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시작하고 첫 지능선에서 만난 자작나무숲
나는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풍경의 안쪽에서 말들이 돋아나기를 바랐는
데, 풍경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풍경은 미발생의 말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적막강산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을 거느리고 풍경과 사물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가망 없는 일이었으나 단념
할 수도 없었다. 거기서 미수에 그친 한 줄씩의 문장을 얻을 수 있었다. 그걸 버리지 못했다.
이 책에 씌어진 글의 대부분은 그 여행의 소산이다. (……)
―― 김훈, 『내 젊은 날의 숲』에서
▶ 산행일시 : 2018년 4월 14일(토), 흐림, 비, 추운 날씨
▶ 산행인원 : 13명(모닥불, 스틸영, 악수, 대간거사, 산정무한, 수담, 사계, 신가이버, 해마,
해피, 오모육모, 무불, 메아리)
▶ 산행거리 : 도상 15.9km(1부 5.9km, 2부 10.0km)
▶ 산행시간 : 8시간 34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3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42 - 서울양양고속도로 홍천휴게소
08 : 36 - 홍천군 내면 방내리 음터교, 1부 산행시작
09 : 22 - 790m봉, 첫 휴식
10 : 06 - △953.5m봉
11 : 30 - 수유5교, 1부 산행종료, 점심, 이동
12 : 35 - 음터교, 2부 산행시작
13 : 10 - 임도
13 : 28 - 874m봉
14 : 15 - 1,017.0m봉
14 : 32 - 응봉산(1,096.5m)
14 : 57 - ┣자 갈림길 안부, 임재
15 : 15 - 각근봉(角近峰, 각근치, 981.0m)
15 : 43 - 작은노루목재(990.0m)
16 : 00 - 951.5m봉
16 : 40 - 도로
15 : 10 - 무사골 마을, 산행종료
17 : 43 ~ 19 : 43 - 홍천, 목욕, 저녁
20 : 52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1부 산행)
2.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2부 산행)
▶ △953.5m봉
칼레파 타 칼라(Kalepa Ta Kala). 좋은 일은 실현되기 어렵다는 그리스 격언이다. 누구로부
터 소개를 받지 않고 스스로 오지산행을 찾아오는 사람은 매우 드문데 메아리 대장님이 오겠
다는 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중대 발표한다. 오늘 비가 온다는데 혹시 산에 가느냐고 묻
는 산꾼다운 질문이 있었다기에 모두가 반색했음은 물론이다.
06시 30분 산행 출발시각이 가까워지고 그는 오지 않아 메아리 대장님이 전화를 걸어 어디
쯤 오시느냐고 물었다. 늦잠을 자버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댁이 어디시냐고 하여 이 근처라
면 버스로 데리러 가겠다는 뜻을 비쳤으나 먼 데 사는지 그도 글렀다. 비랬자 봄비다. 소월의
봄비, “어룰 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어룰 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를 보러간다. 어룰
은 얼굴의 평안북도 방언이다.
응봉산을 오르려고 방내리 음터교 지난 한적한 산골 마을로 들어갔다. 농원의 너른 들이 펼
쳐지고 농원 여주인이 나오더니 이곳은 사유지이거니와 산나물이 있어 산으로 접근할 수 없
다며 막아선다. 여주인의 경상도 말투로 미루어 토착주민이 아닌 귀농한 주민일 거라며 멀리
돌아 오르기로 한다. 산나물은 무슨 산나물, 아직 움도 트지 않았다. 괜히 시비해보았자 경방
기간인데 신고하겠다고 달려들면 전비가 있는 우리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비는 추적추적 내린다. 얼마나 견디어내겠느냐마는 스패츠까지 매어 발이 젖는 것을 최대한
늦추도록 한다. 질척거리는 농로 따라 산자락을 돌다가 완만한 사면이 나오기에 덤불숲을 냅
다 뚫어 오른다. 오는 비는 물론 온 비까지 소급하여 맞는다. 축축하게 젖은 수북한 낙엽을
헤치기에 그렇다. 한 피치 치고 올라 지능선 마루다. 우중충하던 주변이 갑자기 환해진다.
온통 자작나무숲이다. 음울하던 기분도 환해진다.
