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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환의 명시감상 1권에
채송화
송찬호
이 책은 소인국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을 땐 쪼그려 앉아야 한다
책속 소인국으로 건너가는 배는 오로지 버려진 구두 한 짝
깨진 조각 거울이 그곳의 가장 커다란 호수
고양이는 고양이수염으로 포도씨만한 주석을 달고
비둘기는 비둘기똥으로 헌사를 남겼다
물뿌리개 하나로 뜨락과 울타리
모두 적실 수 있는 작은 영토
나의 책에 채송화가 피어 있다
----송찬호, [채송화]({애지},2005년 가을호) 전문
태양은 태양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발광체이며, 지구로부터 1억 4천 945만km의 거리에 있는 항성이고, 지구는 우리 인간들이 살고 있는 천체이며, 태양계의 여러 행성 중의 하나이다. 시와 예술이 현실의 반영이라면 현실주의자들은 태양과 지구를 앞의 진술 이외에는 더 이상 설명할 방법이 없을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대로의(자연과학적인) 태양과 지구는 사실 그대로의 태양과 지구에 지나지 않지만, ‘아버지인 태양’과 ‘어머니인 대지’라고 하게 되면 그 의미는 전혀 다르게 된다. 언제, 어느 때나 밝은 태양은 모든 만물들의 생성을 가능케 하는 아버지이며, 태양을 중심축으로 하여 자전과 공전을 되풀이 하는 지구는 모든 만물들이 살아가는 비옥한 터전이다. 현실주의자들은 태양을 태양으로, 지구를 지구라고 설명하고 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지만, 상징주의자들은 태양을 아버지로, 지구를 어머니라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현실주의자들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구상 예술을 추구하고, 상징주의자들은 인간의 내면의식을 통한 추상 예술을 추구하게 된다. 현실주의자들은 세계의 해석보다는 세계의 변혁을 추구하지만, 상징주의자들은 다양한 종교와 신화를 통해서 세계의 변혁보다도 세계의 해석을 추구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고 말한 바가 있고, 오스카 와일드는 자연이 예술을 모방한다라고 말한 바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주의자이고, 오스카 와일드는 상징주의자이다. 하지만 현실주의와 상징주의는 이론상으로는 분리가 가능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전혀 분리가 불가능한 사상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실제 현실의 세계에서는 세계의 변혁을 꿈꾸지 않는 상징주의자들은 단 한 사람도 없으며, 또한 ‘아버지인 태양’과 ‘어머니인 대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주의자들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현실주의와 상징주의는 서로서로 뒤섞여 있고 혼융되어 있으며, 그것의 완전한 분리는 전혀 가능하지가 않다.
송찬호 시인은 1959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났고,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10년 동안의 빈 의자}, {붉은 눈, 동백} 등이 있고, ‘김수영문학상’과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송찬호 시인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상징주의자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가 딛고 서 있는 곳은 언제나 구체적인 현실 속의 땅이다. 그의 [채송화]는 상징주의의 걸작품이기는 하지만, 그의 [채송화]의 물적 토대는 구체적인 현실 속의 땅이기도 한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채송화는 무엇인가? 채송화는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이며, 20cm 내외의 관상용 꽃이다. 기본종의 꽃색은 붉은 색이지만, 그밖에 황색, 백색, 도색, 분홍색의 꽃도 있으며, 그리고 홑꽃과 겹꽃도 있다. 꽃의 개화에는 충분한 일조량과 고온이 필요하고, 꽃은 오전에 피었다가 오후 2시경에는 시든다. 채송화의 ‘꽃말’은 ‘가련함’과 ‘순진함’인데, 거기에는 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옛날 페르시아에는 지극히 탐욕스럽고 오로지 보석 밖에는 모르는 여왕이 있었다. 그 여왕은 모든 백성들에게 날이면 날마다 보석을 가져올 것을 명령했고, 그 여왕의 전제군주적인 횡포 앞에서 모든 백성들이 신음을 하고 있었던 어느 날이었다. 어느 한 노인이 12 개의 보석상자를 가져왔고, 그리고 그 노인과 그 페르시아 여왕은 보석 하나와 페르시아 백성 한 사람을 맞바꾸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아름답고 큰 보석 하나와 여왕만이 남게 되었지만, 그 보석에 환장한 여왕은 자기 자신과 그 보석을 맞바꾸어 버렸다. 