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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후(邂逅)
채 만 식
1
마지막으로, 라디오의 지하선을 비끄러매놓고 나니 그럭저럭 대강 다 정돈은 된 것 같았다.
책장과 책상과 이불 봇짐에, 트렁크나 행담 등속을 말고도 양복장이야 사진틀이야 족자야 라디오 세트야 하숙 홀아비의 세간치고는 꽤 부푼 세간이었다. 그것을 주게주게 뒤범벅으로 떠싣고 와서는 전대로 다시 챙긴다. 적당히 벌여놓는다 하느라니, 언제나 이사를 할 적이면 그러하듯이, 한동안 매달려서 골몰해야 했다.
잠착하여 시간과 더불어 오래도록 잊었던 담배를 비로소 푸욱신 붙여 물고 맛있어 내뿜으면서, 방 한가운데에 가 우뚝선 채, 휘휘 한바퀴 돌아보았다. 칸반이라지만 집 칸살이 커서 웬만한 두 칸보다도 낫다. 윗목으로 책장과 양복장을 들여세우고, 머리맡으로는 책상을 놓고, 뒷벽 중간쯤에다가 행담과 트렁크를 포개서 이부자리를 올려놓고 했어도, 홀몸 거처엔 별반 옹색치 않을 만큼 방은 넓었다.
반자 도배 장판 일습이 집주름 영감과 주인집 마나님 말따나, 파리똥 한 첨 앉지 않고 정갈했다. 여름을 치른 벽이라도, 빈대피는 물론, 곰팡이 슬은 자국도 없었다.
십상 잘되었다고 다시금 혼자서 고개를 끄덕거리는데, 그러자 방 안이 별안간 화안히 밝아졌다. 돌려다보니 서향인 듯 싶은 앞 쌍창으로 마침 끄무리던 구름이 벗어진 모양, 햇볕이 가득 들이 쬐었다. 장차 명년이나 가면 더울는지는 몰라도, 당장 이 가을과 겨울 동안 해가 잘 들겠어서 또한 신통하고 반가웠다. 해는 잘 들고, 방은 넓고 깨끗하고, 보매 집 안도 안팎이 정사하고 겹해서 조용하고, 아무러나 모처럼(그도 우연한 기회에) 좋은 하숙을 얻은 것이 새삼 만족했다.
그새까지 유하고 있던 원동의 하숙을 불시로 옮아야 할 사정이 생겨서 두루 물색을 했으나, 우환 중에 방이 귀한 이 당철이라 조만하여 마차운 자리가 눈에 뜨이질 않았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저 앞 큰 거리를 지나던 길에 허심삼아 복덕방 영감더러 문의를 했더니 선뜻 데리고 와서 보여준 것이 이 집 이 방이었다. 마침 한 동네 이웃간이요 해서 내정을 익히 아는데, 서른 무엇은 된 젊은 여인과 육십 넘은 친정어머니와 모녀 단둘이 살고, 영감은 그 여자를 첩으로 얻어두고서 며칠만큼씩 밤이면 다녀가군 하여, 참 절간같이 조용하니라고 또 방 널찍하고 사람들 쌍패스럽지 않고 음식 솜씨 좋고, 무어 점잖은 하숙으로는 깎아마췄느니라고 한갓 흠이, 싯가를 오십 원씩이나 내라고 해서 좀 안되었지만, 그 대신 그 값이 거기 있느니라고 앞을 서서 어기죽거리고 걸어가면서 집주름 영감이 연해 이렇게 주워섬기며 하던 것이었었다.
아직 송진 냄새 가시지 않는 새집이었다.
대문 기둥에는 김영애라고, 거기 어디 아무데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여자 이름으로 여자의 문패가 붙었고, 그 밖에로 번지 패를 비롯하여 애국부인증이며, 라디오, 전기, 전용수로 따위의 금속 패쪽이 좌우 기둥으로 군데군데 불규칙하게 박혀 있고 했다. 외등도 있고.
대문을 지나 유리창으로 한 안대문을 들어서자, 좁다란 마당 그들막하게 차지한 장독대가, 바른편으로 이웃집과 사이를 막은 벽돌담 밑에 가서, 건넌방 바로 놓여 있고 건넌방 다음이(왼편으로) 마루, 고패 저편서 안방과 부엌과 아랫방, 그리고는 다시 바른편으로 고패가 져서 광과 대문간이고, 이런 ㄷ 자 집이었다. 앞은 건넌방 퇴까지 싸잡아서 분함을 둘렀고, 마루에는 뒤주와 찬장이 크고, 마루 밑으로는 지하실 찬광이 보이고, 장독대는 벽돌과 시멘트로 쌓였고, 기둥에는 주련, 문 머리맡에는 사슴이 불로초를 먹는 채색 그림이 붙고, 역시 거기 어디서 흔히 볼 수 있는 종류 그 어림의 집 차림새였다.
집 안은 우선 그만하면 무던했다.
며느리를 여럿째 얻은 시어머니 같아서, 근 이십 년 하숙 생활만 하고 다닌 버릇이라 새로. 방을 구하게 되면 부지중 그렇게 집을 비롯하여 방이며 주인집 사람 등, 범백에 세심한 관찰을 가지고 하던 것이다.
집주름 영감이 찾는 소리에 응하여, 주인 여자의 친정어머니라는 노인인 듯싶은 마나님이 건넌방에서 툇마루로 나섰다. 수수하니 시골 태가 벗지 않고 선량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집주름 영감이 온 뜻을 말하자, 노인은 흔연히 그러냐면서 혼잣말같이,
“우리 아인 시굴을 다니러가구 없는데…….”
하고 잠깐 망설일 듯하다가,
“쯧! 그 애야 있으나 없으나…….”
그러고는 토방으로 내려오더니, 이 방이라면서 아랫방 쌍창을 좌악 열어 보여주었다.
훤하니 넓고 정하게 수리를 해논 방이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그럼, 저어…….”
나는 방문을 도로 닫고 돌아서면서 노인더러 말을 했다.
“……절 좀, 와서 있두룩 해주시지요?”
“그렇게 허시유. 우리야 누가 됐든, 손님을 두잔 노릇이니…….”
“그럼……·으음……·낼 점심때쯤 해서 짐을 가지구 오겠습니다. 그리구 저어…….”
“좋두룩 허시유만……·계, 출입은, 어디 출입을 허시우?”
“별루 다니는 덴 없습니다. 없구, 거저 집에 조용히 들앉어서…….”
