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는 유대인?
20세기의 유명한 유대인 여성 아이콘으로는 보통 로렌 바콜(Lauren Bacall)이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Barbra Streisand)같은 인물들이 꼽힙니다. 그런데 마릴린 먼로는?
“마릴린은 하나의 신화였다”라고 저널리스트 맥스 러너는 1962년에 썼습니다. 그리고 그 신화는 유대인의 것이었습니다. 먼로는 1956년 유대인 극작가 아서 밀러와 결혼하면서 유대교로 개종하기로 선택했습니다.
밀러는 1915년 10월 17일, 뉴욕시 맨해튼의 할렘에서 유대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종교적인 가정에서 자랐으며, 그의 할아버지는 회당 회장이었고, 밀러는 히브리어를 읽을 줄 알아 그 중 약 20% 정도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가족과의 친밀함에서 오는 따뜻함을 느꼈던” 금요일 밤과 안식일에 할아버지와 함께 회당에 앉아 있던 시간을 애틋하게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수많은 2세대 유대계 미국인 청소년들처럼, 밀러는 자신의 뿌리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그는 자신의 유대인 정체성이 불편했고, 아버지의 “너무나 유대적인 이름인 이시도어”가 부끄러웠습니다. 자신의 종교적, 민족적 뿌리를 뒤로 하고자 하는 그 열망의 표식으로, 밀러는 1940년 가톨릭 신자였던 메리 그레이스 슬래터리(Mary Grace Slattery)와 결혼을 했습니다.
밀러는 1951년 영화 《As Young As You Feel》 촬영장에서 먼로를 만났습니다. 그날 처음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밀러는 “그녀의 몸짓이 주는 충격이 내 전신을 휩쓸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올 마이 선즈》와 《세일즈맨의 죽음》 같은 연극으로 그의 명성은 상승세를 타고 있었고, 그는 저명한 공공 지식인으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미모 너머를 본 밀러는 마릴린에게 진지한 연극 배우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가 10살이나 연상임에도 불구하고마릴린은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오늘 밤 한 남자를 만났어… 정말, 쾅! 나무에 부딪힌 것 같았어. 알지, 열이 났을 때 마시는 시원한 음료수 같은 느낌.” 두 사람은 불륜 관계를 시작했고, 비록 짧았지만 계속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5년 후인 1956년 6월이 되어서야 밀러는 메리를 떠나 먼로와 결혼했습니다. 이 결혼은 “지식인이 모래시계 몸매와 결혼하다”라는 헤드라인으로 발표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유대인들에게 큰 자부심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이 당대 최고의 금발 미녀와 결혼한 것은 일종의 인정받는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뉴욕주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화이트 플레인스의 법원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두 사람은 뉴욕주 카토나에 있는 밀러의 오랜 에이전트인 케이 브라운의 집에서 유대교식 결혼식을 거행했습니다. 마릴린의 가족이나 할리우드 친구들은 이 자리에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채, 마릴린은 후파 아래 서 있었고 밀러는 발로 유리잔을 으깨부쉈습니다. 식탁에는 랍스터가 차려졌습니다.
그 후 먼로는 유대교로 개종했습니다. 그녀는 룻기(1:16)에 나오는 서약을 낭독했습니다.
“네가 가는 곳으로 나도 가고, 네가 머무는 곳에서 나도 머물며, 네 백성이 내 백성이 되고, 네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리라.”
그녀의 개종 증명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마릴린 먼로는 이스라엘의 종교를 받아들이고 그 원칙과 관습에 따라 살 것을 서약함으로써 이스라엘의 가문에 합류하고자 하였으며, 1956년 7월 1일 유대교로 입교하였다.”
밀러가 자신의 유대인 정체성에 대해 양가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그녀가 개종한 것은 그의 강요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1926년 노마 진 모튼슨으로 태어난 먼로는 자신이 갖지 못한 가족을 품고 싶은 갈망에서 스스로 유대인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그것이 아서와 그의 부모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결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녀는 유대교 경전을 공부했으며, ‘생략’이나 ‘건너뛰기’와 같은 지침이 적힌 시드르(기도서)를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개종식을 집전한 로버트 E. 골드버그 랍비는 먼로가 “유대교의 합리주의, 즉 그 윤리적·예언적 이상과 긴밀한 가족 생활에 대한 개념”을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모리스 N. 커처의 『유대인이란 무엇인가?』를 비롯해 여러 권의 책을 그녀에게 건넸습니다. “마릴린은 지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배우고자 하는 열망은 진심이었다”라고 그는 회상했습니다. “또한 그녀가 오랫동안 집중하는 능력은 제한적이라는 점도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녀가 유대교의 기본 원칙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느꼈습니다.”