여왕이 그 보석을 받아드는 순간, 그 보석상자들은 모두 터져버렸고, 바로 그때, 수많은 보석들이 흩어져서 자그만 채송화들로 꽃 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송찬호 시인은 그의 [채송화]라는 시에서 “이 책은 소인국 이야기이다”라고 말하고, “이 책을 읽을 때는 쪼그리고 앉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실제 어느 집의 꽃밭에서 채송화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화책 속에서 화가가 그린 채송화꽃밭을 보고 있는 것이다. 채송화는 키가 작기 때문에 소인국 이야기가 되고, 그리고 그 꽃구경을 할 때에는 반드시 쪼그리고 앉지 않으면 안 된다. 마치, 18세기의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읽는 듯한 그의 [채송화]는 그러나 조나단 스위프트의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의 세계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기만 하다. 오직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 편’, ‘대인국 편’, ‘말나라 편’ 중에서 ‘소인국 편’의 동화적인 분위기만을 차용한 채, 어느 버려진 폐가의 채송화꽃밭을 점층적인 방법으로 묘사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책 속 소인국으로 건너가는 배는 오로지 버려진 구두 한 짝” 뿐이 되고, “깨진 거울 조각”은 그 배가 건너갈 수 있는 “가장 커다란 호수”가 된다. 그 채송화꽃밭에는 고양이가 잠시 머물다 갔는지, “고양이 수염”이 빠져 있고, 또, 그리고 비둘기가 앉았다 갔는지 비둘기똥이 남아 있다. 하지만 송찬호 시인은 고양이수염을 다만 고양이수염으로 보지 않고 고양이가 채송화꽃밭을 읽고 간 주석으로 읽으며, 또한, 비둘기똥을 다만 비둘기똥으로 보지 않고 비둘기가 채송화꽃밭을 찬양한 헌사로 읽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고양이는 수많은 보석들처럼 피어난 채송화꽃밭을 어떻게 읽고 간 것이며, 왜, 비둘기는 그 아름답고 예쁜 채송화꽃밭에다가 왜 그의 똥으로 헌사를 남겼던 것일까? ‘고양이의 주석’과 ‘비둘기의 헌사’를 해석하는 것은 송찬호 시인의 [채송화]를 읽는 여러 독자들의 자유일 것이다. 꿈보다 해몽이 더 좋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독자중심의 수용미학’에도 해당이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타고난 성격과 취향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들이 생겨나고, 바로 그것이 모든 시와 예술들을 더욱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시인과 독자들은 현실주의자이면서도 상징주의자들이기도 한 것이다. 채송화꽃밭에는 고양이수염과 비둘기똥이 있다. 그것은 구체적인 현실이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상징주의자들이 그것에 부여하는 의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양이의 주석은 무엇이며, 비둘기똥의 헌사는 무엇일까? 송찬호 시인이 바라보고 있는 소인국의 세계는 채송화꽃밭이며, 그 채송화꽃밭은 “물뿌리개 하나로 뜨락과 울타리/ 모두 적실 수 있는 작은 영토”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채송화꽃밭은 이미 폐가가 된 채송화꽃밭이며, 기껏해야 버려진 구두 한 짝과 깨진 조각거울, 그리고 고양이수염과 비둘기똥이 뒤섞여 있는 채송화꽃밭에 지나지 않는다. 송찬호 시인은 그 폐허 속의 채송화꽃밭을 바라보면서, 그 폐허 속의 채송화꽃을 향하여 이렇게 속삭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채송화야,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아름다운 채송화야! 너는 이처럼 더럽고 추한 폐허(현실) 속에서도 이처럼 아름답고 예쁘게 피어날 수가 있단 말이냐!”
송찬호 시인의 ‘소인국 이야기’는 매우 아름답고 예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서럽고 슬픈 이야기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부자는 더욱 더 부자가 되어가고 가난한 자는 더욱 더 가난한 자가 되어간다. 부자는 더욱 더 작은 소수의 무리가 되어가고, 가난한 자는 더욱 더 많은 다수의 무리가 되어간다. 그 양극화의 구조 속에서 이제는 그 가난한 자들마저도 더 이상은 살만한 곳이 못된다고 떠나간 채송화꽃밭, 기껏해야 버려진 구두 한 짝과 깨진 거울 조각과 고양이수염과 비둘기똥만이 뒤섞여 뒹굴고 있는 채송화꽃밭, 과연 물뿌리개 하나로 그 모두를 적실 수 있는 이 채송화꽃밭은 어느 소인국의 나라를 지칭하고 있는 것일까? 이 21세기는 신자유주의의 질서 체제로 미국과 일본은 더욱 더 군사동맹을 강화시켜 나가고 있고, 그토록 넓은 영토와 수많은 인적자원으로 세계화의 야망을 불태우고 있는 중국은 모든 역사들을 조작--가공하며 더욱 더 한반도의 멱살을 움켜잡아오고 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자유주의 체제의 변방으로 밀려나 있던 러시아는 수많은 에너지 자원들을 앞세워 한반도에 대한 지난 날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더욱 더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는 실정이기도 한 것이다. 