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돈이다-2nd
교회법은 이자 수취를 금지했다. 이는 이자 수취가 신의 소유인 시간으로 이득을 얻는 행위 즉 ‘하나님의 시간을 훔친 행위’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부업이 갈수록 늘어나자 1179년에는 돈을 주고 이자를 받는 자는 파문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 덕분에 유대인들이 대부업에 많이 종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기독교도들에게 이자 수취는 용인되지 않았다. 금융업자들은 대부업이란 것을 숨기기 위해서 자기들의 조직에 상회, 집회, 합자회사, 투자, 창업지원 등의 대부업 냄새가 나지 않은 이름을 붙이는 편법을 썼다. 환전상들이 은행의 원조가 된 것은 교회법을 피해 온, 지식과 경험 때문이다. 처음에는 진성어음(상거래 후 대금결제를 위해 발행한 어음) 을 취급하다, 실물거래와 상관없는 유통어음을 거래했다. 오는 날 CP라고 불리는 기업어음이다.
십자군 전쟁은 聖戰이냐, 아니면 聖錢이냐? 십자군 전쟁은 11세기 말부터 여덟 차례에 걸쳐 약 200년 계속되었다. 이 전쟁은 교황에게 꿩 먹고 알 먹은 이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영주와 기사들에게는 참전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고, 나아가 전쟁이 끝난 후에 이슬람 제국의 영토를 받을 수 있다는 교황의 약속이 주요 동기가 되었다. 봉건영주와 하급 기사들은 새로운 영토를 가질 수 있다는 욕심 때문에, 농민들은 봉건제도의 중압감에서 벗어나려는 희망 때문에, 상인들은 경제적 이득에 대한 욕망 때문에 저마다 원정에 가담했다. 이런 현실적 동기들이 모험심 등 잡다한 동기들과 뒤섞이며 하나의 신앙적 광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변질되는 십자군의 본질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군은 수만 명의 이슬람교도와 유대인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참하게 학살했고, 소아시아에 내 개의 십자군 왕국을 세웠다. 이 왕국의 통치는 백년을 넘기지 못했다. 꾼 돈을 안 갚으려면 제일 좋은 것이, 채권자를 죽이는 시대로 변한다. 상업을 부흥하기 위해 이탈리아 북부에 도시국가들이 발전한다. 크림반도를 통해 들어온 유입된 흑사병이 유럽에 창궐한다. 인구감소로 농노들의 몸값이 치솟는다. 농노는 자유재산이지만 영주에 귀속되어 영지에서 농사를 지어야 하지만 인구가 줄어드니 귀함 몸이 된다. 몸값을 내지 않고도 자유민이 된다. 결혼을 허락받지 않아도 되고, 영주 땅이 아닌 자신의 밭을 일구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여기서 중산층이 탄생한다.
