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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4일 토요일 [(백)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은 1786년 프랑스 리옹의 근교에서 태어났다. 1815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시골 마을 아르스의 본당 사제로 활동하면서 겸손하고 충실한 목자로 존경받았다. 그의 고행과 성덕이 널리 알려지면서 여러 곳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는 정성을 다하여 영적 가르침과 고해성사를 베풀었다. 평생을 아르스에서 겸손하고 가난한 삶을 산 그에게 해마다 2만여 명이 고해성사를 받고자 찾아왔다고 전해진다. 1859년 선종한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를 1925년 비오 11세 교황이 시성하고, 4년 뒤에는 ‘본당 사제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자신을 사형에 처하려는 이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아히캄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한다(제1독서). 헤로데 영주는 생일에 아내 헤로디아의 딸이 청한 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게 하여 선물로 준다(복음). <참으로 주님께서는 나를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이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26,11-16.24 그 무렵 11 사제들과 예언자들이 대신들과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의 귀로 들으신 것처럼 이 사람은 이 도성을 거슬러 예언하였으니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 12 이에 예레미야가 모든 대신들과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이 집과 도성에 대하여 여러분이 들으신 이것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13 그러니 이제 여러분의 길과 행실을 고치고, 주 여러분의 하느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거두실 것입니다. 14 이 내 몸이야 여러분 손에 있으니 여러분이 보기에 좋을 대로 바르게 나를 처리하십시오. 15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여러분이 나를 죽인다면, 여러분 자신과 이 도성과 그 주민들은 죄 없는 이의 피를 흘린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나를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의 귀에 대고 이 모든 말씀을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16 그러자 대신들과 온 백성이 사제들과 예언자들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사형당할 만한 죄목이 없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주 우리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였습니다.” 24 예레미야는 사판의 아들 아히캄의 도움으로, 백성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지는 않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12 1 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2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3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4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5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6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7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8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11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12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운명을 예시하는 세례자 요한의 최후 소식을 듣습니다. 갈릴래아와 페레아를 다스리는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이는 요한이 전하는 말이 자주 헤로데에게 충격을 주었음을 드러냅니다. 복음에서 요한의 표상은 그의 출생부터 비극적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세례자 요한은 모든 점에서 선구자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요한은 하늘 나라를 선포하고 사람들의 회개를 외친 사절이요, 썩어 없어지지 않는 진리의 증인이었습니다. 이것이 요한의 유일한 죄라면 예수님과 같이 생명으로 대가를 치른 것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빛이신 그리스도를 증언하러 이 세상에 왔다가 내적 자유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헤로데 안티파스가 이복형제인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와 혼인하려고 첫째 부인을 버렸기에, 요한은 이 혼인을 율법에서 금지된 것이라고 여러 차례에 걸쳐 비난하였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와 잘못에 대한 양심의 가책보다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는, 진리와 정의를 외치는 의로운 이를 감옥에 가두어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고 끝내는 죽음으로 내몰고 맙니다. 제1독서에서 대신들과 온 백성에게 외치는 예레미야의 말을 깊이 새겨 봅시다. “이제 여러분의 길과 행실을 고치고, 주 여러분의 하느님 말씀을 들으십시오.” 우리는 헤로데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세례자 요한의 선구자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 반성해 봅시다.(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
성인(聖人), 때로 불꽃처럼 때로 활화산처럼 타올랐던 사람! 열정적이고 치열한 삶을 사시다가 이제는 빛나는 하늘의 별이 되신 성인(聖人)들 대체 하루하루를 어떻게 사셨을까? 많이 연구도 하고 묵상도 해봤습니다.