송찬호의 ‘소인국의 이야기’(농촌의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이야기’이며, 이 ‘대한민국의 이야기’는 ‘소인국의 이야기’(농촌의 이야기)이다. 채송화는 20cm 내외의 작은 꽃이며, 그리고 아름답고 예쁜 꽃이다. 그 채송화꽃의 꽃말이 ‘가련함’과 ‘순진함’이라는 것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송찬호 시인의 [채송화]는 그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상징주의자이듯이, 모든 수사법들의 경연장이라고 할 수가 있다. 첫 번째는 점층법이며, 그 점층법을 통해서 소인국의 이야기를 더욱 더 흥미진진하고 아름답게 전개시켜 나간다. “이 책은 소인국 이야기이다”라는 시구에 이어서, “이 책을 읽을 땐 쪼그려 앉아야 한다”고 그 다음의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고, 그리고 그 두번째 시구에 이어서, “책 속 소인국으로 건너가는 배는 오로지 버려진 구두 한 짝”이라고 그 다음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또, 그리고, 그 세 번째 시구에 이어서 그 다음의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면, 그 다음, 그 다움의 이야기들이 이어져 나가게 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책에 채송화가 피어 있다”라고 그 대단원의 결말을 내리게 된다. 두 번째는 상징적인 수사법인데, 상징이란 언어를 단순한 기호로 보지 않고 그 기호에 의미를 부여한 어떤 것을 말한다. 예컨대 ‘채송화=작은 꽃’은 일차적인 의미에 불과하지만 '채송화= 난장이“는 이차적 의미가 되고, 또, 그리고 ‘난장이= 소인국’은 삼차적 의미가 된다. 이때에 ”채송화=작은 꽃‘은 말(기호)과 사물(지시대상)이 일치하는 것을 뜻하지만, ’채송화=난장이‘와 ’난장이=소인국‘은 말과 사물이 일치하지 않고, 다만, 우리 인간들이 그 지시대상(채송화)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된 어떤 것을 말하게 된다. ’아버지인 태양‘, ’어머니인 대지‘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그 의미부여자들(상징주의자들)의 천국이 되고 있는 것이고, 우리 인간들은 모두가 대단히 세련되고도 정교한 상징주의 기법을 구사하고 있는 수사학자들이기도 한 것이다. 그 다음 세 번째는 은유법이고, 그 다음 네 번째는 환유법이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제유법이다. 은유법은 유사성의 법칙으로 되어 있으며, ’책=소인국 이야기‘,’배=버려진 구두‘, ’채송화꽃밭=소인국‘이 바로 그것이다. 환유법은 인접성의 법칙으로 되어 있으며, 그 환유법에 따르면 채송화 곁에 버려진 구두가 있고, 버려진 구두 옆에 깨진 거울 조각이 있고, 깨진 거울 조각 옆에 고양이수염이 있고, 고양이수염 옆에 비둘기 똥이 있다. 제유법은 부분을 전체로 설명하거나 전체를 부분으로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왕관을 왕으로 설명하고, 왕을 왕관으로 설명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송찬호 시인은 고양이수염으로 고양이를 설명하고, 비둘기똥으로 비둘기를 설명하는 제유법의 대가이다. 송찬호 시인이 상징주의자가 된 것은 이처럼 언어학에 민감하고 더욱 더 정교하고 세련된 수사법을 구사할 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애지} 편집위원들은 이 [채송화]를 제3회 ‘애지문학상’의 수상작으로 선정했었지만, 송찬호 시인이 한사코 그 수상자가 되기를 거절한 바가 있었다. 나와 너무나도 가깝고 우리 ‘애지문학상’의 장래를 위해서라는 것이 그 수상거부의 변이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서운하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이 [채송화]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뛰어난 시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 ‘애지문화’는 대한민국의 역사상 최고급의 문화로 자라날 것이고, 우리 한국인들의 영광과 모든 인류의 영광을 위하여 오늘도 전진하고, 또 전진해나가고 있다.
송찬호 시인은 나와 가장 가깝게 지내고 있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는 내 알고 있는 시인 중에서 가장 싸가지가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제멋대로이고, 언제, 어느 때나 모든 약속을 제멋대로 파기할 수 있는 인간이 바로 그 송찬호 시인인 것이다. 그 싸가지 없음이 그의 시적 토대이고, 그 싸가지 없음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채송화]가 꽃 피어난다.
오오,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상징주의자들이여!
오오, 이 세상에서 가장 싸가지*가 없고 또 없는 보들레르, 랭보, 송찬호시인들이여!
* ‘싸가지가 없다’는 ‘버릇없다’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이며, 싹수가 없다는 말이 그 표준어이다. 따라서 싹수가 없다는 것은 나무와 풀의 새싹이 제대로 자라나지 못하고, 그 장래의 가망이 전혀 없다는 것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