오르막에서는 안팎으로 젖는다. 안은 땀으로 젖고, 밖은 비로 젖는다. 790m봉. 가파름이 약
간 수그러들자 첫 휴식한다. 신가이버 님이 최근에 출시한 꼬치에 꿴 넙죽이 오뎅탕이 이런
날은 일미다. 식탐을 부려 입천장까지 데인다. 입산주는 덕산 명주인 탁주다. 충남 덕산에서
얼음에 꼭꼭 재서 온 탁주라 식도는 물론 폐부까지 시원하다.
점점 고도를 높여 자욱한 안개 속에 든다. 가시거리는 불과 10m 내외다. 골바람이 불어 안개
가 일순 걷히면 낯선 다른 산이 되고 만다. 앞사람과 떨어진 거리를 그들의 수런거리는 말소
리로 집작한다. 농담의 수묵화 전시장에 온 셈이다. 전후좌우 둘러보며 품평한다. 더 나은 가
작을 보려고 발걸음을 부지런히 놀린다.
△953.5m봉. 산행의 기로다. 이대로 응봉산을 올랐다가 내리려면 오후 2시는 될 것. 도시락
은 버스에 두고 왔다. 도시락을 가지고 왔다 한들 이 빗속에서 꺼내 먹는 것 또한 매우 어려
운 일이다. 왼쪽 능선을 잡아 하산하는 쪽으로 돌아선다. 이제는 오르막이 없어 열 낼 일이
없으니 비가 차갑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손이 시리다. 숫제 감각이 없다. 장갑은 젖어 주먹을
쥐면 빗물이 줄줄 흐른다.
912.3m봉 넘고 신중하여 지능선을 잡는다. 자칫하면 방내천 지천에 막히는 수가 있다. 지천
이 골골 봄비 모아 대하로 변했다. 버스에서 나누어준 종이지도 밖의 산행이라 스마트 폰 GP
S 지도에 눈을 박고 간다. Y자 갈림길인 890m봉에서 왼쪽으로 방향 튼다. 급전직하. 쏟아져
내린다. 암벽 슬랩보다 더 미끄러운 토사 슬랩이다. 앞사람의 사고다발 지점에서 나도 미끄
러진다.
낙엽송숲 지대 지나고 산자락 덤불 헤치며 빈 밭으로 내린다. 멧돼지 등의 침범을 막으려고
둘러친 철조망이 누워있는 데가 있다. 빈 밭 가로질러 도로와 만나고, 비 피하며 점심 먹을
마땅한 곳을 찾는다. 수유5교 아래는 내려가기가 어렵다. 퇴비 자루 쌓아둔 밭 가장자리에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운이 좋게도 도로 옆이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난로이기도 한 버너 불에 손을 쬐면서도 덜덜 떤다. 말조차 더듬거리고
술잔 받은 손은 수전증이 중증으로 도졌다. 봄이 오기 참 어렵다. 확실히 4월은 잔인한 달이
다. 영국 사람 엘리엇(T.S Eliot, 1888~1965)이 시로 먼저 토로했을 뿐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지난겨울이 따뜻했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겨울은 따뜻했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 주었다.
(……)
3. 자작나무숲
4. 생강나무, 얼었다
5. 생강나무
6. 등로
7. 등로
8. 홍천샘물 옆 산자락 낙엽송숲
▶ 응봉산(1,096.5m), 각근봉(角近峰, 각근치, 981.0m)
응봉산에 다시 도전한다. 아침에 갔던 음터교로 간다. 농원 여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
만 우리는 빙 돌아서 응봉산을 오른다. 버스에 내려 계류 옆 임도를 걸어간다. 사방댐 지나고
완만한 잣나무숲을 오른다. 빗줄기는 가늘어졌지만 냉기는 속속들이 파고든다. 잰걸음하여
간벌지대에 든다. 사방에 널린 나뭇가지를 추려 넘는다.
줄곧 오르막이다. 금방 안개 속이다. 산허리 도는 임도와 만난다. 절개지가 높다. 양쪽 사면
을 둘러보아도 지능선 이은 산등성이가 낫다. 선등한 대간거사 님이 건네주는 나뭇가지를 붙
들고 오른다. 산죽숲이 자주 출몰한다. 산죽숲을 지날 때면 더욱 고역이다. 그 너른 잎사귀에
담고 있는 빗물을 털어내며 가야 하니 또다시 흠뻑 젖고 만다.
