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4강을 이어 생각하기에는 아직 선수간의 격차가 너무 큰데다가, 훈련 수준도 많이 다릅니다.
유럽의 강호 국가들처럼 주전선수 하나가 다치면 다른 선수로 쉽게 대치할 수 있을만큼,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과 일반 프로선수들의 수준차가 일정하지 않습니다. 현 우리나라 국가대표선수층이라면 이란은 버거운 상대가 맞습니다. 그나마 잘한거죠. 지금 대표팀에는 이영표가 측면 포지션으로 나갈 수 있을정도의 든든한 미드필더들이 없습니다. 유상철, 김남일 선수 둘만 있어도 경기력은 더 나았을 거에요. 이영표 선수가 안심하고 측면돌파로 뚫어냈을테니 말입니다.
이동국에 대한 생각은 다른분들과 비슷합니다. 킥력 하나는 좋은 선수입니다. 강한 킥으로 중거리 슛이나 골문 앞의 멋있는 터닝슛을 터뜨리곤 하죠. 하지만, 상당히 부족한 점도 있다고 봅니다.
1. 이동국 선수의 플레이 문제: 이동국 선수를 좋아하고 옹호하시는 분들은 그의 킥력에 의한 강슛과 사각에서 슛팅을 언급합니다. 제가 이동국 선수를 월드컵에서 처음 봤던 때가 98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전이었습니다. 그때 교체되자마자 강한 슛팅 2번을 차더군요. 다음에 5:0으로 진 것의 위한을 삼듯 각 스포츠신문에서 이동국 선수의 자신감 넘치는 킥을 강조했습니다. 이하 차범근, 허정무 감독시절에 대한민국의 간판 스트라이커로 자리매김합니다. 제 기억에 허정무 감독시절까지 우리나라의 주 시스템은 3-5-2였던 것으로 압니다. 이번 2002 한일 월드컵 전까지 한국(South Korea)의 장점은 스피드였습니다. 수비진영은 월드컵 4회 연속출전에 빛나는 홍명보를 중심으로 한 스위퍼 시스템이고, 미드필더는 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고 양 윙이 상대방 깊숙히 침투하는 것이 한국의 주 전술이었습니다. 양 측면에서 올라오는 센터링을 득점으로 연결하는 전술이었기 때문에 스트라이커 2명의 움직임은 그렇게 크지 않았지요. 이동국 선수의 상당히 좁은 움직임은 바로 이러한 시스템에는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골대 근처에서 언제 날라올지 모르는 센터링을 받기위해 버텨야 했으니 말입니다. 이동국 선수의 헤딩력도 이때 빛을 발합니다. 맨투맨 방식의 수비에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측면돌파로 순식간에 상대방 깊숙히 침투하는 경기중에 2명의 스트라이커가 미드필더까지 내려올 필요가 거의 없으니까 이동국 선수가 골문에서 크게 움직일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겁니다.(그때 우리나라 수비는 스위퍼 홍명보가 다 했다고들 하죠. 말하자면 히딩크 때 존 디펜스를 통한 전술처럼 전원이 공격과 수비의 역할을 맡지 않았다는 겁니다. 허정무 감독시절에는 최전방 투톱이 미드필더까지 내려와야 한다는 것은 경기가 무척 안풀린다는 의미였습니다. 상대수비에 투톱이 묶인데다가 양 측면의 돌파가 안되서 스트라이커가 내려온 공간에 미드필더들의 침투를 노렸던 것이니까요.) 이동국 선수의 신장도 한 몫 했습니다. 센터링을 이용한 플레이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키가 유리하겠죠? 허정무 감독 때까지 한국은 3-5-2를 고수했으므로(물론 때로 3-4-3의 전술을 들고 나오기도 했습니다만 완전한 존 디펜스 3-4-3이 아닌 3-5-2에서 중앙 미드필더-주로 고종수-를 공격진영으로 더 올린 형태였습니다.) 이동국 선수의 국대기용은 당연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현재 이동국 선수의 플레이가 잘 안어울리게 보이는 것은 이 시절에 형성된 이동국 선수의 습관이 쉽게 바뀌지 않아서라고 봅니다. 스트라이커의 움직임이, 존 디펜스에 맞도록, 상당한 폭을 요구되는 조류에서 그의 적응이 더딘 탓일 겁니다. 2002년 월드컵에 이동국이 선발되지 않은 것에 대해 스포츠신문은 브레맨에서 방출된 충격으로 컨디션이 낮았기 때문이라고 보도를 했습니다만, 히딩크 감독이 본선 이전 평가전에서 10여차례 출전했으나 득점이 없는 설기현을 뽑았던 이유가 컨디션에 있다고 보여지지 않습니다. 수비라인부터 공격라인까지 상당히 좁은 거리를 두도록 전술을 짠 히딩크 감독 눈에는 센터링을 기다리기만 하는 스트라이커는 50%짜리로 보였을 테니까요.
