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1220
#성탄절
예수님께서 여관의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직후에 들판의 목동들이 천사의 지시를 받아 가장 먼저 찾아와 경배하였고,동방에서온,적어도 세명은아닌, 수많은 점성술사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정착하신 이후에야 찾아와서 경배와 예물을 드렸음에도,교회들이 성탄절에 목자들이 아니라 동방박사들만 단골로 장식하고 다루는 이유는,목자들은 빈천하였고 동방박사들은 부귀하였기 때문이다.
칼빈선생을 비롯한 신앙개혁가들은 당시에 교황주의자들에 의해서 성찬이나 고해성사가 일년에단한번 시행됨으로써,나머지 364일에는 사람들이 방종하게 된다고 개탄하였었다.오늘날 교회의 성탄절은 마치 신앙개혁가 시대의 성찬이나 고해성사와도 같이,교인들로 하여금 일년에 단 하루 또는 며칠 또는 겨울한철에만 주님의 오심을 생각하게 하고 그 이외에는 마치 성탄을 언급하면 안되는 것마냥 터부시하게 만든다.
#벨기에신앙고백서 9.삼위일체의 성경적근거(2)
It is true that he does not say here how many persons there are-- but what is somewhat obscure to us in the Old Testament is very clear in the New.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몇 분의 위격이 계신지 이 구절들에서는 말씀하고 계시지 않으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삼위일체에 대한 구약성경의 불명확한 사항은 신약성경에서 아주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을 간단히 열거해본다면,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과 함께 동산을 거니신 분, 대홍수 후에 사람들이 모여서 높은 탑을 쌓을 때 그들의 일하는 것을 보시고자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 조카 롯을 구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을 맞이하고 먹을 것으로 접대하며 축복하셨던 살렘 왕 멜기세덱, 두 천사들과 함께 이 땅에 내려오셔서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 가시던 중에 아브라함에게서 접대를 받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야기를 나누신 분, 얍복 강 가에서 잠자전 야곱을 깨우시고 그와 밤새도록 씨름하시며 그에게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의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신 분, 시내 산에서 모든 영광으로 모세 앞에 나타나시고 지나가시며 당신의 등을 보이신 분, 여리고를 점령하러 진군하는 여호수아 앞에 칼을 들고 서있었던 여호와의 사자, 사사 시대에 기드온과 마노아 부부에게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예언을 주시고 그들의 제물을 받으신 분, 선지자 에스겔과 다니엘 등에게 하늘의 영광의 사람으로 나타나신 분 등이 있다. 구약시대에는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은 알았어도 왜 그 분이 사람의 모습으로도 나타나셨었는지, 사람으로서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만 받을 수 있는 경배와 제사를 받으실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고 희미하게만 알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그렇게 하나님으로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던 분이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심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일례로 바울 사도는 히브리서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인 살렘 왕 멜기세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시라 증거한다. 또한 요한 사도는 계시록에서 자신에게 나타나신 주님의 형상을 에스겔과 다니엘이 목격한 모습과 동일하게 묘사함으로써 그 선지자들에게 환상으로 나타나셨던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한다.
For when our Lord was baptized in the Jordan, the voice of the Father was heard saying, "This is my dear Son"; the Son was seen in the water; and the Holy Spirit appeared in the form of a dove.
우리 주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부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라고 말씀하신 음성이 들렸고, 성자 하나님께서는 물 속에 계신 것이 보였으며, 성령 하나님께서는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물론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시지만, 이 땅에 계셔서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신 분은 하나님이신 성자가 아니시고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신 성자께서는 성령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성령을 내보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는 성령께서 그분의 인성의 영에 완전충만하게 거하신다. 따라서 성부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을 가리켜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이시라 하신 것은, 영원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독생자로 낳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고백서의 내용에서는 성자 하나님께서 물 속에 계셨다는 것을 영원 전부터 성부의 독생자로서 성자 하나님과 연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께서 물 속에 계셨다는 것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세례 받으시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나타나셨다는 것은,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나오신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의 영에 완전충만하게 거하신다는 것을 증거하는 상징이다.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셨다고 해서 성령의 형상이 비둘기라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 세례를 받으셨다고 해서 그분께 무언가 씻어야 할 죄가 있었다고도 여겨서는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당신 자신에게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셨기 때문이다.
