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에 2년만에 갖는 모임에 아내와 함께 참석하여 창원에서 점심을 먹고, 고향 산청에 들러고, 다음으로 산청군 차황면 실매리 금포림체육공원에서
"제8회 장사익 찔레꽃 음악제"관람을 하고, 고향의 동네 앞 경호강에 다슬기를 잡고,
집에는 24시가 지나서 도착했는데 4일 동안 할 일을 하루에 했으니 참으로 바쁘게 돌아다녔다.
"찔레꽃 음악제" 공연은 산청군과 소리꾼 장사익의 인연으로 지난 2007년 산청군 대표 청정지역인 차황면 광역친환경단지 지정 축하 공연을 계기로 시작됐다.
산청군은 당시 장씨와의 인연을 계기로 차황면 금포숲 둑방길의 1km 구간에 찔레꽃을 심었다.
또 금포숲에 찔레꽃 노래비를 세우고 산청문화예술회관에서 축하음악회를 열었다.
장사익씨는 이를 계기로 이후, 2011년부터 해마다 찔레꽃 둑길과 노래비가 있는 금포숲에서 "매년 5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6시에 작은 음악회 자선공연인 찔레꽃 음악제 "가 이어지고 있고,
2년동안 코로나로 중지 되었다가 3년차 5월 28일에 "제 8회 찔레꽃 음악제"공연을 하게 되었다.
뒷날인 5월29일에 칠곡 매원마을에서 붉은 찔레꽃을 찍었다. 해마다 꽃구경을 하다보니 주인과 알게 되어 다른 구경꾼들과
다르게 내집처럼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에서 쉬었다가 온다.
마을에서 20Km 정도 가는 성주 초전리에 진하게 붉게 피는 개량 찔레꽃이 있는데 가기 싫어 가지 않았으며, 내년에는 노랑 찔레꽃을 구경해 보아야겠다.
산청 차황면 실매리 찔레꽃
장사익(張思翼, 1949년 ~ )은 대한민국의 음악가 및 국악연주가로 우리 민족이 품고 있는 한(恨)의 정서를 가장 한국적으로
잘 부른다는 소리꾼이 부르는 어머니의 애뜻한 감정이 스며있는 "꽃구경, 찔레꽃" 노래는 가정의 달인 5월에 부모님을
더 그리워하게 된다.
2007년 마을앞 하천 뚝길에 1Km의 야생 찔레나무를 심어 산책로를 조성하였다.
산청 실매리 금포림 왕버드나무군(경상남도기념물 제232호)
마을앞 하천에 9그루의 왕버드나무가 있다. 마을의 방재,방풍을 겸한 풍치림으로 조성되어 현재는 마을주민의 휴식 및 운동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 들판에서 메뚜기를 잡은 기억이 있다. 산청 메뚜기 쌀이 유명하다.
산청은 2018년부터 경상남도가 선정한 우수 브랜드인 "지리산 산청 메뚜기쌀"을 생산하고 있으며,
엄격한 품질관리로 전국최고의 쌀을 만들 수 있도록 지자체와 농가가 노력하고 있다.
요즘은 내가 어릴때처럼 찔레나무가 흔하지 않다. 학교 다녀 오는 길에 통통한 찔레나무 순을 짤라 마디에 씬냉이 즙을 발라서
여학생들한테 짖궂은 장난을 쳤다.
그 가시내들도 지금은 늙어서 할멈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장사익 소리꾼을 좋아한다. 그를 만나기 위해 음악회에 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그 이지만 시골 작은 마을에 온 그는 시골 영감이 되었다.
시골 초등학교 동창회 준비 만도 못한 무대와 앰프 장비, 어둠이 깔리는데도 조명등 하나 없는 무대장치 ......
그의 명성에 비해서 너무나 초라한 무대였지만 그와 잘 어울리는 무대였다.
40대가 넘어서 데뷔하였고 찔레꽃 노래 "하얀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그리워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자신의 처지와 닮은 찔레꽃을 보고 영감을 받아 직접 작사 작곡했다고 한다.
관객과 호흡을 중시하기에 라이브만을 고집하는 순수 국악인이다.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을 때 어여쁜 처녀들을 공녀로 바쳤다.
