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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는가?
과연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여 마음과 뜻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 무엇인가?
사실 이 말씀은 영어로 보면 더 쉽고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다. "여호와를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온 마음과 영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부지런히 청종한다면" 이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 하나님을 위해 사는 방법은 그분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수많은 복이 따라올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순종밖에 없다.(신11:13~15)
2 미혹되면 속히 멸망한다
미혹되면 속히 멸망한다. 이것은 흡사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라는 말씀을 연상시킨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모르는 것도 명령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뱀의 거짓말에 미혹되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말씀을 알고 있으나 미혹됨으로 더이상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망하는 것이다.
다른 신에게 절하는 것은 꼭 무릎을 꿇어야 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신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면 그 통치아래 굴복한 것이다. 즉, 내가 따르는 생각이 우리의 주인이고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신11:16~21)
3 미혹되면 뱀이 하나님이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뱀의 가치관이다.
하나님께서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했지만 뱀은 죽기는 커녕 하나님처럼 지혜로와진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해서 하나님처럼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뱀은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 순종하지 않아야한다고 가르친다. 순종하면 어리석어 진다고 말한다. 오히려 순종하면 망할 거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만약 순종했는데 삶이 최악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뱀의 철학이다. 우리가 실패해서 돈이 없어서 하나님께서 영광받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입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신함으로 영광 돌리지 못하는 것이다. (창2:17, 3:1~6)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미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불법을 따른다면 뱀을 섬기는 것이다. 누가 뱀을 섬기고 싶겠는가? 광명의 천사를 가장하기 때문에 속고 섬기는 것이다.
4 언제나 생명나무와 선악과의 싸움이다
에덴에서 생명나무는 영생을, 선악과는 멸망을 주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 앞에 복과 저주를 두셨다. 우리도 둘 중에 선택해야 한다. 복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는 것이고 저주는 불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른 신을 따르는 것이고 뱀의 철학이라는 것은 이미 전에 언급했다. 그래서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셨다.
5. 운명론, 예정론에 따라 우리를 짓지 않으셨다.
분명 우린 자유의지가 있으며 마음과 영을 다해 하나님을 선택해야 할 책임이 있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예정은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구원이나 선택까지 예정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엡1:5)
히브리서 기자도 안식에 이르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을지라도 믿음이 없으면 결코 이를 수 없음을 증언하고 있고 많은 선지자들도 돌이켜 순종할 것을 말하고 있다. (히4:1,2)
6 영생을 얻는 방법은 무엇인가?
예슈아께서 죽으시기 전에 영생을 얻는 자가 적을까봐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거할 곳이 많다고 위로하신다. 거할 곳이 많다는 것은 들어올 자도 많다는 것이다. 또한 이 땅에서 목수셨던 예슈아께서 아버지의 나라에서도 집을 짓고 계신다. 그러면서 예슈아께서 계신 곳에 제자들도 있을 것이고 어떻게 가는지 방법을 알고 있을 거라고 말씀하신다. 길은 방법을 의미한다. 이때 의심이 많고 매사에 신중한 도마가 어떻게 영생얻는 방법을 자기들이 알겠느냐고 항변한다. 죽었을 때 예슈아가 계신 그곳에 가는 방법을 어떻게 알겠는가? (요14:1~4)
7 예슈아 자신이 생명을 얻는 방법이다?
예슈아께서 너무 당혹스러워하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이 영생을 얻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구약은 계명에 순종해야 생명을 얻었다면 신약은 순종이 아니라 예슈아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말인가? 이제 모세의 율법이 방법이 아니고 더이상 진리도 생명도 아니며 예슈아만 믿으면 된다는 말인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이젠 예슈아께서 대표로 순종하셨으므로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말인가? (요14:6)
우리는 이렇게 이해해왔다. 그러나 그때 제자들은 예슈아의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이 땅에서 예슈아께서 가르치셨던 모든 영생의 방법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예슈아께서 어떻게 사셨는지 떠올렸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씀하시고 행하셨는지 떠올렸을 것이다. 또한 앞으로 어떻게 죽기까지 말씀에 순종하시는지 보고 더욱 알게 되었을 것이다.
