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돈이다.
필자 강승준은 한국은행 감사로 전 기재부 재정관리관이다. 서울대 졸, 행시로 공직에 입문하여 미 미주리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스스로 인문학에 문외한이라 많은 책을 읽고 세계사적 시각의 중요성을 깨닫고 강연에서 쓰려면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쓰기 시작한 대작이다. 세계사의 동인으로 자리 잡은 것이 돈이었음을 알았고 우리나라가 의도치 않게 일본의 침략을 받아 나라를 빼앗긴 적도 있다. 의도치 않게 나라가 분단되기도 했다. 우리끼리 편하게 살고 싶어도 세상은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왜 우리가 이렇게 당하며 살아야 했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그것이 필자가 미래 세대에게 <역사는 돈이다>를 전하고 싶다는 이유다.
우리는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세계사의 흐름을 돈의 흐름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고 판단하고, 역사의 궤적에서 돈의 시각에서 필자는 해석하고 있다. 세상사에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정의와 명분이 있고, 이익 여부를 따지는 실리가 있다. 명분과 실리가 일치하면 좋겠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일이 많다. 로마 민중의 영웅 ‘카이사르’는 왜 원로원 귀족에게 살해당하고, 그의 아들은 황제로 추대되었나? ‘카이사르’는 원로원의 화폐주조권을 빼앗으려 하였지만 아들 ‘옥타비아누스’는 타협하여 그들의 부와 특권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십자군 전쟁은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신은 그것을 원한다”라는 교황의 호소 뒤에는 전쟁으로 빼앗은 땅은 나누어주겠다는 약속이 있었고, 그 약속을 믿은 국왕과 영주들이 전재에 나섰다. 전쟁의 성격이 변질될수록 돈이 없는 기사들은 전쟁에 나가기 위해 성전기사단에 돈을 빌려 군인과 장비를 샀고, 그 돈을 갚기 위해 약탈과 학살을 자행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은 없었다.
전쟁은 화폐 타락의 주범이었다. 프랑스는 백년전쟁 자금 조달을 위해 불량화폐를 주조했다. 영국도 ‘헨리 8세’가 불량화폐를 주조했다. 군주들은 경비와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금과 은의 순도차익을 노리며 순도를 낮추는 것을 ‘시뇨리지 seigniorage’라고 한다. 금과 은의 생산은 한계가 있어 대표화폐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금 보관증이었다. 금세공업자들은 일정 기간 예금된 금과 은화 중에서 인출되는 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보관 중인 예금의 일부를 대출해 주시 시작했다.
지금 세상은 스마트폰 은행 앱에 찍혀 있는 숫자를 화폐로 인식하고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앱의 숫자에서 모든 거래가 이루어질 뿐, 실제 그 돈이 은행에 있는지 확인하는 사람은 없다. 화폐는 실물경제를 내조하던 현모양처가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세상을 뒤집어 놓는 천방지축 난봉꾼이 되었다. 과거에 군주에게 핍박받던 화폐가 이제 주기적으로 금융위기를 일으키는 폭군이 된 것이다. 돈이 돌지 않거나 어딘가에 쌓여 있으면 죽는다. 인플레이션이 우리 돈을 훔치는 좀도둑이라면 디플레이션은 경제 기반을 다 무너뜨리는 재앙과도 같다.
은행의 영어인 뱅크는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긴 탁자 banco를 앞에 놓고 환전과 대부를 한 데서 유래한다. 이자 수취를 죄악시한 가톨릭은 대부업을 금지하였고, 이슬람인들과 교역도 금지하였다. 돈 이야기를 하면 등장하는 ‘히브리’인, 즉 유대인이다. 기원전 5000년경 ‘수메르’ 문명의 발달한 도시 ‘우르’에 살던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곳을 떠난다. ‘히브리’는 강을 건너온 사람이란 뜻이고 강은 ‘유프라테스’강을 뜻한다. ‘아브라함’은 하녀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고, 아내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는다. ‘이스마엘’은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의 조상이고, ‘이삭’은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의 조상이다. ‘이삭’은 ‘요셉’을 포함한 열두 명의 아들을 낳는다. 이 12 아들이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되는 것이다. ‘요셉’이 이집트의 노예로 갔다가 꿈을 잘 해몽하여 재상이 되고, 그들의 형제를 이집트로 불러들인다. ‘람세스 2세’ 때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떠나는데 이것이 출애굽기다. 埃及은 이집트의 한자어다. ‘모세’가 홍해를 건너서 시나이반도로 탈출하는 신앙체계의 기본이 되는 십계가 탄생한다.
유대인이면 예수를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 생각할 수 있지만, 유대교는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는 기독교와 결정적 차이다. 오히려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를 신이 보낸 예언자 중 한 사람으로 보고 존경한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의 죽음으로 내몰았다. ‘탈무드’에 “예수가 마술을 써서 이스라엘을 미혹시켜 배교하게 했으므로 유월절 전날에 처형되었다”라고 쓰여 있다. 결국 유대인 사회가 예수를 처형한 셈이고, 이 일은 훗날 유대인 박해의 근거가 되었다. 예수는 ‘히브리’어로 ‘여호수아’이다. ‘메시아’를 그리스어로 ‘크리스트스’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여기서 유래된 말이다.
