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의 나이로 순직한 정경화동기의 29주기 추모행사- 29년전 오늘, GOP지역 지뢰제거 작전중 중대장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부하를 살리고 살신성인을 실천하여 장열히 순국한 고 정경화 대위(소령으로 추서). 해마다 같은날 열리는 행사이지만 올해는 사뭇 그 느낌이 달랐다.
육사 동기생의 참석인원이 많아졌고 역할 또한 커졌다. 추모행사라는 애도의 분위기보다는 그와 연계되는 각 계층의 사람들이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점점 많이 모이는 축제의 모임같았다. 유가족을 대표한 그의 고향 삼척,강릉지역 친지와 친구들, 강릉고 동기생 및 재경지역 선후배들이 대거 참석하기 시작했고 당시의 중대원을 중심으로 한 그 10여년 이후의 중대원들 까지 '백암산패밀리'로 구성되어 자기들이 근무했던 그 부대방문을 겸하여 가족과 자녀들까지 동참했으며 현재 그 부대에 근무하는 병사들의 부모와 여자친구들도 함께 버스를 타고 갔다. 시간적으로 30여년의 선후배 세대가 함께, 그리고 공간적으로도 서울지역에서뿐만 아니라 강릉이나 삼척, 군산 등 전국 각지로부터 97명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추모행사 후, 칠성전망대에서 북한지역을 내려다 보며 국민안보교육을 겸하기도 했고 대대 주둔지 연병장에서 후배 장병들에게 위문공연까지 펼치는 선후배간 만남의 장이 되기도 했다. 장병들 중에 10여명의 포상휴가증을 준비하여 현장에서 대상자를 선발, 서울로 오는 버스에 함께 태우는 배려도 했다. 이제는 한세대가 흐른 지금 고인에 대한 평가와 후배들이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군인의 길을 선택하여 내 생명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치겠다는 다짐속에 출발했던 우리 동기생 대부분이 군문을 떠나 이제는 군생활이 과거의 여러 추억들 중 하나가 되어버린 지금, 지나간 군생활을 되돌아 보면서 우리가 처음 세웠던 그 일념들이 어떻게 실천되어 왔는지 짚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불과 1~2년밖에 군복무를 하지못한 동기생도 있고 30년 넘게 근무한 동기생도 있다. 지금에 와서 보면 얼마나 오래 근무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흔적을 남기며 근무했느냐 하는 것만이 남아 있게 되지 않나 싶다. 똑같이 과거의 역사적 사실의 하나로만 남게 된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다짐하면서 외쳤던 '사관생도 신조'가 지금에 와서도 그 가치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나,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 둘, 우리는 언제나 명예와 신의속에 산다. 셋, 우리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누가 이를 생활속에서 잘 실천하면서 살아왔느냐의 문제이다.
여러 동기생들이 그 신조를 바탕으로 일상에서 이를 실천하며 살아왔지만 그 중에 고 정경화동기는 우리 군의 역사에 오래 남을, 어쩌면 먼 훗날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을 떤난 이후가 되면 우리 동기생을 대표할 인물로 남게 될지도 모를 자랑스러운 동기생이다. 세상에 돈벌고 출세했다고 하는 사람들이야 많지만 그 살아온 행적으로 여러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후배들의 삶에 정신적 귀감이 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군의 역사와 후배들에게 청년장교의 표상으로 내세울만한 이런 인물이 우리 동기생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싶다. 매년 추모행사에 참석하면서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가지는 한결같은 마음에서 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 부대 장병들의 환영을 받으며 강원도 화천지역의 7사단 5연대 1대대 주둔지에 도착
대대단위에 간부식당을 따로 운영하지 않고 사병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 이름도 '식당'이 아닌 '취사장'이고 식당입구엔 폐 라지에타가 깔려 있는 전형적인 보병부대 식당. 사용자 입장으로 식당이름을 바꾸어 주도록 대대장에게 조언을 하다.
점심식사 후 버스를 타고 30여분정도 이동하여 경화공원에 도착하니 거기 여전히 씩씩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기는 29세의 정경화동기가 서있다. 동기생 김장수 참모총장이 조화를 보내와 추모행사의 격을 한층 높혀 주었고 사단장과 연대장을 비롯한 주요 지휘관 및 참모, 그리고 3중대원들이 동참한 가운데 추모행사가 엄숙히 거행되었다.
임창희동기가 대열동기생을 대표하여 추모시를 낭독했는데 나중에 어떤 여중생이 그 추모시 내용을 달라고 했고 또 여러 사람들이 매우 인상깊은 시였다는 소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찝차편으로 GOP철책선 인접에 위치한 추모비로 이동하여 또 그에게 술을 한잔 권하면서 큰절을 올린다.
다시 대대 연병장으로 이동하여 뙤약볕 아래 위장망으로 그늘을 만든 가운데 준비해온 음식을 나누며 사단 군악대 소조밴드까지 나와서 장병들의 특기 경연을 겸한 위문행사.
2시간정도 위문행사 후 무더위 속에서도 굳건하게 국토방위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 그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듬뿍 안고 장병들의 환송을 받으며 서울로 출발.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밤10시가 넘어서야 서울에 도착했어도 흐뭇한 시간을 보낸 뿌듯함에 가슴은 뜨거웠다.
첫댓글 아홉 번째 사진에 박노영 사무국장 모습이 보이는군요. 좋은 사업을 이어오심에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