8.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
예슈아를 알았다면 아버지를 알 것이고 여호와를 이미 본 것이라 말씀하고 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이때 빌립은 아버지를 보면 소원이 없을 거라고 말하고 이에 예슈아께서 자기를 본자는 아버지를 본거라고 대답하신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요14:7~9)
9 아버지와 하나인 이유는 판단의 방법에 있다
제자들이 예슈아를 통해 아버지를 볼 수 있다는 말에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그들의 믿음없음을 책망하셨다. 왜 이것이 믿음의 문제일까? 그것은 아버지께서 예슈아안에 거하심을 왜 믿지 않느냐는 말씀이셨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예슈아안에 혹은 내 안에 거하심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아버지께서 예슈아 안에 또는 내 안에 거하시는 방법은 말씀과 다르게 판단하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오직 말씀대로 생각하고 말씀대로 살 때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내 안에서 그분의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다음 구절에 자신이 아버지안에 있는지 모르겠으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떻게 사는지로 분별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아버지께 속하였다는 증거가 된다. 만약 내가 아버지의 말씀과 다른 판단으로 불순종하고 있다면 그 부분은 뱀에 미혹된 것이다. 반드시 축사가 필요하다. 축사는 다른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할 때 빛으로 인해 자연히 어둠을 떠날 것이다. (요14:10~11)
10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는 예슈아와 성령
우리는 자유의지가 있는 창조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스스로 할 수 없다. 이건 자유가 없다는 말인가? 그 말이 아니라, 말씀과 멀리 떨어져서 다르게 판단하거나 말하지 못한다는 말이다.(요5:19)
그런데 성령도 마찬가지다. 진리이신 예슈아처럼 진리이신 성령도 오직 진리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를 인도하실 뿐이다. 오직 아들 예슈아와 성령은 진리이신 아버지로 하나이다. (요16:13)
예슈아께서 아버지와 하나인 것처럼 우리도 하나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여러 사람이 한 진리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예슈아께서도 아버지와 진리로써 하나되신다는 말이다.(요17:11)
11 우리와 영원히 진리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거하시는 방법은 진리이다. 그리고 그 진리는 아버지의 계명이다. 예슈아께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새 계명이 아니라 처음부터 있던 아버지의 율법이다.(요이1:2~6)
사도 바울도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고 증언하고 있으며(롬7:12) 다윗도 율법은 진리라고 노래하고 있다. (시119:142) 우리가 믿고 있는 믿음이 얼마나 큰 믿음이길래 율법을 거절할 수 있는가? 생각해봐야한다. 2000년 동안 이스라엘과 율법을 거절한 잘못된 믿음을 이제는 회개하고 회복할 때가 되었다.
12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성령을 부으신다
우리는 성령 충만하기를 소망한다. 그게 기도제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령 충만해 질 수 있는가? 영어 번역을 보면 "너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계명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예슈아께서 아버지께 요청하여 자신과 같은 도우시는 위로자, 상담자인 진리의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영원히 함께 하실것이다.
즉, 같은 진리로 영원히 우리안에 거하실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성령이 부어진다. 다시 말하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 왜냐하면 계명이 진리이고 성령이 진리의 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자신의 방법으로 사랑한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진리만큼만 제한적으로 부어질 것이고 모르는 만큼 미혹될 것이다.(요14:15~17)
13. 예슈아의 계명은 순교 정신이다
예슈아께서 아버지 안에 거하신 방법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킨 것이다. 우리가 예슈아 안에 거하는 방법은 예슈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여기서 계명은 '명령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예슈아의 명령들은 무엇인가? 예슈아께서 하신 것처럼 죽기까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죽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했고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심같이 죽음으로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어떤 계명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 이르러야 하는지 장성한 믿음의 분량을 말하는 것이다. 즉, 예슈아의 새 계명은 사랑으로 순교하는 정신이다. 예슈아의 어떤 가르침도 여호와의 명령을 제거하거나 약화시킨 적이 없다.
