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포스의 형벌
시지프스는 바람의 신인 아이올로스와 그리스인의 시조인
헬렌 사이에서 태어났다.
호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시지프스는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들의 편에서 보면, 엿듣기 좋아하고 입이 싸고 교활할 뿐 아니라,
특히나 신들을 우습게 여긴다는 점에서 심히 마뜩찮은 인간으로
일찍이 낙인 찍힌 존재였다.
도둑질 잘하기로 유명한 전령신 헤르메스는 태어난 바로 그 날 저녁에
강보를 빠져나가 이복형인 아폴론의 소를 훔쳤다.
그는 떡갈나무 껍질로 소의 발을 감싸고, 소의 꼬리에다가는 싸리 빗자루를
매달아 땅바닥에 끌리게 함으로써 소의 발자국을 감쪽같이 지웠다.
그리고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자신이 태어난 동굴 속의 강보로 돌아가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 행세를 했다.
그런데 헤르메스의 이 완전 범죄를 망쳐 놓은 인간이 있었으니 바로 시지프스였다.
아폴론이 자신의 소가 없어진 것을 알고 이리저리 찾아다니자 시지프스가
범인은 바로 헤르메스임을 일러바쳤던 것이다.
아폴론은 헤르메스의 도둑질을 제우스에게 고발하였고 이 일로
시지프스는 범행의 당사자인 헤르메스뿐만 아니라 제우스의
눈총까지 받게 되었다.
도둑질이거나 말거나 여하튼 신들의 일에 감히 인간이 끼어든 게
주제넘게 여겨졌던 것이다.
그 일로 말미암아 가뜩이나 눈밖에 나 있던 차에, 뒤이어 시지프스는
더욱 결정적인 괘씸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어느 날 시지프스는 제우스가 독수리로 둔갑해 요정 아이기나를
납치해 가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잠시 궁리한 끝에 시지프스는 아이기나의 아버지인 강신(降神)
아소포스를 찾아갔다.
딸 걱정에 천근같은 한숨을 내쉬고 있는 아소포스에게 시지프스는
자신의 부탁을 하나 들어 준다면 딸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겠노라 했다.
시지프스는 그 때 코린토스를 창건하여 다스리고 있었는데 물이 귀해
백성들이 몹시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코린토스에 있는 산에다 마르지 않는 샘을 하나 만들어 달라는 게
시지프스의 청이었다.
물줄기를 산 위로 끌어올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을 찾는 게 급했던 터라 아소포스는 시지프스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시지프스는 그에게 제우스가 아이기나를 납치해 간 섬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고
아소포스는 곧 그곳으로 달려가 딸을 제우스의 손아귀에서 구해냈다.
자신의 떳떳찮은 비행을 엿보고 그것을 일러바친 자가 다름 아닌
시지프스임을 알아낸 제우스는 저승신 타나토스(죽음)에게 당장
그놈을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제우스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게 보복하리라는 걸 미리 헤아리고 있던
시지프스는 타나토스가 당도하자 그를 쇠사슬로 꽁꽁 묶어 돌로 만든
감옥에다 가두어 버렸다.
명이 다한 사람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저승사자가 묶여 있으니
당연히 죽는 사람이 없어졌다.
명계(冥界)의 왕 하데스가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제우스에게 고했고
제우스는 전쟁신 아레스를 보내 타나토스를 구출하게 했다.
호전적이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아레스에게 섣불리 맞섰다간 온
코린토스가 피바다가 될 것임을 알고 시지프스는 이번엔 순순히 항복했다.
그런데 타나토스의 손에 끌려가면서 시지프스는 아내 멜로페에게
자신의 시신을 화장도 매장도 하지 말고 광장에 내다 버릴 것이며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고 은밀히 일렀다.
저승에 당도한 시지프스는 하데스를 알현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읍소(泣訴)했다.
"아내가 저의 시신을 광장에 내다 버리고 장례식도 치르지 않은 것은
죽은 자를 수습하여 무사히 저승에 이르게 하는 이제까지의 관습을
조롱한 것인즉 이는 곧 명계의 지배자이신 대왕에 대한 능멸에 다름 아니니
제가 다시 이승으로 가 아내의 죄를 단단히 물은 후 다시 오겠습니다.
하니 저에게 사흘간만 말미를 주소서."
시지프스의 꾀에 넘어간 하데스는 그를 다시 이승으로 보내 주었다.
그러나 시지프스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영생불사하는 신이 아니라 한번 죽으면 그걸로 그만인 인간인 그로서는
이승에서의 삶이 너무도 소중했던 것이다.
하데스가 몇 번이나 타나토스를 보내 을러대기도 하고 경고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시지프스는 갖가지 말재주와 임기응변으로 체포를 피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후로 오랫동안을
"천천히 흐르는 강물과 별빛이 되비치는
바다와 금수초목을 안아 기르는 산과 날마다 새롭게 웃는 대지"
속에서 삶의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아무리 현명하고 신중하다 한들 인간이 어찌 신을 이길 수 있었으랴.
마침내는 시지프스도 타나토스의 손에 끌려 명계로 갈 수밖에 없었다.
명계에선 가혹한 형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데스는 명계에 있는 높은 바위산을 가리키며 그 기슭에 있는 큰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라고 했다.
시지프스는 온 힘을 다해 바위를 꼭대기까지 밀어 올렸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바위는 제 무게만큼의 속도로 굴러떨어져 버렸다.
시지프스는 다시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했다.
왜냐하면 하데스가 "바위가 늘 그 꼭대기에 있게 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시지프스는 "하늘이 없는 공간, 측량할 길 없는 시간"과 싸우면서
영원히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했다.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영겁의 형벌 끔찍하기 짝이 없다.
언제 끝나리라는 보장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시지프스의 무익한 노동 앞엔 헤아릴 길 없는 영겁의 시간이 있을 뿐이다.
첫댓글 그리스 신화
재밋게 잘 읽었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