호구 조사를 나온 순사도 더러 본다치면, 저술업이니 소설쓰는 사람이니 하는 것을 외국어처럼 이상히 여기거든 항차 이런 노인이 그런 어휘를 알아들으며, 더욱이 직업으로 인정을 해줄 이치가 없는 것이었다. 또, 가난한 것이 제일가는 특색인 조선 문단이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른 문우들과는 달리 여지껏 원고료 하나로 생활을 도모하지는 않아도 무방할 호강스런 팔자가 되어, 그러므로 수입을 의미하는 직업을 구태라 저술업이나 작가 등속으로 내세울 필요는 없었다. 그리하기 때문에 항용 나는 순사 앞에서 지주(地圭)로 버티고, 하숙집에다는 무직으로 행세를 한다.
하숙집에서는 그러나, 무직이라면 아주 찔끔이다. 그래서 이 집 노인만 하더라도 내가 별로 다니는 데가 없노란 대답에 벌써,
하고, 약간의 난색을 보이는 것이었다.
한두 번 당하는 일이 아닌지라, 나는 거기 대한 충분한 대책이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무어, 글랑은 아무 염려 마셔두 좋습니다. 월급으루 생화가 없다구, 사관 싯가 낼 돈두 없으란 법은 없으니깐요, 허허…….”
“그야 무슨…….”
“그러니깐, 정히 뭣하시면 석 달치든 넉 달치든, 싯갈 미리서 넉넉히 받으시구?”
“걸 어디, 박절하게시리 그런 법이야 있수? 하루를 같이 지나두 주객은 주객이요, 피차에 점잖은 이면에……·거저 남하는 일례루, 날 한 달치나 미리 좀 주시우, 쯧!”
“점잖으신 말씀입니다…….”
치하를 하면서, 십 원짜리 다섯 장을 노인에게 내주었다.
노인은 손 끝에 침을 묻혀 가면서, 눈을 지그리고 두 번이나 돈을 세 어보더니,
“이 천오백 냥, 맞소…….”
그리고는 치마를 걷고 귀주머니를 더듬으면서,
“이천오백 냥이면 좀 과한 듯해두, 요새 백사가 모두 비싸서……·그렇다구 손님을 치믄서 찬을 어설프게 대접할 순 없구.”
“괜찮습니다! 독방이면 요새 항용 그 가량은 내야 하니깐요.”
“우리 아인 것두 즈이 영감이 마땅찮어 할까봐서 못 하게 하는걸, 그 양반이 날 담뱃값이래두 뜯어 쓰라구, 기왕 비어두는 방이구 허니…… 첨엔 사글셀 내줄까 했지만서두, 그래놓으면 집 안이 구질구질하구 번잡해서……·쯧, 손님 치기야 전에 시굴서두 내 손으로 해보던 노릇이것다……·.”
이렇게 해서 작정이 되어, 오늘 아까 오정만 하여 짐을 옮겨온 참이었다.
원주민이라는 젊은 여인과는 아직도 대면을 못 했다. 며칠 만큼씩 밤이면 다녀가곤 한다는 주인 영감도 물론 만났을 턱이 없었다. 한갓 노인만은 살뜰스런 것 같았고 첫인상이 좋았으나, 그 한 가지로 이 집의 전체 인심을 판단할 자료는 되지 못했다.
또, 음식 범절도 미처 한 번도 식사를 하기 전이니, 역시 어떻다고 할 말이 없고, 그뿐더러 오십 원이라는 싯가가 노상 태과하지 않음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오히려 둘째 문제고, 제일 안된 것이 ‘늙은 영감의 젊은 첩과 독신의 하숙 손님…….’이라는 사실이었다.
처음부터 이 컨디션이 나의 결백을 불쾌하게 했다. 번연히 사람이 정갈스럽지가 못한 것 같은, 산뜻하지가 못한 것 같은, 향그럽지가 못한 것 같은, 그래서 애여 마음에 떳떳하지가 못한 것 같은 컨디션이었다.
이것이 가장 흠이었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방 그것만은 역시 좋았다. 이만치 마차운 방을 얻어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고, 근년에 드문 행운이었다.
따라서, 한편 생각하면 그만한 흠은 옥에 티로 여겨도 상관이 없었다. 사실 또, 괘념할 나름이지 대범히 보기로 든다면 막상 흠이 아닐 수도 없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 밖에 주인집 사람들의 인심이랄지, 음식 솜씨랄지, 또는 싯가가 좀 과한 것이랄지 이런 것은 어느 한도까지는 참고 견딜 수 있는 불편이었다.
2
팔목의 시계를 들여다보니 마침 네시.
정돈은 다아 되었것다, 이제는 나가서 목간이나 우선 포근히 한 탕 하고…… 그리고. 들어와서 오늘 저녁부터는 오래간만에 조용히 앉아 그 동안 방 때문에 여러 날 번졌던 집필을 다시 계속하고 하느니라고, 그래 마악 목간 주머니를 챙기다가, 마침 밖에서 대문 소리에 연달아 젊은 여자의 음성이 들러서 무심코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
이렇게 부르고 건넌방에서는 노인이,
“오오냐, 인제오느냐.”
하면서, 문을 열고나서는 기척이고 시골 다니러갔다던 이 집의 안주인일시 분명했고, 그녀가 지금 돌아오는 길인 둣싶었다.
“계, 혼산 어떻게나 지내드냐?”
“네에, 그럭 저럭, 다아…….”
“신랑은 어떻게 생기구?”
“무어, 시골 농사꾼이 그렇죠…….”
그러다가 비로소 토방에 놓인 내 신발을 보.았는지,
“저 방에 손님 들었어요?”
“응…… 그러잖어두 시방……·.”
“언제 ?”
“아까, 방금…….”
그 다음부터서는 이야기 소리가 소곤소곤 적어졌다.
나는 처음, 주인 여자의 음성이 어덴지 귀에 익은 것 같으나, 깊이 유념은 않고 방문을 열고 나섰다.
호릿한 몸매에 하얀 옥양목 두루마기를 입고, 은비녀 등으로 쪽을 짓고, 이런 뒷맵시를 하고 토방에 가 섰다가 해끗 돌려다보는 얼굴과 마주쳤다. 그 얼굴이 그런데, 방 안에서 듣던 음성과 한 가지로, 퍽도 낯이 익었다. 갸름하니 하관이 밭고, 코허리가 높고도 크고, 눈썹이 짙고, 어데선가 보던 얼굴이었다. 보아도 범연히 본 것이 아니고, 어느 기회엔지 심상치 않은 사건적인 관련이 있었던 듯싶은 인상이었다.