So, in the baptism of all believers this form was prescribed by Christ: "Baptize all people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받으신 세례의 형식대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세례 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신자가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아버지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의 거듭나게 하심에 따라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양자가 되었다는 외적인 증표이다. 신자가 아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영원 전부터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피를 흘리시고 내 모든 죄를 말끔히 씻으셔서 성령을 보혜사로 받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해주신다는 외적인 증표이다. 신자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이신 성령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기로 성부께 선택된 성도들을 때가 되어 거듭나게 하시고 그들 각자의 영에 보혜사로서 거하셔서 신앙을 고백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신다는 외적인 증표이다.
#20191220
#성경묵상 #창세기 #Genesis 11장.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부끄럽게도 나는 지금까지, 아니,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소위 바벨탑을 세우려 한 것이 노아 때 있었던 홍수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본문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홍수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언급은 없다. 성경의 다른 본문에 이에 대한 기록이 있는지 지금으로서는 기억이 나지 않으므로 나로서는 내가 지금까지 오해하고 있었음을 시인할 수 밖에 없다.
노아의 후손들이 시날 평지에 이르르자 서로간의 합의하에 했던 것은 거주할 성읍과 탑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통상적으로 본다면 성읍과 탑을 쌓는다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성읍은 주민들이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도록 경계를 지어 보장하는 것이고 탑은 그 성읍의 주민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밝히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아의 후예들의 의도는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았다. 그들이 성읍을 건설하려는 의도는 자기들끼리 흩어지지 않으려는 것이었는데 이는 온 땅에 퍼져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지상 명령을 정면으로 배격하는 것이며 자기들 외에는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철저한 배타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유대인들의 왜곡된 선민사상이 그러하였고 지식과 지혜를 숭상하는 헬라인들의 우월주의가 그러하였다. 변화산에 오른 세 제자들이 여기가 좋사오니.. 했을 때 예수께서는 정신없는 소리 한다며 질책하셨고, 성령을 받은 120여 명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만 머무르려 하자 그리스도께서는 야고보와 스데반을 순교시키심으로써 그들을 사방으로 흩으셔서 당신의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 2차 대전 때 히틀러의 독일은 아리아 우월주의를 내세워 유대인들과 집시들과 부랑아들과 장애인들을 통틀어 6백만 여 명을 학살하였으며 당시 독일과 같이 군국주의를 표방한 일본 또한 그런 자민족 우월사상으로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이시아인을 대대적으로 학살하였다. 이런 배척 사상은 비단 민족주의로만이 아니라 인종, 계급, 재산, 집안, 종교, 지위, 장애 여부 등의 수많은 기준들에 의해서 드러나기도 한다. 전 인류가 각자 누리는 모든 것은 사실 하나님께서 각자의 형편에 맞게 주신 것인데, 남들보다 많이 받은 자들은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알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들을 자손 대대로 악착 같이 누리고자 하여 온갖 불법과 편법과 착취 등을 일삼는다. 이런 현상은 또한 오늘날 교회 내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 무릇 모든 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이고 자매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인 기준에 따라 또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 성령께서 주신 은사의 형태에 따라 또는 자기 마음에 드는 목회자를 따라 또는 교회를 섬기라고 부여한 직분을 따라 이리저리 파벌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노력에 대한 정당한 성과와 효율을 위해서 꼭 필요한 어느 정도의 분류와 구분은 반드시 있어야 되겠지만, 그 목적을 벗어나서 나와 남 사이에 선을 긋고 담을 쌓아 배격하려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괘씸하게 여기시는 것이다.
