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여러나라와 비교한 한국 건축의 결점 어쩌고 한글 보니까
이미 논란이 되었던 글이더라고..그래서 그냥 넘어갈려고 했는데...
그 밑에 리플들에도 도저히 그냥 보고 넘길 수 없는 오해들이 너무 많더라고
기본적인 상식조차도 안되어있는....
뭐~ 경복궁이나 창덕궁이 나고야성이니 오사카성에도 규모면에서 밀린다고 그러는 어이없는 인식이
마치 사실인양 적혀있더라고 ㅋㅋㅋ
일단 먼저..이건 정말 기본적인 사실인데.., 나고야성이나 오사카성은 말 그대로 영주들을 위한 성이라
건물 자체가 몇 동 안되..10개 안팎의 건물들로 이루어진 구조지..
독립된 건물만 300여개에, 각각 7500칸, 4000칸이었던 경복궁, 창덕궁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되는 규모인데
도대체 어떻게 이런 기초적인 것조차 모르고 저런 논란스러운 글을 쓸수가 있을까??
면적도 마찬가지야... 면적이 넓으면 넓을수록 방어에 불리한 거 알지??
그래서 일본의 성들은 당연히 우리나라 궁궐에 비하면 면적이 좁아...
성의 핵심부는 좁은 지역에 몰려있고..그나마 해자와 해자 밖 빈공간을 합쳐야 우리나라 궁궐의 1/3~ 1/2 정도 면적이 되지..
물론 일본의 성에는 천수각이라는 상당히 높게 지어진 건물이 있는데.. 내부가 9층짜리인 것도 있으니(외부는 5층)
그렇지만 이것은 일본의 역사적 특성상. 망루가 필요한 그 필요성에 따라 지어진 건물 아니야???
예를 들어 히메지성의 천수각이, 경복궁 경회루보다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더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뭐지??
단지 그 건물 크기가 높아서?? 그렇다면 건물 면적은 경회루가 더 큰데???
그럼 역사상 가장 가치있던 건물은 황룡사 9층 목탑이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목조건축은 현존 가장 높은 건물인 중국 대동의 불궁사 목탑인감??
그리고 자꾸 경복궁, 창덕궁을 무시하는 글들이 너무 많은데
(뭐 자금성의 화장실 크기밖에 안된다는둥..하다못해 오사카성보다 규모가 작다는 어이없는 글까지..)
경복궁, 창덕궁이 동아시아에서 자금성 다음으로, 그러니까 두번째로 규모가 큰 궁궐인건 아니??
일단 경복궁부터 볼까? 경복궁은 칸수로는 7500칸이었는데, 이는 9999칸인 자금성의 3/4정도의 규모였어
면적은 동서 500m 남북 900m 정도로, 동서 750m, 남북 950m인 자금성의 2/3정도 되는 크기이지..
종합해보면 경복궁은 자금성의 70%정도 규모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사실 생각해 보면 경복궁이 어마어마한 규모인거야...
중국이 어떤 나라인감?? 우리나라 남북한 합친 면적의 44배 면적이거든??
그런데도 궁궐의 규모면에서는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지...
창덕궁은 칸수는 4500칸 정도지만..
면적은 더 넓어서..자금성과 비슷한 크기고 말야.
중국 외의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려볼까??
니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일본의 교토에는 일본천황의 옛 궁궐이 있는데
동서 250m, 남북 450m로..경복궁의 1/4크기밖에 되지 않아...
니네가 경복궁이 자금성의 25%크기라면 뭐라고 할까??
근데 일황의 고궁은 경복궁의 25%크기야...
물론 도쿄에 있는 현재의 일왕의 궁궐의 면적은 창덕궁 정도 크기인데
하지만 이건 도저히 전통 궁궐이 아닌, 현대식 건물들일 뿐더러
궁궐 뿐 아니라 궁궐 주위 두개의 어원(즉 정원)들까지 합친게 창덕궁 크기라는 거고..