어쩌다 모닥불 님 눈에 밟힌 대물더덕 손맛을 본다. 그 맵도록 진한 향내에 정신이 번쩍 든
다. 874m봉에서 가쁜 숨 잠시 고른다. 추위에 너무 떨어 이를 앙다물어서 그런지 오른편 위
쪽 어금니가 아프다. 큰 고통은 작은 고통을 구축한다고 오르막의 힘 드는 것을 잊는다. 아까
임도에서 일행들에게 진통제를 찾았다. 무불 님이 미제 타이레놀이라며 내놓는다. 그 덕으로
치통이 잦아드니 가도 가도 오르막이 힘들다.
1,017.0m봉. 행치에서 헉헉대며 올라오는 영춘기맥과 만난다. 반갑다 말을 다할까. 영춘기
맥 종주도 한때였다. 지금은 시들하다. 산악인 박성태 씨가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았고, 그는
자신의 호를 영춘(寧春)이라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으로 나누기도 한
다. 1,017.0m봉을 넘고부터 그간 사납던 길이 순해진다.
약간 내렸다가 긴 두 피치 오르면 응봉산 정상이다. 날이 맑다 해도 사방 나무숲 가려 아무
조망이 없는 응봉산이다. 비는 다시 주룩주룩 내린다. 단체기념사진 찍고 물러난다. 일단 내
사동을 향한다. 임재로 내리는 길. 주춤주춤 세 피치로 내린다. 작년 한여름에 땀께나 흘렸던
오르막을 오늘은 추워서 덜덜 떨며 내린다.
바닥 친 안부인 임재는 ┣자 갈림길이다. 직등. 922.2m봉을 가파르게 오르고 잠깐 누그러졌
다가 봉봉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긴 오름 끝이 ┳자 능선 분기봉인 각근봉(981.0m)이다. 영
춘기맥은 왼쪽 큰노루목재로 간다. 우리는 인적 드문 오른쪽으로 간다. 잡목 헤치고 바윗길
을 오르내린다. 작은노루목재는 말이 재지 준봉이다.
왼쪽으로 돌아 넘는 우회로가 보이기에 부조라 고맙게 여기고 냉큼 따랐다가 낭패를 본다.
어설프게 돌았다. 그냥 내리 쏟았더니만 주위가 적막하고 등줄기가 서늘해지기에 문득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리는 혼자 겪을 때 난리다. 나침반을 꺼냈다. 서진해야 할
것을 남진하고 있다. 뒤돌아 작은노루목재를 다시 오른다. 여기서 입은 데미지가 컸다.
일행과 반갑게 만나고 자욱한 안개 속에 굴곡 심한 봉우리를 오르내린다. 951.5m봉. 직진은
아미산으로 간다. 우리는 오른쪽 지능선을 더듬어 내사동 마을을 향한다.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는 내리막이다. 줄달음한다. 멀리서 아련히 들리던 바위 뚫는 드릴 소리를 뒤로 보낸다.
551.6m봉 직전 안부. 급히 제동하여 오른쪽 사면으로 방향 튼다.
이내 골짜기 숲속에 들고 어둑하다. 산괭이눈도 고개 들고 눈 부릅떴다. 철조망 넘고 농원을
지나 아스팔트도로다. 비도 지쳤다. 이슬비로 내린다. 내사동 마을이 쓸쓸하다. 산기슭 폐가
들이 흉물이다. 551.6m봉에서 달려오던 산줄기가 마침내 맥을 다하고 무사골 마을이다. 모
처럼 봄비에 오달지게 떨었던 산행을 마친다.
9. 응봉산 들머리 임도
10. 등로
11. 현 위치 확인하는 산정무한 님
12. 응봉산 전위봉을 향하여
13. 응봉산 정상에서
14. 임재 가는 길
15. 임재 가는 길
16. 등로 주변의 낙엽송숲
17. 산괭이눈
18. 산골마을 벚꽃
19. 내사동, 무사골 마을 가는 길섶의 산괴불주머니
첫댓글 바들바들 떨었던 날이었습니다...신발까지 맹꽁이 소리를 내는 통에 더욱...그래도 거운 하루였습니다
일찍이 짜임새가 몽환적이라고 표현한 풍광이 종일 눈앞에 있었는데도 추위 때문에 무심코 지나친 날이었네요.
하지만 복수초 모가지를 비틀어도 봄은 오고야 마는 것. 그리하여 봄날은 간다.
추븐데 고생하셨네요~ 어제도 썰렁하든데
콧물이 질질나오고 목도 아프고 해서리 병원 같다왔슈^^ 그래도 산좋고 님들좋고 좋아쥬^^
그래도 봄은 오내요
봄비가 차가웠지만 싫지는 안았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