대단한 것 같지만, 또 요모조모 살펴보니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성인들은 우리 보다 좀 더 노력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보다 좀 덜 고리타분한 삶을 산 사람들입니다. 평범한 삶을 좀 더 비범하게 사신 분들, 남루한 인간 조건 속에서도 품위를 지킨 사람들,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환희와 충만의 삶을 엮어간 사람들이었습니다.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지리멸렬한 삶이 아니라 때로 불꽃처럼, 때로 활화산처럼 타올랐던 사람들이 바로 성인이더군요. 이것 저것 다 기웃거린 것이 아니라, 정작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 오직 주님, 그분을 향한 영적 여정, 이웃을 향한 복음적이고 이타적인 삶에 깊이 헌신하고 몰입하신 분들이었습니다. 아르스의 성자 비안네 신부님의 성화 여정 역시 그러하셨습니다. 그분 성덕의 가장 두드러진 비결은 무엇일까요? 특별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제로서 당연히 해야 할 역할에 대한 충실, 그것이 그분 성화의 비결이었습니다.
본당 사제로서 가장 중요한 성체성사를 지극정성으로 준비하고 경건하게 봉헌하는 것, 그리고 성체성사에 앞서 꼭 필요한 또 다른 성사 고해성사를 통해 신자들의 영혼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것, 그것을 충실히 행함으로 인해 성인이 되신 것입니다.
비안네 신부님에게 성모님은 어머니요 친구요 연인 같은 존재였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성모님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성모상을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품안에 작은 성모상을 모시고 다녔습니다. 임종 직전 남긴 말을 통해 성모님을 향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각별했는지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선물 받은 이 목각 성모상을 얼마나 애지중지 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평생토록 밤낮없ㅇ 이 성모상을 지니고 다녔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도 이 성모상이 옆에 없으면 편안히 잘 수가 없었습니다.” 성모님을 향한 자신의 강렬한 애정과 신심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성모님은 저희 첫사랑입니다. 저는 그분을 알기도 전에 벌써 그분을 사랑했습니다.” 비안네 신부님의 성모님을 향한 사랑은 묵주기도를 향한 그의 사랑에서 잘 드러났습니다. 그는 조금이라도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즉시 묵주를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르스 본당 마당을 산책하면서 더 없이 행복한 얼굴로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 본당 신자들도 자연스럽게 묵주기도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낡은 수단 주머니 안에는 언제나 여러 개의 묵주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신자들이 항상 묵주를 지니고 다니기를 원했습니다. 신자들을 만나면 언제나 먼저 묵주를 가지고 있는지 물어봤고 없다면 즉시 지니고 있던 묵주를 선물로 건네며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치도록 인도했습니다. 여차하면 모금을 시작하고 건축이나 리모델링을 시작하는 우리 사제나 수도자들이 눈여겨볼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한번은 아르스 본당 신자들을 중심으로 불행한 소녀들을 위한 작은 기숙사 건축을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저 같았으면 얼씨구나 하고 즉시 설계사를 부른다, 시공업체를 불러 공사에 착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안네 신부님은 언제나 신중했습니다. 꼭 필요해 보이는 건축이라 할지라도 시작하기에 앞서 아주 신중한 식별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식별작업이란 다름이 아닌 성모님과 함께 하는 9일기도였습니다. 본당 신자들과 함께 정성껏 9일기도를 바치면서 진정한 하느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성모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리고 9일기도가 완전히 끝난 후 본당 신자들과 함께 공사를 시작할 것인가 아닌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였습니다. 비안네 신부님의 강론은 단순하지만 성모님을 향한 그의 극진한 효심과 깊은 신심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모님은 저의 진정한 사제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다 주셨으나 저는 행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오직 우리의 행복만을 바라십니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큰 신뢰심을 지니고 그분의 이름을 끊임없이 불러야 합니다. 성모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찾기 위해 다녀야 할 안전한 통로이며 지름길이시고 티 없이 깨끗하고 빠른 길이시므로, 성덕으로 빛나는 영혼들은 성모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성모님을 사랑한 성인들’ 생활성서)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빼앗기는 열정을 막아라>
어떤 사람은 역사에서 큰 업적을 남기고 어떤 사람은 평범하게 살고 어떤 사람은 태어나지 않느니만 못하게 살다 가기도 합니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요? 분명 태어나면서 부모나 환경의 영향이 작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그것이 절대적일 수는 없습니다.
