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안로의 ‘자기 체온으로 처녀를 살려낸 중’
충청도 지방에 빈 절이 하나 있었다. 수리하지 않은지 이미 오래 되었다. 어떤 늙은 중이 수리를 하고자 보시를 받으려 다니다가 깊은 산중의 빈 집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밤은 깊어가고, 산속은 점점 적막으로 빠져들면서 별과 달은 희미해져 갔다. 갑자기 크다란 물체가 담 넘어 쿵하고 뛰어넘어 왔다. 옆에 끼고 온 것인지, 물고 온 것인지 크다란 덩어리를 마당 한 가운데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는 쭈구리고 앉았다가, 뒷걸음질 치기도 하고, 훌쩍훌쩍 뛰어넘기도 하는 것이 흡사 쥐를 잡아다가 다루는 고양이 같다. 유심히 보니 집 채 만한 호랑이 였고, 마당에는 처녀 아가씨가 놓여 있었다. 이미 혼절하여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중은 재빨리 떨어져 있는 문짝을 호랑이를 향해 던졌다. 문짝 날아오는 소리가 뇌성같았다. 호랑이는 깜짝 놀라서 다시 담을 뛰어넘어, 혼비백산 도망을 갔다.
중이 뜰에 내려가서 보니 나이가 열 대 여섯 쯤 되어 보이는 처녀 아이였다. 숨이 이미 끊어졌는지 호흡조차 감지되지 않았다. 몸에 아무런 상처도 없어, 살아날 것 같았다. 중은 처녀를 방으로 안고 들어가서, 앞 가슴을 헤치고, 자신의 체온으로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그렇게 하기를 새벽까지 하니 맥이 조금씩 뛰고, 숨길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정신이 깨어나자 미음을 먹이면서 수 일 간 조리를 하도록 했다. 비로서 정신이 돌아와서 기억도 생생해졌다. 자신은 100여리 떨어진 곳에 살며, 초저녁에 집 밖에ㅓ 호랑이에게 물려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중이 처녀를 데리고 처녀가 사는 마을로 갔다. 처녀는 동구에서 기다리도록 하고 시주를 얻으러 다니는 행색으로 처녀의 집에 가 보았다. 무당을 맞이하여 죽은 혼을 부르고 있었다. 무당이 처녀가 호랑이에게 잡아 먹힐 때의 고통을 형용하자 부모와 친척들며 울며 부르짖었다. 그때 처녀가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왔다. 부모가 자기 딸을 보고도 처음에는 몰라 보았다. 귀신인가 하다가 자세히 보니 살아 있는 자기의 딸이 아닌가. 서로 안고 통곡하였다. 그리고 중에게는 후하게 대접했다.
처녀는 그 고을의 양가집 딸이었다. 방아찢고, 물을 푸는 천한 일은 한 일이 없었다. 동네에서는 예쁜 규수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중이 처녀를 정성껏 살려내고, 가슴에 살을 대어 체온을 높이면서도 음란한 짓을 하지 않았으므로, 색욕을 버리고 자비심을 베푼 참된 중이로다. 봄 받을 만 하다.
(용천담적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