도쿄의 일왕궁, 즉 황거는 메이지 정부가 도쿄를 접수하면서 원래 있던 도쿠가와 막부의 기반을 철저히 파괴하기 위해
도쿠가와 막부의 도쿄성을 철저히 허물고, 그 도쿄성 + 도쿄성 주위의 관청 부지, 군대 부지, 방어용 빈터등을 모조리 접수하여
원래 도쿄성보다 3배 정도의 면적을 궁궐 부지로 편입시켰는데, 그게 지금의 현 일왕궁이라서 저정도 크기인 거임
일본 말고 다른 나라는 어떨까?
아 다시 중국으로 가보자..중국 선양에는 청나라가 북경에 입관하기 전인 후금시절의 궁궐이 남아있는데
당시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듯 했던 후금, 그리고 대청제국의 궁궐이
동서 250m,남북 200m 정도였음. 경복궁의 1/8 정도지....
대청제국의 황제가 경복궁의 1/8정도의 궁궐에서 생활했던 거야..~
눈을 돌려 동남아시아로 가보자..
베트남에는 후에에 왕궁유적이 남아있는데
동서 630m 남북 580m 정도로, 경복궁의 80%정도 크기였어
태국으로 가볼까? 태국 방콕에는 흰 담으로 둘러싸인 유명한 왕궁이 있는데
남북 550m, 동서 450m로, 경복궁의 60%정도 크기야...
베트남하고 태국이 어떤 나라야? 당시 동남아에서 패권을 다투던 매우 강력한 나라였어
물론 우리나라보다 역사가 짧고, 지적, 학문적 수준은 떨어졌지만
농업경제 사회에서는 열대기후 특성상 우리나라보다 훨씬 산물이 풍부한 강력한 나라들이었어
그런데도 궁궐 크기는 저정도밖에 안됬지...
그런데도 태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궁궐은 한국 궁궐의 절반밖에, 자금성의 1/3밖에 안되는 형편없는 궁궐이에요"
하고 자책하디???
베트남은 아예 자금성을 고대로 본따서 크기만 작게 만들었는데..베트남 사람들이
"우리 나라 궁궐은 자금성 짝퉁에다가 면적도 절반밖에 안되는 흉물이에요" 하고 쓰레기처럼 여기디??
그런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럴까??
물론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경우 개개 건물의 크기가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어..
그렇지만 이는 한국 고건축의 주재료인 소나무의 특성상 어쩔수 없는 현상이었는데
소나무는 구조가 굉장히 치밀하고, 단단하며, 송진때문에 잘 썪지도 않고 방수성도 뛰어난 매우 우수한 목재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겁고, 자라는 속도가 느려서, 큰 부재를 구하기 쉽지 않은 특성이 있지
무겁기 때문에 기둥 사이의 간격도 마냥 넓힐 수가 없게 되고...
그에 비해 예를 들어 일본의 건축 주재료인 삼나무의 경우
굉장히 빨리 자라는 데다가, 일본기후가 고온다습하고 겨울철에도 따뜻하니, 금방금방 높고 굵게 자라게 되
이런 삼나무 숲이 일본 도처에 있다보니 큰 건축부재를 구하기가 쉬운 거지..
그리고 가벼워서 건물 기둥 사이를 넓혀도 되고..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원래 거대한 건축부재가 될만한 나무가 적은데다가
오랜 전란으로 건물을 다시 지을때마다 큰 나무들이 자꾸 잘려나가다 보니...
경복궁을 지을 때는 근정전의 가장 높은 기둥(고주) 4개 중 겨우 1개만 소나무로 하고, 나머지 3개는 전나무로 해야 했을 정도로
목재 부족 현상이 심각했어...
이 전나무들은 100년이 지난 후 모두 썪어버려서,,,지난 2000년에 근정전을 해체보수공사 해야 했던 이유가 되었지..
궁궐에 쓸 나무도 이런 판에..전국에 건축에 쓸만한 큰 나무가 얼마나 많이 있었겠어??
그런데도 불구하고,,일본에 현재 경복궁 근정전보다 큰 건물은 서너개 정도야...
이런 내막 사정을 알고 보면..근정전은 당시 건축적 상황에서 지을 수 있는 가장 거대한 건물을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사찰의 불전을 제외하고 궁궐, 관아 건물 등으로만 따지면 일본 건물들은 경복궁 근정전, 경회루에 대적이 안되고..
