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얻는 것은 세상을 얻는 것과도 같습니다. 아마도 연애를 해본 사람은 비슷하게 느낄 것이라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온 세상이 내 것으로 다가온 느낌입니다. 그렇지 않았던가요? 하기야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니 연인의 사랑을 얻으면 다 얻은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그 때부터 바라보는 세상의 색깔이 달라집니다. 정말 살맛나는 세상이 됩니다. 살맛 정도가 아니라 바라고 소망하는 행복 그 이상의 감정을 경험합니다. 그만큼 그 인연이 깨질 때의 아픔을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세상을 얻은 느낌대로 세상을 다 잃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정말 아픕니다. 육신의 그 어떤 질병보다도 아플 수 있습니다.
최근 보도에 보면 젊은이들의 의식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반세기 전만 해도 결혼은 의당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20대를 반만 지나도 결혼을 고려하며 활동하였습니다. 병역문제, 졸업과 취업 등 이 모든 것이 결혼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여성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싶습니다. 취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졸업하면 우선 결혼을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전혀 다릅니다. 결혼은 필수 과정에서 이미 멀리 떨어져 나갔습니다. 어른들은 다소 섭섭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그냥 개인의 선택사항일 뿐입니다. 가면 좋고 안 가도 그만이라는 것이지요. 사회 전체적으로 그렇게 인식되어 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의 심성은 아마도 거기서거기 아닐까 싶습니다. 환경과 의식은 변해 있어도 사람의 본성이야 어디 가겠습니까?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고,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아프고 하는 그 감정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랑의 감정 또한 대부분 가지고 있습니다. 여건이 좋지 않아서 스스로 억제하지 않는다면 그 때 일어나는 감정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아직도 첫눈에 반할 기회는 있는 것이고 만남과 사랑의 싹 트는 일은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의식하자 억제하려는 의지입니다. 그 의지가 감정을 마구잡이로 억누르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그것도 모르고 덤벼든다면 어찌 될까요? 자칫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세기말 청년과 세기 초의 청년, 20년의 시간차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Hams(아마추어무선통신)으로 만납니다. 서로 같은 학교 학생임을 확인하고 만남으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서로 엇갈립니다. 분명 시간을 맞추어 약속장소에 나갔지만 당사자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이성이라고 놀린 것인가? 서로를 향해 비난하다가 이해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고민을 상담(?)도 합니다. 얼굴도 모르는 이성이니 오히려 편하게 이성교제에 대한 이야기로 발전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장난으로만 알았는데 뭔가 다릅니다. 사용하는 말도 다릅니다. 언어가 변해가는 것을 새삼 발견합니다. 세기말 청년이 지금의 용어를 알 턱이 없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김용’은 세기말에 살고 있고 ‘김무늬’는 21세기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이 ‘햄’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말입니다. 20여 년의 시간차를 뛰어넘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용은 후배 여학생 ‘한솔’에게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경쟁자가 된 절친 ‘은성’이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21세기에 있는 무늬는 사랑인지 우정인지 헷갈리는 상태에서 남친 ‘영지’를 가까이하고 지냅니다. 두 사람의 묘한 사랑 게임이 서로에게 상담거리가 됩니다. 그리고 나타난 진실에 용이 기겁을 하지요. 물론 무늬도 놀랍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말 그대로 ‘세상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몰론 이야기입니다.
흔히 첫사랑이 결혼으로 골인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합니다. 물론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성장과정에서 겪는 경험의 일부입니다. 얼마 전 영화에서 들은 말이 생각납니다. ‘마음의 상처는 영혼을 강하게 해준다,’는 말입니다. 사실 그렇게 우리는 성숙해집니다. 그것을 경험해본 사람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사랑의 상처는 적지 않은 아픔을 주니까요. 그것을 이겨냄으로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면서 그만큼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용이 사실을 발견하고 나서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생각해보지만 그는 현명하게 그 자리를 물러납니다. 어쩌면 그 덕에 자신의 미래를 새롭게 개척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갔습니다. 영화관에 들어가며 평일 오후 관객이 없으려니 생각했는데 많지는 않지만 평일치고는 좀 있었습니다. 캄캄해서 다행이었지만 자리를 찾아가며 조금은 어색하였습니다. 행여 어울리지 않는 노인의 등장에 눈치 보일까 싶어서 말이지요. 실내가 캄캄해서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반세기 전의 저의 경험을 재방한 기분입니다. 타임머신 같은 공상이기는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그 기분을 그대로 반영해주고 있으니 공감을 일으킵니다. 짧지 않은 시간이 설렘을 일으키며 지나갔습니다. 영화 ‘동감’(Ditto)을 보았습니다. 이 단어 우리가 서류에서 흔히 보았던 ‘상동’(위와 같음)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