저편에서는 그녀도 역시 나를 아리송하여 하는 얼굴이더니 순간 후,
“난 누구시라구우!”
하고 반겨 웃으면서, 조루루 가까이 오는 것이었다.
종시 나는 깨우치지 못하고, 서서 뚜렛뚜렛했고.
“절 모르시겠어요?”
재끄르르 웃으러는 것을 잠깐 참고, 방긋방긋하면서, 조금도 낯설어 하지 않는 표정이었으나, 볼수록 그녀의 약간 아래로. 눈초리가 처지는 눈웃음이 더욱 알 듯 알 듯하기는 하는 것이나,
그래도 생각은 나지 않았다.
“박상근 씨 아니세요? 그러시죠?”
“네에, 지가……·.”
“저, 김영애예요.”
“글쎄올시다, 문패서두 보긴 했는데…….”
말을 해놓고 생각하니, 내가 생각해도 싱거운 수작이어서 뒤통수가 절로 만져졌다.
“호호호호…….”
여자는 필경 이렇게 자지러지게 웃고 나서는,
“……·허긴 여자 이름이니깐, 이름으룬 더 모르실 테지만…… 저어, 송필훈……·.”
“아아……·.”
송필훈의 필자 훈자까지 다아 듣기 전에, 송자 하나로 선뜻 나는 깨달을 수가 있었다.
나는 너풋 절이라고 해야 할 것같아 그만 당황했다.
송필훈 씨‥…·그는 나의 고향 선배였었다. 선배로되 정분이 자별한 사이였다. 이 여인은 그의 미망인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는, 사이가 자별하던 고향 선배의 미망인을 못 알아보았다든가, 그녀를 만나서 반갑다든가, 또는 어떤 돈냥이나 있는 영감쟁이의 첩데기가 된 그녀를 대하기가 점직하다든가, 그런데다가 우연˙히 그녀의 집에 하숙을 하게 된 인연이 기이하다든가, 이런 것 말고도 달리 한 가지 얼굴이 화
틋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기억이 솟아 올랐고, 내가 당황해 함도 일변 그 때문이었다.
정녕코 내 얼굴은 화툿했었다.
저편은 그러나 천연스럽다.
“인제 아시겠어요! 호호호호!”
“이거 원, 너무 참……·그렇게 몰라뵈었담!”
“무얼요! 어떡허다 그러시기두 예사지. 그러나 저러나, 이렇게 우리 집 손님으루 뵙게 될 줄은…….”
“글쎄올시다, 지두 참……·.”
당연히는 내가 먼첨, 그리고 다른 말보다도 먼저, 송필훈 씨에 대한 인사를 먼점 했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이 여인의 현재의 처지를 알고 있는 터라, 혹시 어찌 여길까 싶어 불쑥 열기가 주저스러웠다.
잠깐 그리하여, 어색한 침묵이 있은 뒤에, 요행 여자가 먼첨,
“그인 참 돌아가셨죠!”
하고 개두를 해서, 나도 그제서야,
“그때 참 부곤 받구서두, 내려가서 문상두 못 들이구, 이내…….”
“생전에 가끔 말씀을 하시구 했어요. 만나구 싶다구…….”
“병환은 그래 무슨 병환으루?”
“골병이죠……·그때두 왜 참 보시잖었어요?”
이 그때도……소리에 나는 다시금 얼굴이 화끈 달았다.
“사람이 그 지경으루 골병이 들어가지구서야 어디 오래 지탱을 하나요? 밤낮 거지 고올골 하다가 그예 그만…….”
“…….”
나는 여러 장면에서 여러 가지로 머리 속에 두서없이 떠오르는 송필훈 씨의 가지가지 면모를 푸뜩푸뜩 회상하면서 무연히 한눈을 팔았다.
괄괄스런 얼굴, 장대한 기골로 단상에 올라서서는 주먹을 부르쥐고 탁자를 땅 땅, 그 큰 눈방울을 끊일 새 없이 구울리며, 불을 뿜는 듯 열변을 토하던 양은 하옇거나 일면 거물다운 늠름함이 없지 않았다.
한낱 자유주의자로서, 순전한 학문적인 욕망으로 좌익 서적을 보고 있었을 뿐인 나는 그러므로, 그의 사상에 공명을 하거나, 거기에 따르는 존경은 아니었다.
또 그의 그 사상에 대한 학문적 역량이랄지 이론적 근거란 심히 빈약한 것이었었다. 더러 강연이나 좌담을 들을라치면 참으로 분발할 무지와 탈선이 많았었다. 그러한 부족을 그는 정열과 뱃심과 타고난 웅변의 힘으로 곧잘 덮어 나가고 버티며 지나고 했었다.
나를 만나기만 하면, 그 빈약한 이론을 가지고서 토론을 하자고 대들었다. 나는 사양치 않고 대응을 했다. 일껏 그렇게 싸우고 나서 볼라치면 나는 그의 억지와 웅변을 당해내지 못하고 그는 나의 학문을 당해내지 못하고, 결국 싸움은 피장파장이 되고 말곤 했었다.
또 어떤 때는 지성으로. 나더러,
“상근아, 그 잉여가치 학설, 걸 썩 요령있구 알어듣기 쉽게, 날 좀 가르쳐 줘, 응?”
하고 청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럴라치면 나는,
“× × 주의자가 × × 주의 학설을 반 × × 주의자한테 물으세요?”
“허어허허허……·아, 넌 알구 난 모르니, 널더러 묻는 거 아니냐?”
“모르는 × × 주윌 뭣허러 하세요? 생 엉터리 아녜요? 그런 걸 무어라고 하는지 아세요? 사상 부로카아……·.”
“너 인석, 이럴 테냐?”
“그런다구 저 큰 눈에다가 절 잡아 넣으시겠어요?”
“허어허허허……·자아, 그리지 말구, 좀 가르쳐주렴? 학불염이교불권 아니나? 학문을 가지구 인색한 건 돈에 인색한 거보다두 더 못쓰는 법야!”
적절히 나에게는 아픈 한 마디였다.
“자아 것보다두, 어떠세요, 한 잔?”
“조읗지! 하, 내 언젠 술을 마대드나? 술 마대드냐? 술 먹자! 술 먹으면서,
또 욱여보자꾸나!”
