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속의 수승대
작품해설 : 조재원 ( 거창문화원 학예연구사)
국가지정 명승지 53호 거창 수승대 그림이 최초로 발견되었다.
수승대에 대한 옛 문헌과 연구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서울대 규장각 지하문서고에 보관된 고문서에서 '경상도 명승도 - 수승대' 화첩을 발견하게 되었다.
「경상도명승도慶尙道名勝圖」는 도폭 38×136cm의 여덟 채색도를 합철하여 제작한 394×190cm 크기의 8폭 병풍도이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있다.
제작 연대와 작자는 미상이다. 명승도에 묘사된 건물 중 가장 늦은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제5도 수승대도(搜勝臺圖) 속 ‘요수정(樂水亭)’이 1805년 현 위치에 중건된 것으로 미루어 보면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 (1850 ~ 1900년대)에 지방출신의 화가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도의 명승 여덟 곳 즉, 통영 「만하정(挽河亭)」, 안동 「영호루(映湖樓)」, 합천 「해인사(海印寺)」, 진주 「촉석루(矗石樓)」, 거창 「수승대(搜勝臺)」, 부산 「몰운대(沒雲臺)」, 밀양 「영남루(嶺南樓)」, 포항 「내연산(內延山)」의 풍광을 비단 바탕에 그린 견본담채(絹本淡彩)형식으로 상단에 시문을 곁들인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작품이다.
시대적인 배경으로 보아 진경산수화가 조선말기까지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고 20세기초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화풍이 남아있는 것을 알수있다.
<수승대도>의 구도는 수승대의 실경을 바탕으로 하였다.
성재의 높은 산을 배경으로 한 구연 절벽 위에 요수정을 그려 넣고 그 전면에 두 선인(仙人)이 앉은 수승대의 뒷 모습을 그렸으며 그 위 쪽 오른켠 가장자리에 구연서원과 은행나무를 배치하였다.
하지만 그림속에 나타난 산과 요수정, 거북바위, 구연서원, 은행나무 등은 거리상 현재시점과 많은 차이가 있고 다소 과장되게 그려졌다는 것을 알수 있다.
조선시대의 산수화는 한장의 화폭에 전체적인 그림을 표현하기 위해 대상물을 이리 저리 옮겨 다니며 여러 각도에서 본것을 모아서 그리기 때문에 (다원적 시점) 실제 풍경모습과 다를수도 있고 약간은 변형된 형태로 그려지기도 한다.
<수승대도>는 낙관이 없는 작자미상이지만 1772년 진재 김윤겸(金允謙)이 그린 <영남명승도첩(嶺南名勝圖帖)>의 거창 4곳의 그림보다 작품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그림의 상단 여백에는 윤필관(尹必觀)의 아래와 같은 <수승대(搜勝臺)> 시가 있으나 낙관(落款)은 보이지 않는다. 윤필관 또한 미상의 인물이다.
■ 윤필관 <수승대>
誰識觀風路 누가 알겠는가, 풍류 살이 드러냄을
居然淸興長 맑고 긴 흥취로 그렇게 산다네
車裳沾澗溜 한 수레 여인들 물가 여울에 더하고
冠益翳林光 관모는 숲 볕에 일산을 더하였네
犀照潭如鏡 뙤약볕에 못은 거울같이 맑고
龜盤石可牀 거북 반석은 돌 평상이로구나
紅裙文字飮 붉은 치마 문채에 한 잔 마시며
却恨此宵忙 근심 물리치니 이렇게 덜 조급한 것을
첫댓글 이야~ 재밌습니다. 학예연구사 라는 직업 참 매력적이구나. 조재원 연구사님 유익하고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