그리고 좀 다른 경우지만 ..종묘 정전의 경우
단층건물이긴 하지만 전면길이 110m로.. 이런 면으로만 따지면 전무후무한 전세계 최대크기야
무엇보다도 현재 경복궁에 남아있는 건물은 원래 건물 수의 1/10 (10%), 창덕궁은 1/4 (25%)인거는 알고 있어??
그야 말로 몇개의 건물만 남기고 참혹하리만치 헐려나간건데
누가 그렇게 했을까?? 말안해도 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남아있는 건물들만 가지고 형편없다는 둥 화장실 수준이라는둥 하며 자기를 비하하는건
잘 모르는 무식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자
그 건물들을 헐어내면서 일제가 의도했던 그 간악한 흉계에 고스란히 먹혀들어가는 것이라는 걸 정말 모를까??
쓰다보니까 긴 글이 되었는데
정말 앞으로는 저런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는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안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글을 써봤어..
적어도 한국의 창덕궁과 종묘는 왜 각각이 독립된 유네스코 문화유산인데
일본 교토의 궁궐은 교토의 다른 문화유적 20여개와 한묶음으로 도매금 넘기듯 유네스코 문화유산 한개로 지정되었는지 알면
저런 어이없는 이야기는 안할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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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글이지만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네요
흔히 우리나라 조선시대 궁궐들을
'자금성 화장실 수준이고 오사카 성에 비하면 단조롭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조선시대 궁궐은 동양의 어느 궁궐과 비교해도 절대 왜소한 크기가 아니라는 내용이네요
(물론 크기로 그나라의 역사와 건축을 평가하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물론 일제시대때 수많은 궁궐 건물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복원중이지만
우리가 우리것에대해 알고 자긍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ㅠㅠ
첫댓글 음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일제시키들 때문에 우리 고궁들이 상당부분 훼손되었다는 점이 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ㅜㅜ
좋은글 잘봤습니다. 누가그런건지 알고들있으면서 저런말들이 나온다는게 씁쓸하네요...
동궐도나 북궐도형을 보면 경복궁이나 창덕궁,창경궁의 규모는 어마어마하고 장엄하기 그지없죠.. 하지만 경술국치 이후에 총독부에서 조선왕조 정기 지우기를 단행하면서 완전히 파괴합니다.. 일단 경복궁을 볼까요? 1915년에 병합 5주년이라 해서 조선물산진흥박람회를 경복궁에서 열죠.. 이때 무수히 많은 전각을 헐어버리죠.. 데라우치가 근정전 용상에 앉아서 강연하고.. 경회루에서 연회를 열고 수정전을 전시회장으로 써비리죠.. 그리고 1916년 근정전 앞에서 조선총독부를 지으면서 흥례문을 헐고 영제교를 건춘문쪽으로 옮기고 광화문도 같은곳으로 옮겨버립니다..
1917년 11월17일에 창덕궁 대조전 화재가 일어나 창덕궁 내전이 모두 소실됩니다.. 11월20일에 총독부와 이왕직에선 창덕궁 내전의 복구를 위해서 경복궁 내전건물을 헐어 그 목재로 복구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결정을 내리죠.. 명목은 이렇습니다.. '조선식으로 다시짓되 서양식을 가미한다' 이러면서 헐어버립니다.. 이때이후 경복궁은 물론이요 창덕궁 마저 제 모습을 잃어버리죠.. 이때 헐린 건물들은 1995년에 복원됩니다만.. 다만 지금의 창덕궁 경훈각으로 지어진 만경전은 민속박물관이 들어서 있어서 복원되지 못했습니다만 곧 민속박물관을 이전하고 복원계획이 잡혀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1930년대에 건청궁을 철거하죠..
