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오름이.........
2월 10일 두해전 논산훈련소로 입대했던
아들네미가 드디어 군에서 제대를 하였다.
어쩌면 우리식구들은 아들의 제대기념으로 앞으로 없을 지도 모를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하였다.
목포에 도착한 시간 새벽 여섯시........
아직 뱃시간이 남아 목포시의 이골목 저골목을 둘러본다.
목포의 시가지나 건물에 붙은 간판등은 TV나 영화에서나 볼수 있는
60년대의 한 장면 같이 옛스러움이 풍겨온다.
옛 시절의 향수에 젖게 할 만큼 을씬년스럽고 고풍스런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목포항 선착장..........우리를 태우고 갈 퀸 메아리호는 먼 길을 떠나는 정숙한 여인처럼
정갈한 모습으로 항구에 앉아있다.
갈매기는 은빛날개를 번쩍이며 항구를 넘나든다.
아침 여덟시가 넘어 퀸 메아리호는 긴 뱃고동을 울리며,
하얀 굴뚝에 회색빛 연기를 뭉게뭉게 내 뱉으며 제주도로 뱃머리를 돌리고 있었다.
잘있거라 목포항아! 잘 있거라 유달산아!
목포항 뒷편, 유달산의 산세는 기기묘묘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한편의 그림같다.
항구를 넘어설 무렵의 바닷물은 검회색의 흙빛을 띠고 있다.
뱃머리에 기대어 끝없이 펼쳐지는 한려수도의 경관은 우리의 넋을 송두리쩨 빼앗아간다.
신기한 것은 도끼를 거꾸로 박은 모습의 무인도........
두아이가 다정이 손을 잡고 서있는 쌍동이 섬바위.
해안 절벽의 변화무쌍한 풍경들이 환등기처럼 다가왔다가 멀어져만 간다.
아슬아슬하게 깎어지른 해안 절벽의 아름다움에 관광객들은 너도나도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댄다.
두시간이 지났을까 바닷물은 점차 쪽빛으로 변해가고 먼 빛으로 추자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추자도, 가운데엔 아름다운 현수교가 두섬을 잇고 있었다.
오후 두시가 넘어 제주 서귀포항에 퀸 메아리호는 붕~~~
제법 저음인 알토의 음성으로 뱃고동을 울려댄다.
여섯시간의 긴 바닷나들이가 끝났음을 알린다.
우리는 부두에 대기한 버스에 몸을 실고 숙소로 향하였다.
고불고불한 제주도 해변 길.........드문드문 돌담으로 둘러쌓인 무덤이 눈에 띤다.
돌담안은 저승, 돌담 밖은 이승이라나 제주도 사람들의 발상이 기발하다.
도중의 도깨비 도로는 자동차가 엔진을 정지해도 경사진 윗쪽으로 굴러간다.
제주도에는 이러한 곳이 다섯곳이나 있다고 하니 신기할 뿐이다.(착시현상이라고 함)
버스는 몇시간을 달렸는지 아직 목적지가 먼 모양이다.
가이드(주둥이로 한 몫본다는)의 말로는 숙소로 가는 직통의 도로가 막혀서 외곽으로 돌고 또 돈단다.
얼마를 달렸는지 정말 머리가 돌 지경이다.
툴툴거리며 숙소에 도착했다. 차 안에서 뜬눈으로 지 새웠지,
배에선 바다 구경하느라 정신팔려 있었지........
우리 가족은 느추한 잠자리임에도 금새 잠에 골아 떨어지고 말았다.
다음날(15일) 새벽 다섯시 부시시 눈을 뜨고 토끼 세수를 대충하고 짐 봇따리를 챙긴다.
식당으로 직행하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던가?
맛없는 아침밥을 산행을 생각해서 꾸역꾸역 어거지로 퍼넣는다.
출발지는 성판악 코스........주섬주섬 배낭을 얼러 메고 한라산 성판악 등산로 입구로 발 걸음을 내딛는다.
새벽 여섯시라 아직은 어두운 산길.........앞서가는 등산객들이 뒤쪽으로 후래쉬를 비춰준다.
너무도 고맙다. 그래서 산에 가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걸 배우나 보다.
넙쩍 넙쩍하고 울퉁불퉁한 돌들이 제멋대로 깔린 등산길........발바닥이 아파온다.
한동안의 소나무 숲이 이어지고 너도밤나무 숲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어서 구상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주목나무와 너무도 비슷한 구상나무 군락지가
끝없이 이어진다. 두어시간을 지났을까 산길에 드디어 눈(雪)이 보이기 시작한다.
준비해간 아이젠을 착용해야 되지 않겠냐고 집식구는 걱정이다.
그러나 조금 더 걷기로 하였다. 드디어 속밭 쉼터가 나타난다.
두시간 이상을 걸었으니 발도 피로하고 화장실에 볼일 볼 사람도 있고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휴식 뒤의 산길은 이제 평지를 지나 제법 커다란 둔덕이 앞을 가로 막는다.