노아의 후예들이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으려 한 목적은 자기들의 이름을 만방에 드러내려는 것에 있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을 자기네들이 가로채겠다는 악한 교만함의 발로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속인들은 이 땅에서의 자기 인생을 전부로 알고 살아있을 때 최대한 많은 것을 이루고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소위 말하는 자아실현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자기들의 성과를 오로지 자기들의 힘으로 이루어낸 것으로 알고 널리 알리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보다 세속인들이 모든 방면에서 학문이나 문명의 많은 것들을 이루어 내는 것이며 신자들이 그들에게서 많은 유익을 얻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세속인들에 의해 문명과 학문 등이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해도 그것은 단지 이 땅에서의 인간들에게나 유익한 것일 뿐이다. 세속인들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재능은 자기들 것이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 날에는 인간들이 지금까지 이룩해 온 모든 문명과 학문들이 소멸하는 불에 태워 사라져버릴 것이다.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으려는 교만은 오늘날 교회에도 깊게 침투해 있는데 내 생각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크고 잘 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기도가 아닐까 싶다. 시험 1등 해서, 명문대 들어가서, 토익 잘 봐서, 좋은 대기업 들어가서, 공무원이나 임용고시 합격해서, 사업이 잘 돼서, 자녀가 성공해서.. 등등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것이다. 목사들은 자기 교회가 양적으로 부흥(?)해서, 외부 사업을 크고 웅장하게 해서, 교회 건물을 으리으리하게 지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나 교인들이 이런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것은 사실 자기 만족과 유익과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슬쩍 발라놓은 것에 불과하다. 설령 그렇게 크고 웅장한 외적 성과들이 어느 정도 유익을 줄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부요하다 하나 거지처럼 가난하고 추레한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아서 돌이키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입에서 내쳐질 결말을 맞게 될 뿐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성화와 경건한 삶은 내 마음에 높게 세워진 크고 웅장하고 견고한 교만의 탑을 꼭대기부터 조금씩 깎아내어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는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성육신 이전에도 하늘에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영광의 인성으로 성자 하나님과 연합하여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약 시대에 간간이 인간으로서 이 땅에 오시곤 하셨다. 당시 사람들이 짓는 성읍과 탑을 보시려고 하늘에서 내려오신 여호와 하나님은 다름아닌 성자 하나님과 연합하신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그래서 인간으로서 성읍과 탑을 이리저리 둘러보시고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시고는 당신과 연합하신 성자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통하심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시고 그들에 대한 징계를 시행하신다. 이 외에도 인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살렘 왕 멜기세덱으로 이 땅에 잠시 머무시면서 그리스도께서 이어 받으실 멜기세덱의 반차와 서열로서의 대제사장을 역임하셨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내년 이맘 때 아들을 낳을 것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알려주셨으며,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밤새도록 씨름하시고 일부러 져주시고 축복하시기도 하셨다.
인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불의한 성읍과 탑을 쌓는 주민들에게 내리신 징벌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의사소통을 차단하시고 언어별로 뿔뿔이 흩어지게 하신 것이다. 이는 그들이 불의한 의견에 한가지로 동의하였기 때문이다. 광야에서 40년 간 하나님과 모세를 대적했던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심지어 모세 조차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소돔과 고모라 주민들은 롯의 집에 머문 천사들을 해하려다가 마침내 하늘의 유황불에 멸망을 당했다. 레위인의 첩을 윤간했던 베냐민 지파는 600명의 장정 외에는 전멸을 당했다. 기드온의 서자 아비멜렉의 꾐에 넘어간 세겜 족속은 결국 요담의 저주대로 아비멜렉과 불화가 생겨 망대에 갇혀 1천 명의 주민이 불에 타 죽었다. 아버지 다윗을 반역한 압살롬은 아히도벨이라는 걸출한 책략가가 있었어도 분열이 일어나 진압 당해 죽게 되었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을 배반하고 애굽과 손잡으려다가 느부갓네살에게 잡혀 두 아들이 죽임 당하는 것을 보고 눈이 뽑히게 되었다. 내가 소속된 교회는 불미스러운 사건과 사고를 당시 담임목사가 내부 분열을 일으키고 부교역자들을 핍박하여 어떻게든 덮으려다가 결국 자기 욕심을 따라 교회를 버려 나가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교회에서건 세속에서건 인류의 모든 것은 하냐님께서 섭리하시므로 하나님 앞에 불의한 모든 의도는 잠시 큰 효과를 누리는 것 같아도 이 땅에서건 마지막 날에서건 반드시 그리스도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된다.
