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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와 라헬의 신앙고백
창30장 14절 ~ 24절
밤하늘의 스많은 별들이 저렇게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빛을 찬란하게 뿌리고 있는지, 어떻게 달은 은은한 빛을 발하는지, 어떻게 태양은 기름을 공급 받지 않는데도 이글이글 타며 그 열과 빛과 크기가 변하지 않는지, 어떻게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고 우박이 내리는지, 어떻게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리고 비 온 뒤에는 무지개가 아름답게 펼쳐지는지 사람들은 모릅니다. 어떻게 땅 속에서 무가, 감자가, 고구마가, 땅콩이 자라는지, 어떻게 풀에 쌀이, 밀이 달리는지, 어떻게 나무가 자라 밤을, 사과를, 배를 맺는지, 어떻게 뻗어난 줄기에 호박이, 수박이, 참외가 열리는지 사람들은 모릅니다. 어떻게 흙에서 빨갛고 노랗고 하얀, 아름다운 꽃이 나오는지, 어떻게 바다와 저수지와 강과 내에 각종 물고기들이 우글거리는지, 물을 먹고 사는 물고기들이 어떻게 그렇게 찬란한 빛을 발하는지, 어떻게 사람의 온 몸 구석구석까지 영양분과 산소가 공급되고 순환되는지 모릅니다. 사람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죽어서 어떻게 되는지 모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땅을 밟고 살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많은 다른 별들에는 사람이 없고 오직 이 지구별에만 사람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분명히 압니다. 이사야 45장 18절에 말씀하십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하늘은 A신이, 땅은 B신이 지은 것이 아닙니다. 하늘도 땅도 모두 하나님께서 지으셨습니다. 이사야 45장 5절에서 7절에도 말씀하십니다.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이 없느니라. 거룩하시고 전능하시고 우주를 지으시고 사람을 구원하시고 역사의 주인이 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이분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살아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금년에도 가을에 오곡백과 밀을, 쌀을, 보리를 주셔서 먹고 살게 하십니다.
1. 합환채와 레아와 라헬의 잉태
오늘 본문에도 보면 야곱 시대에도 밀과 보리를 먹고 살았습니다. 밀과 보리를 추수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레아의 맏아들 르우벤이 추수하는 곳에 구경 갔다가 합환채를 발견했습니다. 산삼만큼 발견하기 어려운 합환채를 발견한 것입니다. 합환채가 영어로는 메이애플(Mayapple 혹은 만드라이크(mandrake) 히브리어로는 ‘뚜다이’라고 합니다. 지중해 동쪽 연안에서 자라는 것으로 3,4월에 흰 꽃과 자주 꽃을 피우는데 그 향기가 얼마나 진하고 매혹적인지 아가서 7장 13절에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열매는 계란 만한데 아주 샛노랗고 뿌리는 인삼처럼 사람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중동 지역에는 합환채를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르우벤이 갖고 온 것입니다. “엄마 이게 뭐야?” “어머나, 합환채네!” 레아는 산삼을 캔 것처럼 기뻤을 것입니다. 그런데 라헬이 그 소식을 듣고 ‘저것을 내가 먹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언니는 벌써 아들을 넷이나 낳았는데 자기는 아들을 하나도 낳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종 빌하를 통해 두 아들을 얻었더니 언니도 자기 여종 실바를 남편에게 주어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니 레아의 아들은 여섯, 라헬의 아들은 둘입니다. ‘내가 저것을 먹고 아들을 낳아야지.’라고 생각한 라헬이 레아에게 갔습니다. “언니!” “왜?” “르우벤이 갖고 온 합환채, 나 줘.” 그 말에 레아가 열을 받아 “야, 너는 남편을 독차지하고 살면서 내 아들의 합환채를 달라고? 뭐 이런 게 다 있어?”라고 했을 것입니다. “언니, 흥분하지 마. 그 합환채를 내게 주면 오늘밤에 내 남편을 언니 방에 보내 줄게.” 슬픈 여자 레아가 합환채를 주고 그 남편을 사서 그날 밤에 남편과 잠을 자게 되는 것입니다. 레아가 예쁘게 단장을 하고 있다 해질 때 남편이 들에서 오니 “오늘은 내 방으로 가셔야 돼요. 내가 라헬에게 합환채를 주고 당신을 샀어요.”라며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레아의 방에 들어갔습니다. 레아는 그런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서러웠겠습니까? 자기 남편과 마음대로 자지도 못하고 흥정해서 자야 되니 말입니다. 그래서 잠을 자면서도 기도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몇 년 간 닫은 레아의 태를 하나님께서 다시 열어 주셔서 레아가 잉태했습니다.
