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Ev-2V-UaUj0
본문: 삼하 14:21-33
제목: 진정이 없는 만남
드로아 여인의 입을 통해 요압의 청을 들은 왕은 압살롬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요압은 드고아 여인을 사주해서 행했던 일이 혹시라도 다윗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은 아닐까 내심 불안해하며 다윗의 결정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허락을 받아 한편 안심했습니다. 요압은 땅에 엎드려 절하고 왕을 위해 복을 빌었습니다. 그리고는 ‘내 주 왕이여 종의 구함을 왕이 허락하시니 종이 왕 앞에서 은혜 입은 줄을 오늘 아니이다.’며 감사를 전했습니다. 요압이 일어나 직접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요압의 이러한 열정은 한편 압살롬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성취해 보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돌아왔지만 왕은 얼굴을 보지 않으려 합니다.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해서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고 했습니다.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돌아왔지만 자기 집으로 돌아갔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다윗은 압살롬을 진심으로 용서해서가 아니라 혈육에 대한 정과 민심을 고려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부르고서도 얼굴을 보지 않으려 한 것은 결코 현명하지 못한 태도였습니다. 그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이를 철저하게 회개케 해야 했습니다. 그런 후에 회개한 압살롬을 진정한 사랑으로 포용해야 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죄를 묵과해 버렸고 도망간 기간을 포함해서 5년 동안 압살롬을 대면조차 하지 않아 결국 압살롬의 반발심만 불러일으켰습니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었습니다. 압살롬은 얼굴과 외양이 밝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이후 압살롬은 자신의 외모로 인해 교만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외모에 이끌린 백성들의 지지 기반도 있었지만 외모로 판단하는 백성들의 평가는 중심을 보고 판단하시는 여호와의 평가와 정면으로 대치됩니다. 압살롬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는데 그의 머리 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습니다. 압살롬의 아름다운 외모 가운데서도 특히 두드러진 부분은 머리카락이었습니다. 1 세겔은 약 11.4g인데 200 세겔이면 약 2.28kg이 됩니다. 왕의 저울은 일반 저울보다 두 배나 더 무거운 것으로 추정하는데 그렇다면 약 4.56kg이 됩니다. 보통 남자들이 1년 동안 머리카락을 길러서 깎은 무게가 대략 500g 정도였다고 할 때 과장된 진술이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풍성한 머리카락을 지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압살롬의 이 머리카락이 그의 생명을 앗아가는 결정적인 원인이 됩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압살롬의 죽음이 외모로 인한 교만의 결과였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압살롬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의 이름은 다말입니다. 그의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였습니다. 압살롬의 딸 다말은 암논에게 강간당했던 압살롬의 여동생 이름과 동일합니다. 용모가 아름다웠다는 점에서도 유사성을 갖습니다. 어쩌면 압살롬이 자신의 여동생을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에 그의 딸의 이름을 여동생의 이름과 동일한 다말로 지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습니다.
압살롬이 2년 동안 예루살렘에 있었지만 왕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도망했던 그술에서 3년, 이제 예루살렘에서 2년 동안 왕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압살롬이 자숙의 시간을 보내야 할 터인데 이후 확인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모반을 계획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압살롬이 요압을 왕께 보내려고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 불렀는데 오지 않았습니다. 또 다시 그에게 보냈지만 역시 오지 않았습니다. 요압이 비록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키기 위해 큰 힘을 기울이기는 했지만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태도가 크게 변하지 않자 다윗의 눈 밖에 나 정치적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압살롬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압살롬이 자기 종들을 불러서 보리가 나고 있는 요압의 밭에 불을 지르라고 시켰습니다. 그러면 직접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압살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요압이 일어나 압살롬의 집으로 찾아 갔습니다. 요압 역시 자신의 이익과 관계없어 보일 때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더니 자기에게 속한 보리밭이 피해를 입자 즉각 일어나 압살롬에게 달려갑니다. 요압이 압살롬에게 ‘어찌하여 네 종들이 내 밭에 불을 질렀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압살롬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일찍이 사람을 네게 보내 너를 이리로 오라고 청한 것은 내가 너를 왕께 보내 아뢰케 하기를 어찌하여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게 되었나이까 이 때까지 거기에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이다 하려 함이로라. 이제는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요압이 왕께 나아가 압살롬을 말하자 왕이 압살롬을 불렀습니다. 압살롬이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그에게 절하자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었습니다. 여기서 다윗과 압살롬 사이에 응어리져 있던 갈등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었다기보다 외형적으로 봉합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얼굴을 땅에 대어 절하는 압살롬을 보고는 측은히 여기고 용서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입맞춤은 그 시기가 너무 늦었고 압살롬의 죄에 대한 아무런 지적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죄에 대한 책망과 회개의 촉구가 빠져 있는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