#20211220
#여호수아 #Joshua 19:1-48
시므온 자손의 기업
1 둘째로 시므온 곧 시므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들의 기업은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라
2 그들이 받은 기업은 브엘세바 곧 세바와 몰라다와
3 하살 수알과 발라와 에셈과
4 엘돌랏과 브둘과 호르마와
5 시글락과 벧 말가봇과 하살수사와
6 벧 르바옷과 사루헨이니 열세 성읍이요 또 그 마을들이며
7 또 아인과 림몬과 에델과 아산이니 네 성읍이요 또 그 마을들이며
8 또 네겝의 라마 곧 바알랏 브엘까지 이 성읍들을 둘러 있는 모든 마을들이니 이는 시므온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이라
9 시므온 자손의 이 기업은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 취하였으니 이는 유다 자손의 분깃이 자기들에게 너무 많으므로 시므온 자손이 자기의 기업을 그들의 기업 중에서 받음이었더라
시므온은 레위와 함께 누이 디나를 강간한 하몰의 아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여호와께서 지정하신 거룩한 할례를 가지고 세겜 족속을 속여서 멸절시킨 죄악으로 인해 아비 야곱에게서는 축복이 아닌 혹독한 저주의 유언을 들은 바 있다. 또한 광야에서는 이스라엘의 수령들이 발람의 꾀에 빠져 모압 여인들과 간음과 우상숭배에 빠져 여호와의 재앙을 받아 백성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때에 시므이 지파의 수령이 모압 귀족 여인 고스비와 함께 장막으로 들어가는 이성없는 짐승같은 죄악을 지음으로 인해서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의 각 지파들을 축복할 때 시므온 지파만은 배제되는 굴욕을 당하게 되었었다. 야곱에게서나 모세에게서나 축복에서 배제된 영향인지는 몰라도 시므온 지파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스스로 땅을 차지할만한 의지와 능력이 없었고 그대로 있다가는 아무런 기업도 얻지 못하고 가나안 족속마냥 사라져버릴 위험에 처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모든 지파들 중에서 가장 무능하고 나약한 시므온 지파를 건져내어 일으켜 세운 것은 야곱과 모세에게 가장 크고 영화로운 축복을 받은 유다 지파였다. 갈렙이 이끄는 유다 지파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데 있어서도 가장 탁월하고 견고한 신앙 위에서 가장 진취적이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새로 할당받은 지역이 험준하고 철병거가 있다고 투덜댄 것과는 달리, 갈렙은 그다지 비옥하지도 않은데다 주민들이 철병거를 가지고 있었던 헤브론 산지를 먼저 달라고 요구하였고 자기 딸 악사까지 내놓으면서까지 힘겹게 그 땅을 차지할 정도로 용맹하였다. 따라서 유다 지파는 스스로 노력해서 차지한대로 전부 기업을 삼아도 다른 지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기에 합당하였다. 하지만 유다 지파는 가장 무기력하고 무능하고 나약한 시므온 지파가 한 점의 땅도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위해 자신들의 기업 중 많은 부분을 기꺼이 떼어내주는 그야말로 통큰 기부를 행한다. 혈통적으로는 유다가 시므온보다 동생이었지만 유다 지파는 자기보다 못한 형 지파를 위해서 그렇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헌신한 것이었다. 시므온 지파로서는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동생 지파로부터 그런 큰 기업을 받았기 때문에 유다 지파에 대해서 항상 감사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르호보암 왕 시대에 여로보암을 따라 유다 지파를 배반해버리는 배은망덕을 저지르고 만다. 그래도 어찌된 영문인지 사도 요한의 계시록에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인침을 받은 14만 4천 명의 열두 지파 중 하나에 포함되는 영광을 누린다.
