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일기 14: 세계에서 가장 높고 신성한 하늘호수, 남쵸
한 노인이 마니차를 돌리며 남쵸 호수를 따라 코라를 돌고 있다.
라싸에서 며칠을 보내고 이제 칭장공로를 따라 남쵸로 간다. 중국의 칭하이와 라싸를 잇는 칭장공로는 중국이 티벳을 지배하기 위해 최초로 건설한 포장도로이다. 도로의 고도는 해발 5000미터를 넘나들고, 겨울이면 눈으로 뒤덮여 종종 포장도로의 기능을 상실하지만, 중국은 이 길을 통해 지금껏 군인들과 이주민을 실어왔고, 티벳의 자원과 물자를 실어갔다. 이제 이 기능은 올해 새로 개통한 칭장철로가 고스란히 물려받고 있다. 칭장철로는 칭장공로를 따라 나란히 뻗어서 하루 수천명의 관광객과 이주민을 라싸로 실어나른다. 중국은 이 철로의 개통이 낙후된 티벳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대외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티벳의 발전이란 누구를 위한 발전이란 말인가. 티벳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그것의 혜택은 결국 티벳인이 아닌 한족에게 돌아갈 것이란 걸 코흘리개도 다 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남쵸 주변의 산자락(위)과 라겐라 고개의 휘날리는 타르쵸(아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탄 차의 운전기사는 한족이었고, 가는 내내 나는 일행과 함께 중국을 씹어대고 있었다. 내 뒷담화에 골치가 아팠던 것일까. 남쵸로 오르는 길목에 자리한 담슝마을에 이르러 운전기사는 두통을 호소하며 식은 땀까지 흘렸다. 결국 참을 수가 없었는지, 운전수는 문을 열고 나가 약국을 찾아다녔다. 잠시 후 그는 가루약과 호랑이 기름을 사갖고 돌아왔다. 고산증이었다. 그의 증세는 생각보다 심각한 것이어서 머리가 빠개질 듯 아프다고 호소했고, 어지럼증에 이따금 구역질까지 해댔다. 가루약을 먹고 나자 그는 일행 중 한 명에게 민간치료를 요구해왔다. 고산증을 극복하는 그의 민간요법은 이런 것이다. 우선 목 뒤에서 어깨와 등으로 내려가는 부위를 동전으로 피가 맺힐 때까지 긁어내린 뒤, 그 위에 호랑이 기름을 바르는 것이다. 남쵸에 가려면 어쩔 수 없이 그가 제시한 민간요법을 해야만 했다.
라겐라 고개의 구걸하는 아이들(위)과 남쵸마을에서 관광객의 선글라스를 빌려 쓴 아이(아래).
일행 중 한 명이 그가 말한 대로 목 뒤를 피멍이 들 때까지 긁은 다음, 호랑이 기름을 발라 주었다. 그리고 얼마 뒤 거짓말처럼 그는 좀 나아졌다고 하며 다시 시동을 걸었다. 담슝에서 남쵸까지는 약 40여 킬로미터. 남쵸는 해발 4718미터에 자리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이자 티벳에서 가장 넓은 호수일 뿐만 아니라 티벳에서 가장 신성한 호수로 알려져 있다. 담슝에서 남쵸를 넘어가자면 해발 5190미터의 라겐라 언덕을 넘어가야 하는데, 고산에 적응되지 않은 채로 넘을 경우 십중팔구 고산증에 걸리게 된다. 때문에 라싸에 왔던 관광객들이 남쵸에 오를 때에는 최소한 5일~7일 정도 라싸에 머물며 적응기간을 거친 뒤, 남쵸를 오르는 게 좋다. 물론 그런 적응기간을 거쳤더라도 고산증이 오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우리 일행과 함께 한 운전수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그는 줄곧 중띠엔에서부터 우리와 동행하며 라싸에서도 며칠 머물렀으나, 이렇게 고산증에 걸려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라겐라 고개에서 바라본 남쵸 호수(위)와 남쵸로 뻗어 있는 도로(아래).