2. 레아와 잇사갈
레아가 아들을 낳고는 “하나님께서 내게 값을 치러주시는구나. 내가 내 여종 실바를 남편에게 주었더니 그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값을 치러주시는구나.” 하며 그 아들의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감사할 줄 알고 찬송할 줄 아는 레아에게 하나님께서 잉태의 복을 주셔서 또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레아가 너무 기뻐서 “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후한 선물을 주시네. 내가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 남편이 나와 함께 거하리라.”라며 ‘스불론’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언니 레아는 아들들을 낳고 이렇게 찬양하며 웃지만 라헬은 통곡을 하는 것입니다. 레아가 아들을 낳고 좋아할 때 라헬은 ‘언니는 아들을 여섯이나 낳았는데, 나는 하나도 낳지 못하고…….’ 하며 통곡하는 것입니다. 레아는 후에 딸 디나를 하나 더 낳습니다. 그런데 라헬은 합환채를 먹어도 배가 불러오지 않습니다.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서럽게 웁니다.
3. 라헬의 요셉
하나님께서 우는 라헬을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태를 열어주시니 라헬이 잉태했습니다. 평생소원인 아기를 잉태했으니 배가 산더미처럼 불러도 몸이 가볍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정말 기뻐하며 기뻐하다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이 요셉입니다. 당시에는 아들을 많이 낳는 여자가 최고였습니다. 부족국가는 남자가 많아야 강한 부족이 됩니다. 그 당시 여자는 수(數)에 들지도 못했고, 이름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디나의 이름이 나와 있는 것은 나중에 사고를 쳤기 때문입니다. 다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에스더처럼 아주 유명한 여자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처럼 남편이 아주 유명한 여자의 이름이나 나와 있지, 보통 여자는 이름도 없고 수에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라헬이 아기를 낳지 못하다 아들을 낳으니 “하나님께서 내 부끄러움을 씻어주셨도다. 얼굴을 들고 살게 하셨구나.” 하고는 그 이름을 ‘요셉’이라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들 하나만 더 주세요. 하나님, 아들 하나만 더 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아들 하나를 더 주십니다. 창세기 35장에 보면, 그 아들이 ‘베냐민’입니다.
오늘 여기에서 훈훈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레아와 라헬은 한나 같이 고귀한 여자가 아닙니다. 에스더처럼 고고한 여자도 아닙니다. 그저 둘이 싸우고 늘 아이 낳는 경쟁이나 합니다. 그리고 라헬은 “나로 하여금 아기를 낳게 하라. 아니면 죽겠노라.” 하며 남편에게 바락바락 대듭니다. 레아와 라헬에게 배울 것은 아이를 많이 낳는 것, 그것 하나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레아도, 라헬도 입만 열면 “하나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값을 치러 주셨도다.” “하나님께서 후한 선물을 주셨도다.” “하나님께서 내 부끄러움을 씻어 주셨도다.”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생활이 거룩하고 귀한 사람만 교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부부 싸움을 잘 하고 시누이와 치고받고 싸워도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아! 저 사람이 어떻게 집사가 되었을까?’ 싶어도 그 안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교회에서 때로는 짓궂게 장난을 하고 목사님이 가르칠 때 딴 짓하는 성도들을 보면 ‘아유,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이 들어도 나중에 보면 그래도 다 신앙이 있습니다. 믿음은 계속 자랍니다. 말썽을 피우던 사람도 권사님이 되고 장로님이 됩니다. 믿음이 죽죽 자랍니다. 골로새서 2장 19절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지금도 여러분이 자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단비로, 말씀의 만나로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치료하셔서 자라게 하십니다. 우리가 업신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귀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미완성 작품입니다.