그는 젊어서부터도 입 걸고, 번죽 좋고, 상하와 귀천 구별없이 아무허구나 섭슬려 놀고 술타령 하고, 이렇게 사람 털털하기로 고향에서도 아주 호가 난 특수한 인물이었다. 일부에서는 그래서, 천하 잡놈이라고 그를 돌러놓기까지 했다. 말하자면 그는, 사람됨 이 그만침 소탈하고 야성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송필훈 씨를 나는 좋아했다. 김삿갓을 상상케 하는 파겨적인 인간미.
그 송필훈 씨를 마지막 대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 × × 온천의 어떤 여관이었다. 그때에 나는 심히 거북하고도 마음 꺼림칙한 기억을 남긴 채, 작별도 없이 갈려버린 것이 그와의 영결이었다.
3
시방이나 그때나 쓸쓸히 즐기기는 온천과 여행이었다. 또, 시방이나 그때나 가정적인 계루가 없이 객지에서(서울서) 독신으로 지나던 터.
적적한 설을 이왕이니 온천에서라도 쇠는 게 차라리 적적함을 더하는 한 흉일까 싶어, 불시로. 간단한 행구를 차려가지고 × × 온천엘 내려간 것이 바로 섣달 그믐날이었다.
오정이 조금 지나서, 단골 여관인 B관에 당도하여, 우선 단젱〔丹前〕을 갈아입고는 탕엘 다녀 나오다가, 복도에서 주쩍 송필훈 씨흘 만났다.
깜박 서로 반가웠다. 그 해 봄, 그가 만 일 년 만에 사파에 나오던 날, 서대문 형무소 앞에서 잠깐 만나고는 처음이었다. 그는 그 뒤로 고향으로 내려갔었고, 그 뒤부터 건강이 더럭 좋지 못하다는 것이며, 그러면서도 무슨 망령에 새파란 젊은 여자와 결혼을 했다는 것이며, 풍편에 소식은 종종 들었으나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아, 상근이가 이게 웬 일인고?”
방깃이 웃으면서 마주 악수를 하는 나더러 건네는 인사였다.
“저야 부르조아니깐 온천 여행쯤 당연하지만, 장씨야 말루 웬 일이세요!”
“허어허허허! 여전하구나, 인석.”
전과 다름없이 걸걸히 웃고 쾌활하기는 하던 것이나, 그 훌쭉 깎인 볼과 앙상한 손길이 듣던 바와 일반으로 건강은 지난 봄 그때보다도 말이 아니게 쇠한 것 같았다.
“신관이 많이 못되셨군요?”
“늙어놓으니, 늙어놓으니 속절 없 더구나. 오십이 넘은 걸. 게다가 병이 있어, 또오…….”
“참! 신혼하신 재민? 축하가 늦었습니다.”
“허어허허허! 건 우리 막설하자꾸나. 허어허허허!”
이렇게 웃는 그의 얼굴에서 나는 숨길 수 없는 일말의 암영이 어른거림을 느끼지 않지 못했다.
“아무러나 반갑다! 며칠 예서 유하렷다?”
“설이나 조용히 쇨까 했더니, 생철통한테 들켜놔서 뜨윽합니다.”
“워너니 모초롬 좀 닦이어봐라.”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내 방으로 들어갔다.
장강비는 만나면 싸우더라고, 술상을 청해다놓고는 권커니 잣커니 연방 잔을 기울이면서 이야기도 하고, 서로 공박도 하고 했다.
그러고는, 이야기도 욱임질로 한풀이 지나고, 술이 차차로 거나했을 무렵이었다.
“너 인석, 상근아?”
하면서 새 채비로. 나를 따집는 것이었다.
“응? 상근아?”
“말씀하세요?”
“너 인석, 날 숭보지? ”
그러면서 마시러던 술을 멈추고, 잔 너머로 빙그레 나를 눈흘기듯 건너다보더니 다시,
“날 잔뜩 시방 숭보지? 속으루……·.”
“속으루……·.”
“그래.
“무엇이 겁할 게 있다구 속으루 숭을 보아요?”
“아아니, 그럴 일이 있어!”
“비밀한 죌 지신게죠?”
“내가 젊은 색시허구 결혼한 거 속으루 웃잖어?”
“대관절 참, 무슨 생각으루다 결혼을 하셨나요? 다아 늙게…… 노망으룬 일르구.”
“허어허허허! 노망일는지두 모르지……·무슨 생각으루다 결혼을 했느냐고?”
“거야말루 네 영역(領域)이렷다.”
“…….”
“거야말루, 네 영역(領域)이렸다.”
“?”
“인간을 연구하구 인간을 발견한다는 게, 네 전문 아니냐?”
“그런데요?”
“그 잔 마시구, 내 이야기 들어.”
내가 비는 잔에다가 술을 쳐주더니 이윽고 그는 목을 가다믐어 곰곰이,
“일 년 동안 내가 제서 지났것다.”
“…….”
“그 일 년 동안의 제일 핍절하게 느낀 것이 무연고오 하면 말이지이.”
“제일 그리운 게 무어더냐 하면 말야, 사파의 자유보다두, 응?”
“또오, 일이나 자식새끼보다두…….”
“술이나 담배나 맛있는 음식이나 그런 것보다두, 응?”
“섹스 그것이더라?”
“응!”
“그래서 나오시던 멀루 결혼을 하셨단 말씀이죠?”
“응! 결심을 했더니라. 나가면 우선 무엇보담두 결혼을 하러니……·.”
“그래, 결혼을 했것다…….”
“…….”
“그런데 말이다……·허어! 진리는 항상 그와 반대되는 걸 낳는다더니 과연 옳은 말이더구나?”
“…….”
“내 발견이 진리는 진리것다? 응?”
“예사지요!”
“흐응!”
“새삼스럽게……·.”
“진리는 행동을 요구하것다?”
“…….”
“결혼을 했지! 했더니이, 모순과 갈등이 생기더구나.”
“…….”
“내가 너무 늙었더란 말야! 늙은 영감에 새파랗게 젊은 마누라?”
“…….”
“상근아?”
“…….”
“내가 무어 그리 팔자가 두드러졌다구, 온천으루 휴양을 다닐 사람이듸? 마누랄 데리구왔다.”
“…….”
“늙은 영감에 젊은 마누라한텐 온천이 약이라더구나.”
“장씨!”
“불쌍하더라! 인제 젊으나 젊은것이 낙이란걸 모르구!”
“회심이 드셨군요?”
