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집주(論語集注) - 7 - 술이(述而) - ㉚ |
1 | 陳司敗問 昭公知禮乎 孔子曰 知禮 진나라 사패가 공자님께 묻기를, “노나라 소공도 예절을 알았습니까?”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절을 아셨습니다.”라고 했다.
陳國名 司敗官名 卽司寇也 昭公魯君 名稠 習於威儀之節 當時以爲知禮 故司敗以爲問 而孔子答之如此 陳은 나라 이름이다. 사패는 관직명인데, 곧 사구다. 소공은 노나라 임금이고, 이름은 稠이며, 威儀(曲禮)의 예절에 익숙하여 당시에 예를 안다고 여겨졌다. 그러므로 사패가 이로써 질문한 것이고, 공자가 그에 대답한 것이 이와 같았다.
胡氏曰 左氏傳註 陳楚名司寇爲司敗 호씨가 말하길, “춘추좌씨전 주석에 진나라와 초나라는 司寇를 사패라고 이름을 붙여 불렀다.”고 하였다. |
2 | 孔子退 揖巫馬期而進之曰 吾聞君子不黨 君子亦黨乎 君取於吳 爲同姓 謂之吳孟子 君而知禮 孰不知禮 공자께서 물러나자, 사패가 무마기에게, 읍하고 앞으로 다가와서 말하기를, “내가 듣기로 군자는 편당(偏黨)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군자도 편당(偏黨)을 하는가?
임금이 오나라 공주에게 장가를 드니 오나라와 노나라는 같은 동성(同姓)이므로 오맹자라고 부른 것이다. 임금이 예절을 안다면 누가 예절을 모르겠는가?”라고 했다. 巫馬姓 期字 孔子弟子 名施 司敗揖而進之也 相助匿非曰黨 禮不取同姓 而魯與吳皆姬姓 謂之吳孟子者 諱之 使若宋女子姓者然 무마는 성이고, 기는 자며, 공자의 제자로서 이름은 시였다. 사배가 그에게 읍하여 그를 불러들인 것이다. 서로 도와 잘못을 감추어주는 것을 黨이라고 말한다. 예에 따르면 동성은 부인으로 취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노나라와 오나라는 모두 姬씨 성이었다. 그 부인을 오맹자라고 부른 것은 그것을 감춘 것인데, 마치 송나라 여자의 姓인 것(子姓)처럼 만든 것이다.
禮坊記 取妻不取同姓 以厚別也 故買妾不知其姓 則卜之以此坊民 魯春秋猶去夫人之姓曰吳 其死曰孟子卒 예기 방기 편에, 처를 취함에 있어 같은 성을 취하지 않으니, 구별함을 두텁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첩을 살 적에 그 성을 알지 못하면, 점을 쳤는데, 이로써 백성을 단속하고자 하였다. 노나라 춘추에는 그래도 임금 부인의 성(姬)을 없애고서 吳라고 말하였고, 그 죽음에 대해서는 孟子(孟은 이름이고, 子가 성이다)가 죽었다고 말하였다.
厚齋馮氏曰 古者男子稱氏辨其族也 女子稱姓厚其別也 故制字姓從女 百世而婚姻不通者 周道也 稱孔子時 孔子在陳 蓋記於陳也 후재풍씨가 말하길, “옛날에 남자는 氏를 지칭하여 그 일족을 분별하였고, 여자는 姓을 지칭하여 그 구별을 두텁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字를 만듦에 있어 성은 여자를 따랐으니, 백 세대가 지나도 혼인이 통하지 못한 것이 바로 주나라의 법도였다. 공자를 지칭할 당시, 공자께서 진나라에 계셨기에, 아마도 진나라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夫人稱姓 周女曰姬 宋女曰子 齊女曰姜 楚女曰芉 是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부인은 성을 칭하였는데, 주나라 여자는 姬라고 말하였고, 송나라 여자는 子라고 말하였으며, 제나라 여자는 姜이라 말하였고, 초나라 여자는 芉이라 말하였으니, 바로 이것이다.”라고 하였다.
吳氏曰 謂者 何人謂之 春秋哀十二年 書孟子卒不書葬 疑謂之孟子者 魯人諱之 而謂之吳孟子者 當時譏誦之語也 오씨가 말하길, “謂(불렀다)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그를 그렇게 불렀다는 것이다. 춘추 애공 12년에, 孟子가 죽었다고만 썼을 뿐 장례에 대해서는 쓰지 않았다. 그녀를 일컬어 맹자라고 불렀던 것은 노나라 사람들이 이를 감추어서 말한 것인 반면, 그녀를 吳孟子라고 불렀던 것은 당시 사람들이 譏誦(놀리면서 읊었던)했던 말인 것으로 의심된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不稱姬而冠之以吳 終有不可掩者 신안진씨가 말하길, “姬성으로 호칭하지 않고, 첫머리에 吳로 모자를 씌운 것은 끝내 덮어 감출 수 없음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3 | 巫馬期以告 子曰 丘也幸 苟有過 人必知之 무마기가 공자님께 그 말을 고하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참 다행한 사람이구나. 정말 내가 과실이 있으면 사람들이 반드시 그것을 알고 있구나.”라고 하셨다.