제가 처음 목사가 되었을 때 얼마나 부족했는지 모릅니다. 물론 지금도 부족하지만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꾸 가꾸셔서 이렇게 되어 있고, 앞으로도 더 가꾸셔서 10년, 20년 뒤에는 더 잘 가꾸어져 있을 줄로 믿습니다.
오늘 “아, 저 사람이 말이야.”라는 말을 듣는 사람도 나중에 존경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을 함부로 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페스탈로치가 아이에게 절한 것은 그 아이가 대통령이 될지, 장관이 될지, 목사님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꾸 하나님께서 신앙이 자라게 하십니다. 그렇게 자랍니다. 에베소서 4장 15절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빚어 가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가끔 죄 짓고 넘어져도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는 계속 발전하고 있어.’라고 믿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넘어지고 자빠져도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이고, 목사님. 내 나이가 팔십인데 어떻게 발전해요?’라고 하는 분이 계십니까? 팔십이 되어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빚고 계십니다. 괴테가 파우스트를 완성했을 때 이미 80세에 이르렀고, 미켈란젤로는 80세가 넘어서도 창작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과 제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4. 레아의 신앙/ 보상해 주심
레아가 다섯 째 아들을 낳았을 때 “하나님께서 내게 값을 치러 주시는구나.”하며 ‘잇사갈’이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녀 낳는 것을 좋아하셔서 내가 나를 부인하고 내 여종을 남편에게 주었더니 하나님께서 나로 아들을 낳게 하시는구나.’이것은 건강한 해석이 아니지만, 레아가 ‘하나님께서 내게 보상해 주시네.’라고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상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해서 충성을 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고마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주님 일을 하고,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예물을 드리도, 교회봉사 일을 하고, 아이들과 청년들를 돌보고, 차량 안내를 하고, 교회 청소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는 우리를 예뻐하시며 다 계산하셔서 보상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 45, 46절에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다섯 달란트를 남겼을 때 그 주인이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큰일을 네게 맡기겠다.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라.”라고 했습니다. 두 달란트를 남긴 사람에게도 똑같이 축복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그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져왔을 때는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놈의 것을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고 이놈은 바깥 어두운 데로 던져라. 거기서 이를 갈며 슬피 울리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한 사람에게 상 내려 주십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해 충성한 것은 하나도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30배, 60배, 100배로 복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레아가 여섯 째 아들을 낳고 나서는 “하나님께서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라고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후하게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한 대로만 주실 뿐 아니라 후하게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5:58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고린도전서 15:58), 요한계시록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요한계시록 22:12) 일한 대로 갚아 주실 뿐 아니라 후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 갖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후하게 주십니다.
다윗도 빵 한 조각 때문에 구걸해야 될 때가 있었고 바울도 굶을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순간순간 어려운 역경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훈련시키시기 위함입니다. 냇물의 돌들을 제거하면 냇물은 노래 소리를 잃습니다. 우리 집이, 회사가, 아들딸이 너무 편하면 우리에게 간증이 없어집니다. 우리가 바짝바짝 매달려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신앙이 약해집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어려움이 생기면 “주여! 주여!” 하게 됩니다.
세상 살아가는 것 만만치 않습니다. 직장생활도, 사업도 만만치 않습니다. 목회하는 것도 때로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같이 기장 합니다. 너무 힘이 들어 바짝바짝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얼마나 다가가 살았는지 모릅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주여!” 누우면서도 “주여!” 했습니다. 그럴 때 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험과 연단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후하게, 넉넉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역대상 29장 28절에 보면, 다윗이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게 살다가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에 순간순간 막히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전체로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필요한 것은 다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잔이 넘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잔을 넘치게 해 주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후하게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5. 라헬의 신앙/ 부끄러움을 씻어주심
우리는 라헬을 통해 또 중요한 교훈을 받게 됩니다. 라헬이 요셉을 낳고는 “하나님께서 나의 부끄러움을 씻어 주셨도다. 하나 더 주시면 좋겠다.”라고 합니다. 예쁘고 매력 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해 수치를 당하며 얼굴을 숙이고 살던 라헬이 아들을 낳고 나니 얼굴을 들고 삽니다. 우리 모두는 라헬입니다. 예쁘고 매력 있어 길을 가면 남자들의 시선을 집중해서 받는 라헬이지만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부끄러움이 있었습니다. 저에게도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숨겨 놓은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마음이 늘 어두운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부끄러움을 씻어 주십니다. 얼굴을 숙이고 살던 사람이 얼굴을 들고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 후로 고개를 숙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베드로야, 나를 봐. 너 정말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해”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그래, 내 어린양을 먹이라(Feed my lambs).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 정말 나를 사랑해?”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내가 세 번 부인했지만 주님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어요. 내가 환경이 무서워서 부인했지만 주님 사랑하는 것 아시잖아요.’ “그래, 내 양을 치라(Take care of my sheep).”