운전수의 증세가 호전된 것같지는 않아 보이지만, 그는 겨우겨우 언덕을 올라 라겐라 고갯마루에 차를 세웠다. 라겐라 고갯마루는 멀리 남쵸 호수와 호수를 둘러싼 고원의 평야와 산자락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곳으로, 남쵸로 넘어가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가는 곳이다. 남쵸에서 불어오는 바람 탓인지 라겐라 고갯마루는 언제나 칼바람이 분다. 여름인데도 하늘에서는 진눈깨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한다. 주변의 산자락에는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고, 하나같이 밋밋하고 부드럽다. 아예 이 곳은 나무가 살 수 없는 생육환경이다. 때문에 산자락이며 고원의 들판은 온통 잔디를 깔아놓은 듯 푸른 초원이고, 높은 산봉우리에는 잔설이 희끗희끗 덮여 있다. 물론 해발 5100미터가 넘는 산봉우리의 눈은 대부분 만년설이다. 멀리 만년설이 보이고, 희미하게 호수가 보인다.
남쵸 가는 길에 만난 유목민 가족(위)과 초원의 양떼들(아래).
이렇게 높은 남쵸와 라겐라 주변에는 꽤 많은 유목민들이 흩어져 산다. 이들은 주로 야크와 양떼를 데리고 초원을 떠돌아다니는데, 남쵸 주변의 풍부하고 드넓은 풀밭이 이들을 먹여 살리는 셈이다. 산 밑의 마을에서는 흙으로 지은 집이 대부분이지만, 이 곳은 유목민의 거처답게 임시 가옥인 천막이 군데군데 들어서 있다. 혹독한 한겨울이면 짐을 꾸려 가축을 데리고 좀더 따뜻한 곳으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라겐라 고개에는 동냥을 나온 유목민의 아들 딸들도 10여 명을 훌쩍 넘는다. 이 아이들은 양떼를 몰지도, 야크 똥을 찾아헤매지도 않는다. 대신에 어린 양을 가슴에 안고 라겐라 고갯마루에 올라 구걸을 한다. 그런데 이 녀석들의 구걸이 제법 당당하다. 관광객들이라면 누구나 이 곳에 내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녀석들인지라 아이들은 관광객들에게 모델을 자처하고, 그 대가로 손을 내민다. 사진 한 장에 1원.
다양한 푸른색을 띠는 남쵸 호수(위)와 남쵸마을을 사이에 두고 자리한 또다른 호수(아래).
하지만 나는 사진을 찍힌 아이들에게 1원 한푼 주지 않았다.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는 곳에 녀석들이 억지로 고개를 들이밀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돈을 주고 사진을 찍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나는 차에 비상식량으로 싣고 온 과자와 초콜릿을 나눠주었는데, 주고 보니 20원 어치가 넘었다. 차라리 1원씩 주고 10원으로 해결하는 게 나았을까, 도 싶지만 돈을 주지 않은 것이 잘한 일이라고 결론내렸다. 돈을 주거나 먹을 것을 주는 게 거기서 거기긴 하지만. 그나마 먹을 것을 사서 주는 것은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가, 라고 나는 좋게 해석했다. 그러나 마음은 좋지 못했다. 무엇이 녀석들을 이 고갯마루로 내몰았는지, 이렇게도 티벳 유목민의 현실이 궁핍한 것인지. 어쨌든 이 아이들이 구걸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온전한 유목민의 아들 딸로 살아가기를 나는 진정으로 빌었다.
남쵸마을에 자리한 룽다(위)와 호수를 보며 자리한 쵸르텐(아래).
라겐라 고개를 넘은 길은 아득하게 호수 쪽으로 뻗어 있다. 야크떼는 느릿느릿 초원을 이동하며 풀을 뜯는다. 그리고 드디어 눈앞에 하늘과 맞닿은 남쵸 호수가 펼쳐졌다.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하늘과 맞닿아 있다고 ‘하늘호수’라 불리는 남쵸. 호수의 빛깔도 하늘을 닮아 있다. 티벳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호수답게 남쵸에는 꽤 많은 순례객들이 찾아온다. 덩달아 하늘호수를 보러 오는 관광객들도 해마다 늘어나 이제는 제법 남쵸가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남쵸는 워낙에 넓은 호수인지라 걸어서 한 바퀴 도는 데만도 20여 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럼에도 남쵸에는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코라 순례객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호수를 한 바퀴 오체투지로 도는 순례객까지 있다.
남쵸마을의 마부들(위)과 남쵸 순례를 온 스님(아래).