뭐 사연없는 건물이 없지는 않겠습니다만 동궁의 같은 경우는 더 참혹하죠.. 비현각과 자선당은 이토 히로부미의 사당으로 팔려나갑니다.. 그나마 관동대지진때 소실되죠.. 지금 건청궁에 가면 그때당시의 유구가 남아있는데 불에 타서 못쓰게 되자 원래의 자리에 1999년에 복원합니다.. 그렇게 되니 대원군이 중건당시 세웠던 경복궁은 10%만 남게 된거죠..현재 경복궁 복원 20개년이 올해로 종료됩니다.. 1990~1995년 까지 경복궁 침전구역이 복원되었고 1995~1999년 까지 동궁이 복원되었으며 1999~2003년은 근정전을 보수하였고 2003~2009년에는 건청궁,광화문을 복원하는것으로 종료되었고요..차후에 궐내각사와 수랏간을 복원한다고 합니다
굉장히 좋은 글이네요. 옛날의 경복궁은 대체 얼마나 큰 크기였을까요... 두번째사진은 참 멋스럽네요.
예전 서적들 보면, 지금의 경복궁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궁궐들은 규모가 지금의 남아있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였습니다. 이제 와서 복원하기엔 이미 다른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기에 아쉬운 감이 있죠.
지금의 남은 건물들은 이른바 상징으로 봐야지 그 이상 규모를 가늠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아무리 경복궁이 넓다한들 조선시대가 지나버린 시점에서 복원은 힘들겠죠.
창덕궁은 일본인들의 놀이터로 파괴됩니다.. 창경궁은 조선인들의 놀이터로 파괴된거와는 다르죠.. 1907년에 고종이 퇴위하고 순종이 즉위하자 거의 반 강제로 창덕궁으로 데려오는데 여기서 파괴작업이 시작됩니다.. 돈화문 앞 월대를 시멘트로 엎어비려서 차가 들어오게 편하게 만들죠.. 아마 이때쯤 인정전에 오얏나무가 박혀있는걸로 추측이 되고요.. 인정전과 인정문을 제외한 모든 구역을 헐어서 자동차가 궁내를 활보하게끔 개조를 하는데 경술국치 이전에는 속도를 제한하면서 파괴했으나 국치 이후엔 완전히 제멋대로 해버리죠.. 뭐 이등박문이 주합루에서 연회를 베풀었다는 기록도 있고.. 서향각을 친잠하는 장소로 격하시켜
버리는등 말이죠.. 1917년에 대조전에서 화재가 난 뒤론 더욱 파괴작업을 진행시킵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경복궁 목재로 복원을 하는데 워낙 경복궁 건물들의 덩치가 큰데 그걸 억지로 끼워넣으니 이상한 모양이 되버렸죠.. 게다가 일본식 건축양식을 도입해버려서 건물이 이상해지죠.. 왜 이상한지는 창덕궁 위성사진을 보면 아실껍니다.. 뭐 대조전은 의외로 교태전과 조화가 된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것도 이상하긴 합니다.. 아무튼 후원에도 일본식 정자를 짓고 연못도 개조시키죠.. 그후 인정전의 박석을 치우고 잔디를 심고 인정문을 일본식으로 개조하고 선정전도 천랑을 철거해버리죠.. 창덕궁의 복원상황은 이렇습니다..
1995년에 돈화문을 복원했고.. 인정전과 인정문도 복원했습니다.. 1999년에 궐내각사를 복원했고 선원전을 보수했으며 진선문,숙장문을 선정전의 천랑을 복원했습니다.. 2003년에는 희정당과 대조전을 보수했는데.. 창덕궁의 경우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된건 솔직히 말하면 거의 온전하게 남아있는 후원때문이지 내전때문은 절대로 아닙니다.. 복원계획이 있긴있는데 창덕궁 담을 끼고 지은집이 많아서 경복궁 만큼 복원계획이 쉬운게 아니라고 하네요.. 아무튼 창덕궁은 그나마 파괴가 덜 된 편입니다.. 왜냐하면 순종의 존재때문이었으니까요..
아.....이래서 일본을....