산골에 병든 아버지와 함께 사는 찔레와 달래가 있었는데 관원들이 둘 다 데리고 가려 했고,
그러나 서로 자기가 가겠다는 모습과 병든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에 감동하여 언니 찔레만 데리고 갔다.
다행히 원나라에서 좋은 주인을 만나 어려움 없이 살고 있었지만, 고향의 병든 아버지와 동생 달래 생각에 항상 근심과
그리움으로 살았다.
주인이 사람을 시켜 아버지와 달래를 찾아 오게 하려 하였으나 찾지 못했고,
그래서 찔레가 주인의 허락을 받고 직접 고향으로 갔지만, 집은 이미 페허가 되었고 아버지와 달래를 만날 수가 없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헤매고 헤매며 아버지와 동생을 찾았지만... 결국은 쓰러져 죽었다는...
그 자리에 핀 꽃이 "찔레꽃", 가지 말라고 잡는 가시, 순결하고 착한 마음씨의 하얀꽃과 슬픔을 이기지 못한 빨간 열매...
그래서인지 찔레꽃 꽃말은 "자매의 우애, 가족에 대한 사랑, 고독, 외로움, 온화함..."등이다.
찔레나무를 보면 군에서 포대장 할 때가 셍각난다.
야간 초병근무를 하던 병사가 초소를 이탈하여 부대 뒷산에 있는 찔레나무 덤불에 들어가 숨어 ? 있었는데
가시에 찔려 피 투성이인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아가씨가 꼬득여서 따라 갔다고 했다.
좋은게 좋다고 나이 많은 부사관들 말대로 음식을 준비해서 찔레덤불에 사는 귀신한테 고사를 지내 주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귀신 소동이 있었는데 터가 나쁜 곳인지 사고가 많아 보직을 채우지 못한 포대장이 많았다.
10 여 년전에 가 보니 부대는 이전하고, 민간인 출입 통제 지역인 그 곳은 밭으로 변해서 찔레나무는 사라지고 없었다.
산청 경호강 다슬기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모래사장, 개울은 사라져 버렸고, 집장수 라고 불리는 물깊이가 어른 10길 되는 소를 걸어서
건널 수 있었다. 이러니 나도 변할 수 밖에.
밤에 다슬기가 기어나오기에 불 켜고 잡아야한다.
동내 사람들은 하루 저녁에 한되 줏는다는데 3되를 주었다. 한되에 5만원 한다니 머리 전등 후레쉬, 기름값 빠졌다.
내가 손 놀림이 빠른 편으로 요령은 손이 도토리, 다슬기 등을 줏을 때에 손에 눈을 멈추지 말고, 눈은 다시 줏을 다른 곳을
살펴야한다.
아내가 반되 정도이니 몇 배를 더 줏은 것이다.
칠곡 매원마을 붉은 찔레꽃
오백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서 깊은 선비의 고장이다.
조선시대에는 안동 화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칠곡 매원마을 영남의 3대 마을이라고 하였다.
본래 300 여 채의 한옥과 200 여 채의 초가집으로 이루어 져 있었으나 6.25전쟁(낙동강 전투)으로 소실되고
현재는 60 여 채만 남아 있다.
붉은 찔레꽃을 보았는지? 흰 찔레꽃만 있는데 노래 가사가 잘못 되었나 의아해 한 것이 몇 년 전이이었다.
1941년 백난아가 부른 "찔레꽃"은 일제 강점기에 광복과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고향을 떠난 수많은 사람들의 향수를 달래는
노래로 유명해졌다.
원래 찔레꽃은 백옥같이 하얀 꽃이며, 식물학적으로 토양조건이나 개체에 따라 연한 분홍색을 띠는 경우가 드물게 있을 뿐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고 변형된 품종인 것 같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고향...... "
남쪽나라는 통상적으로 남해안을 말하며, 해안 백사장에는 붉은 꽃이 피는 해당화가 자랐다.
작사자가 본 찔레는 해당화였다. 그러나 문학작품이나 노래가사에
등장하는 식물 이름이 맞는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이다.
첫댓글 비공개 스크랩이라 이름이 안 딸려 왔네요
김성묵 선생님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