오늘날 일부 교회가 대형화와 상업화되면서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과, 옛날의 유대교회 성직자들이 교회를 이용해 폭리를 취한다고 예수가 꾸짖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스인은 유대인이 로마 황제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폭동을 일으켜 유대인 거주지역을 방화하고 약탈했다. 우리는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며 선민주의를 내세우는 유대인을 그리스인들이 배척하기 시작했다. 그리스인이 유대인을 학살했지만, 로마 수비대는 수수방관했다. 그러자 유대인이 수비대를 공격했고, 로마와 유대인, 그리스인과 유대인의 전쟁이 일어났다. 로마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은 파괴되었다. 유대인 2/3가 죽고 나머지는 노예로 팔리어 팔레스타인 지역을 떠났다. 오랜 기간 유대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유대교와 기독교는 완전히 분리되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통화는 자유롭게 교환되었다. ‘아테네’는 ‘그리스’ 화폐주조의 중심지였다. 주화와 도량형 사용을 강제하는 통화법령이 발표되었다. 새로운 화폐의 주조한 이유는 전쟁 자금이 필요했고 전쟁은 화폐주조의 큰 이유였다. “전투에 가난한 시민들이 노잡이로 참여하면서 그들은 중무장 보병과 동등해진 느낌을 받았다. 노젓기는 행동의 일치를 요구했으며, 훈련은 강력한 단결심을 촉발하게 시켰다. 부자와 빈자의 손에 똑같이 굳은살이 박였고, 엉덩이에 물집이 생겼고, 근육이 뭉쳤고, 미래에 대해 동일한 희망과 두려움이 생겼다. 자유의 보루이자 민주주의의 동력인 해군이 없었다면 ‘아테네’의 모든 영광도 없었을 것이다.“
‘알렉산더’는 정복을 통해 민족적 차별 없이 세계가 하나 되는 보편적 인류를 지향하는 ‘헬레니즘’ 사상이 나왔다. 그리스의 ‘제우스’ 아내인 ‘헤라’ 여신의 자손이란 뜻이다.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2세’가 그리스를 통일하고 죽자, 그이 아들 ‘알렉산더’가 오리엔트 정복 전쟁을 시작하여 거대한 영토를 넓히고 아라비아 원정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33세에 죽는다. ”이 세계는 우주에 비하면 미세한 점에 불과하다. 인생은 투쟁이고 세계는 낯선 이를 위한 임시 수용소일 뿐이며 죽음 뒤에 얻은 명성은 허무하다. 그런 우리에게 유일한 버팀목은 철학뿐이다. “명상록에 나오는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이다.
사실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했던 이유는 세금이었다. 기독교인은 수익의 10분의 1을 바치는 십일조의 전통이 있어서 기독교와 국가를 연결하게 함으로써 ‘기독교인이라면 국가에 세금을 제대로 내라’ 할 수 있고, 기독교인으로서의 신앙과 연결되면 세금을 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귀족에게 세금을 거두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황제들은 화폐의 질을 떨어뜨리는 손쉬운 방식을 선택하곤 했다. 황제들은 불량 통화가 유통하는 것에 유혹을 이기기 어렵다. 용병들의 임금이 10분의 1로 줄어든다면 누가 가만히 있겠는가? 로마 용병들이 국가를 전복시킨 배경에는 돈의 가치 추락이 있었다. 아무도 화폐를 받지 않으려 하고, 다시 물물교환의 폐쇄경제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로마제국은 점차 지방의 봉건영주가 지배하는 장원 중심의 경제로 전락하게 된다.
황제와 교황 간의 갈등의 씨앗인 교회세에 관해 알아보자. 기독교인은 교회에 세금을 내야 했다. 십일조다. 자발적이었으나 의무로 변했다. 내지 않으면 교회 출입 금지, 파문, 재산 몰수 등의 벌을 받았다. 교회세가 의무적으로 변하면서 비즈니스로 변했다. 교회 간의 다툼이 벌어졌다. 군주도 골칫거리다. 사람들이 교회에 세금을 내느라 정부에 세금을 낼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왕들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교황청의 힘이 왕보다 막강했기 때문이다.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한다. 610년 ‘메카’의 상인 ‘무함마드’가 이슬람교를 창시한다. ‘아브라함’이 하녀 ‘하갈’로부터 얻은 첫째 아들 ‘이스마엘’이 ‘무하마드’의 조상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라’라 불렀고 ‘알라’로부터 계시를 기록한 책이 ‘코란’이다. 이슬람은 자신의 대외 전쟁을 ‘지하드’라 부르고 중동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무함마드’가 죽자, 그의 후계자인 ‘칼리프’들이 이슬람을 지배했다. 선출된 ‘칼리프’를 인정하는 것이 ‘수니파’이고, ‘무함마드’의 후손인 ‘알리’와 그의 후손들만 ‘칼리프’로 인정하자는 것이 ‘시아파’ 이슬람이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2024.10.22.
역사는 돈이다.
강승준 지음
잇콘 발간
첫댓글
그 이유를
알아 보니...
서양 종교의 뿌리도 보고...
좋은 글
감사합니다.
멋진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