그녀는 심지어 대화 중에 “안녕, 부벨레(bubeleh), 오이 베(oy veh), 뭣이냐”나 “내 엉덩이가 다 드러난 채로 거기 서 있네”와 같은 이디시어 표현을 섞어 쓰기도 했습니다.
마릴린은 친구인 배우 수잔 스트라스버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유대인들의 심정을 잘 이해해. 그들이 뭘 하든 간에, 모두가 항상 그들을 괴롭히려고만 하잖아. 나처럼 말이야.”
뉴욕 유대인 박물관에서 마릴린 먼로 관련 전시를 기획했던 전 큐레이터 조안나 로보탐은 먼로의 개종으로 유대인들이, 특히 홀로코스트 이후, 세계에서의 자신들의 위상에 대해 더 큰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는 전쟁 이후 유대교가 더 이상 사람들이 숨기려 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라며 "사람들은 유대 문화와 정체성을 진심으로 기념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인, 랍비, 지식인, 그리고 미국 공적 정체성의 형성에 대하여"의 저자인 릴라 코윈 버먼은 이에 동의하며 "마릴린 먼로와 아서 밀러의 짧은 결혼 생활은 유대인 사회학적 특수성에 대한 공개적이고도 찬사를 받는 도전을 제기했다"라고 썼습니다.
"외모부터 가족력, 미국 대중문화에서의 위치까지 모든 면에서 유대인이 아닌 것이 너무나 분명해 보이는 사람이 유대인이 될 수 있다면, 유대인에 대한 사회학적 가정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라고 그녀는 덧붙였습니다
먼로는 스스로를 “유대인 무신론자”라고 칭했지만, 1961년 밀러와의 결혼이 끝난 후에도 유대인 정체성을 유지했습니다. 그녀는 문에 메주자를 달고 시드르를 보관했으며, 벽난로 선반 위에는 밀러의 어머니가 개종 선물로 준, ‘하티크바’를 연주하는 황동 도금 음악 하누키야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사망할 때까지 스스로를 유대인으로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장례식은 루터교 목사가 집전했으며 먼로는 유대인 묘지에 묻히지 않았습니다.
마릴린 먼로의 시두르
마릴린 먼로가 보통 유대인의 롤모델로 꼽히지는 않습니다. 이 여배우는 세 번째 남편인 극작가 아서 밀러와 결혼하기 전 비정통 유대교로 개종했지만, 사망 당시에는 루터교 의식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하지만 최근 뉴욕의 한 경매 회사가 먼로의 시드르(유대교 기도서)를 경매에 내놓을 준비를 하면서, 먼로와 유대교의 연관성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이 시두르는 수천 달러에 낙찰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이 기도서에는 먼로가 직접 적은 여백 메모가 있는데, 그중에는 쉐마 끝에 "에메스"라는 단어를 덧붙이고 아침 축복문에 있는 찌찌트 축복문을 생략하라는 지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먼로는 이 기도서에 직접 주석을 달아 유대교 경전에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덧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2018년 11월 경매에 부쳐지기 전 이 책을 검토한 유대교 유물 전문가 조나단 그린스타인은 “책이 낡은 건 분명합니다. 확실히 사용된 흔적이 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히브리어 기도서를 읽으며 여백에 코멘트를 적고, 자신의 가장 깊은 소망과 감정을 토로하던 마릴린 먼로? 이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 여배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더구나 우리 중 몇이나 유대교 기도문을 읽고 탐구하며 깊이 생각해 볼 시간을 내겠습니까? 우리 중 몇이나 시드루를 소장하고 있으며, 만약 소장하고 있다면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각과 주석을 적은 게 언제였을까요?
아침에 눈을 뜨는 첫 순간부터 밤에 마지막으로 내뱉는 말까지, 모든 순간을 위한 아름다운 유대교 기도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기적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일은, 삶을 단순히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선물로 여기게 해줍니다.
사실, 시대를 초월한 유대교 기도문을 읽는 행위 그 자체가 세상을 바라보고 대하는 방식, 그리고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방식을 바꿔놓습니다. 다윗 왕과 같은 위대한 인물들이 지은, 유대인들이 수천 년 동안 읊어 온 바로 그 기도문을 내가 낭송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유대 민족과의 유대감을 느낍니다.
아마도 이 영원하고 영적인 전통의 일부가 된다는 느낌이야말로 먼로가 시드르를 훑어보게 만든 동기가 아니었을까요.
By Anna Rahmanan
By Dr. Yvette Alt Miller
By Arielle Kaplan
By The jewish Chron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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