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썼던 가을 이야기 입니다.
가을 단상〔Ⅰ〕
지난해 추석 다음날 어느 신문 1면의 사분의 일을 차지하는 크기의 칼라사진이 실렸다.
토실토실하게 익은 벼이삭이 무거운지 고개를 숙이고 서있는 논길을 따라 새댁은 양손에 커다란 보따리를 힘에 겨운 듯이 들었고 아기를 품에 안은 아들이 뒤를 따르는 장면이었다.
서너 걸음 뒤에는 서릿발 내려앉은 늙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잘 가라며 손을 흔드는 모습 속에 아쉬움이 배어있는 듯 했다.
아마 떠나면 당장 첫 돌 된 손자의 까르르 웃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늘 곁에 두고 어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차마 그럴 수 없기에 또 오라는 뜻을 담아 보내고 있으리라.
사진 아래에는 이런 설명이 쓰여 있었다.
‘추석 마지막 날. 아쉬움을 뒤로한 채 정이 가득담긴 짐 꾸러미를 들고 고향집을 나서는 자식들을 논두렁까지 배웅을 나온 부모가 정겹게 손을 흔들고 있다.’
맞다.
따뜻하게 맞아 주실 부모님이 계시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른 황금들녘과 주황색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감나무, 자주 본적은 없어도 주인어른의 피붙이인줄 알아차리고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누렁이,
큰 눈망울 껌뻑이며 급할 것 없다는 듯 느릿느릿 되새김질 하는 황소가 울음소리가 여유롭게 들리는 그런 정겨움이 가득한 고향이 좋다.
부모님 모시고 고향을 지키며 힘든 표정, 싫은 내색 한번 보이지 않고 묵묵히 논밭을 일구어 철따라 곡식과 마늘, 고추 꼭 챙겨 보내주는 맏형님께 술 한 병 내놓고, 형수님께는 화장품 한 세트 안겨드리면
“허구 한 날 햇볕에 드러낸 얼굴에 무슨 화장이냐?”고 손사래 치면서도 못이기는 척 받아 화장대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는 모습이 동네 아낙들에게 자랑거리 하나 생겼다고 생각을 하는지 그 모습이 너무나 푸근하다.
오순도순 모여앉아 송편을 빚으며 이야기꽃을 피울 때 도회에서 온 조카가 외양간 냄새에 코를 막고서 이리 저리 뛰어 놀다가 밤송이 가시에 찔려가면서도 마냥 즐거운 곳, 마당을 맴도는 등줄기 빨간
고추잠자리 쫓다가 꼬꼬댁하며 화들짝 놀라 뒤뚱거리며 달아나는 살찐 암탉을 귀찮게 해도 너그러운 웃음으로 넘기시는 큰아버지의 뒷짐 쥔 모습이 큰 바위처럼 든든하다.
하얀 달빛아래 하늘거리는 박꽃이 더욱 희게 보이고, 훌쩍 자란 수수깡 그림자가 실바람 따라 춤출 때 멀리서 컹컹 개 짖는 소리가 온 마을을 감싸 돈다.
조율시이, 홍동백서, 어동육서, 동두서미, 좌포우해 ・・・, 어른들은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을 해가며 차례 상 차리는 것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곶감에 손이 가는데,
조상님들 드시기 전에는 아니 된다는 말씀에 머쓱해지기도 한다.
분향강신이니 개반삽시, 철시복반・・・,
“두 번 절을 하라”고 하면 될 것을 꼭 ‘재배(再拜)’라고 하는 것처럼 도대체 차례지낼 때 쓰는 용어는 왜 그리 어렵고 절차도 복잡하고 분위기는 엄숙한지 괜히 주눅이 들어 그렇지 않아도 어설퍼서
친척어른들 하시는 대로 곁눈질을 하여 절을 올리고, 마음속으로는 쉬운 말로 고쳐서 쓰고 젊은 사람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간편하게 바꾸면 좋을 텐데 하는 상상을 하면서, 그래도 어른들 틈에서 차례를 지냈다는 생각에
가슴 한편에 무언가 솟아오르는 느낌이 드는 것은 말없는 가운데 조상님과 교감을 가졌다는데서 오는 충만감일까?
