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행복한 사람
문희봉
어제 저녁부터 새벽까지 대전에는 눈이 조금 왔다. 손가락 치료차 정형외과에 들렀다가 돌아와 보문산으로 향했다. 헝클어진 세상 모두 지우려 내린 눈들이 세상의 불공평을 말끔히 지워버렸다. 문화광장에서부터 아이젠을 했다.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집에서 빵 한 개와 약간의 음료를 가지고 갔다. 조금 오르니 밖의 기온은 차지만 등에서는 어느새 땀이 배어나기 시작했다. 보일러가 가동된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인가? 아니다. 내가 좋아서 나선 길이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르는 사람들, 혼자서 오르는 사람들.... 참 많이도 오른다. 토요일 오전과 오후에 걸친 시간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다. 음악을 들으며, 친구들과 함박웃음을 지으며 오르는 이들의 얼굴에 보조개가 깊이 패였다.
나는 24포인트 크기로 뽑은 유인물을 십여 장 손에 쥐었다. 낭송용 시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한 번 외워도 얼마가지 못한다. 그러니 반복해서 외울 밖에.
한용운의 '나룻배와 행인', 도종환의 '담쟁이' 신경림의 '갈대', 그리고 자작시도 몇 편 있다. 중얼중얼 하면서 오르다 보니 벌써 목적지다. 이렇게 쉽게 오르기도 첨이다.
비록 큰 활자지만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두 발로 걸을 수 있으니 행복하고, 경사진 곳도 크게 숨 차지 않고 오를 수 있으니 행복하고, 시를 외울 수 있으니 행복하고, 운동해서 행복하고, 산행객들과 인사 나누어서 행복하고, 행복한 것들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그것뿐이 아니다. 내가 어려움을 겪을 때 내 등을 토닥거려주는 아내가 있어 행복하고, 그럴 때 저희들 일 모두 제쳐놓고 달려와 위로해주는 자식들이 있어 행복하다. 힘들 땐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서 행복하고, 외로워 울고 싶을 때는 소리쳐 부를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할 머리가 있어 행복하고,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별의 따스함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기에 행복하다. 슬플 때 거울 보며 웃을 수 있는 미소가 있기에 행복하고,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목소리가 있기에 행복하다.
온몸에 힘이 빠져 걷기도 힘들 때 기대어 쉴 수 있는 버팀목이 있기에 행복하고, 내 비록 우울하지만 나보다 더 슬픈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마음과 발이 있어 행복하다.
가끔 맘에 맞는 친구가 번개모임으로 점심식사하자고 메일을 주니 행복하고, 가뭄에 콩 나듯 시집, 수필집 평론 써달라는 주문이 들어오니 행복하다. 내가 가진 것은 보잘것없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편지 하나 보낼 수 있는 힘이 있어 행복하고, 나를 위해주는 사람을 감싸 안을 수 있는 가슴이 있어 행복하다.
요즘 두 개의 양파를 컵에 올려놓고 한쪽엔 ‘효자’라 써 붙이고, 한쪽엔 ‘불효자’라 써 붙여놓고 실험을 하고 있다. 효자라고 써 붙인 양파에게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칭찬을 하고, 불효자라 써 붙인 양파에게는 꾸중을 한다. 칭찬을 해준 양파는 열흘이 지나니 싹이 트는데 꾸중을 들은 양파는 싹을 틔울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에게 칭찬한다. '너는 참 행복하겠다.'라고. 이건 내가 나에게 주는 작은 배려다. ‘너를 칭찬한다.’는. 그렇다. 칭찬거리는 무궁무진하다. 꼭 다른 사람을 칭찬해야만 하는가? 그게 어려우면 자신을 칭찬하는 일부터가 먼저다.
이런 사고를 가지고 있으니 난 행복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집에 도착해서도 '난 행복한 사람'이라 다시 뇌어 보았다. 확실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