“내가 결혼한 보람은 났지, 그야……·그렇지만 그 사람은 시집을 온 것이 하나두 의의가 없으니.”
진작부터 농은 없어지고 말과 표정은 자못 침통함이 있었다. 그것이 동정스럽기도 했지만, 일변 밉광머리스럽기도 했다.
“그러니깐 말씀에요, 장씨.”
“오오냐.”
“어서 어서, 황천으루 가세요.”
“날더러, 어서 죽으라구?”
“왜, 살아기셔 가지굴랑 그 온갖 주접이세요?”
“아, 너 인석 이럴 테냐?”
“살아기서서 무얼 하시겠어요? 그 소위 투쟁두 못 하시구, 그러군 주접이나 피우시면서…….”
“이노음! 인전 날 맞대놓구 죽으라구까지 하는구나, 허어허허허!”
“제에발,, 돌아가세요!”
“안 죽지! 내 비록 늙구 병은 들었다마는, 팔십까진 살구래야 죽을걸, 허어허허허…… 자아, 우리 마누랄 소개하지.”
송필훈 씨는 그러면서 시중드는 하녀에게 전갈을 주어 보낸 후,
“면추는 했느니라, 방년 이십삼 세에, 응? 쯧! 보통학굔 마쳤구……·.”
“그러나저러나 어디서 그렇게 용히 젊은 부인을.”
“첩경이지! 동지 한 사람더러, 불가불 내가 결혼을 해야 하겠노라구 했더니 제 누일 선뜻 주더구나.”
“장하십니다, 들! 인백장이 달리 있는 게 아냐!”
“너 그렇게 몽정해쌓다가, 우리 마누라허구 연애 얼릴라?”
“어름어름하다가 뺏기십니다, 참.”
“아따 대수냐? 난 얼마든지 또 있자면 있단다!”
머리를 틀고, 통치마에 긴 양말을 신은 송필훈 씨의 부인이(김영애 여사가) 데릴러갔던 하녀의 뒤를 따라, 문지방에 나타났다.
“이어, 우리 마누라!”
송필훈 씨는 너스레를 떨면서 쫓아가더니, 머뭇거리고 섰는 부인의 손목을 끌어다가 옆에 앉히고는,
“자아, 박 군, 이 사람이 우리 마누랄세, 그리구 저 사람은, 내가 늘 이야기하던 우리 박상근 군……·한 고향친구에 원수지간이요, 아삼육이요 한 그 박 군…….”
나는 가볍게 허리를 굽히면서 내 성명을 말했다.
저편에서도 입 안엣소리로 인사를 하는 것이나 들리지는 않았다.
얼굴은, 송필훈 씨가 말하던 면추 정도가 아니라 잘하면 미인 축에라고 들을 만했다. 그러나 그녀의 기색은 쓸쓸하니 풀기가 없고 한껏 수심 겨워보였다. 흑시 지나친 선입주견의 소치인지는 모르나, 낯선 남자의 앞이래서 젊은 여자답게, 항용 수줍어하는 그것 말고도, 정녕 그는 경황과 즐거움을 잃어버린 마음 같아 보였다.
“술을 좀 권해야 않나?”
송필훈 씨가 술병을 집어 손에 들려주어서야, 부인은 마지 못해 내 잔에다가 서투른 솜씨로. 술을 붓는 시늉을 했다.
나는 답례로 잔을 보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자아, 나두 한 잔……·:”
송필훈 씨는 내미니 잔에 종시 마지못해 붓는 술을 주욱 마시고는, 부인의 등을 뚝뚜욱 치면서,
“나이 늙으면, 젊은 마누라가 다아 이렇게 귀여운 법야, 허어허허허허!”
“…….”
“그러잖으냐, 상근아?”
“걸 제가 어떻게 아나요?”
“그러니깐 너두 어서 장갈 들란 말야, 이쁘구 얌전하구 그런 색시한테루, 응?”
그 말에 부인은 곁눈으로 언뜻 나를 보다가, 마침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 눈이 어쩐지 이상히 맑고 은근하게 빛남을 나는 보지 아니치 못했다. 얼른 외면을 했으나, 애여 그 순간의 눈매는 머리 속에서 스러지질 않았다.
이윽고 부인이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을 송필훈 씨는 붙잡아 앉혔다. 그러면서 연신, 재미의 흥을 돋우려고 수선을 피우고 하는 것이나, 세 사람에서 둘이가 조심을 하는 데야 좌석이 용이히 어울릴 수가 없었다.
송필훈 씨는 부인을 술을 먹이려고 갖은 소리를 다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나대로, 그녀를 위하여 과실을 가져오게 했으나, 그것도 잘 손을 대려고 하지 않았다.
얼마를 그러다가 송필훈 씨가 변소에 가느라고 잠깐 자리를 비었다.
그 동안 이삼차나 일어서려다가 도로 붙잡히고 으니 마침 좋은 기회이건만, 부인은 아무런 동정이 없이 곱다시 앉아 있었다.
이내 송필훈 씨는 좌석으로 돌아왔다.
“어어 우리 마누라 착한지구! 그새 만일 뺑소닐 쳤으면 내 당장 불러다가 .크게 한바탕 꾸중을 할랬더니, 허어허허허!”
그러면서 부인의 옆에 가 주저앉으러다가 말고, 문득 무엇을,
“아! 가만있자!”
엉거주춤하고 서서 고개를 끼웃, 잠깐 생각을 하더니, 부리나케 되짚어 나가고 있었다.
한 오분은 지나서, 쿵쾅거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서는 송필훈 씨는, 여태 걸쳤던 단쟁 대신 양복에 외투에 모자에 이렇게 출입할 채비를 차렸다.
나는 앉은 채, 부인은 일어서면서, 다같이 뻐언히 바라다보는 둘이더러, 송필훈 씨는 침착치 못한 말씨로. 황망히 이르는 것이었었다.
“내가 그만 깜박잊구 있었어…… 내 지금, 서울 좀 다녀올게.”
“…….”
“…….”
“가면 아무래두, 낼, 으음 모오레, 모오레 낮이나 회정을 할테니깐.”
“아아니, 별안간 무슨 일이세요?”
그제서야, 내가 탓하듯이 묻는 것을 송필훈 씨는 어물쩍하면서,
“응! 저 거시키, 긴히 저어, 볼일이.”
“그렇더래두 원, 이런 법이 어딨어요?”
“법이라? 허어허허허……·우리 마누란 자네가 그 동안 잘 좀 보홀하게. 시종무관일세! 허어허허허……·.”
