨매시프 원정대 대원은 구자준 원정대장(LG화재 사장), 은선 형, 그리고 나. 평생 한 번 가기도 어렵다는 행운의 땅 남극을 가게 된 건 내 삶에 어마어마한 ‘행운의 별’이 떨어진 것과 같았다.
남극 행에 몸을 싣고 떠나는 항로는 준비부터 먼 여정이었다. 미국비자가 없던 난 하마터면 혼자 독일로 떠날 뻔 했다. 만약 그랬다면 영화 ‘터미널’의 톰 행크스가 되어버렸을지도.
인천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10시간 만에 LA에 도착한 시간은 5일 오전 8시(LA시간). 한국은 6일 새벽 1시니 잠결에 미국 땅을 밟게 되어 어리둥절하다. 공항으로 마중 나오신 허정연(덕성여대OB) 선배님은 미국에서의 잠자리 해결과 장비점 안내까지 해주셨다. 또 재미산악회분들은 우리의 성공적인 등반을 기원하기 위해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해 주셨으며, 우리와 함께 등반하게 될 김명준(재미산악회) 선배님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미국에서 이틀을 머물며 부족한 장비 구입을 마친 우리는 구자준 원정대장님과 합류하여 7일 오후12시 40분 란 칠레 항공사 비행기에 탑승한다.
LA에서 출발한 항공기가 샌디에이고에 도착, 비행기를 갈아타고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로 향한다.
비행기 창문 너머로 보이는 육지의 모습이, 도식적이고 정형적인 미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넓은 평야에 솟아오른 안데스 산맥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구불구불한 협곡을 만들어 바다로 이어지는 자연스런 흐름이었다. 남극의 산은 어떨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것도 잠시 뿐, 좁은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등반도 하기 전에 파김치가 될 지경이다.
8일 오후 1시 30분, 무려 17시간 30분 걸려 남미의 최남단 도시인 푼타 아레나스에 도착한다. 호텔로 이동해 짐을 풀고 대행사인 ALE(Antartica Logistics Expedition·칠레와 남극대륙을 오가는 항공권을 독점하고 있는 영·미 합작기업)에서 일정과 장비를 점검한다.
빈슨매시프는 국제산악연맹에서 인정하는 ‘국제연합 셀프 가이드 인증서’가 있어야만 가이드 없는 등반이 가능하나 인증서가 있다 하더라도 가이드 없는 등반은 아주 까다롭다.
일반적으로 등반인원 3명에 가이드 1명이 붙게 되는데 은선 형과 나는 둘이서 한 명의 가이드를 ALE에 요청했다. 다른 가이드 회사를 통한다 하더라도 결국 ALE의 시스템을 적용받게 되므로 조금 복잡한 것을 줄인 셈이다.
남극이 비행기로만 지원이 가능한 아주 특별하고 위험한 곳이긴 하나 항공권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주인도 없는 땅에 법을 정했다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다.
ALE에 따르면 남극의 패트리어트 힐(Patriot Hill)에서 나오기로 한 56명이 현지 기상이 좋지 않아 4일째 대기 중이라고 한다. 그들이 나와야 우리가 들어 갈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일정도 자동적으로 늦춰지게 되었다.
등반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힘든 산이 빈슨매시프라는 말을 실감한다. 현재 패트리어트 힐의 기온은 영하 9℃, 풍속은 초속 20m로 남극의 조건이 좋아야 비행기가 뜰 수 있기 때문에 이곳의 맑은 하늘도 소용이 없다. 남극으로 향하는 일루션(러시아제 수송기)은 남극의 풍속이 초속 8m로 유지되고 화이트 아웃이 없는 날씨에만 운행된다.
또 날씨가 좋다고 해서 비행이 연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조종사가 한번 비행을 하고나면 24시간 휴식을 취해야 다시 운행한다.
10일 오전, ALE에서 준비한 브리핑을 받으러 갔다. 브리핑 장소에 동양인은 우리뿐이다.
우리와 같이 패트리어트 힐로 이동할 30여 명의 외국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남극의 불규칙한 기상 변화에 따른 비행차질, 환경보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또 우리에게 배설물과 쓰레기들을 철저히 수거해 되가져와야 한다는 것을 당부했다.