제주말로 아마 오름이겠지......... 마누라와 딸네미가 가뿐 숨을 몰아친다.
중간중간 힘에 겨워 발길을 멈추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드디어 진달래밭 휴게소 머리위로 빤하게 눈 덮인 한라산 정상이 보인다.
어느 샌가 어줍짢게 건방진 생각이 문득 든다.“에이 한라산도 별것이 아니구먼........”
그때 진달래 대피소에서 안내방송이 나온다.
“한라산을 찾으신 등산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진달래밭 대피소입니다.
이곳은 해발 1500미터 오늘하루도 즐거운 등반되시기 바랍니다.”
아이구! 다 올라온 줄 알았더니 고지가 바로 코앞인데 앞으로도
해발 450미터가 더 남았다니 맥이 다 빠진다.
우리는 가지고간 물로 목을 추기고 초코렛과 귤로 재충전을 하였다.
아이젠을 단단히 동여 매고 정상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어언간 구상나무 군락은 사라지고 험한 바닷바람에 앙상한
뼈다귀만 남은 구상나무 잔해만 널려있다.
꼭 전쟁이 쓸고간 풍경같이 가파라진 산등성이는
구멍이 뻥뻥 뚫린 크고작은 현무암 바위덩이와 화산재들이 뒹굴고 있었다.
역시 기온이 낮으면 식물들도 생존하기 힘든 모양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자잘한 돌들로 이루어진 산마루에는
눈꽃향나무(덩쿨향나무)가 흙냄새를 맡으며 산 바닥을 기고 있다.
역시 식물들도 우리 인간이나 동물들처럼 기후가 험악하고
척박한 땅위에라도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자라나는 생명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여를 걸었을까 이제 정상을 향한 나무로 만든 계단이 계속된다.
어느 산을 가드라도 느끼는 일이지만 산에 나무든 쇠든 시멘트든 계단을 만드는 것은
정말 싫다는 생각이 든다.
“왜? 사람들은 자연의 흙길위에 인공의 구조물을 설치한단 말인가?”
자연을 훼손한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정상에 먼저 도착한 아들놈이 빙그레 웃으며 우리를 맞이한다.
수많은 등산객은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 저마다 카메라를 눌러댄다.
눈물이 팽 돌만큼 매서운 바람이 뺨을 때린다.
남해의 거센 바닷바람이 길고 먼 등산길에 지치고 땀에 젖은 등산객들을 추위에 떨게한다.
정상에 올라 산 저 아래로 펼쳐진 백록담을 내려다 본다.
수십만년 전 용암이 분출한 한라산 분화구는 이제 사화산이 되어 잘잘하게 물이 고여있다.
운이 좋았다. 한라산 정상에서 백록담을 볼수 있는 날이 일년에 90일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데
어저께까지만 해도 비바람으로 제주행 비행기도 뜰수 없다고 했는데
오늘 우리에게 얼굴을 내보이는 백록담...........정말 반가웠다.
마치 망사에 가린 예쁜 얼굴을 살며시 내미는 산골처녀처럼
안개에 가린 수줍은 백록담은 우리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아름다웠다.
허나, 여기서 머무를 수는 없지 않는가?
우리는 하산길로 방향을 틀 수 밖에 없었다.
하산길 둔덕을 돌아드니 뒤편으로 병풍을 두른듯 현무암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룬다. 왕관능이라고 한다.
계곡위로 뾰족뾰족 솟아 올라 봉우리가 흡사 왕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능선의 배경을 카메라에 장면을 담아 본다.
계곡쪽으로 이어진 경사로는 완만한 구릉을 이루고 저만치 헬기장이
눈에 띤다. 시간은 열한시.........점심때가 되었다.
먼저 온팀이 완만한 둔덕을 바람막이로 점심을 먹고있다.
우리도 적당한 곳에 자리잡고 부랴 부랴 배낭을 풀어 헤치고 도시락을 꺼낸다.
추위에 딱딱하게 궂어버린 밥덩이와 찬거리를 나무 젓가락으로 뚝뚝 떼어
입속에 집어 넣는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고 한라산 등산도 식후의 일이 아니겠는가?
그때 까악! 까악! 까마귀가 울어댄다.
아마도 무리를 지어 밥을 먹는 등산객의 반찬냄새를 맡고 모여든 모양이다.
제주도에서는 길조로 여긴다는 까마귀, 까마귀는 어디를 가나 흔히 볼수 있다.
까마귀에게 먹다만 점심을 던져주고 다시 하산길을 재촉한다.
관음사쪽........하산길은 급경사를 이룬다. 아직도 내린 눈이 발등위를 올라온다.
음지로 이루어진 관음사 등산로는 한사람이 겨우 지날 만큼 좁다랗게 이어진다.
젊은이들은 마치 스키를 타듯 양손의 지팡이를 쭉쭉 뒤로 민다.