그리고는 부인의 어깨를 다독다독,
“내 곧 다녀오께, 응?”
“전 그럼, 집으루.”
“아암! 예서 기두루구 있어요.”
가기는 가려면서도 차마 난감한 눈치 같았다. (좀더 내가 유심히 관찰을 했더라면, 그의 얼굴에서 어떤 절대의 암투와 고민의 흔적을 발견했을 것이었었다.)
“박 군이 있는 이상, 금강력사가 보호하는 것보다두 더 드은든하니깐, 허어허허허! 자아, 그럼…….”
그러면서 돌아서려다가 말고 다시,
“그리구 참, 혼자서 심심할 테니깐 박 군한테두 와서 같이 놀구. 응?”
“자아 그럼…… 박 군, 내 다녀오믄세. 부탁하네. 모오레 오믄세.”
정신 차릴 겨를도 없이 이렇게 설레발이를 떨고는, 마침내 휑하니 밖으로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배웅을 하려하고, 부인도 그 뒤를 따라나가고,
하릴없이 나는 우두커니 앉았다가, 이윽고, 영감이 늙어갈수록 느는 거라곤 수선뿐이네 라고 피식 고소를 하면서 그러나 당장껏은,
“쯧, 자기 말대루, 갑재기 잊었던 소관이 생각이 났던 게지!”
이쯤 치지하고서, 별로이 괘념을 하지 않았다.
오후 세시. 저물기 쉬운 겨울날이라 거진 석양이었다. 나는 낭자한 배반을 치우게 한 후, 술이 취해 오르는 대로 자리에 비낀 것이 내처 잠이 들었던 모양. 갈증에 못 이겨 다시 깼을 때는 밤이 벌써 여덟시가 지났다.
하녀가 길어다주는 냉수를 몇 컵 거듭 들이켜고는, 탕엘 다녀나올 테니 그 동안 준비를 해달라고 저녁 식사를 분별시켰다.
그 말 끝에 하녀가, 저도 마침 생각이 나서, 걱정삼아 귀뜀을 한다는 것이,
참, 아까 그 부인네 손님은 저녁도 자시지 않고, 혼자서 실심해서 있더라고, 자꾸만 아마 우나보더라고 민망해 어떡허느냐고 손님은 그이 사랑어른허구 친구끼리시고, 허니 가서 위로라도 좀 해드려야 않냐고, 그런데 참, 그이네 양주분은 어쩌면 나이 그렇게도 층이 지느냐고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랑어른은 아씨를 무척 귀여워하시는데, 아씨는 그렇질 않나 보더라고, 밤이나 낮이나 새치름하고 있고 아무 흥도 없어보이더라고.
이렇게 객 적은 소리까지 쌔부랑대는 것이었었다.
나는 새수 빠진 소리를 한다고 하녀더러 지청구는 하였으나, 그들 송필훈 씨네 부부의 너무 늙은 남편에 대한 너무 젊은 아내의, 그 소위 모순과 갈등이라는 게 의외로 심각하고도 핍절한 바가 있음을 깨닫지 아니치 못하였다.
그러나저러나, 이 억지엣 시종무관의 입장이 자못 난처했다. 위로를 한다고서, 친숙지도 안 한 터에, 젊은 여자가 혼자 있는 처소엘 불쑥 찾아간다는 것은, 비록 의사가 결백하고 일변 친지를 위하는 노릇이라고 할지라도 심히 온당치 못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차라리 내 처소로 그녀를 청해온다면 좀은 더얼 혐의스럽다 하겠지만, 그역 일반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른 척하고 그대로 문두름히 있는 대서야 너무도. 능통스럽고 범연한 짓이었다.
“그럼, 어떡헌다?”
나는 탕에 들어가자던 것도 잊고 앉아서 두루 궁리와 생각이었다.
벽창호가 아닌 다음에야, 역시, 그냥 내버려두고 말 수는 없는 짓. 마음에 흐린 구석이 없는 것이니, 그럼 가보기루 할까. 하녀를 보내서 이리로. 청해올까.
옳아. 송필훈 씨가 이르기까지 했것다. 내 방으로 와서 같이 놀고 하라고 그 말에 좇아, 내가 청하지 않아도 제풀에 올는지도 몰라. 그래, 아무튼 그녀가 와서든지, 내가 가서든지. 저녁도 먹지 않았다니 밥상을 같이 가져오게 해서 함께 먹도록 권을 해. 병이 아니거든 구태여 식사를 귈하러들 며리는 않을 테니.
식사가 끝나거들랑, 과실이라도. 벗겨가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이야기하고 앉아서 놀아아. 그녀도 자연 기분이 섭슬려 말문이 터지진 않진 않을 것. 어울려서 담화가 오고가고 해, 그러는 동안에 수심과 번뇌를 잊어버리고 즐거운 시간이 지나가.
밤이 이윽하니 깊어. 밤이 깊어.
깊은 겨울 밤 온천 여관의 단출한 방. 방 하나가 각기 한 세계식인 그 온천 여관의 방. 젊은 두 남녀, 나이 늙은 남편으로 하여 오뇌와 수심에 잦아진 젊은 여인. 밉지 않게 생긴 젊은 여인. 추파에 가깝던 아까의 그 눈. 건드리기가 무섭게 꼭지가 떨어지듯 무르익은 한 덩이의 과실. 그리고 불구자 아닌, 심상한 젊은 사나이.
“아뿔사!”
나는 가슴이 제풀에 연해 두근거려오다가, 마침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별안간 소스라치게 놀래어 벌떡 일어서면서 부지중 소리가 커졌다.
“짐짓 그런 기회가 생기게 해주느라고, 늙은 남편은 잡시 피신을 한 것이 아닌가?”
다음 순간 이 생각이 번개같이 머리를 스치면서, 등골이 서어늘했다.
나는 일각도 지체함이 없이, 그대로. 단쟁을 벗어 던지고는 허둥지둥 양복을 갈아입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피득펴득 깨우쳤다; 송필훈 씨가 실상은 지금 와서는 완전한 한인(閒人)이라는 것, 따라서 결코 그와 같이 바삐 날 뛸 소관이 있을 내력이 없다는 것. 그러므로 일은 적실코 그 순간에, 이 목적을 위해 고안한 연극이었다는 것.
마지막, 트렁크를 집어 들고서야 나는 약간 침착을 회복해서 스스로에게 반문할 정신이 났다.