베드로가 세 번 부인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세 번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 정말 나를 사랑해(Do you love me)?” 베드로가 두려워합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내가 세 번 부인했지만 주님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어요. 내가 환경이 무서워서 부인했지만 주님 사랑하는 것 아시잖아요.’ “주님, 모든 것을 아시지요? 제가 부족해도 주님 사랑하는 것을 아시지요?” “그래, 내 큰 양도 치라(Feed my sheep).”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부끄러움을 다 씻어 주시고 수제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사람의 과거를 들추어서 발목을 붙잡고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은 마귀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부끄러움을 씻어 주시고 빛나게 살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끌려 온 여자가 있습니다. 간음하다가 끌려왔으니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 여자를 돌로 치려하면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여! 모세의 율법에 보면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 했는데 당신은 어떡할 겁니까?”
예수님께서 말없이 땅에 글을 쓰십니다. “어서 말해요! 어서 말해요! 이 여자를 칠까요? 말까요?”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라고 하시며 땅에 글을 쓰십니다. 학자마다 해석이 다르지만, 많은 주석 학자들이 그때 쓴 글이 신비로운 방언이라 보는 사람마다 다 자기 죄로 보였다고 해석합니다.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부끄러워 돌을 놓고 도망가서 아무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남에게 돌 던질 자격이 있는 사람은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남에게 돌 던질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그 여자에게 돌을 던지지 않으셨습니다. “여자야! 너를 고소했던 자들이 있느냐?”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 짓지 말아라.”간음하다가 현장에 끌려온 여자의 부끄러움을 씻어 주시고 “이제는 거룩하게 살아라.”라고 하십니다.
6. 미래를 열어주시는 하나님
우리 주님께서는 과거에 돌을 던지지 않으시고 미래를 열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과거를 씻어 주시고 미래를 열어 주시는 일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마귀는 과거에 돌을 던져 우리를 죽이려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채찍에 맞고 짐승처럼 천대를 받으며 삽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보셔서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다음 할례를 받게 하십니다. 여호수아 5장 9절에 보면 할례가 끝날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애굽에서 수치를 당했던 내 백성의 수치를 내가 다 굴려버렸다. 이제 너희는 종이 아니고 자유자다.” 여호수아가 감사해서 그 땅을 길갈이라 불렀습니다. 길갈이라는 말은 ‘수치를 굴려버렸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의 수치를 굴려버리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부끄러운 모든 수치를 굴려버리신 줄 믿습니다. 그렇게 부끄러움을, 수치를 굴려버리시고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부끄러움을 길갈이 되게 하셨습니다. 과거에 발목 잡힌 것을 굴려 버리시고 오늘 거룩하게, 오늘 빛나게 해주십니다.
에베소서 5장 8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오늘 우리 모두 과거에서 벗어나 길갈이 되고 새 출발하는 복 받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오늘 가장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슬픈 여자 라헬을 생각하시니 그 태에 복이 임해서 아기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보시니 그들이 홍해를 건너고 가나안 땅으로 갑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포로로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보시니 그들이 자유를 얻어 고국으로 갑니다. 그들이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도다. 열방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해 큰 일을 행하셨도다.”라며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아보시면 우리에게 큰 일이 일어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 몸이 아파도 주님께서 돌아보시면 낫게 됩니다. 경제적으로 파산하게 되어도 주님께서 돌아보시면 다시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을 돌아보시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가정을 돌보시고, 하나님이 성도들의 직장, 사업을 돌보시고, 하나님이 우리교회를 돌보시고,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돌보시고,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돌아보시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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