이튿날엔 남극으로 보낼 짐의 무게를 잰 다음 먼저 짐을 보냈다.
1인당 운송 가능한 짐의 무게는 23kg로 규정치를 넘을 경우 1kg당 부과요금이 무려 67달러나 된다. 때문에 카메라 배터리처럼 무거운 것은 우모복 속주머니에 넣고, 가능하면 모든 옷을 껴입고 이중화도 신고 비행기에 탑승한다고 한다. 짐을 보내고 나니 남극에 반은 다가선 것 같은 기분이다.
새벽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패트리어트 힐의 상황에 대해 두 시간 간격으로 ALE로부터 연락이 왔다.
멀리 떠나지도 못하고 ‘2시간 후면 떠나게 되겠지’라는 기다림의 시간이 애를 태운다. 걸어서 한 시간이면 다 돌아보는 푼타 아레나스 시내도 이젠 모르는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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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트리어트 힐에 도착하자마자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오은선 등반대장·구자준 원정대장·김명준씨·김영미 대원. |
오랜 기다림 끝에 시작한 등반
푼타 아레나스에 들어온 지 6일 만인 14일 새벽 6시에 긴급 연락을 받고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일루션에 탑승한다.
수송용 비행기라 좌석이 양쪽에 길게 있고 가운데는 남극으로 가는 물자가 가득하다. 자리가 불편해 짐 위에 누워서 자는 사람도 있다. 4시간 30분 만에 3000km를 날아 패트리어트 힐에 착륙했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남극의 태양빛은 너무도 강해 주변이 잘 보이지 않는다.
끝없이 넓게 펼쳐진 얼음바다위에 서서 걷는다. 그 옛날 베드로가 물위를 걷던 수천 년 전의 행위가 이곳에선 예사처럼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패트리어트 힐에 있는 ALE의 기지는 근사했다. 거대한 식당과 숙박용 텐트, 도서실과 화장실 등의 편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라디오 룸에서는 위성시스템을 통한 기후 관측도 가능하다. 간단히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바퀴 대신 스키가 달린 트윈 오터(Twin Otter)를 타고 1200km 떨어진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빈슨 매시프를 향해 서쪽 항공으로 고도를 높이자 멀리 칠레 공군기지가 보이고 은빛에 반짝이는 하얀 연봉들이 한반도의 61배에 달하는 광활한 남극대륙에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구자준 원정대장님은 우리를 격려해주시고 다시 패트리어트 힐로 떠나셨다.
식사시간. ALE에서 제공되는 식사는 오트밀과 마카로니, 야채스프와 돌덩이처럼 얼어버린 빵, 치즈, 비스킷, 건과류 등으로 좀처럼 입에 맞지 않다. 비상식으로 준비해 간 알파미 두 봉과 컵라면 몇 개, 튜브고추장, 마른 김과 멸치가 있어 다행이다. 다른 것은 비단 음식만이 아니다. 산행 스타일도 너무 다르고 무엇보다 동서양 문화가 달랐다.
우리의 감시자와도 같은 가이드들과의 대립은 등반 중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이곳의 하루는 보통 10~11시 사이에 시작되고 가장 따뜻한 시간대인 오후 1시에서 8시 경에는 운행을, 10시 경엔 일과를 끝낸다. 백야 때문에 눈가리개를 하고 잠을 청해보지만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15일 아침,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등반 시작이다.
썰매에 장비와 식량을 분담해 싣고 안자일렌을 한 상태에서 브란스콤 빙하의 설원을 따라 캠프1(3000m)로 향한다.
필자는 이번 원정에서 비디오 촬영을 담당했기 때문에 은선 형의 썰매에 짐을 싣고, 배낭과 비디오만 메고 출발했다. 처음 잡는 카메라를 들고 나름대로 열심히 뛰어다녀 보지만 안자일렌 상태여서인지 도저히 좋은 그림을 잡을 수가 없다. 무거운 썰매를 끄는 은선 형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번갈아 가며 썰매를 끈다.
6시간 후 드디어 캠프1에 도착한다.