“그러기로소니, 내가 이다지도 질겁을 하여 날뛸 까닭이야 없지 않은가?”
그러나 뒤미처, 손을 대이기가 무섭게 꼭지가 떨어질 듯 무르익은 한 덩이의 과실을 짯짯이 바라보고 섰는 나 자신의 환영이 눈앞에 얼씬하면서 다시금 나는 한축을 느꼈다.
트렁크를 들고 마악 문치로 나가는데 뜻밖에도 그때,
“계세요?”
하고 찾는 여인의 음성이 들렸다.
얼결에 그만,
하고 대답이 나와졌고 몸 둘 곳을 몰라 쩔쩔 매겠는데, 문은 방싯이 열렸다. 송필훈 씨의 부인임은 물론이었다.
생후에, 그렇게도 무렴한 경우를 당해본 적이라곤 없었다. 참으로 쥐구멍이 있으면 숨든지, 보자기로 얼굴을 덮든지 하고 싶었다.
무심코, 수줍어 하는 미소를 드리우고 문을 열다가 깜짝 놀래는 그 얼굴.
대담히 그녀는 내색을 숨기려고도 않고, 정면하여 나를 바라다보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 그녀의 눈은 함빡 원망스러워하면서, 가볍게 떨리는 목소리로,
“떠나세요?”
기다렸던 것처럼 얼른 받아서,
“네0에.”
그리고는 부둥부둥, 그가 막아 섰는 문을 향해 걸어나갔다.
진땀에 등을 적시면서 복도로 나와서야 고개를 돌려,
“저어, 장씨 오시거든, 제가 졸지에 급한 볼일, 있어서 이내 바루 떠났습니다구, 그 말씀이나 좀.”
하고, 부탁이랄까 변명이랄까, 인사를 남기기를 가까스로 잊어버리지 않았다.
층계를 내려가면서 생각했다. 늙은이는 늙었다고 도망을 빼고, 젊은 놈은 젊었다고 도망을 빼고. 세상엔 싱겁게 서글픈 웃음거리도 있는 거라, 고.
송필훈 씨의 부고를 받기는, 그러고서, 그 다음해 가을 ‘공교로이보’ 만주사변이 인 직후였었다. 나는 눈물이 한 줄기 흐름을 어찌하지 못하였다.
“무어 찬이 있어예조!”
“온, 별말씀을…….”
오히러 지나친 성찬이었다. 그 지나친 성찬이 나는 불안했다.
“솜씨가 없어 놔서, 음식이 아무 맛도 없답니다.”
“이렇제 와서, 펠 끼쳐 어떡합니까?”
“괜히 자꾸만 그리셔 ! 자아, 드세요.”
4
십 년이 지나서, 우연히 그녀의 집 하숙 손님으로서의 나를 환대하기 위하여, 밥상머리에 앉아서 한 잔의 반주를 권하는 김영애 여사는, 십 년 전 송필훈 씨의 젊고 수심겨운 아낙이던 그 김영애 여사와는 많이 같으면서도 일변 많이 다른 바가 있었다.
목간을 하고 돌아오자 미구하여 노인이 저녁 밥상을 내왔고, 그 뒤를 따라 김영애 여사가 쟁반에 주전자와 잔을 받쳐 들고 나오고
서슴지 않고 방으로 들어오면서 혼잣말같이,
“시방두 약줄 질겨 하시나?”
이런 소리를 하고는 밥상머리에 앉아 손수 마악 복개를 벗져주는 참이었다.
며칠만큼씩 밤이면 다녀가곤 한다는 이 집 영감님이, 그 며칠 만큼씩 밤이면 와서는 자시곤 하는 비장의 술인 모양, 빛깔이 벌써 이 당철에 얻어보기 어려운 상품의 일본주였다.
“이렇게 글쎄, 혼자 객지루만 다니셔서 어떡하세요?”
두 잔째 술을 부어주면서, 아까 처음 만나서도. 그런 의미의 말이 오고가고 하던 객정을, 다시금 내는 것이었다.
“오죽 불편허구 고생이세요.”
“편해 좋던데요.”
“어쩌나아! 영 그래, 장간 안 드실 작정이세요?”
“꼭이 작정투룩은 없지요만.”
“아마 여잘 싫어 하시나보조”
“그런 것두 아니지만, 난 아내니 가정이니 살림살이니 하는 게 무서워、모 몸이 그런 데다 남이 꼼짝을 못 하구 사는 걸 보면, 그만 무서워요!”
“어찌믄! 그래, 한평생 두구 혼자 사실 테예요?”
“모르죠.”
“그러지 마시구, 장갈가세요. 시방 세상에 좋은 색시가 조옴 많아요? 내라두 중맬 서드리겠으니.”
“고맙습니다.”
“사람 사람이 다아, 남녀가 만나서 살구, 자손 낳아서 기르구, 살림살이하구, 그러는 게 한세상 낙인데.”
“인전 그런 재밀 볼 때도 늦었답니다. 서른다섯인데……·낼모레가 마흔.”
“남자 서른다섯이 무어 많은가요? 시방 한참이신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김영애 여사의 태도는 오랫동안 사귀어 온 친지 이상으로, 정도 이상으로 스스럼이 없고 곡진했다. 그리고, 거기 섭슬러 나도 천연히 응대를 하기는 하던 것이나 마음은 차차로 불안하고 꺼림해 하지 아니치 못했다.
늙은 영감의 젊은 첩과 독신의 하숙 손님……그런데 일찍이 어떤 고패에서 잠깐일망정 그 여자의 마음을 설레어준 그 남자.
몇 잔을 혼자만 받아 마시고, 마시고 하다가 생각하니 대접이 아닌 것 같아서 한 잔을 부어 여자에게 권했다:
“술을 어디 먹을 줄 아나요?”
그러면서도, 잔을 받아서 쪽 다아 마시고는,
“숭보시겠네. 여편네가 술 먹는다구, 호호호.”
잔이 내게로 돌아왔다.
“과한데요.”
“머얼! 잘 잡수시믄서.”
“질견 해두 전처럼 많인 못 한답니다.”
“그래두, 고거 몇 잔야…….”
나는 두 잔째 그에게 권해보았다. 그는 사양치 않고 받아 마시면서,
“취하믄 어떡하구! 통이 먹을 줄 몰라요 먹지두 않구……. 참, 이런 반간 으런이나 만났으니깐, 맘이 괜히 질거서……·.”