유관순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여 죽기까지 고문을 참은 것처럼 예슈아께서 하나님의 나라와 인간을 사랑하여 죽기까지 고문을 참으신 것 처럼 어떠한 하나님의 명령을 경감하거나 약화시킨 것이 아니라 최고의 수준으로 올려 놓으시고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시고 우리도 할 수 있다고 격려하시는 것이다.(요15:10~14)
14 내 방법으로 사랑하지 말고 진리대로 하자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의 계명을 지키게 된다. 그리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키기에 무겁지 않다. 우리가 무겁고 어렵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고 지킬 수 있는 율법을 주셨다고 생각하므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요일5:2,3) 사랑이란 처음부터 들은대로 어버지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 세상도 사랑을 추구한다. 그리고 '내로남불'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말도 존재한다. 각자 사랑에 대한 다른 생각과 판단을 하고 있다. 요셉을 원했던 보디발의 아내의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 정욕이었던 것처럼 또한 무지개를 더럽히는 자들이 추구하는 것도 사랑이 아니라 죄에 대한 욕망인 것처럼 사랑에 대한 성경과 다른 정의를 내리는 것은 모두 미혹이다. 사랑이란 성경대로 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 그 행함은 예슈아의 가르침대로 진정한 믿음, 소망, 사랑으로 해야 할 것이다. (요이1:6)
15 옛 계명이 있으면 아버지와 아들 안에 있다
처음부터 들은 것은 바로 옛 계명이다. 아버지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다. 예슈아께서 이땅에 오신 것도 우리의 양심을 씻고 살같은 마음을 주어 아버지의 규례와 법도를 마음판에 새겨 넣음으로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기 위함이다. 아버지나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거하는 자는 바로 모세에게 주신 계명을 행하는 자들이다. (요일2:24,25)
그러므로 순종과 불순종이 있고 생명 나무와 선악과가 있고 복과 저주가 있는 것 처럼,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이 있다. 우리가 계명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미혹의 영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말씀대로 영을 분별할 수 있다.(요일4:6)
16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유업을 얻지 못한다
율법을 지키는 유형은 두가지이다. 이스마엘과 이삭이다.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났고 쫒겨 났으며 유업을 얻지 못했다. 과연 율법 아래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율법을 지키는 자를 말하는가? 만약 율법을 지키는 자가 망한다면 아버지의 말씀과는 정반대이다.(갈4:21~31)
17 율법 아래 있는 것은 불순종 때문이다
율법 아래 있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반대이다. 율법 아래 있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아니라 정욕과 탐심으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말한다. 즉, 법에 의해 제제를 받는 상태이다. 반면 성령의 열매는 율법이 금지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율법에 의해 제제를 받는 육의 속한 자가 아니라 성령에 속한 자가 되어 금지당하지 않는 자유자가 되야 할 것이다.(갈5:18~24)
18 진리가 우리를 죄에서 자유하게 한다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알게 하고 죄를 짓지 않게 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자로 지으셨다. 그러나 죄를 지으면 우린 뱀의 종이 된다.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것은 진리이며 우리를 망하게 하고 종삼은 것은 죄이다. 우리는 율법을 아는 단계에서 성장하여 죄를 이기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재정이나 질병, 수많은 억압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유할 수 있다.(요8:31~34)
19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진리가 없고 거룩해질 수 없다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거짓말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누구도 거짓말 쟁이가 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지으면서도 스스로 의롭다고 속지 마라(요이2:3,4)
또한 아버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큰 문제는 거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죄를 짓는 자로서는 신부들이 입도록 유일하게 허락된 옳은 행실로 옷을 입을 수 없고 예복을 입지 못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린 하루빨리 아버지의 계명들을 회복하고 예슈아의 순종까지 장성한 믿음으로 자라나야 할 것이다.(요17:17) 그래서 흠과 티와 주름잡힌 것이 없는 영광스런 교회로, 신부로 준비될 수 있다.(엡5:26,27)
샤밧 예배: 토요일 10시 30분
헌금 계좌: 농협 301 0293 8190 01 레올람토라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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