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字 隨筆 문득.686 --- 시퍼런 칼날 앞에 태연하다
깔끔하던 얼굴도 하룻밤 지나고 나면 까칠해진다. 다시 면도도 하고 매만져야 매끄러워진다. 싫다고 해도, 날마다 깎아내도 굳세게 돋아나는 것이 수염이다. 누구는 수염을 잘 가꾸어 모양을 내면서 자신의 독특한 이미지로 삼기도 하는데 대개는 성가시게 하는 존재이다. 양반은 수염을 길렀다. 그래야 근엄하고 권위가 깃든 것처럼 보였다.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산다는 말이 있다. 수염만 가다듬고 있을 수는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손자를 귀여워하면 할아버지 상투를 당긴다.”라고 하고 손자를 귀여워하면 “할아비 뺨을 친다.”라고 하였다. 손자라고 너무 오냐오냐하면 버릇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한다. 중은 일반인과 달리 항상 수염과 머리를 박박 깎는다. 수염은 면도하여 깨끗하게 깎을 수 있어도 머리는 직접 깎을 수 없어 정말 난감한 일이다. 사람마다 얼굴이 그 사람의 상징인데 대충 넘길 수 없어 정기행사처럼 머리를 깎아야 무난하다. 사람이 죽으면 명당이라고 여겨지는 곳을 찾아서 묘를 만들었다. 조상의 묘는 예를 다하여 성심성의껏 모셨다. 그래야 조상님의 보살핌으로 복을 받는다고 여겼다. 남 보기에도 체면이 서고 보란 듯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었다. 대개 추석 직전이면 풀 깎기 벌초를 한다. 일 년간 수북해진 수염 같은 풀을 자르며 묘를 돌본다. 내 얼굴이고 머리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한 달에 한 번쯤 머리를 깎는 일도 쉽지 않다. 가장 중요한 머리이고 얼굴인데도 주저하지 않고 남에게 슬그머니 내민다. 몇 번이고 시퍼런 칼날이 춤을 추듯 돌아다녀도 속수무책인 양 고스란히 내놓고 기다리고 있다. 막말로 목에 칼이 들어오고 머리를 무방비로 통째로 맡긴 것이다. 무엇이 그리 당당할까. 어찌 보면 너무 무모하고 겁 없는 짓이기도 하다. 그래도 괜찮다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수많은 사람을 알게 모르게 수없이 경계해도 이처럼 힘없이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칼날 앞에 내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