스불론 자손의 기업
10 셋째로 스불론 자손을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들의 기업의 경계는 사릿까지이며
11 서쪽으로 올라가서 마랄라에 이르러 답베셋을 만나 욕느암 앞 시내를 만나고
12 사릿에서부터 동쪽으로 돌아 해 뜨는 쪽을 향하여 기슬롯 다볼의 경계에 이르고 다브랏으로 나가서 야비아로 올라가고
13 또 거기서부터 동쪽으로 가드 헤벨을 지나 엣 가신에 이르고 네아까지 연결된 림몬으로 나아가서
14 북쪽으로 돌아 한나돈에 이르고 입다엘 골짜기에 이르러 끝이 되며
15 또 갓닷과 나할랄과 시므론과 이달라와 베들레헴이니 모두 열두 성읍과 그 마을들이라
16 스불론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마을들이었더라
스불론은 야곱에게서는 해변에 거주하게 될 것이라는 축복을 받고 모세에게서는 밖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는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이 제비뽑아 받은 기업은 가나안 내륙이 아니라 해변이었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지명에 '가드'가 들어가면 블레셋 족속이 사는 땅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윗에게 죽은 블레셋의 골리앗도 가드 사람이라 하였고 다윗의 용사들에게 죽임당한 블레셋의 장대한 자의 소생들도 가드 사람이라 불린다. 림몬이라는 지역은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던 우상 신인 림몬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인지도 모른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뜻으로서 알다시피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이다.
잇사갈 자손의 기업
17 넷째로 잇사갈 곧 잇사갈 자손을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18 그들의 지역은 이스르엘과 그술롯과 수넴과
19 하바라임과 시온과 아나하랏과
20 랍빗과 기시온과 에베스와
21 레멧과 엔 간님과 엔핫다와 벧 바세스이며
22 그 경계는 다볼과 사하수마와 벧 세메스에 이르고 그 끝은 요단이니 모두 열여섯 성읍과 그 마을들이라
23 잇사갈 자손 지파가 그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마을들이었더라
잇사갈은 야곱에게서는 양의 우리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 모세에게서는 장막에 거할 것이라는 축복을 받았으므로 아마도 스불론 기업의 안쪽 내륙을 기업으로 받았을 것이다. 이스르엘은 아마도 아합과 이세벨의 왕궁이 있었던 곳으로 보인다. 아합과 이세벨은 자기들의 극악무도한 악행으로 인해서 여호와의 선지자로부터 이스르엘의 개들이 아합과 이세벨의 피를 핥을 것이라는 저주를 받았고 이세벨은 예후에 의해 성의 창문에서 떨어져 죽은 후에 들개들에 의해 시체가 먹히게 되었다. 수넴이란 지역에서는 죽음을 앞둔 노년의 다윗을 수종든 처녀 아비삭과, 선지자 엘리사를 위해 숙소를 비롯한 여러 호의를 베풀고 많은 나이에 아들을 얻은 여인의 고향이기도 하다. 벧 세메스는 여호와의 언약궤를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은 블레셋이 여호와의 재앙을 견디지 못하고 수개월만에 금으로 만든 쥐와 독종 형상의 예물과 함께 금방 새끼를 낳은 암소 두마리가 이끄는 수레로 언약궤를 돌려보낸 처음 장소였다. 벧 세메스에 사는 이스라엘 주민들은 언약궤가 돌아오는 것은 기뻐하였어도 지나친 호기심에 언약궤를 들춰보는 신성모독을 저지름으로써 (5만)70명이 즉사하는 재앙을 당하기도 하였다.