현지에 적응되기도 전에 무리하게 운행을 해서인지 김명준 선배님은 식사 도중에 구토를 하신다. 하루에 고도 900m를 올려 캠프2의 위치에 캠프1을 구축했기 때문에 다음날 오전은 휴식을 취했다.
16일 오후 2시 30분, 썰매를 두고 배낭에 짐을 꾸려 하이캠프(4000m)를 향해 출발한다.
설원을 따라 걷기를 1시간. 그리고 매우 가파른 설벽의 오름길이 나타난다. 여기서 많은 외국 원정대들은 시간이 지체했지만 우리는 꾸준한 속도로 올라갔다.
3시간 정도 지났을까. 날씨가 흐려 뒷사람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크레바스가 많은 설원을 따라 한 시간 정도 더 오르니 하이캠프가 보인다.
서둘러 텐트를 치고 눈을 녹여 물을 만든다.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는데 극지법으로 등반 하는 다른 팀들은 짐을 데포시키고 다시 캠프1로 하산한다.
하이캠프에는 이탈리아 과학자 1명과 칠레 과학자 2명이 있다. GPS와 위성으로 측정한 높이가 정확하지 않아 고도측정을 시도 하고 있다고 한다.
밤 12시. 해가 산 뒤로 넘어가 산 그림자가 텐트를 뒤덮으면 상상도 못할 추위가 엄습해 온다. 텐트 밖 온도계의 눈금은 최저 측정치인 영하 30℃를 가리키고 있다.
이곳 날씨는 평균 영하 15℃정도지만 그림자만 생기면 기온이 뚝 떨어지는 것이다. 가장 추운 시간인 오전 7시에 과학자들이 설치해 놓은 디지털 온도계를 보니 영하 37℃까지 내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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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슨 매시프 정상에 선 오은선 등반대장과 김영미 대원. |
내 안의 산을 만나다
정상 공격을 위한 아침,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든다. 잠들어 있던 우리들의 피곤한 꿈을 깨워 정상으로 향한다.
하루에 1000m의 고도를 다녀와야 하는 강행군. 아침부터 여러 차례 화장실을 드나들던 여자 가이드가 고소증세를 보이며 뒤쳐져 따라오지 못한다.
결국엔 남자 가이드에게 배낭을 넘기더니 겨우 우리를 쫓아온다. 눈 덮인 빙벽, 크레바스 지대의 완만한 설원을 지나 빈슨 북사면의 가파른 오르막을 지그재그로 올라 친다.
여기만 오르면 정상일 줄 알았는데 또 능선이 이어진다. 생각했던 것보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정상 푯말을 만난다. 드디어 빈슨매시프 정상에 선 것이다. 은선 형과 김명준 선배님과 함께.
높이를 떠나 쉬운 산은 없었다. 하산을 하며 내 안의 산에 대해 생각한다. Life 라는 단어에 if가 삶을 아름답게 볼 수 있고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 가능성을 상징하듯, 빈슨 매시프(Vinson Massif)에 if가 있는 이유는 이 산을 통해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INTERVIEW
7대륙 최고봉 완등한 오은선씨
“여성팀 꾸려 K2에 오르고 싶습니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만의 원정대를 꾸려 후배들과 K2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12월19일 남극대륙 최고봉인 빈슨 매시프(4897m)를 등정, 세계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한 오은선(38세·영원무역·수원대OB)씨.
한국에서는 허영호·박영석에 이어 세 번째, 우리나라 여성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그가 7대륙 최고봉 원정을 마음에 품은 때는 2001년, K2 등반을 마친 직후였다.
박영석씨의 14좌 완등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그도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게 된 것. 2002년 엘부르즈(5642m)를 시작으로 도전의 첫발을 내딛었다.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매킨리(6149m), 가슴 아픈 기억으로 떠오르는 에베레스트(8850m).
이번 빈슨 매시프 등정으로 7대륙 최고봉 원정은 끝났지만, 그의 가슴 속 원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해 코지어스코(2228m)를 등정했지만 처음 계획했을 때부터 오세아니아 대륙의 최고봉 2개를 모두 오른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내년 여름에는 칼스텐즈(4884m)를 오를 계획이다.
그는 “이번 등반에 함께한 김영미 대원 같은 젊은 여성산악인들의 활동이 활발해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