창경궁 같은 경우는 뭐 아예 복원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하네요.. 본래 고 건축물의 복원은 유구가 남아있으면 그걸 추측해서 건물을 올리는데 창경궁은 아예 그걸 콘트리트로 묻어버렸는지라 왜냐면 동,식물원을 지을때 기초를 다진다는 명목으로 콘트리트로 유구를 매장시켰죠.. 유구가 없으면 아무리 돈을 쏟아버려도 말짱 도루묵이니까요.. 그나마 전각들이 보존되어있다는거에 만족할 뿐이죠.. 뭐 창경원으로 격하되었다가 1983년에 창경궁으로 복원되었단 이야기는 아실껍니다.. 경희궁도 같은경우고 덕수궁은 파괴했다긴 보단 일본인들이 전각을 외부에 팔아버린게 대부분이죠.. 그래도 복원은 해야합니다.. 이것도 우리의 자존심이니까요
kobe8님 거의 전문가시네요. 좋은 가르침 감사히 받았습니다.
전공이 이쪽 분야이고.. 꿈이 문화재 관광해설사 이다 보니.. 아무튼 고궁에 대해 관심은 아주 많습니다..
좋은 설명 잘 들었습니다. 질문이 몇개 있는데요,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근대 건축물, 아니 근현대 건축물 중에 일제시대 당시의 건물이나 6.25 이전의 건물들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역사적 명분을 가지고 있는데에 반해 현대건축물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인식을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입니다.(그래서 무분별한 재건축의 무한반복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는데) 역사적 의미로 현대 건축이나 도심에서의 환경을 대하는 서울시나 혹은 시민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 해서 여쭙니다.^^
섬나라 놈들 욕을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네요 ,,,,
글쎄요.. 제가 건축학도가 아니다 보니 거기에 대해 답변드리긴 좀 그렇네요.. 그건 건축학도 분께서 답해드리는게 명확하다고 생각듭니다..
역시 비스게에서는 친절함과 정확성이 한데 어우러진 정보들을 얻을 수 있네요ㅠㅠ 글과 코비8님의 댓글에서 많은걸 배우고 갑니다^^
건축물의 가치를 꼭 규모만으로 따져야하는지 의문이네요. 조선의 궁이야말로 성리학적 질서를 처절하게 따른 건축물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 좋은 글 봤습니다.
오사카성이 축조될 당시의 인물인 가토 기요마사가 한양에 입성해서 궁궐의 규모에 눈이 뒤짚어졌다는 기록이 있죠. 현재 복원된 것은 물론이요, 대원군이 복원한 것 이전의 전성기의 경복궁이기도 해서 규모가 대단했을 겁니다. 옛 한양의 절반은 궁이었다는 말이 있으니까요.
대원군이 중건한 경복궁은 창건당시의 경복궁 보다 더 크게 지었습니다.. 예로 근정전은 본래 단층건물이었으나 대원군이 중층으로 지은 경우죠.. 창건당시의 경복궁보단 지금의 경복궁이 더 컸고요.. 예전에 광화문 복원현장에서 창건당시의 경복궁 유구가 나왔는데 의외로 규모가 작다고 하더라고요..
성종조에 경복궁을 비롯해 여러궁의 중수가 있었습니다. 선조실록에도 당시의 재건 및 중수에 관한 책이 편찬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 알기로 대원이가 재건한 궁은 규모면에서 전성기의 7~8할, 그리고 주로 의례를 행하는 부분에서의 궁을 과하게 지었다고 합니다.
그랬죠.. 성종때 경회루를 중수했을때 돌기둥 마다 용조각을 새겨넣은게 성종이고.. 선조때 중수는 명종때 대화재로 중건한것을 중수했죠.. 이때 성종이 강녕전에 대해 한마디 했었죠.. 강녕전은 넓어서 싫다라고 했는데 그래서 주로 창덕궁에 머물렀는데 사실 창경궁을 지을때 성종은 창덕궁의 확장에 더 관심이 있었으니까요..
오사카성은 작던데;;
22222 맞아요 ㅋㅋ
부지의 넓이 가지고 가치가 있다 없다하는것도 좀 그렇네요..이유가 어찌되었건 확실히 경복궁이나 다른 궁궐들의 사이즈가 아쉽긴합니다. 소실된 문화재들이 너무너무 안타깝군요..이럴때마다 생각나는 숭례문ㅠㅠ
좋은글 잘봤습니다. kobe 8님 글도요, 저도 저정도는 아니지만, 우리는 작고 아담하게 짓는가 보구나 했는데, 역시 속고 살았었군요...ㅠㅠ
글과 댓글 모두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