차례가 끝나고 어른들 따라 성묘 길에 나서 목발, 안 적돌, 감나무 골, 이곳저곳 다니다가 때가되어 친척 집에 들어가서 “삼종숙 어른이시다. 인사드려라”하여 절을 올리면 “네가 아무개 아들이라고?”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동안 어느 새 음식상이 차려져 나와 한 잔씩 나누며 몇 집을 들르면 명절 날 하루가 저물어 간다.
“나이가 들면서 농사짓기도 힘들어”
하면서도 아들이 살고 있는 대처로 떠나려고 내놓은 이웃 집 밭떼기를 샀다는 아버지 말씀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보고 이제 귀성길에 오르는데, 대개가 그렇듯이 신문에 났던
사진의 장면처럼 작별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고향의 정 담뿍 담아 떠나올 때는 한번이라도 자주 찾아오리라 마음을 다져 보지만
막상 되돌아와 일상으로 돌아간 세상살이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라서 언제 그런 생각을 가졌나 싶게 또 분주한 일상에 묻혀 사는 것이겠지.
어제가 옛날이 되고 실타래 서려있듯 복잡한 세상사 가운데서 분초를 다투며 ‘여유’, ‘낭만’이라는 단어는 남의 말처럼 여겨질 때. 그래도 몇 시간을 길에서 허비하며 고향을 찾는 것은 ‘효율성’으로만 본다면야
분명 어긋나는 것이지만 ‘가치’라는 기준으로 본다면 그 무엇 못지않게 큰 의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명절이라는 풍습은 곳곳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모이는 것 외에도 혹시 소원했던 사연이라도 있다면 묻어 버리고 서로 찾고 만나는 구실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추석’
‘가을’이라는 계절은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 철 뙤약볕 이겨내며 가꾼 오곡백과를 거두는 풍성함에다가, ‘저녁’은 힘써 일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가족들 모여 함께하는 ‘쉼표’와 같은 시간이니 ‘가을의 저녁’이라는
추석(秋夕)은 ‘풍요’와 ‘거둠’과 ‘안식’의 의미가 함께 어우러지는 좋은 명절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마음 넉넉한 명절,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에 기억 속에서 항상 끄집어내어 가볼 수 있는 고향이 있어서 좋다.
하루하루 주름살 깊어지지만 그래도 얼싸안고 싶은 앙상한 가슴의 어머님 체취를 맡을 수 있는 고향이 좋다.
동생네 주려고 맑은 햇볕에 말렸다는 첫물고추, 마늘, 콩 한 자루씩 담아주는 넉넉한 마음씨를 가진 형수가 있는 큰 집이 좋다.
어릴 적 친구들과 칡뿌리 캐고 버들피리 만들어 불며 뒹굴던 흙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좋다.
모교 운동회 날 동창들 모이기로 했으니 잊지 말고 꼭 오라고 당부하는 어릴 적 친구가 기다리는 고향이 좋다.
바라보기만 하여도 배가 부른 풍성한 들녘을 바라보며, 막힌 길 오느라 겪은 고생 길 잊고 돌아갈 걱정 잠시 접어둔 채 부모형제, 친척, 친구들 모여 어울리는 명절이 있어서 더욱 좋다.
이런 저런 상념 속에 한가위 추석명절이 눈앞에 다가 온다.
첫댓글 한폭의 수채화. 요즈음 젊은이들에게는 연상 아니될지 모르지만. 秋夕 - 가을의 저녁이라서 어떻게생각하면
코리언 쌩큐스기빙데이 추수감사절과도 연이 닿을 터인데, 이제 早秋 가 되어 버렸읍니다. 그래도 풍성한 가을
한가위 더도말고 덜도말도 한가위만 같아라. 즐겁고 풍성한 중추절 되었음을 확신합니다. 늘 건강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