영국 땅에는 켈트족이 살았다. 이곳에 앵글로색슨족이 침략해 차지하고 켈트족은 밀려나 지금은 ‘웨일스’가 되었다. 영국 왕조는 노르만 왕조에 뿌리를 둔다. 십자군 전비를 위해 영국 왕 ‘헨리 2세’는 ‘살라딘 십일조’를 부과했다. 십자군 지원자는 면세가 되자 많은 시민이 십자군에 지원한다. 그러자 아들 ‘리처드 1세’가 반란을 일으킨다. 후임이 동생 ‘존 왕’이다. 프랑스와 전쟁으로 프랑스 영지를 잃어 실지왕이라 별명을 듣는다. 그 아들이 ‘헨리 3세’로 ‘마그나 카르타’를 승인한다. ‘노르만’ 왕국은 영국 왕실의 모태이지만 시작은 프랑스 땅에서였다. 이것이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으로 연결된다. 표면상으로는 영국 왕이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일으킨 전쟁이지만, 실제는 과거 영국령이었던 경제 중심지 ‘플랑드르’(현재 벨기에)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지역은 한자동맹과 지중해 경제권을 연결하는 서유럽의 교역중심지였고, 모직물 생산의 중심지였다. 그러자 ‘플랑드르’에 거주하던 모직물 업자들이 고향을 떠나 영국으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토지가 척박해 농업 대신, 양을 키우는 등 목축업이 발달했고, 영국산 양모는 첨단기술의 ‘플랑드르’에 수출되어 제품화가 되었다. 그러니 양모업자는 프랑스보다 원료를 집적대주는 영국에 지배당하는 것이 이익이었다. 그러나 영국은 더 이상 전쟁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돈이 전쟁을 만들고, 전쟁이 돈을 만든다. 이제 전쟁은 하나의 비즈니스가 되었다. 군사 혁신의 본질이 된 것이다. 중장갑 기마병을 압도하는 소총수의 등장은 전쟁의 혁신을 이룬다. 이런 변화는 양성과 유지에 돈이 많이 드는 중장갑 기병이 한낱, 소총수의 저격에 사라지는 시대가 열린 것을 의미하고, 기병에 앉아 호령하던 귀족의 특권이 사라지는 계기가 된다. 왕이나 귀족과 계약한 지휘관은 누구나 신병을 모집할 수 있었다. 용병은 돈 때문에 하는 전투이기에 군인의 동경 직업이고 수요는 차고 넘쳤다.
‘콜럼버스라’는 벤처사업가가 등장한다. 귀금속과 향신료로 돈을 벌기 위한 인간의 욕심은 목숨을 건 대항해를 가능하게 했고, 그 결과 신대륙이 발견된다.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라 여왕’은 콜럼버스에 자금을 댄다. 세 척의 범선을 이끌고 ‘에스파냐 안달루시아’ 작은 항구를 떠난다. 항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군주와 상인 투자자 덕분이었다. 배를 마련할 돈, 선원들의 급료, 갑판에 설치된 대포 등 모든 것에는 돈이 들었고, 그 돈은 왕실과 투자자들한테서 나왔다. 원주민의 피와 눈물로 이뤄진 최초 세계화의 시작이다. 탐험 과정에서 원주민에 착취와 악행은 잔혹한 만행의 표준이 되어버렸다. 에스파냐 군인들의 만행은 국토 회복 전쟁에서 이교도들을 척살했던 잔인성에 물질에 대한 탐욕까지 더해지면서 더욱 심해졌다. 선원에게서 옮겨진 전염병 천연두는 원주민 대부분을 몰살시켰다. 잉카제국은 쉽게 무너지고 서유럽인은 신대륙에서 금과 은을 유럽으로 가져갔다. 그것은 서유럽인들에게 신의 축복 같은 일이었다. 포르투갈의 영광은 짧았다. 조용히 세계사의 중심에서 내려왔다, 인구 200만에 불과한 서유럽 끝자락에 있는 작은 나라가 아시아에서 1세기, 브라질에서 2세기 동안이나 제국을 유지한 것이 오히려 기적이었는지 모른다.