孔子不可自謂諱君之惡 又不可以取同姓爲知禮 故受以爲過而不辭 공자는 임금의 악행을 감추었다고 스스로 말해서도 안 되었고, 또한 동성을 부인으로 취한 것을 예를 안 것이라고 말해서도 안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여 잘못으로 삼고서 변명하지 않았다. |
4 | ○ 吳氏曰 魯蓋夫子父母之國 昭公魯之先君也 司敗又未嘗顯言其事 而遽以知禮爲問 其對之宜如此也 及司敗以爲有黨 而夫子受以爲過 蓋夫子之盛德 無所不可也 然其受以爲過也 亦不正言其所以過 初若不知孟子之事者 可以爲萬世之法矣 오씨가 말하길, “노나라는 대개 공자의 부모지국이었고, 소공은 노나라의 이전 임금이었다. 사패가 또 일찍이 그 일을 드러내어 말한 적이 없이 갑자기 예를 아느냐는 것으로 질문하였으니, 공자의 대답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할 것이다. 사패가 편당하였다고 여기는 지경에 이르자, 공자께서는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의 허물로 삼았으니, 대개 공자의 성대한 덕이 옳지 않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자가 그대로 받아들여 허물로 삼을 적에 역시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것을 정확하게 말하지 않고서, 처음부터 오맹자의 일을 모르는 사람처럼 하였으니, 가히 만세의 법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且以有過而人知爲幸 又可垂敎以警夫護疾忌醫者 경원보씨가 말하길, “또한 자기 잘못이 있음에도 남이 아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것이니, 또한 가르침을 후세에 드리워서 저 병을 보호하며 의사를 거리끼는 자들을 경계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昭公取同姓之事 若天王擧法則如何斷 朱子曰 此非昭公故爲之也 當時吳盛强 中國無伯主 以齊景公猶云 旣不能令又不受命 涕出而女於吳 若昭公亦是藉其勢不得已之故 非貪其色而然也 天王擧法 則罪固不免 亦須原情自有處置 況不曰孟姬而曰吳孟子 則昭公亦已自知其非矣 누군가 묻기를, “소공이 동성을 처로 취한 일에 대하여, 만약 천자가 법을 들어 적용했다면 어떻게 처단했을까요?”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이것은 소공이 일부러 한 것이 아니다. 그 당시에 오나라는 강성하였고, 중원에 있는 나라에는 패자가 없었으므로, 제경공도 오히려 말하길, ‘이미 호령할 수도 없고 명을 받지 않을 수도 없다’고 하며, 눈물을 흘리며 오나라에 딸을 시집보냈으니, 만약 소공이라고 해도 역시 그 세력을 빌미로 부득이했던 까닭이지, 그 여색을 탐하여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니었다. 천자가 법을 적용한다면 죄는 본래부터 면하지 못하겠지만, 또한 반드시 사정을 감안하여 저절로 처치함이 있을 것이다. 하물며 孟姬라고 말하지 않고 吳孟子라고 말했으니, 소공도 역시 그것이 잘못임을 이미 스스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他國之大夫問吾國之君知禮與否 則但可告之以知禮而已 及無馬期以司敗之言告 則又豈可謂娶同姓爲知禮乎 若言爲君隱之 意則淺露已甚而失前對之本意矣 故但引己之過而已 然而娶同姓之爲非禮 其義固已在其中矣 聖人辭氣之間 其天地造化與 남헌장씨가 말하길, “타국의 대부가 내 나라 임금이 예를 아는지 여부를 물었다면, 다만 예를 안다고 대답해야만 될 뿐이다. 무마기가 사패의 말을 고함에 이르렀다면, 또한 어찌 동성을 처로 취하는 것이 예를 아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만약 임금을 위하여 숨긴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 뜻이 얕게 드러남이 너무 심하여서 앞서 대답하였던 본래의 뜻을 잃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지 자신의 잘못을 끌어내었을 뿐이다. 그러나 동성을 처로 취하는 것이 예가 아니라는 그 의미는 본래부터 이미 그 안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성인께서 말씀하시는 기운 사이는 아마도 모두 천지의 조화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吳氏曰 夫子受以爲過 則昭公不得爲知禮可知 隱諱者 臣子之私 是非者 天下之公 夫子答司敗與期可謂兩盡其旨矣 葉公以證父之惡爲直 司敗以隱君之惡爲黨 彼蓋知直之爲公黨之爲私 而於父子君臣之義蔑如也 微夫子大道其隱乎 오씨가 말하길, “공자께서 그대로 받아들여 잘못이라고 인정하였으니, 소공이 禮를 아는 것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숨기고 감추는 것은 신하로서의 사사로움이고, 옳고 그른 것은 천하의 공정함이니, 공자께서 사패와 무마기에게 답한 것은 양쪽 다 그 뜻을 다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섭공은 아비의 악을 증언하는 것을 정직한 것으로 여겼고, 사패는 임금의 악을 숨기는 것을 편당하는 것으로 삼았는데, 저들은 대체로 정직함이 公이 되고 편당함이 私가 된다는 것만 알았을 뿐, 부자와 군신의 의로움에 대하여는 업신여겼던 것이다. 만약 공자가 없었더라면, 大道는 아마도 숨겨지고 말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使夫子而直指君之非 則自無君臣之禮 使夫子而不自引己之過 則遂無婚姻之禮 何以爲萬世之法哉 운봉호씨가 말하길, “만약 공자께서 임금의 잘못을 곧장 지적하였다면 저절로 군신의 예가 없는 것이고, 만약 공자께서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끌어내지 않았다면 도리어 혼인의 예가 없을 것이니, 어떻게 만세의 법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