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군은 대표적으로 술과 법에 정통한 사람이다. 술과 법에 이력이 난 사람이라면 술자리 대화에서 욕이 상용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준석에 의하면 윤 군은 ‘이 새끼 저 새끼’가 입에 붙었다고 한다. 그러나 욕의 세계에서 보면 그 정도는 욕이라고 할 수 없는 ‘이 분, 저 분’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동훈 어린이에게 입에 담기 쉬운 욕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성적 표현으로 욕을 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만고불변, 인류 공동의 문화이다.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군대에서 많이 사용되는 “X으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일 것이다. 그런데 같은 단어지만 정반대의 의미로 쓰이는 “ X까!”라는 욕도 있다. 전자는 강압과 복종을 요구 하지만 후자는 뱃짱과 무시의 의미이다. 용도에 따라서 의미가 전혀 달라지는 것이다. 윤 군과 동훈 어린이의 관계가 전자였는데 국힘의 비데위원장을 맏으면서 맡으면서 후자의 관계로 바뀌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욕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것이 인류보편의 원칙이다. 그러나 욕은 아무 때나 하는 것보다 적절한 시기에 해서 최소한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어느 한 쪽에서라도 시원해야 효과가 있는 것이다.
욕에도 용감하고 확실한 욕과 소심하고 옹졸한 욕의 격이 있는 법이다. 나이 먹은 모든 사람의 소원은 無病長壽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찰친 욕은 “벽에 똥칠 할 때까지 有病長壽 하시기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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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뭐 하는 사람인지 나는 잘 모르지만 민희진이라는 여성분이 기자회견 하는 자리에서 시원하게 욕을 했다는 기사를 보고 생각이 난 일이다. 기분 나쁜 사람이 욕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지 않아도 욕을 하는, 즉 자기 기분이 좋으려고 욕을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즉 약자가 억울하거나 분해서 욕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강자가 약자에게 욕을 하는 것은 인격이 저렴함을 찬란하게 연출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분이 용산에 살고 있다.
욕을 많이 한 것이 아니고 많이 드신 분으로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으로 노무현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한 때 노무현 욕을 하는 것이 국민정신스포츠일 정도여서 길거리에서 돌뿌리에 걸려 넘어져도 “노무현 때문에!”라던 시대였다.
노무현 대통령 때문에 손해를 보거나 기분이 나쁜 사람들이 욕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예를 들면 부동산 값 많이 올랐다고 종부세 만들고 사립학교 주인이 자기 마음대로 못하게 하고 배다른 형제인 북한에 대해서는 인심 쓰고 큰 형님 죠지 부시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고 참 마음에 안 드시는 거 많았을 것이다.
그 분들은 국보법도 안 고치고 사학법도 안 고치고 작통권도 환수 안하고 재벌의 계열사 지배비율도 안 줄이고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왜 고치고 지랄이냐는 말씀이셨다.
그런데 정작 자기는 아무 것도 걸린 것이 없는데 덩달아 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문제였는데 그것은 당시 언론에 의하여 조성된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용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욕잔치를 언론이 철저히 쉴드를 쳐주는 상황이다.
나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게 성질이 청결하지 못해서 욕을 좀 하는 편이다. 그래서 낮에는 조심을 하지만 밤에는 조심할 수가 없어서 아내의 증언에 의하면 꿈에서 내가 하는 욕을 들으면 공포영화급이라고 한다. 살아온 날이 험난하다 보니 그런 걸 어찌하랴?
그러나 나는 욕을 예수에게서 배웠다.
잘 모르시는 분이 많지만 성서에는 예수가 화를 내는 장면이 여러 군데 나와서 예수의 입에서 “아니? 그렇게 심한 말을?”하고 생각할 만한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 것을 볼 수가 있다.
예수가 가장 찰지게 욕을 한 것은 더불어 논쟁을 하던 이들을 향하여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나와 함께 하지 않으면 모두가 나의 적”이라고 했다. 이것은 마치 토라져서 심통이 있는데로 난 어린아이가 토라져서 제 편을 들어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모두 미워.”라는듯 하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이 걷는 길에 대한 예수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나도 흉내를 내보려고 하는데 잘 안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