다음, 언제나 이동국 선수를 깎아 내리는 평가중의 하나인 '몸싸움' 문제입니다. 이건 제 사견입니다만, 아마 허정무 감독 시절의 버릇이 밴 것은 아닌가 합니다. 이동국 선수의 체격은 180cm가 넘는, 거기에 체중도 상당히 나가는 좋은 체격입니다. 상당할 정도의 킥력을 낼려면 그에 따라 몸집도 나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보기에도 건장하구요. 그런데, 몸싸움만 했다 하면 철퍼덕 쓰러집니다. 페널트킥을 유도할려는 듯한 재스쳐인지, 밀리면 버티기 보다 그냥 쓰러진다는 느낌을 줍니다.
요즘의 스트라이커는 장신이라도 몸싸움을 하면서 골을 킾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예전처럼 상대 문전 앞에 박혀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 수비를 끌어내기 위해 문전에서 나와서 2:1 패스등으로 침투하는 선수에게 밀어주기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손꼽는 스트라이커들 중에 몸싸움으로 유명한 선수도 이 때문에 많죠. 이동국 선수가 몸싸움을 싫어한다는 것은 차제 하더라도, 타 선수와 비교해 봤을 때 나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영표 선수와 비교하면 대조가 될 겁니다. 상대적으로 더 좋은 체격을 갖추고도 몸싸움에 밀린다면 몸싸움의 기술을 모른다거나 몸싸움을 기피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현대 축구에서 몸싸움을 기피한다는 것이 단점은 아니지만 더더군다나 장점은 아니라는 것을 모두들 잘 아실겁니다. 특히, 상대 문전에서 센터링을 받아 헤딩으로 골을 만들려는 선수라면 몸싸움도 능해야 합니다. 이동국 선수는 이점에서 부족합니다. 위치선정력이 좋다는 점은 장점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동국 선수의 해딩슛을 보면 상당히 좋은 위치를 선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장점이 몸싸움이라는 약점을 만나 많이 상쇄된다는 것이죠. 상대 수비수들이 문전에서 이동국 선수를 거칠게 밀어내면 이동국 선수는 속수무책입니다. 그것이 그를 아시아급 선수로 만드는 요인이라고 봅니다. 이동국 선수의 각없는 곳에서 멋진 슛도, '어려운 곳에서 넣은 멋진 슛'이라는 관점을 좀 돌려보면 더 공격하기에 좋은 포지션을 선점하지 못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관중의 입장에서는 쉽게 들어가는 골보다 어렵게, 혹은 믿기지 않게 들어가는 골이 더 기억에 남는 법이지만 플레이는 쉽게 많이 들어가는 쪽이 어렵게 하나 들어가는 것 보다 좋은 거죠. 이동국 선수가 정말로 바뀌어졌으면 하는 부분입니다.
2. 현재 축구의 조류와 이동국: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대한 FIFA의 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축구를 빠르고, 정확한 패스, 상당히 컴팩트한(수비라인과 공격라인의 거리가 좁은) 축구로 보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킥 앤드 러쉬는 영국만이 구사한 것으로 보고 있고, 한국의 경우는 상당히 컴팩트한 플레이에 선수들의 많은 포지션 교체가 특징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최전방 공격수의 움직임 방향도 좌우로 폭이 넓었다고 보고 있죠. 공수의 전환속도가 빠르고 좁은 공간에서 볼 다툼이 일어나기 때문에 최전방 공격수들도 미드필더까지 움직일 정도로 상당한 움직임을 요구합니다. 공격수들도 존 디펜스의 일부분을 담당해야 하니까요. 이런 시스템에서 활동영역이 좁거나 몸싸움이 안되는 선수는 시스템의 약점일 수 있습니다. 수비수나 미드필더라면 그쪽 방면의 수비나 공격시에 약점이 될 것이고, 최전방 공격수라면 득점의 기회가 엄청나게 줄 것입니다. 황선홍 선수가 최전방 원톱으로 기용된 이유도 거기 있다고 합니다. 꽤 넓은 활동영역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황 선수도 미드필드에서 연결하는 플레이를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공격수가 이동함에 따라서 상대방 수비수의 수비 범위도 넓어지고 헛점도 생기는 법이지요. 하지만, 공격수의 움직임이 좁고, 일정하다면 수비 범위는 그만큼 줄어듭니다. 공격수의 몸싸움이 약하다면 수비수는 그 곳에 있으므로써 상대 공격수를 몰아낼 수 있습니다. 이동국 선수의 움직임이 수비를 위협할 만한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격수가 위험 지역에서 벗어난다면 굳이 수비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이동국 선수가 전보다 많이 뛰기는 합니다만 이란전에서 활약을 못보였던 것도 움직임의 방향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공이 올것 같지 않더라도 수비를 위협하는 부분으로 이동함으로써 공간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란전을 돌이켜보면 우리나라가 경기 주도권을 잡았던 때가 주로 측면 돌파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측면에서 날아올라오는 공이 이동국의 헤딩에 연결될 가능성이 있었을 때 말이죠. 그나마 신장의 차이가 있는데다가 센터링이 높게높게 올라오는 바람에(아마 수비를 넘기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수비진형을 잡을 시간을 벌어주었습니다. 이동국 선수가 원톱으로 나가서 상대방 수비를 끌고 다니는 동안 양 측면 공격수나 미드필더의 침투를 노렸던 것이 더 효과적이 아니였을까 생각해 봅니다. 태국전에서 한국이 선전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