큰일을 이루어내는 사람들에겐 무언가 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에너지의 한계를 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에 쏟을 에너지를 다른 곳에 절대 쏟지 않습니다. 애플의 전설 스티브 잡스는 다시 일에 복귀했을 때 이전 모든 자료들은 다 폐기하고 자신의 방을 매우 단순화했습니다. 페이스 북의 저커버그는 옷 고르는데 신경을 분산시키지 않기 위해 한 가지 옷만을 입습니다. 미국 주식왕 워런 버핏은 다른 것에 정신 팔지 않기 위해 TV와 컴퓨터 등을 사무실에 두지 않고 그의 모든 시간을 신문과 책을 읽고 명상하는 데만 씁니다. 우리나라 이선희 씨도 콘서트가 있을 때는 목을 아끼기 위해 집에서 의사소통할 때는 수첩에 글로 적어서 한다고 합니다. 성공한 누구든지 이 정도로 자신의 에너지 분산을 막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든 시간과 에너지를 한 곳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시골에 살았지만 저에게 거머리는 여전히 꿈에 나타날 정도로 끔찍한 동물입니다. 피를 빨아먹으며 살 속으로 파고 들 것 같은 느낌 때문인지 어렸을 땐 더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거머리 치료법도 있는 것을 보니 거머리가 크게 위해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거머리에게 피 조금 빼앗기는 것을 몸서리치게 싫어했으면서도, 지금은 피와 같은 시간과 에너지를 여기저기 흩뿌리며 살아온 것 같아 후회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피 빼앗기는 것은 두려워하면서 삶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데는 무감각했습니다.
모든 에너지는 쓰는 대로 소진됩니다. 공부하는데도 에너지가 소진되고 게임을 하는데도 에너지가 소진됩니다. 게임을 하여 공부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더 생기는 경우는 없습니다. 에너지는 분명 한계 지워져 있습니다. 그러니 나의 에너지를 빠져나가게 만드는, 내가 애착을 둔 모든 것들을 끊지 않으면 한 가지분야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성과를 거두기란 불가능합니다.
구원만큼 우리가 에너지를 쏟아야하는 것이 있을까요? 구원은 마치 산을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들에 있는 이들은 도시로 들어가지 말고 산으로 올라가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산을 오를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습니다.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젖먹이 아이가 있거나 임신한 여자라면 어떻게 그 급박한 상황에서 산을 오를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아이를 배거나 젖을 먹이는 엄마는 불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상징적인 표현인데 이 세상 것에 애착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노아의 홍수 때처럼 빗물이 들이닥칠 때 노아의 방주까지 다다르지는 못할 것이란 뜻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에너지가 빼앗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살모사의 새끼가 어미를 먹어치우듯 우리 에너지가 내가 집착하는 것에 의해 빼앗깁니다. 그렇게 힘이 분산되면 구원이 힘들어집니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예수님께서 매 맞으시며 고통당하실 때 군중들 사이로 한 여인이 지나가는데 그 여인이 안고 있는 어린 아기가 사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그 여인은 그렇게 세상 것에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 수난 당하시는 그리스도께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는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죽이지는 않으려 했습니다. 가끔은 그에게 찾아가 조언도 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 것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었습니다. 먼저 아내에 대한 애착이었습니다. 동생의 아내를 탐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딸이 춤을 추자 헤로데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게다가 왕국과 사람들에게까지 묶여있기 때문에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요한의 목을 치라고 합니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세상에 대한 애착이 있다면 하느님의 뜻을 따를 에너지는 부족하게 됩니다. 이런 애착은 결국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갑니다.
