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필암
윤필암(潤筆庵)은 고려 우왕 6년(1380년) 각관(覺寬)이 창건하였으며, 1645년 서조(瑞祖)와 탁잠(卓岑)이, 1765년 야운(野雲)이, 1806년 취운 종백(醉雲 宗伯)이 각각 중건하였고, 1885년 고종의 명으로 창명(滄溟)이 중건하였다 한다. 그러나 종전의 건물은 불타고 현재의 건물들은 모두 1980년대초에 새로 지은 것이라 한다.
윤필암은 법당인 사불전(四佛殿)과 선불장(選佛場) 승당이 있고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3층석탑이 사불전 뒤 암반 위에 있다. 법당인 사불전에 부처님을 모시지 않고 그 자리에 벽면을 유리로 설치하여 법당 안에서 사불암을 볼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 특징이다. 절 뒤의 거대한 암벽과 울창한 숲으로 절 주위의 풍광이 아주 빼어난 사찰이다.
윤필암에는 유형문화재인 목조 아미타여래좌상 및 지감과 문화재자료인 후불탱화(지방 유형 문화재 300호)를 소장하고 있다.
윤필암 입구
윤필암 사불전
윤필암의 사불전은 따로 부처를 모시지 않고 사불산 정상의 바위를 바라볼 수 있도록 유리로 창을 마련해놓았다. 다만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는 불상들의 흔적은 오랜 세월의 비바람에 다 마모되어 사방불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사적기에는 대웅전 서쪽 승당을 1604년과 1689년에 중창했다고 하니 근 400년에 가까운 유서를 지니고 있다.
윤필암 연못
윤필암 거북 수조
비구니 스님들이 정진 수행하는 수도 도량. 일반인의 출입은 허용되질 않는다.
윤필암 관음전
관음전에서 바라다본 사불전
윤필암 수조
사불산 사면불
사불산이란 이름은 이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높이 3m 정도의 '사불바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 때인 587년 사면마애불 바위 하나가 붉은 천에 싸인 채 하늘에서 내려왔다. (天降四佛).
진평왕이 그 소리를 듣고 찾아와 경배하고 대승사를 창건토록 했으며, 사불산이라 했다는 것이다. 윤필암 사불전에는 불상은 없고 정면 산 정상에 적멸보궁 처럼 불상이 없으며, 마애사면불을 예배...
현재 마애불상은 1500 여년 세월의 풍상에 많이 훼손되어 그 흔적만 사면에 남아있다.
潤筆庵은 원효와 의상스님이 각각 사불산의 화장사와 미면사에서 수도할때 의상의 이복동생인 윤필 거사가 토굴을 짓고 머물던 터라는 데서 유래했다.
사불전에서 바라다본 윤필암 전경
윤필암 사불전 뒤 석탑
사불전 후원 암반 위에 조성된 높이 1.90m의 석탑이다. 기단 및 옥개석(屋蓋石) 받침에는 화려하게 앙련(仰蓮)이 각출되었다. 각 층마다 우주(隅柱)가 각출되었으며, 상륜부(相輪部)는 전실되었다. 3층 옥개석 위에 탑신석(塔身石)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5층 석탑이었는지 알 수 없다.
가지런히 쌓아놓은 장작더미
첫댓글 지난 순례 때 기억이 새록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