먼점의 한 잔에 그새 벌써 얼굴로 불그레니 오르는 것이, 지금 하던 발명이 노상 빈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여자가 나 지경이 되믄, 다아 본 신세예요……·.”
술을 부어서주면서, 한숨이 흐르르, 푸뜩 나오는 탄식이었다. 그리고는 한참이나 잠잠하고 있다가 다시,
“내 신센 우리 오라버니허구, 송씨허구, 둘이 들어서 망쳐줬지! 쯧! 돌아간 이들을 탓하니 무슨 소용일꼬만.”
나는 덤덤히 잔을 마실 뿐, 막상 무어라고 대껄을 할 바를 몰랐다.
“글쎄, 그이가 딱 죽구 나니 어떡허겠습니까? 재산이 있어요오? 내게 딸린 장성한 자식이 있어요?”
“…….”
“먹군 살어야 하겠구, 또 막말이지, 젊은 것이 혼자 어떻게어요? 남편이나마, 무슨 그리 정이 도탑던 남편이라구!”
“…….”
“할 수 없이, 돈냥 있는 사람의 작은 집으루 들어갔죠, 시굴서……·맘이야 그렇잖지만, 헌 여편넬 누가 정실루 모셔 가자구하나요!”
주는 잔을 아무 소리 없이 연방 마시면서, 하소연은 이윽고 짙어갔다.
속절없이 나는 그것을 받고 앉았어야 했다.
“이태만에 갈렸죠! 큰 여편네 강짜 등쌀에, 못 살구서 쫓겨난 셈이요.”
“…….”
“한 일 년 가량 혼자 다니다가, 어떤 영감쟁이 막지기루 들어갔더니, 그전 자식들이 시길하는군요 재산이나 빼돌리려구 간 줄 알구서…….”
“…….”
“넉 달만에 털구 나와선, 에이 인전 죽어두 혼자 산다구 맘을 독하게 먹었더니만…… 꼬박 삼 년 동안 혼자 살긴 살었군요. 그러니 고생이 조옴 했겠어요? 견디다 견디다 못 해서 마침 누가 권두 하구 하길래, 에에라 내가 무얼 열녀문을 바라구서 뒤늦게야 홀몸으로 굶주리구 살까보냐구. 또. 한 번 팔잘 곤쳐서, 시방 이 영감을!”
“…….”
“마음은 끔찍 착해요. 날 위해줄 줄 알구, 살림 과히 군색잖구, 그것 한 가지가 다행이지, 참, 남편이래야 어디 남편인가요? 환갑 진감 다아 지난 송장인데.”
“…….”
“글쎄, 그러니 말예요! 인제 겨우 서른두 살 먹은 계집이 십 년지간에 네 번째 아네요?”
“…….”
“그야 네 번은 말구 열 번이래두, 남처럼 호강이나 했다면 몰라요 남편이 넷인데 그 중 셋이 다 늙어빠진 영감쟁이로군요. 그리구서 송씨만 말군, 첩데기 아니면 막지기.”
“…….”
“세상, 팔자 괄자 해두 날 같은 팔자가 어딨어요.”
“…….”
“…….”
이야기가 엔간치 끝이 난 모양,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깜박 말이 없이 앉아서 상심스런 얼굴로 한눈만 팔고 있는 것이었다.
훨씬 그러다가, 얼마만에야 경우 정신이 들어 가지고는,
“아이, 날 좀 봐. 아무래두 내가 매쳤어! 진지두 못 잡수시게……·.”
이렇게 반색을 하면서,
“어여 인전, 진실 좀 뜨세요, 절 어째! 국물서껀, 찌개서껀 죄다 식었어!”
내가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모친을 불러내어, 덥혀서 들여오라고 국과 찌개 그릇을 내보내더니,
“그럼 국물서껀 더울 동안, 한 잔만 더 드시지?”
그리고는 술을 부어주면서 신신당부가,
“그리구우, 우리 집에 오래무우룩 오래두룩 계세요, 네?”
“…….”
나는 속으로, 이건 정말 큰일이 나질 않았더냐고, 뜨윽 걱정스러워, 술을 마시는 척하면서 짐짓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약간의 취기를 띠운 얼굴로, 께웃하구 바로 들여다보면서 오래두룩 오래두룩 있으란 말을 하던 그녀의 눈. 그 눈.
은근함이 가득 어리운 그 눈이 아니었더라면, 아무 다른 뜻이 없고 단지 외로움에 쳐운 담담한 마음이요, 따라서 영혼의 깨끗한 의탁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었다. 미상불 또, 한가드락 그러한 무엇이 나타나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주장은 간곡하기는 젊은 생리다운 애욕인 그것이었다.
그렇다고서 그것이 십 년 전 그때 그 밤엣 눈의 재생이요, 그 발전이더냐 하면 물론 그럴 리가 없었다. 지금 이 여자에게는 하필 박상근이란 인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젊은 남자가 필요한 것이었다. 늙은 영감쟁이가 아닌 젊은 사람, 씩씩한 청춘.
지극히 자연스런 (인간이기 때문에) 요구일 것이다. 조금도 나는 그것을 탓하거나 나무랄 이유도 권리도 없었다. 나는 다만, 내일부터 또다시 하숙을 구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입맛이 썼다. 하숙은 그러나, 정 다급하거든 임시로 당분간 여관이라도 잡아들면 그만이었다. 또 그렇게라도 해서 아무튼지 한시바삐 이 집을 뜨기는 뜨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집을 뜨는 그 마당이 차마 박절하겠으니 그게 난관이었다.
십 년 전 그날 밤, × ×온천서 트령크 하나를 집어들고, 도망을 빼던 그때와도 달랐다.
떳떳이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떳떳한 이유를, 백이나 갖다가 대더라도, 이유 되질 않을 것이었다.
자청해서 왔어. 피차에 한동안 있으려니 한 것. 오고보니 괄시 못 할 주객간이어. 대접이 융숭해 오래도록 있어 달란 부탁까지 받아. 한 것을, 무엇 때문에 단 사흘이 못 되어서 짐짝을 도로 꾸려가지고. 나가다니 그런 실없은, 그런 싱거운, 그런 박절한 도리라곤 없었다.
“어떡헌다!”
궁리를 해도 묘책이 없고 망신은 당해둔 망신이었다. 속도 모르고 여자는 덥혀온 국물과 찌개를 받아놓으면서 살뜰히 식사를 권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울고 싶으게, 차차로 죄스러워 못하겠었다.
〈1941년〉
2016년 12월 19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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