누구나 자신이 가진 에너지의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도 그 에너지를 이 세상 것에 집착하며 거기에 다 써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 에너지를 오로지 주님께 쏟기 위해 나의 힘과 지성과 시간을 빼앗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마지막에 끊어야 하는 것은 애정입니다. 사람과의 애정도 많은 에너지를 잃게 만듭니다. 사랑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먼저 끊지 않으면 사랑도 할 수 없습니다. 헤로데가 진정 자신의 가족을 사랑한 것일까요? 이용당한 것입니다. 먼저 끊지 않으면 올바른 데 써야하는 에너지도 빼앗기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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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John Mary Vianney)
신분 : 신부
활동지역 : 아르스(Ars)
활동연도 : 1786-1859년
같은이름 :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Joannes Maria Vianney)는 1786년 5월 8일 프랑스 리옹(Lyon) 근교에서 열심한 가톨릭 신자로 농부인 마태오와 마리 블루즈 사이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비안네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고, 5세 때에는 파리(Paris)에서 가톨릭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추방되고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비안네는 어린 시절을 주로 부친의 농장에서 양을 치면서 지냈다. 정규 교육은 몇 개월밖에 받지 않았지만,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여 비밀리에 첫 고해(1794년)와 첫영성체(1796년)를 받았다.
18세 때 부친의 허락을 받고 에퀼리(Ecully) 본당 발레(Balley) 신부의 지도를 받으며 개인적으로 사제직을 위한 공부를 시작하였으나 기초 교육이 부족하고 수학 능력도 많이 떨어졌다. 특히 라틴어 공부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은 신학생이었던 비안네는 1809년에 징집을 당해 갖은 고통을 겪었다.
1811년에 베리에르의 소신학교에 입학하여 철학 과정을 공부하고 1813년에는 리옹의 대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하였으나, 라틴어 성적이 좋지 않아 1년 만에 퇴학당한 비안네는 학과 성적은 부족하였지만 발레 신부의 도움으로 신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신심과 성품을 인정받아 1815년 8월 13일 그르노블(Grenoble)에서 시몽(Simon)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사제 서품 후 발레 신부가 있는 에퀼리 성당에서 2년 동안 보좌 신부로 생활한 비안네 신부는 1818년에 230여 명의 주민밖에 살지 않는 작은 마을 아르스의 본당신부로 부임하였다. 그는 여기서 죽을 때까지 42년 동안이나 봉직하면서 주민들에게 열렬한 신심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비안네 신부의 노력으로 아르스의 종교적인 분위기는 일신되었고, 그 또한 설교자와 고해신부로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결과 1827년부터 수천 명의 고해자들이 그에게 성사를 받기 위해 한적한 시골 마을 아르스로 찾아올 정도였다. 매년 2만여 명의 신자들이 비안네 신부를 찾아왔기 때문에, 그는 오전 11시에 설교를 하고 성무일도와 식사, 특별한 상담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일 새벽부터 저녁때까지 약 18시간 정도 고해성사를 주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동료 사제들은 그를 잘못 판단하고, 그를 무식하고 지나치게 열성적이며 허풍선이라고 비난하곤 하였다. 이에 대해 그의 주교는 “저 신부만큼이나 모두 미쳤으면 좋겠다.”고 하며 그를 옹호하였다.
이렇게 열심한 그 역시 가끔씩 사탄의 유혹을 받기도 하였다. 그의 성품은 지극히 단순하였고, 충고는 간단명료하였으나 신심이 차고 넘쳤으며 직선적인 설교를 하였다. 순례자들의 소란, 끊임없는 고해성사 요구들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였다. 그는 단지 세 번 아르스를 떠났는데, 그것은 모두 수도원에 잠시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비안네 신부는 열심한 성무에 지친 나머지 1859년 8월 4일 73세의 나이로 아르스에서 사망하였다. 1905년 1월 8일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복자가 된 비안네 신부는, 1925년 5월 31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하여 시성되었으며, 1929년에는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본당 신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