아셀 자손의 기업
24 다섯째로 아셀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25 그들의 지역은 헬갓과 할리와 베덴과 악삽과
26 알람멜렉과 아맛과 미살이며 그 경계의 서쪽은 갈멜을 만나 시홀 림낫에 이르고
27 해 뜨는 쪽으로 돌아 벧 다곤에 이르며 스불론을 만나고 북쪽으로 입다 엘 골짜기를 만나 벧에멕과 느이엘에 이르고 가불 왼쪽으로 나아가서
28 에브론과 르홉과 함몬과 가나를 지나 큰 시돈까지 이르고
29 돌아서 라마와 견고한 성읍 두로에 이르고 돌아서 호사에 이르고 악십 지방 곁 바다가 끝이 되며
30 또 움마와 아벡과 르홉이니 모두 스물두 성읍과 그 마을들이라
31 아셀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마을들이었더라
아셀 지파는 야곱에게서는 왕의 수라상을 차릴만큼 기름진 소산물을 낼 것이고, 모세에게서는 다른 형제들보다 더 복을 받고 형제들의 기쁨이 되며 발이 기름에 잠길 것이라는 축복을 받았으므로, 아마도 그들이 받은 기업도 매우 비옥한 땅이었을 것이다. 갈멜은 아마도 선지자 엘리야가 아합을 추종하는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 850명과 겨뤄 승리를 거둔 지역일 것이다. 벧 다곤은 다곤의 집이라는 뜻으로서 아마도 블레셋이 섬기는 우상 신인 다곤의 신전이 있었던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납달리 자손의 기업
32 여섯째로 납달리 자손을 위하여 납달리 자손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33 그들의 지역은 헬렙과 사아난님의 상수리나무에서부터 아다미 네겝과 얍느엘을 지나 락굼까지요 그 끝은 요단이며
34 서쪽으로 돌아 아스놋 다볼에 이르고 그 곳에서부터 훅곡으로 나아가 남쪽은 스불론에 이르고 서쪽은 아셀에 이르며 해 뜨는 쪽은 요단에서 유다에 이르고
35 그 견고한 성읍들은 싯딤과 세르와 함맛과 락갓과 긴네렛과
36 아다마와 라마와 하솔과
37 게데스와 에드레이와 엔 하솔과
38 이론과 믹다렐과 호렘과 벧 아낫과 벧 세메스니 모두 열아홉 성읍과 그 마을들이라
39 납달리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마을들이었더라
납달리 지파는 모세에게서 서쪽과 남쪽을 차지하리라는 축복을 받은대로 가나안의 서쪽과 남쪽 땅을 제비뽑았다.
단 자손의 기업
40 일곱째로 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41 그들의 기업의 지역은 소라와 에스다올과 이르세메스와
42 사알랍빈과 아얄론과 이들라와
43 엘론과 딤나와 에그론과
44 엘드게와 깁브돈과 바알랏과
45 여훗과 브네브락과 가드 림몬과
46 메얄곤과 락곤과 욥바 맞은편 경계까지라
47 그런데 단 자손의 경계는 더욱 확장되었으니 이는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셈과 싸워 그것을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하였음이라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서 레셈을 단이라 하였더라
48 단 자손의 지파가 그에 딸린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들의 마을들이었더라
단 지파는 야곱에게서는 말의 발굽을 무는 뱀으로, 모세에게서는 새끼 사자라는 예언을 받았는데 이것이 축복인지는 모호하다. 단 지파는 형제 지파도 약탈할 정도로 무자비하였고 사도 요한의 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인치심을 받는데에서도 지파 전체가 배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