골짜기를 넘어 다시 산등성을 돌아드니 반갑게 맞아주는 삼각봉.......
용암이 분출하다 정지한 듯 우뚝 솟은 삼각봉..
여기서 한라산은 대미를 장식하나 보다.
삼각봉을 배경으로 한 장면 찰깍하고 다시 하산길은 이어진다.
용진각 쉼터에서 5분간 휴식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자갈로 이루어진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길 양 옆으로 거대한 입을 벌린 계곡물이 멈춰선곳........
커다란 구덩이가 검은 입을 벌리고 우리들을 유혹하는 듯 하다.......
개미목이다. 혼자가면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한라산의 하발치 양쪽으로는 쭉쭉 뻣은 소나무들이 열병식하는 군인처럼
우리들을 환송한다.
하늘에서는 싸락눈이 부실부실 내린다.
학교문을 나서는 졸업생에게 졸업을 축하하는 꽃가루를 뿌려주듯
한라산은 우리에게 축복의 눈가루를 뿌려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본다.
여기서 서서히 여덟시간의 길고 긴 한라산 산행은 끝나가고 있었다.
관음사 휴게소에 도착하여 버스를 갈아타고
서귀포항에 도착했다. 퀸 메아리호는 우뚝솟은 굴뚝위로 흰 연기를 뿜어대며
출발 준비를 하고 묵묵이 서있다. 붕~~~ 긴 뱃고동을 울리며 출발을 알린다.
긴 잠을 청한다.
...............집에 도착한 시간 새벽 3시 40분 샤워를 하고 다시 잠자리에 든다.
아침에 일어난 시간 2월 16일 07시 30분, TV를 틀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선종하셨단다. “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김수환추기경님의 생전의 모습이 되풀이되어 방영된다.
그래!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그리고 용서하고.........ㅎㅎㅎ
삼각봉에서......
첫댓글 선배님....훨친한 아드님 제대 축하드리구요..화기애애한 제주도 가족 여행 축하드려요~! ㅎㅎㅎ..올려주신 여행기 읽으니 지난번 제주도 갔을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무척 오랜만에 나왔네유~~~ 담엔 지리산 산행기를 올리려구 허는디.........뜻대루 될는지 모르겠네유.......ㅎㅎㅎ
카 ~~ 물건너 댕겨 오셨군요 ~~ 무탈하게 댕겨온 아들넘 축하 드림니다 ~ 자주 가족들과 나들이 댕기는 일이 많길 바람니다 ~~
봉이 후배님 아들은 제대 했겠쥬?
네 제대 했네유 이제 부터 고생이지유 뭐
달형 선배님 부가 되서 그렇게 멋있고 예쁜 자슥놈 성인을 마들어 놓고 그동안 힘들었을텐데. 그 정을 좀 더 만끽하고 좀 더 보고파서... 애정이 갑니다. 한번쯤 산악회에도...
맞어유~~~ 누군가 했더니만...........ㅋㅋㅋ 천안에 살아서 시간이 잘 맞지 않더라구유.......ㅎㅎㅎ
제주! 나도 배타고 꼭 가고 싶은곳인데 함께갈 사람을 못 구했어유 배멀미을 해서 못간다나 비행기로 갔다가 비행기로 훌쩍 다녀오니 별루더군요 아묻든 멋지십니다
산행기를 너무 길게 써서 좀 지루허쥬?...........2회에 걸쳐 올릴까 하다가.......ㅋㅋㅋ
어쩜~그리 아들은 아빠를...딸래미는 엄마를~붕어가족이네요 ㅎㅎ....한라산백록담 댕겨온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6년이나 됬네요...언제나 가족여행을 가볼지 부럽습니다....늘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 이루소서.....
양은이파와 한라산을 한번 더 가봐야 헐것 같아유~~~~ㅎㅎㅎ
한라산 등반기 잘 읽었슈~각자의 생활이 있어서 아들,딸과 함께하는 가족여행 쉽지 않은데 부럽네유~근디~윤여사님 맞유? ~~ㅎㅎㅎ
맞어유......ㅎㅎㅎ
보기 좋습니다, 부럽기도 하구요, 3월에 아덜놈이 휴가 온다는디 지두 가까운 곳이라도 꼭 댕겨 와야것내유...............
그러유 골목대장 후배님! 아들이 휴가오면 좋은 추억거리 만들어 주세유...........ㅎㅎㅎ
홍성 빨간 연탄에 가 봤유, 선배님 얼마나 잘해주시던지 반가웠습니다, 아들놈 오면 한번 데리고 가야것유................
달형아...어의정ㅈ쪽으로산헁해서정상..하산은관음사쪽으로장관이지요......아들냄이기념달형아행복......한라산풍경추억잘보고갑니다....고맙읍니다......사랑합니다..ㅎ..ㅎ
달형아..아들냄이전역을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