남쵸 호수 앞에 자리한 남쵸마을은 천막촌이다. 이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음식을 팔고 잠자리를 내주는 것으로 생계를 꾸려간다.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 말을 태워주고 돈을 받는 것도 이들의 주 수입원이다. 호수에 도착하면 남쵸마을의 마부들이 몰려들어 호객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못본채 천막을 골라 들어가서는 뚝바(티벳국수)로 요기를 하고, 창아모차(야크 우유에 홍차를 섞은 차, 야크 버터로만 만든 차는 뵈차라 하며, 야크 버터를 저어 녹차를 섞은 것은 수유차라 한다)를 마셨다. 마부들은 차를 마시는 내내 내 앞을 왔다갔다 하며 말을 탈 것을 부탁했다. 그러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여 사진을 몇 컷 찍었는데, 알고 보니 내 앞에서 서성거리던 마부의 아내였다. 그 아내는 사진을 찍었으니 말을 타야 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나는 말을 타고 호숫가로 조금 가다가 내렸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5원 어치밖에는 안탔으니, 더 타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내가 그냥 탄 걸로 할 테니, 다른 사람에게나 가 보라고 손짓을 하자 그는 5원 어치쯤 빚진 듯한 표정으로 기수를 돌렸다.
티벳 국수 뚝바(왼쪽)와 연료로 쓰기 위해 모아놓은 야크똥(오른쪽).
호수로 내려가 물속에 손을 담그자 얼음물에라도 담근 듯 손이 시리다. 해발 4718미터에 길이 70킬로미터, 폭 30킬로미터, 수심 약 35미터. 이것이 남쵸의 실체다. 그러나 남쵸의 본질은 이 곳이 지상의 가장 높은 곳에 존재하는, 하늘과 맞닿은 ‘하늘호수’라는 것이고, 티벳인의 관념 속에 가장 신성한 호수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왜 그토록 남쵸를 신성하게 여기고 있는지는 남쵸에 가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가 없다. 남쵸에 이르러 호수와 하늘, 만년설 연봉을 보고 있노라면, 숨이 턱 막히고 입은 할말을 잃고 연방 감탄사만 연발한다. 호수의 빛깔은 실로 신비롭다. 푸른색이 낼 수 있는 모든 다양함과 아름다움을 호수는 모두 품고 있다. 아름답게 빛나는 푸른 보석!
해발 4718미터 남쵸 호수 주변에서 만난 고산식물들. 여름을 맞아 활짝 꽃을 피웠다.
남쵸에서 차가 가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은 남쵸마을이다. 이 곳은 남쵸 호수와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또다른 호수 사이에 자리해 있는데, 마을 양쪽으로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이 펼쳐져 있다. 이 언덕에 올라가면 양쪽의 호수를 모두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남쵸에 도착한 많은 사람들은 호수에 이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서 대부분은 언덕의 멋진 풍광을 놓치고 만다. 나를 태우고 온 한족 운전수도 남쵸에 도착하자마자 식사도 거른 채 드러눕고 말았다. 호랑이 기름도 고산증 앞에서는 별 효력이 없는 모양이다. 남쵸마을 언덕에 올라 나는 30분쯤 바위에 걸터앉아 호수만 바라보다 내려왔다. 호숫가를 따라 코라를 도는 노인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쉼없이 오른손으로 마니차를 돌리고 있었다. 호수의 푸른색과 그가 입은 붉은색 옷이 행복하게 어울리고, 그가 중얼거리는 옴마니벳메훔이 하늘의 소리처럼 그윽한 오후였다.
-- 글/사진: 이용한 http://blog.daum.net/binkond
호숫가 쵸르텐 앞에 쌓여 있는 마니석. "옴마니벳메훔"을 적어 놓았다.
<라싸에서 남쵸(240킬로미터)로 가는 대중교통은 칭장철로를 타고 담슝으로 가거나 지프차(4명 기준, 1박2일에 1000~1500원)를 빌려서 가야 한다. 라싸에서 담슝까지 운행하는 미니버스가 있지만, 담슝에서 라싸로 가는 대중교통은 없다. 담슝에서 남쵸 호수로 들어가는 입구에 매표소가 있으며, 입장료는 80원이다. 차를 타고 갈 경우 라싸에서 담슝까지 3시간이 넘게 걸리고, 담슝에서 남쵸까지 1시간이 더 걸린다. 아침 일찍 라싸를 출발하면 저녁 늦게는 돌아올 수 있지만, 담슝에서 1박하는 것도 괜찮다. 고도 적응이 되지 않은 상태로 남쵸에 오르는 것은 고산증을 몸소 체험하는 것밖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