비슷한 시기 ‘바스쿠 다가마’는 희망봉 넘어 인도 서해안에 도착한다, 이 항해는 초기 투자금의 60배의 수익을 돌려주었다. 덕분에 이탈리아 투자자들은 2차 원정을 13척의 배에 1,500명이 떠난다. 절반은 죽었지만, 후추와 정향을 비롯한 향신료를 가득 신도 귀환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무적함대 에스파냐. ‘그라나다’의 언덕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은 에스파냐 대표적인 명소지만, 이는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반도에 남진 건축물이다. 전쟁에는 신앙심도 소용없다. ‘카를 5세’는 로마를 약탈한다. 교황 ‘클레멘스 7세’는 가톨릭의 확대를 위해 프랑스와 반 합스부르크 동맹인 코냑동맹을 맺는다. 그러자 ‘카를 5세’는 독일 용병을 고용하여 로마교황청을 공격했다. 약탈과 학살로 로마 인구가 5분의 1로 줄었다. 전쟁으로 흥한 자는 전쟁으로 망한다. 에스파냐가 기울자, 돈을 댄 ‘푸거’ 가문도 기울었다. 국왕이 종교에 집착할 때 벌어지는 일을 보자. 에스파냐의 전성기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카롤루스 1세’(커를5세)와 ‘펠리페 2세’가 통치했던 16세기라고 말한다. 반란까지 불러일으킨 소비세 문제로 에스파냐는 쇠퇴한다. 거래할 때마다 부과되는 소비세로 물가는 올라간다. 평민들이 세금을 내느니, 돈을 내고 하급 귀족의 지위를 샀다. 귀족은 세금을 면제받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카스타 지방’의 귀족은 6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증가했다. 이들은 세금을 내지 않았다. 결국 이에 따라 세수의 기반이 줄고 국가는 쇠약해졌다.
종교적 집착이 경제를 망쳤다. 가톨릭 교리에 대한 집착은 금융산업의 발전을 막았다. 고리대금업을 금지하는 교황령 때문에, 국내 환어음의 결재가 금지되자, 식민지로 출항하는 함대에 물품을 대기 위한 자금 융통이 힘들었다. 에스파냐에서 상인, 금융인, 농업인은 인기가 없는 직업이다. 모두가 귀족만 되고 싶어 했다. 결국 부르주아 계층이 형성되지 못했고, 인해 제대로 된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신대륙에서 들어오는 금과 은, 그 무엇도 무용지물이었다. 그렇게 에스파냐는 유럽 최대 강국의 지위를 신흥국인 네덜란드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하급 귀족 ‘돈키호테’가 늙은 말을 타고 농부인 ‘산초 판사’를 데리고 무사 수업에 나서면서 겪는 모험 이야기 소설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작가인 ‘세르반테스’는 실제로 전쟁에 나가 팔을 잃고 귀국 중 해적의 포로가 되어, 5년간 노예 생활을 했던 경험을 그린 작품이다. 에스파냐에서 추방된 30만 명의 유대인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이주했다. 재미있는 일은 유대인이 에스파냐를 떠나 네덜란드로 간 지 100면도 되지 않아서 유럽의 패권도 에스파냐에서 네덜란드로 넘어갔다.
유대인에 자유가 주어지자 엄청난 성과가 생겨났다. ‘베니스의 상인’을 보자. ‘발사니오’는 연인 ‘포시아’에게 청혼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친구 ‘안토니오’에게 빌려달라고 갔으나 무역에 투자하여 현금이 없자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찾아간다. 그동안 유대인이라 개처럼 무시당하던, ‘샤일록’은 돈을 갚지 못하면 ‘안토니오’ 가슴살 1파운드를 베어낸다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 ‘바니사오’와 ‘포시아’는 결혼 승낙을 받는다. 그러나 화물을 실은 배가 난파되어 재산을 잃는다. ‘샤일록’의 빚을 갚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 위기에 빠지자, 약혼녀 ‘포시아’가 재판관으로 변장하여 법정에 나가 “살을 베어 가더라도 피는 한 방울도 흘리면 안 된다.” 판결한다. 이에 따라 ‘안토니오’는 위기에서 벗어나고, ‘샤일록’은 재산 몰수와 기독교 강제 개종 명령을 받는다. 필연인지 우연인지 어느 국가든, 유대인들이 들어와서 경제활동을 하면 그 국가의 경제는 발전했다. 영국에서는 유대인들은 시민으로 인정받았다. 1209년 ‘에드워드 1세’가 추방했지만, 17세기 청교도혁명으로 ‘올리버 크롬웰’이 유대인 이민을 다시 허용했다.
2024.10.27.
역사는 돈이다-2nd
강승준 지음
잇콘 발간
첫댓글
역사도 돈
삶도 돈...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